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체 스케치/사진 ~☆+

  • [4日] 결정적 순간 [스케치]
  • 조회 수: 6143, 2015-07-29 15:25:36(2015-07-28)

  • # 1.


    2014년 여름, 나는 천문인마을에 있었다


    울 마나님과 딸님은 울산 처가집으로 보내고,


    나는 천문인마을에서 밤에는 별을 보고 낮에는 잠을 자고


    저녁에는 천문인마을 손님들에게 별을 보여주며 소일거리를 하고 있었다


    어느날 저녁 무렵, 아직 파란 하늘에 서쪽 산등성이에서 달이 나타났다.


    일반인 가족 두 팀을 시간에 쫓기며 달 구덩이를 보여주고 나니

     

    달이 서산에 넘어가기 직전, 내가 볼 기회가 왔다



    Oh My God!


    아이피스 안에는 산능성이 나무들 사이로 그 하얀 달이 엄청난 속도로 사라지고 있었다


    이걸 대체 뭐라고 표현하지?


    급한대로 폰 어포컬로 한 컷 찍어 놓았다가


    다음날 낮에 그 달 생각을 하며 하루 종일 폰으로 그림을 그렸다



    [ 아이피스 월몰 - 횡성 천문인마을, 조강욱 (2014) ]

    아이피스월몰.jpg



    아마도 나의 첫 스마트폰 달그림일 것이다.


    달의 각도 자체도 시계 방향으로 60도 가량 더 돌아가야 하고


    기술적으로도 부족함이 많은 그림이지만


    나는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엄청난 속도로 서산으로 지는 달의 결정적 순간을 생각한다




    # 2.


    두 달 뒤 같은 월령에는 토성식이 있었다


    토성식은 2002년 대학 4학년때.. 아직은 그게 얼마나 희귀한 것인지 잘 몰랐을 때 처음 맞이하게 되었다


    얼마나 희귀한 것인지는 몰랐지만 2001년 목성식의 경험으로


    여럿이 나눠 보면 그 찰나의 순간의 감동도 1/n로 나눠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나 혼자 보았다. 나는 망원경이 있었으니까... 충분히 이기적으로,


    동아리 애들과 나눠보지 않아도 되었다



    토성의 고리가 달에 먹히는 순간,


    그리고 한 시간 뒤.. 오랜 잠복근무 끝에 반대쪽 끝에서

     

    그 고리 한 쪽이 나오는 순간의 카타르시스는 10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다



    2014년 9월의 토성식은 토요일 낮 12시 정오.


    그래도 12년만에 그 감동을 어떻게든 느껴보려 하였으나 하늘 상태는 토성은 고사하고


    정오에 월령 4일 달을 보는 것 자체가 challenge인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하늘 한 번 쳐다보고서 애초에 포기하고

     

    Sky Safari로 달을 잡아놓고 토성이 접근하기를 기다린다


     

    스마트폰 화면 안에서 토성식이 다가올수록 가슴이 두근두근 뛴다.

     

    난 정말로 미친게 아닐까?


    토성의 고리가 달에 접촉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순식간에 고리와 본체는 달의 뒤편으로...



    [ 대리만족, 조강욱 (2014) ]
     

    토성식.jpg



    밤에 볼 수 있는 토성식은 우리나라에선 2048년에야 볼 수 있다


    내가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을지, 아님 다른 나라 어딘가에서 숨죽이고 있을지..


    지금 봐서는 아마도 후자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인생은 유한하니까 말이야..




    # 3.


    딸래미와 손을 잡고 집으로 걸어가는데


    아파트 사이로 초승달이 빛난다


    그것도 엄청난 지구조와 함께....


    지구조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평생을 모른채로 살아간다


     

    하지만 그 존재를 아는 사람은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맑은 하늘에 초승달을 볼 때마다 그 아름다운 지구조의 색을 지나칠래야 지나칠 수가 없을 것이다


    하늘색도 아니고 달색도 아닌 그 오묘한 색깔..


    그림 말고는 그 색을 표현할 재주가 없으리라.

     

     

    [ 겨울 달 & Venus, 갤럭시노트4에 터치펜 - 조강욱 (2015) ]

     

    월4.png







                                                      Nightwid 無雲



댓글 4

  • Profile

    김태환

    2015.07.28 20:27

    엇...못본 그림들이네요~~ 마지막 그림 빼고..
  • 조강욱

    2015.07.29 15:23

    생각해보니 공개하지 않은 그림들이 많네요.. ^^;

  • Profile

    박상구

    2015.07.28 21:01

    "아름답다"
    천문인마을의 월몰의 묘사는 직접 보고있는 듯한 느낌을 불러 일으키네요.
  • 조강욱

    2015.07.29 15:25

    그 아이피스 안의 월몰이 참 각별한 것이었는데..

    초승달을 너무 똑바로 세워서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ㅠㅠ

위지윅 사용
  조회  등록일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4479
  • 스케치
  • 달, 달이란 나에게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에겐 어떤 의미일까? 관측의 훼방꾼. 대부분의 별쟁이에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언젠가부터, 아마도 별보러 나가는 횟수가 1년에 다섯번을 넘지 못하면서부터 서울에서 이른아침 출근 시간에, 늦은 퇴근길에 버스 안에...
2015-07-28 17:19:58 조강욱 / 2015-07-24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8561
  • 스케치
  • 2014년 10월말 그믐 전후, 나는 생각지도 않게 서호주의 오지를 떠돌고 있었다 인생의 야심찬 목표 하나를 잃고서 어짜피 망가진 인생 아무려면 어떠냐고 아무 계획도 없이 서호주에 날아와서 낮에는 초코바로 연명하며 정처없이 떠돌고 밤에는 아무데나 별빛 아래 누워...
2015-07-26 00:59:14 / 2015-07-26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8212
  • 스케치
  • 과학동아천문대는 야경이 참 멋진 곳이다 용산 전자상가 중앙의 7층 건물, 보이는 별보다 빌딩 불빛이 더 화려하다 약속한 그 날은 낮부터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이걸 어떡하지.. 뭐라도 하나 건져야 할텐데.. 저녁 7시, 짙은 구름 사이에서 극적으로 붉은 달이 나타...
2015-07-26 23:48:58 / 2015-07-26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6143
  • 스케치
  • # 1. 2014년 여름, 나는 천문인마을에 있었다 울 마나님과 딸님은 울산 처가집으로 보내고, 나는 천문인마을에서 밤에는 별을 보고 낮에는 잠을 자고 저녁에는 천문인마을 손님들에게 별을 보여주며 소일거리를 하고 있었다 어느날 저녁 무렵, 아직 파란 하늘에 서쪽 산...
2015-07-29 15:25:36 조강욱 / 2015-07-28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4596
  • 스케치
  • 저녁 무렵이 되면, 사무실 내 모니터 가장자리가 갑자기 붉게 물드는 순간이 있다 서산으로 지는 태양빛이 15층 빌딩 유리창을 넘어 모니터에 반사되는 것이다. 그 신호를 보고 서쪽 창가에 있는 우리층 창고에 들어서면 강남의 빌딩숲과 우면산을 배경으로 탁 트인 시...
2015-07-31 05:30:46 조강욱 / 2015-07-29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6433
  • 스케치
  • 나만의 세계에서 월령 5일의 그라데이션을 그린 다음날, 비슷한 시각 같은 장소.. 하늘은 또 맑고, 푸른 하늘에서는 좀 더 높이 월령 6일의 달이 보인다 (작년 9월~11월은 이상하리만치 맑은 날이 참 많았다) 근데 참 이상하게도.. 달은 어제보다 더 홀쭉하다 구름이 끼...
2015-07-31 05:28:58 조강욱 / 2015-07-30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8926
  • 스케치
  • 일몰 직후 보이던 초승달은 하루하루 지날수록 더 일찍, 더 높은 곳에서 더 밝은 얼굴을 내민다 그와 동시에 내가 하늘을 두리번거리는 시간도 더 늘어난다 아파트 단지의 가로수 잎도 모두 떨어진 스산한 11월의 주말 오후, 슈퍼에 저녁거리를 사러 가다가 월동준비를 ...
2015-08-19 01:13:30 조강욱 / 2015-07-31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6828
  • 스케치
  • 별쟁이에게 상현이 지난 달은, 일손(?)을 놓고 쉬는 시간이다 다시 하현이 될때까지.. 가끔씩 배가 너무 고프면 단 두세시간이라도 달 없는 시간에 별을 보겠다고 짐을 꾸리기도 하지만 말이다 달 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한마디로 거들떠볼 일이 없는 월령 8일. 퇴근길...
2015-08-01 07:57:01 / 2015-08-01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7851
  • 스케치
  • 서울에 사는 사람은 서울의 명소라는 63빌딩도 남산도 잘 가지 않는다 데이트하는 커플이면 모를까.. 어릴적, 엄마아빠 손잡고 갔던 63빌딩에 초딩 1학년 딸래미 손을 잡고 (실은 대롱대롱 매달려서) 다시 갔다 세상에 이렇게 큰 영화관이 있을까 싶었던 아이맥스 영화...
2015-08-02 08:49:15 / 2015-08-02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6115
  • 스케치
  • #1 나에게 트윈스는 애증의 존재다 모태신앙(?)으로 가지게 된 트윈스敎. 하지만 트윈스는 나를 끊임없이 시험에 들게 한다 회사 동료들과 함께 오랜만에 찾은 잠실 야구장, 늘 DMB로 듣던 '사랑한다 엘지~'를 현장에서 거대한 함성으로 들으니 사진으로만 보던 열망의 ...
2015-08-05 03:24:40 조강욱 / 2015-08-0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