천체 스케치/사진 ~☆+

  • [30日] 사라져야 볼 수 있는 것 [스케치]
  • 조회 수: 6773, 2015-08-25 09:54:53(2015-08-23)


  • '개기일식을 보고 나면 인생이 바뀐다'


    별을 갈망하는 것 자체가 내 인생이긴 하지만


    그 중에도 개기일식은 내 삶에 대한 가치관마저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개기일식은 내 일생의 해외여행 계획을 모조리 정해 주었다


    내가 죽는 그 날까지 말이다



    2009년 중국 항저우




    2012년 봄의 일본 도쿄


    SAM_4297.JPG 



    그해 가을 호주 케언즈


    121114_063213_00998.JPG 



    그 사이 2010년 이스터섬은 너무 멀어서,


    2013년 케냐는 날씨와 치안과 이동의 압박으로 포기..



    2015년의 북극 개기일식은.. 거의 미친짓,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북극 원정은 이미 연재글로 10편이나 떠들었으니 자세한 얘기는 생략한다)



    그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북극의 빙산 위에서


    인생 최고로 완벽한 개기일식을 만나는 순간..


    나는 흔한 탄성 한마디 지르지 못했다



    그냥 두 손을 높이 들고 다이아몬드링을 맞이하고


    눈밭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경건한 마음으로 검은 태양에 집중했다


      



    완벽한 개기일식을 보고 나면,


    나도 남들처럼 완벽한 그림을 남길 수 있을줄 알았다



    2009년 인도 갠지스 강가에서 연필로 다이아몬드링을 그린 경싟형님이나


    [ 갠지스 강가의 개기일식, 흰 종이에 연필 - 김경싟 (2009) ]


    식.jpg



    2012년 호주 북부에서 개기일식 스케치를 남긴 Vieillard처럼 말이다


    [ 케언즈에서 ‘멀리’ 떨어진 호주 북부 어딘가, 흰 종이에 연필 - Serge Vieillard (2012) ]


    Serge_Vieillard.jpg




    2009년 항저우에서는 내가 천체스케치를 하기 전이었고,




    2012년 봄 도쿄에서는 그림을 남기긴 했으나 금환일식이었고


    [ Eclipse & Sky Tree, 검은 종이에 색연필 - 도쿄 / 조강욱 (2012) ] 


    eclipse.jpg



    2012년 가을 케언즈에는 좋은 종이와 각종 그림 도구를 가져갔으나


    귀국하여 얼마 뒤.. 일식을 망친 트라우마가 곱씹을수록 깊어져서 


    그리다 만 그림은 어느날 갈기갈기 찢어서 분리수거함에다 버렸다


    (너무 좋은 종이를 썼더니 잘 찢어지지도 않았다)




    그런데,


    북극에서 기적적인 파란 하늘을 만나 설산 중턱에서 완벽한 개기일식을 만났는데도


    뭘 어떻게 그려야 할지 전혀 영감이 떠오르질 않는다


    겨우 감질나게 2분 정도 본 것을 그림으로 표현하기는 아직은 내공이 많이 부족한가보다



    그 대신에,


    태양 말고 달에 집중해서 그림을 남겨 보기로 했다


    나는 월령 29일의 D-1 그믐달보다 훨씬 보기 힘든 월령 30일의 달,


    그믐달도 초승달도 아닌 이름조차 주어지지 않은 달을 본 것이다


    보이지 않으니 이름이 있을 수 없겠지 (굳이 따지자면 '삭'이다)



    세상 60억 인구 중에 개기일식을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들 중 태양이 아닌 달을 느껴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런 생각을 하며 폰으로 완전한 구형의 달 그림자를 그리고 있으려니


    완벽한 개기일식을 표현하지 못한 아쉬움은 북극의 빙산 녹듯 사라져 버렸다



    [ 북극의 기적, 갤럭시노트4에 터치펜 - 조강욱 作 (2015) ]

     

    북극의 기적.png  



    내가 보통 성단 하나 스케치 하는데 집중하면 한 시간 정도 걸리는데..


    개기일식 한 번에 평균 2.5분을 볼 수 있으니, 24번만 개기일식을 보면


    내 눈으로 머리로 가슴으로 1시간은 그 빛을 축적한 것이니


    원하는 정도의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근데 1.5년 정도마다 개기일식이 한 번 있으니.. 앞으로 안 빼먹고 본다 해도 36년,


    내가 70대가 되어서야 가능한 일이네..


    몸건강 눈건강 관리해야지..  =_=



    생각해보니 그걸 뭘 그렇게 똑같이 그리려 애쓸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똑같지는 않아도 잘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보며 그 날의 기억을 되새길 수는 있으니 말이야


    북극에서 일식을 보기 며칠 전에 스웨덴에서 보았던 엄청난 오로라도 결국 관측 스케치를 남기는 것을 포기했다



    [ 김동훈作, 폭풍의 하늘 ]

    anigif_150318_001358_S.gif



    이걸 대체 어떻게 그리나?


    특히 순간적으로 몰아치는 오로라 폭풍이 휩쓸 때는 그냥 눈으로 멍하니 그것을 지켜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격렬하게.jpg 


    대신 다음날, 머릿속에 남아 있는 잔상만을 가지고


    침대에 누워서 내맘대로 그 폭풍의 느낌을 그려 보았다



    [ 스톰의 절정, 갤럭시노트4에 터치펜 - 스웨덴 / 조강욱 (2015) ]


    150315 스톰의 절정.png 


    언젠가는 개기일식의 결정적 순간도


    내가 느낀 것을 만족할 만큼 표현할 순간이 올 것이라 기대한다.


    그때까진,


    몸건강 눈건강....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개기일식이 당신의 인생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을.





                                                                Nightwid 無雲



댓글 2

  • Profile

    장형석

    2015.08.25 01:08

    북극의 기적? 이라는 빨간 달은...
    웬지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사우론의 눈이 생각나는군요.. ㅎㅎ
  • 조강욱

    2015.08.25 09:54

    사우론의 눈이 되려면 중심성이 있어야.. ㅎㅎㅎ

위지윅 사용
  조회  등록일 
thumbnail
  • 천세환 조회 수: 6393
  • 스케치
  • 안녕하세요? 미술을 배우기 시작한지 6개월째~ 드디어 화실에서 크레이터를 그렸습니다. 첫 대상은 바닥이 비교적 편평해서 묘사하기 쉬울 것 같은 - Plato ㅋㅋㅋ (사진 보고 그린 겁니다. 크레이터를 이렇게 자세히 관측할 망원경은 없ㅋ음ㅋ) 2016년 9월 7일 기존에 ...
2016-09-27 03:39:11 관심은하 / 2016-09-22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12930
  • 스케치
  • 지인 중에는 내가 110개의 메시에 대상에 대한 글을 모두 써 놓고 하루 하나씩 올리는 줄 알고 있는 분도 있다는.. ㅎ;; 그러면 참 좋겠지만.. 밤마다 11시 반쯤 노트북 앞에 앉아서 오늘은 무슨 얘기를 쓰나 반쯤은 이미 잠에 취해서 의식의 흐름에 따라 글을 쓰다가 ...
2016-09-22 07:27:33 이름없는별 / 2016-09-21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11320
  • 스케치
  • 하늘에는 자리 잘못 잡아서 손해 보는 애들이 있다. 메시에 중에도 말이다 13번 옆의 92번, 57번 옆의 56번 같은 애들.. 그리고 17번 옆의 18번도 마찬가지다 (아래 사진의 중앙 좌측은 17번, 오른쪽의 조금 밝은 별들이 모여 있는 애들이 18번이다 출처 : http://sweag...
2016-09-20 02:28:40 조강욱 / 2016-09-16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9408
  • 스케치
  • 천체 스케치를 주제로 이렇게 별 대책 없는 하루살이 칼럼을 메시에 110편 완주를 목표로 하루하루 써나가고 있지만 2009년까지만 해도 천체 스케치는 그저 ‘하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막상 하려니 엄두가 나지 않는’ 그런 일이었다 매일 빼먹지 않고 어학 공부를 ...
2016-11-27 11:33:06 / 2016-09-14
thumbnail
  • 천세환 조회 수: 6013
  • 스케치
  • 눈을 사물에 고정시킨 채 그림을 그리는 기법 - 블라인드 컨투어 드로잉은 관찰력을 키울 수 있는 좋은 훈련법이지만 왠지 두려움이 느껴진다는 것이 천체스케치와 비슷합니다. 이번에는 그 심리적 장벽을 넘어보고 싶어서 월령 10일의 달을 대상으로 블라인드 드로잉 ...
2016-09-20 02:26:47 조강욱 / 2016-09-14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11611
  • 스케치
  • 밤하늘에는 안시용 대상과 사진용 대상이 있다 물론 밤하늘의 성자 57번처럼 안시로도 사진으로도 모두 만족스러운 대상도 있지만 말이다. 나는 안시쟁이라 장시간 노출로만 화려하게 나오는 희미한 성운류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리 해도 사진 만큼의 감동을 느끼...
2016-09-14 07:48:37 / 2016-09-10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10631
  • 스케치
  • 15번은 가을 하늘에서 가장 찾기 쉬운 구상성단이다. 페가수스의 가장 눈에 띄는 별인 Enif 바로 근처기 때문이다 보이는 모습 또한 그냥 저냥 준수하고 말이다 (뱀주인 구상 애들처럼 히마리 없지는 않다) 물론 그 크기와 밝기는 더 남쪽의 M2를 능가할 수 없지만.. 지...
2016-09-20 02:23:38 조강욱 / 2016-09-08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11567
  • 스케치
  • 14번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다 1년에 한 번(메시에마라톤) 밖에 찾지 않아서 이기도 하고 호핑 루트에 밝은 별이나 특징적인 별무리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흠 그럼 보이는 모습은? 그렇게 대충 봐서 기억이 날 리가 없지 2014년 여름휴가는 횡성의 천문인마을에서 ...
2016-09-14 07:48:09 조강욱 / 2016-09-07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11449
  • 스케치
  • 북반구 중위도에 사는 관측자에게 M13은 특별한 존재이다 ‘하늘에서 가장 밝고 큰 보기 좋은 구상성단’이기 때문이다. 과연 진짜로 그럴까? 전 하늘에서 가장 밝고 큰 구상성단부터 순서를 매겨 보자. 13번의 위치는 Top 5에도 들지 못하고 겨우 7번째에 이름을 올리고 ...
2016-09-08 05:11:55 조강욱 / 2016-09-05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11132
  • 스케치
  • 뱀주인자리 정중앙에는 10번과 12번이 위치하고 있다 (출처 : 위키피디아) 별만 드문 것이 아니라 인적도 드물지만 말이다 문제 : 뱀주인이 매력이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다음 중 맞는 것을 고르시오 ( ) 1. 비슷비슷하게 생긴 구상성단들만 모여 있어서 2. 호핑...
2016-09-08 05:12:46 조강욱 / 2016-09-0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