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愛星 - 별지기의 덕목 <이광수의 애인을 패러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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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10135, 2012-10-11 20:17:16(2012-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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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현호입니다.
야간비행에 회원가입하고 나서
제대로 된(?) 관측기 한 번 올릴려고 하는데 그게 잘 안되네요.
그래서 그냥 혼자 끄적댔던 것을 올려봅니다. 양해바랍니다.ㅠㅠ^^
하루는 기상청 위성사진 체크하며 시간 다보내고
일주는 주말을 고대하다가 결국 다음주를 기다리며
한달은 월령을 확인하다가 천상 또 다음달로 넘기고
그러다 끝내 못보면 '내년에 보지 뭐' 하는 모습에서
거기서 난 '인내'를 배웠노라.
평일일 지라도
하늘 상황이 엄청 좋다 싶으면
앞뒤 안보고 관측지로 달리는 모습에서
거기서 난 '결단'을 배웠노라.
혹 습도가 많아 관측을 망치거나
어김없이 또 삽질하는 날이면
"에이 안봐"를 연신 내뱉어대지만
'다음 관측때는 꼭 볼 수 있겠지' 하고 애써 스스로를 위안하는 모습에서
거기서 난 '희망'를 배웠노라.
다른 사람 장비가 더 좋아보일 때
내가 못보는 것을 무조건 장비 탓으로 돌리지만
통장 잔고로 인해 지름신을 영접하지 못하는 모습에서
거기서 난 '절제'를 배웠노라
관측지서 고투마냥 휙휙 금방 찾고
또 해당 대상에 대한 특징을 줄줄 설명하는 고수의 모습이 부러워
돌아와 예습 복습을 하고 있는 모습에서
거기서 난 '열공'을 배웠노라
힘들게 하나 찾았을 때
그 대상이 엄청 멀리 있는 것을 깨닫고는
우주의 광대함에 새삼 놀라며
그간 인간사에 아등바등했던 것을 반성하는 모습에서
거기서 난 '겸양'을 배웠노라
관측지서 제대로 된 관측은 하나도 못하고
다른 분에게 보여주고 설명하느니라
또는 라면, 오뎅 끓여주느니라 시간 다 보내고도 허허 하시는 어느 별지기의 모습에서
거기서 난 '인덕'을 배웠노라
이제 알겠노라
'별보기'는 유별난 취미가 아니라
나에게 세상사의 여러가지를 몸소 가르쳐주시는
無言의 스승이었음을...
춘원 이광수의 詩 원문 <애인: 육바라밀>
님에게 아까운 것이 없이 무엇이나 바치고 싶은 이 마음
거기서 나는 보시를 배웠노라.
님에게 보이고자 애써 깨끗이 단장하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지계를 배웠노라.
님이 주시는 것이면 때림이나 꾸지람이나 기쁘게 받는 이 마음
나는 거기서 인욕을 배웠노라.
자나 깨나 쉴 사이 없이 님을 그리워하고 님 곁으로만 도는 이 마음
나는 거기서 정진을 배웠노라.
천하의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오직 님만을 사모하는 이 마음
나는 거기서 선정을 배웠노라.
내가 님의 품에 안길 때에 기쁨도 슬픔도 나와의 존재도 잊을 때에
나는 반야를 배웠노라.
이제 알았노라, 님은 이 몸께 바라밀을 가르치려고 짐짓 애인의 몸을 나툰
부처시라고...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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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
2012.10.11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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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호
2012.10.11 19:47
감사합니다. 하늘 상황으로 인해 소소한 관측을 즐겨하느니라...안시관측에 도움 또는 참고가 될 만한 관측기를 남기기가 어렵네요. 잠깐 떳다가 금방 사라지는 무지개가 되지 않으려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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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솔
2012.10.11 02:56
취미활동 하나에서도 이렇듯 인생의 중요한 요소들을 깨달아 가는과정..
이런것이 예술이나 학문의 기본 원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호님도 글솜씨가 대단하시군요.... -
이현호
2012.10.11 19:50
좋게 봐주시어 감사합니다. 선인의 좋은 글을 빌려다 거기에 제 생각만 대입했을 뿐입니다.
고전문학에서의 '패러디'에 특히 관심이 많았던 영향도 있구요. 드뎌 곧 들풀님을 뵙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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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욱
2012.10.11 04:50
다시 읽어봐도 명문입니다 ^^
타인에게 별 보여주고 라면 끓여주시느라
자기 관측 시간을 할애하시는 분들..
저는 그 경지에 이르려면
무한한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 -
이현호
2012.10.11 20:17
늘 제 보잘 것 없는 후기 및 글들을 좋게 봐주시어 감사합니다.
설마...예전에 읽으셨던 이광수의 시를 "다시" 읽어봐도 명문이라는 뜻은 아니시겠죠?^^
조강욱님은 관측지서의 시간 할애 대신....
안시입문자에게 도움이 될만한 글쓰기,
중급자에게 대상 추천하기,
스케치로 뜯어보는 법 알려주기,
다른 사람 글에 댓글 달아서 격려하기 등등을 하시잖아요
이렇게 적고 보니 난 뭐했나?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간 받기만 했군요. 이구궁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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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남쪽나라에 무지개가 뜬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ㅎㅎ
좋은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