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체 스케치/사진 ~☆+

  • [32日] 세상의 시작 (최종회) [스케치]
  • 조회 수: 9400, 2016-02-26 17:36:17(2016-01-28)
  •  

      

    그 달, 초하루 달을 보는 것은


    폰으로 달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후 나의 간절한 소망이었다

     

    매월 음력 1일마다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놓고


    날씨가 좋기를, 회사가 빨리 끝나기를, 태양과 달의 각거리가 조금 더 멀기를 기원했다

     

     

    그러나 그 달은 그리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믐 마지막 달을 한 번의 시도로 성공한 것과는 정 반대로..


    집 앞 공터에서, 버스 정거장에서, 회사 창고에서, 한남대교 위에서, 반포 고수부지에서,


    홍천 관측지에서, 소백산 정상에서, 울산 처가 근처 산중에서, 노르웨이 오슬로 공항에서, 서호주 피너클스까지

     

    14년 가을부터 1년 반동안 찾아 헤멨는데 이정도 노력이면 얼굴 좀 보여줘야 하는거 아닌가.

     

     

    15년 4월 새벽 남산 중턱에서 월령 27일 달을 마지막으로

     

    월령 0일부터 29일까지 모든 달그림을 마무리하고

     

    매월 음력 1일만 기다린다

     

     

    해가 바뀌어 올해 1월 11일 월요일,

     

    일요일밤 날씨가 너무 좋아서 회사에 하루 휴가를 냈다

     

    (별 보겠다고 당당히 말하고 휴가를 낸 것은 멋모르는 신입사원때 이후로 처음인가보다)

     

     

    홍천에서 아름다운 밤을 보내고,

     

    예보상으로는 낮부터 흐려져야 하는데..

     

    날씨가 워낙 추워서 그런지 하늘은 너무나 맑기만 하다.

     

    그리고 오늘은 바로 그 날, 음력 1일이다

     

     

    월요일 오후 5시, 종종 산책하러 오르던 은평구립도서관에

     

    방학이라 집에 있는 초딩 2학년 딸래미를 데리고 출발했다

     

    (산 중턱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서쪽 시야가 고도 5도 아래까지 확보된다)

     

    늦을까봐 헉헉대며 구보로 도서관에 도착하니 다행히 아직 해는 지지 않았다

     

    (산 능선의 일몰 포인트를 정확히 확인해야 달이 질 위치도 가늠할 수 있다)

     

    해가 지며 눈부신 석양빛이 하늘을 한 번 휘감은 뒤,

     

    언제까지일지 모를 기다림을 시작한다

     

    절대로 춥다고 집에 가자고 클레임을 안하기로 약속하고 따라온 딸래미도

     

    가방에 잔뜩 챙겨온 장난감을 도서관 야외 벤치에서 꺼내어 놀며 약속을 지킨다

     

    알고보니 효녀네...

     

    800_20160111_171046.jpg   

     

      

    눈에 레이저가 나오도록,

     
    아무것도 없는 하늘을 사주경계 한지 20분쯤 지났을까?

     
    아직 파란 하늘을 지나는 엷은 구름의 끝에 무언가 눈썹 같은 것이 보인다

     
    굳이 표현하자면 여성용 인조 속눈썹 하나가 15m 앞 어두운 바닥에 떨어진 걸 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너무나 희미하긴 하지만, 있다. 이건 진짜 있는거 맞아

     

    (아래 폰카 사진의 중앙 약간 좌측의 긴 구름의 꼬리쪽에 있는데.. 눈으로는 보이나 폰카로는 확인 불가..)

    20160111_174848.jpg    

     

    그동안의 어려움이, 노력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1일 달은 사막의 지평선 정도에서나 보일 것이라고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높은 고도(10도)에서, 그것도 서울 하늘에서...

     
    어디어디???? 를 연신 외치던 딸래미도 이내 그 모양을 찾았다

     
    (너무 희미해서 고개를 돌렸다 다시 보면 또 찾아야 한다)

     
    사라지기 전에 얼른 폰과 터치펜을 꺼내서 그 색과 모양을 기록한다

     

    1750.JPG  

     

     

    금방 사라지면 어떡하나 하는 우려와는 다르게 그 달은 하늘의 어둠과 함께 점점 그 밝기를 키운다

     
    우리가 멍하니 하늘을 지켜보는 것을 보고

     
    몇몇은 하늘을 보고 '어 달인가봐...' 하고 스쳐 지나간다

     
    그들은 이 달이 얼마나 소중한 달인지 아마 모르겠지

     
    별보기는 아는 만큼만 보이는 법이니까..

     
    1800.JPG  

     

     

    날이 어두워지며 날씨는 더 추워지고


    1일 달에도 아주 희미한 지구조가 나타난다.

     

    1830.JPG

     


    지금 세상에 이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딸님께 그 가치를 설명하니 이해하는 듯도 하다


    그 감동을 느끼는 동시에 손발이 점점 얼어서 곧 없어질 것만 같다

     
     
    그래도 초하루 달의 월몰은 보고 가야지

     

    딸래미와 둘이서 발이 시려서 동동 뛰면서

     
    도서관 이용객들의 의심어린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달이 월몰을 향해 가면서, 대충 봐서는 하늘에서 달의 형체도 잘 알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추워서 몸부림을 치면서도 아무것도 없는 빈 하늘만 쳐다보는 부녀의 모습이란..)

     
    그 마지막 순간을 기다린다

     
    1840.JPG

     

     

    봤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월령 1일 달을 본 사람이야

     
    1년반의 노력으로 초하루 달도 봤는데 내가 앞으로 못할 일이 무엇일까?

     
    이슬람 국기에 모두 초승달이 들어있는 것은


    islam_flag.jpg

     


    이슬람교 창건에 대한 종교적인 이유와 함께

     
    앞으로 차오를 일만 있으라는 기원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초승달을 봤으니

     
    내 인생에도 차오를 일만 남아 있을 것이라

     
    스스로 기원해 본다

     

    160111_D+1.png   

     

     

     
    P.S 딸님의 일기장.. 마지막줄에 대박 반전 ㅋㅋ


    diary.jpg  

     

     


    - 그동안 32편까지 긴 연재글 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

     

    종합선물세트.JPG

     

     


                                                             Nightwid 無雲



댓글 6

  • 김철규

    2016.01.28 10:11

    예별이 일기의 마지막 문장.. 기분은 그냥 그랬다.... 예별이가 멋진 차도녀 이군요. ㅎㅎ 달 스케치 멋집니다.
  • 조강욱

    2016.02.26 17:34

    솔직한 매력의 차도녀.. 그것도 좋네요  ㅎㅎㅎ

  • 김민회

    2016.01.29 21:28

    달은 가장 오래된 TV라고 하죠.
    가로등 삼아 그 아래에서 사랑도 하구, 술래잡기도 했어요. 그러고 보면 훤한 달아래서 도둑질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만큼 달은 엄마 맘! 신의 보안 카메라 예요.
    달 좋아하는 님은 착해서 그래요.
  • 조강욱

    2016.02.26 17:35

    오래된 TV라..

    저는 하늘의 오랜 등불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

  • Profile

    박상구

    2016.01.30 00:44

    1년반 노력이 결실을 맺었군요. 감격의 마무리를 축하합니다 ^^
    월령 1일 달 속보 올렸을 때 건물에 가린 사무실에서 아쉬워만 하고 있었던 것 같네요 ㅎㅎ 뭐 저도 구경해볼 날이 있겠죠.
    그동안 달 스케치 연재 재미있게 읽었어요~
    근데, 이제 다음 시리즈는 뭔가요? ^^

  • 조강욱

    2016.02.26 17:36

    흠 다음 시리즈는.....

     

    메시에 스케치를 다 마치고

     

    1번부터 110번까지 해 볼까요? ㅎㅎㅎ

위지윅 사용
  조회  등록일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8695
  • 스케치
  • 그믐 전의 마지막 달을 볼 기회는 2012년 11월 개기일식 전날 아침에 찾아왔다 호주 브리즈번에서 내륙으로 300km 떨어진 외딴 시골 농장에서 18인치 UC로 밤새 관측을 하고 1,700km 떨어진 케언즈의 개기일식을 보러 출발하기 전, 개기일식 전야제로 그 D-1 달을 찾아...
2018-11-07 19:14:19 엄청나 / 2015-08-22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7792
  • 스케치
  • 파랗다. 파란 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그저 마냥 기분이 좋아서 하늘만 쳐다 보며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데 건너편 길가 가로수 위로 얇은 그믐달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27일 달을 보기는 그렇게 힘이 들었는데 28일 달은 어찌 그리 쉽게...
2015-08-21 15:23:22 / 2015-08-21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13560
  • 스케치
  • 4월 어느날, 월령 27일 달을 보겠다고 평소보다 일찍 출근하여 한남대교 남단 다리 난간을 잡고 섰다 그러나 하늘은 내 어설픈 노력을 비웃듯이, 이미 너무 밝아져 버렸다 동쪽 하늘 어딘가에 있을, 달이 있을 위치를 한동안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뜻하지 않던 조기 출근...
2015-08-21 15:24:42 / 2015-08-21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7320
  • 스케치
  • 출근길은 언제나 정해져 있다 최소한의 이동 루트로 출근버스 도착 수십초 전에 목적지 도착. 하루는 그 길에서 오리온자리를 보고 있으니 과거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지난 겨울, 울산 처가에서 막걸리 한잔 하고 나니 오리온 자리가 보이길래 별자리 하나 가르쳐드린다...
2015-08-20 05:11:57 조강욱 / 2015-08-19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9925
  • 스케치
  • 문예단의 명성을 들어본 지는 한참 되었다 그러나 서울에서의 거리 때문에 가 볼 생각은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는데 정말로 우연한 기회에 가 보게 되었다. 망원경도 차도 없이 맨 몸으로.. 그리고 그 곳에는 엄청난 하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서둘러 ...
2015-08-18 18:39:07 조강욱 / 2015-08-18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7257
  • 스케치
  • 북극권, 스웨덴 키루나의 산 속 눈밭에서 밤새 오로라를 감상하고 두 시간에 걸친 느린 여명까지 한 장에 나누어 그린 다음에 피곤하지만 뿌듯한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가는 길, 지평선 바로 위의 언덕에서 월령 24일의 달을 만났다 [ 북극의 하현달 - 갤럭시노트4에 터...
2015-08-17 08:25:00 / 2015-08-17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8057
  • 스케치
  • #1 늦었다. 출근 버스도 놓치고 구파발 역으로 뛰어가는 길에 횡단보도를 지나 가로등 위를 얼핏 보니 달이 걸려 있다 불 꺼진 가로등 위의 불 켜진 세로등. 이 순간을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 세로등, 갤럭시노트2에 터치펜 - 조강욱 (2014) ] #2 오늘은 빨리...
2015-08-17 08:19:18 / 2015-08-17
thumbnail
  • 김영대 조회 수: 7831
  • 스케치
  • 조강욱님의 월령 스케치 연재 흐름에 방해를 놓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습니다만... 일단 올려봅니다 .ㅋ 야간비행 관측행사에 실제로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자주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눈팅하고 있는 회원입니다. ^^ 그 동안 스케치에 도전해보겠다고 주변 분들 (박상구...
2015-08-17 20:37:03 김영대 / 2015-08-17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8764
  • 스케치
  • 출근길, 달벽을 그렸던 그 건물 아래 다시 섰다 강렬한 직선의 향연에 그저 탄성이 나온다 얼마전에 강남 미인도를 보고 실소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강남의 달빛은 그냥 왠지 조금 달라보인다 [ 강남 반달, 갤럭시노트2에 터치펜 - 조강욱 (2014) ] Nightwid 無雲
2015-08-15 02:14:40 / 2015-08-15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9491
  • 스케치
  • 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착륙하는 비행기를 구경하는 것은 나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얼마 전 꽉 막힌 서울 외곽순환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하고 있는데 바로 머리 위에서 집채만한, 아니 아파트 한 동만한 비행기가 스치듯이 지나가더니 바로 착륙. 내 언젠가는 김포...
2015-08-14 17:48:14 / 2015-08-14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