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측기 & 관측제안 ~☆+

  • 2020.02.22-23 : 허셜 400 공략기 Episode-06 : 홍천-야간비행 관측회 : 허셜 목록 222개 완료, 은하 주마간산(走馬看山), 실어증, 야매 호핑강의, 에리다누스, 바다뱀, 처녀자리, M13의 디테일 NGC6207, IC4617
  • 이종근(뽀에릭)
    조회 수: 620, 2020-02-29 13:15:48(2020-02-28)
  • 2020.02.22-23 홍천 : 안시 일루미나티 야간비행 2월 정기 관측회

     

    #01 : 허셜 400 목록... 안시 등정주의(登頂主義)와 등로주의(登路主義)

      

     요사이 정치적 시련을 겪고 있는 모 정치인이 주군에게 호되게 당하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지금처럼 역병이 창궐하던 시기였습니다. 딱히 선호하는 정치인은 아닙니다만,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마다 자신이 정치를 해야 하는 이유를 자문자답한다는 그의 얘기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범죄행위를 제외하면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 행위와 결부된 소명의식이 아예 없는 경우는 찾기 힘들다고 봅니다.

     

     네 식구밖에 안 되는 집안 정치도 감당 못하는 주제에 거창하게 소명의식을 입에 올린 것은, 허셜 목록에 도전한 뒤로 쉽사리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어떤 번뇌 때문입니다. 산악인들이 자주 입에 올리는 이른바 등정주의(登頂主義)와 등로주의(登路主義) 논란과 비슷한 구석이 있습니다. 저도 올해 들어 관측지로 나설 때마다, 허셜 400 목록을 왜 봐야 하는지, 또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자문자답합니다.

     

      인구 밀도가 높아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우리의 관측 여건에서,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허셜 목록은 많지 않습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안시 관측자에게 마지막 관측 대상을 100개만 고르라고 한다면, 쟁쟁한 메시에 대상들을 제치고 리스트에 들어갈 허셜 400 목록은 얼마 되지 않을 것입니다. 범용 구경으로는 위치조차 확인할 수 없는 대상들도 숱합니다. 12인치 돕으로 허셜 400 목록을 완주한 '진진아빠' 님 같은 사례는 그야말로 인간승리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224일 기준 254개의 목록을 관측하는 동안 18인치 돕소니언의 집광력을 끝내 뿌리친 허셜 목록은 아직까지 없었습니다만, 그저 텅빈 공간은 아니라는 수준의 소감만 남길 수 있는 대상들도 적지 않습니다. 제가 요사이 몰입하고 있는 허셜 400 목록 완주라는 목표가, 발을 올린 산봉우리 개수에만 집착하는 등정주의에 불과한 게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드는 이유입니다. 광막한 거리의 작고 어두운 대상들을 주마간산하듯 대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의문이 끊이질 않습니다.

     

     어찌됐든 기왕 시작한 속도전이니 끝을 볼 생각입니다만, 이런 종류의 내적 고뇌까지 안겨주는 걸 보면 이 취미에는 단순한 여가로 치부될 수 없는 심오한 구석이 있는 듯합니다. 더 나아가다 보면 미처 생각하지 못한 현답을 찾을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기대를 품어봅니다.

     


    #02 : 아이스링크 위에서 관측하기

     

     올해 들어 두 번째로 야간비행 정기 관측회에 참석했습니다. 비구름에 씻긴 강원도 홍천 하늘은 최상이었지만, 유독 한반도 동쪽에만 수직으로 늘어서 있는 구름대가 몇 시간 동안 미동도 하지 않아, 본격적인 관측은 새벽 두 시를 넘긴 시점부터 가능했습니다. 하늘이 막혀 있는 동안 예진아빠 님과 은다 님의 콜라보 작업을 통해 탄생한 목재 경위대 '슈퍼마운트 W' 실물도 만져 보고, 이한솔 님, 클라투 님과 '별수다'도 실컷 떨었습니다. 허셜 목록은 물론이고 남반구 대상도 포함된 Caldwell 목록까지 호주 원정까지 나서며 섭렵하셨다는 이한솔 님의 경험담을 듣고 보니, 아직 가야 할 길이 구만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러 면에서 무척 마음에 드는 관측지였지만, 전날 내린 눈비가 바닥에 빙판을 만든 상태라 망원경 돌리다가 여러 번 미끄러졌습니다. 기왕 미끄러진 김에 트리플 악셀을 시도하려다 참았습니다. 빙판 위에서 스케이트 신고 관측하는 별지기도 지구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에 잠시 젖어봤습니다.

     

    #03 : 세페우스(Cep) 자리 허셜 목록 완주...NGC 7142, 7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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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GC 7142 : 출처 Sky view]


     첫 번째 공략 대상으로 북쪽 산능선 위로 길쭉한 주둥이만 내밀고 있는 세페우스 자리를 겨눴습니다. 기록지에 적힌 관측 개시 시각은 2035분입니다. XWA 13mm(150배율) 아이피스 시야에 들어온 NGC 7142 산개성단은 역시나 처참했습니다. 오래 들여다볼 이유가 없어 "네가 성단이면 나는 말이야...그냥 말을 말자. 주변에 마차부 자리 닮은 오각형 모양 별 배치가 그나마 인상적."이라는 메모를 남겼습니다.

     

     NGC 7380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호핑을 마친 뒤 아이피스에 잠시 눈을 댔다 떼고 바로 기록지에 메모했습니다. "7142와 비슷한 수준. 관측 고도가 낮아 (차가운 빙판에) 무릎을 꿇었는데, 비주얼이 영 형편없어서 평소보다 더 짜증스러움." 속으로 옴마니팟메훔(관세음보살)을 두어 번 외쳤습니다.

     


    #04 : 안드로메다(And) 자리... NGC 7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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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GC 7686 : 출처 Sky view]

     

     시야가 사방으로 잘 트인 곳이라 안드로메다 자리 잔당 두 개를 모두 노렸지만, 결국 하나만 성공했습니다. NGC 7686 성단은 허셜 목록에 속한 여느 성단들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감흥을 얻기 힘든 대상이었습니다. XWA 13mm(150배율) 아이피스 도립상 좌측에 세로로 늘어선 항성 세 개와 성단 내부에서 밝게 빛나는 별 두 개가 그나마 인상적이었습니다. 관측 시작한 시점에 북서쪽 산능선에 걸려 있어 놓친 NGC 7662(행성상 성운)를 마지막 잔당으로 남겨두고, 에리다누스 자리로 망원경을 돌렸습니다.

     

     

    #05 : 에리다누스(Eri), 바다뱀 자리(Hya) 허셜 목록 완주 - NGC 1407, 3621, 5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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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GC 1407 : 출처 Sky view]

     

     유장한 물줄기 가운데 일부만 북반부에 걸려 있는 탓이겠지만, 에리다누스 자리에 속한 허셜 400 목록(파트1)은 세 개에 불과합니다. 윌리험 허셜이 남반구로 이주하지 않은 걸 내심 다행으로 여기는 입장입니다만, 남천이 훤하게 뚫린 관측지를 찾지 못해 한동안 NGC 1407 은하만 미개척 대상으로 남겨둔 상태였습니다. 남서쪽 산능선 밑으로 꺼지기 직전인 마지막 에리다누스 잔당을 겨우 붙들었습니다. 관측 기록지에 남긴 소감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냥 어디 있는지 알겠음. 너무 작고, 구름이 수시로 방해해서 짜증스러움. 더 논할 디테일은 없음." 홍천 하늘에서도 93백만 광년에 이르는 잔혹한(?) 거리와 저고도의 두터운 대기층을 이겨낼 방법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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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GC 3621 : 출처 Sky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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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GC 5694 : 출처 Sky view]

     

     

    바다뱀 자리 잔당들도 수월하게 마무리했습니다. NGC 3621(2,200만 광년)은 사선으로 누운 유선형 형상으로 보였고, 제법 볼륨감이 느껴졌습니다. 여러 개의 항성과 겹쳐보이는 것도 그나마 건질 수 있는 특징이었습니다. NGC 5694는 무려 11만 광년이나 떨어진 구상성단입니다. 200배율로(XWA 9mm) 관측해도 내부의 항성들을 분해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간의 관측 경험을 통틀어 볼 때, 아무리 거대한 구상성단도 거리가 10만 광년에 수준에 이르면 디테일을 확인하는 건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06 : 허큘레스 자리(Her) 허셜 목록 완주 & M13의 디테일...IC 4617, NGC 6207, 6229

     

     초저녁부터 불길했던 하늘이 구름으로 완전히 막히는 바람에 서너 시간 건너뛰고 새벽 2시부터 관측을 재개했습니다. 아크로바틱한 풍채를 북반구에 온전하게 드러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허큘레스 자리에 속한 허셜 400 목록(파트1)은 두 개밖에 안 됩니다. 처녀 자리 은하들을 걸신들린 것처럼 집어삼키다가, 새벽 3-4시경 허큘레스 자리로 잠시 외도했습니다.

     

     이한솔 님께서 이날 참으로 값진 관측 노하우들을 전수해주셨는데, 운 좋게도 M13을 촬영한 사진마다 성단 주변에 작게 찍혀 있어 궁금했던 은하를 안시 관측할 방법을 귀동냥하게 되었습니다. 설명을 듣고 바로 관측을 시도했지만, 해당 은하를 허셜 목록에 포함된 NGC 6207로 착각하는 바람에 도움을 요청하고 과외를 받아야 했습니다. 덕분에 허셜 목록 두 개와 더불어 문제의 IC 4617은하까지 관측하는 소득이 있었습니다. 이한솔 님께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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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13, NGC 6207, IC 4617 : 출처 https://images.app.goo.gl/14HqPwiFNuZjhU2C7]

     

     NGC 6207(5,000만 광년) 은하는 그냥 직시로 선명하게 보인다는 것 외에 특별한 소감을 남기기 어려운 대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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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C 4617 : 출처 https://images.app.goo.gl/b2zCSoR8rEWd15TSA]

     


     IC 4617은 참으로 극악한 대상이었습니다. 이한솔 님 설명을 경청하며 여전히 덜 숙련된 주변시로 대상을 노려봤는데, 찰나의 순간만큼 눈앞에서 명멸하는 희미한 형상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아니 그렇게 믿기로 작정했습니다. 도립상 기준 은하 오른쪽 위에 바짝 붙어 있는 항성과 양자 얽힘 비슷한 관계라도 있는지, 항성이 보이면 은하가 보이지 않고, 은하가 보이면 항성이 사라지는 기막힌 특성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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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GC 6229 : 출처 Sky view]

     

     99,000광년 떨어져 있는 NGC 6229 구상성단은 예쁜 구형을 이룬 자태가 아름다웠지만, 비슷한 거리에 있는 다른 구상성단과 마찬가지로 항성들을 분해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탱글탱글하게 뭉쳐 있는 모습이 하도 야무져서 김민회 님과 클라투 님께도 보여드렸습니다김민회 님께서 M13 구상성단에 얽힌 수백 년간의 관측사를 금석문 판독 사례까지 들어가며 설명해주셔서 즐거웠습니다. 어떤 가능세계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가로등을 파손한 죄로 법정에 서게 된다면, 밤을 밝힐 조명은 M13으로 족하다는 최후 진술을 할 생각입니다. 야간비행 선배 두 분 덕분에 허큘레스 자리 허셜 목록을 무척 흥미진진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07 : 우주 허언증 환자의 야매 호핑 강의

     

     예진아빠 님께서 지도하고 계신 여고생 스타헌터 연수생 두 명이 관측회에 참석했습니다. 김민회 님은처녀 자리 은하단을 소개해주셨고, 영혼의 동반자 문지훈 님은 16인치 돕까지 내주며 마음껏 호핑 연습하라고 배려해주셨습니다. 저도 추억거리를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에 메시에 명작들을 여러 개 보여줬습니다.

     

     처녀 자리 허셜 목록을 한창 공략하고 있을 때 뒤가 서늘해서 돌아보니, 여고생(나중에 알고 보니 중3 학생) 한 명이 장승처럼 서 있었습니다. 살면서 지은 죄가 많아 뒤통수라도 때리려나 싶었는데, 파인더 호핑 방법을 알려달라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혹시나 하고 취했던 숄더 블로킹 자세를 풀고 학생이 부모님과 떠나기 전까지 최대한 많은 노하우를 전수해주기 위해 노력했지만, 시간이 충분치 않아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제가 조언해준 대로 M13을 호핑하는 데 성공해서 다행입니다. 다음에 만나면 다양한 호핑 기술들을 차근차근 전수해줄 생각입니다.

     

     기마자세 호핑법, 아이피스에 입김이 서리는 걸 방지하기 위한 미얀마 불교 특유의 위빠싸나 호흡법, 골반과 무릎 관절의 가동 범위를 극한까지 활용한 생체 적도의-경위대 모드 구현법, 안동 고등어 간잽이들의 그립 감각을 응용한 아이피스 파지법(把指法), 왈츠의 동선과 리듬감을 차용한 천정 대상 호핑법 등 스타헌터가 체득해야 할 호핑 기술은 참으로 무궁무진합니다.

     


    #08 : 처녀 자리(Vir) 공략기... 30여 개의 은하를 주마간산하듯 유랑하다


    - NGC 4030, 4179, 4206, 4216, 4222, 4261, 4264, 4268, 4270, 4371, 4273, 4277, 4281, 4303, 4365, 4429, 4435, 4438, 4442, 4476, 4478, 4526, 4527, 4535, 4536, 4550, 4551, 4570, 4596, 4647, 4654, 4660, 4698, 4754, 4762, 4866

     

     작년 말 처녀-머리털 자리 은하단에 속한 메시에 목록들을 공략하는 과정에서, 호핑 방법만 숙달하면 이보다 날로 먹기 좋은 조건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호핑 이정표를 베이스캠프 삼아 주변에 산재한 은하들을 줄줄이 엮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날도 처녀 자리 어깨 라인을 거점 삼아 삼십 개가 넘는 은하들을 주마간산하듯 공략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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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GC 4222, 4216, 4206 : 출처 https://images.app.goo.gl/kfmnwfwmaFXHe6cd9]

      

     처음 겨눈 처녀 자리 허셜 목록인 NGC 4216(4,500만 광년) 은하는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M104 솜브레로 은하를 조금 더 길게 늘인 듯한 날렵한 측면 형상에, 은하핵도 선명하게 보이는 기막힌 은하였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풍만한 할로우가 없더라도 측면 라인이 날렵한 은하를 볼 때마다 어김없이 솜브레로 은하가 연상됩니다(물론 국내에서 아마추어 장비로 솜브레로 은하 특유의 관능적인 할로우를 눈에 담을 방법은 사실상 없겠지만). 자를 대고 매직으로 그은 듯한 솜브레로 특유의 횡으로 길게 뻗은 암흑대는 제게 페티시즘의 대상입니다. '거의 메시에급 은하'라는 소감도 기록해뒀습니다. NGC 4206(6,200만 광년)4222(6,400만 광년) 은하도 한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둘 다 직시로 관측 가능했지만 4222는 유독 왜소해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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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GC 4535 : 출처 Sky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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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GC 4536 : 출처 Sky view]

     

     NGC 4535(4,900만 광년)도 장관이었습니다. M101이나 M33 같은 정면 나선은하의 축소판 같았는데, 성도에 표시된 은하 면적 대부분을 직시로 확인할 수 있었고, 주변시로 나선팔의 회전 방향까지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밤하늘의 보석에서 언급된 막대구조나 불규칙한 형상은 관측하지 못했습니다. NGC 4536(4,700만 광년)도 은하핵이 또렷했고, 사선으로 누워 있는 유선형 몸체를 넉넉하게 눈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이만하면 허셜 목록 치고 훌륭함."이라는 메모를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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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GC 4030 : 출처 Sky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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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GC 4179 : 출처 Sky view]

     

     NGC 4030(8,900만 광년)은 비록 크기는 작지만 핵이 선명했고, 은하 전체 면적도 만족할 만큼 확인 가능했습니다. NGC 4179(6,200만 광년)는 렌즈형 은하답게 UFO 형상으로 보였는데, 엉뚱하게도 고무튜브를 허리에 두르고 백사장을 종종걸음으로 거니는 어린 아이가 연상되었습니다. 기록지에 '잡생각'이라고 적어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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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GC 4371 : 출처 Sky view]

     

     NGC 4371(5,500만 광년)도 탱글탱글한 은하핵이 돋보였는데, 이때부터 매너리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갑자기 은하를 묘사하는 데 사용해온 모든 어휘들이 지겨워졌고, 실어증에 걸릴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학부 시절 은사 가운데 미국에서 분석 철학을 전공하다 실어증에 걸렸다던 분이 생각났습니다. 제대하고 복학한 학기에 끊어질 듯 말 듯 힘겹게 이어지는 그 분 전공수업을 듣다 저도 덩달아 실어증에 걸릴 뻔했는데, 혹시 허셜 목록 완주했냐고 여쭤볼 걸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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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GC 4429 : 출처 Sky view]

     

     이미 관측한 메시에 대상도 포함된 처녀 자리 관측 계획서 첫 장을 마무리하고, 허셜 목록만 적은 두 번째 장을 꺼내들었는데, 관측 소감 적는 칸이 죄다 비어 있는 스물 한 개의 은하 명칭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갑자기 현기증이 났지만 시원하게 열린 홍천 하늘에 대한 도리를 다하겠다는 일념으로 다시 성도를 들여다봤습니다. NGC 4429(4,200만 광년)는 선명한 핵과 더불어 은하의 전체적인 형상과 기울기를 직시로 확인할 수 있었지만, 기록지 말미에 "...실어증 초기 증상인 듯. 괴롭다."라는 메모를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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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GC 4442 : 출처 Sky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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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87, NGC 4478, 4476 : 출처 https://images.app.goo.gl/9r4X3fEAwRm2XHHA8]

     

     작년 말에 관측했던 NGC 44354438을 다시 살펴보고, NGC 4442(4,900만 광년)로 넘어갔습니다. 다음과 같은 소감을 남겼습니다. "선명하게 보임. 더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건성으로 스케치함. 200배율이 허셜급 은하를 관측하는 데 가장 적합한 듯." NGC 4478(5,500만 광년) 은하는 M87, NGC 4476(5,700만 광년) 은하와 한 시야에 잡혔습니다. 도립상으로 보면 M87, NGC 4478, 4476 순으로 크기가 작아져 누가 일부러 원근법 효과를 내려고 그렇게 배치해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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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GC 4550, 4551 : 출처 https://images.app.goo.gl/ufQvkYCmJkP2Mdu49]

     

     NGC 4550(5,000만 광년), 4551(5,200만 광년) 은하도 매우 가까운 거리를 두고 한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두 은하 간 거리가 너무 가까운 바람에 호핑에 실패한 것으로 잠시 착각했을 정도입니다. 4550이 더 밝고 UFO 형상처럼 보였습니다. 근처에 있는 M89 은하도 눈에 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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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GC 4570 : 출처 Sky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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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GC 4596 : 출처 Sky view]

      

     NGC 4570(5,500만 광년)은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메모를 남겼습니다. "은하핵 또렷함(수사의 빈곤을 절감함). UFO 느낌. 렌즈형 은하는 다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 NGC 4596(9,400만 광년) 은하는 1억 광년에 육박하는 거리 탓인지, 분류 기호에 적힌 막대 구조 같은 특성을 식별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막대? 부질없는 소리. 그냥 잘 보이고, 행복하고, 주변 항성들 이정표도 확실하고, 아무튼 그렇다."라는 무성의한 소감을 간단한 스케치와 함께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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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GC 4654 : 출처 Sky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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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60, NGC 4660, 4647 : 출처 Sky view]

     

     NGC 4654(4,500만 광년) 은하로 망원경을 돌렸을 때 침체된 기분이 얼마간 전환되었습니다. 선명한 구석은 없지만 간만에 본 볼륨감 넘치는 은하였기 때문입니다. 눈에 들어온 넉넉함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NGC 4660(4,800만 광년) 은하는 근처에 있는 M60, NGC 4647(5,600만 광년) 은하에 비해 너무 작고 초라했습니다. 밝은 대상이었지만 은하 면적이 항성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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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GC 4698 : 출처 Sky view]

     

     UFO 형상인 NGC 4698(7,100만 광년) 은하를 호핑할 때 문득 당구 생각이 났습니다. 코너에 적구 두 개를 몰아넣고 한 번에 수십 점을 뽑아내는 상황과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식별하기 편한 이정표만 잘 기억해두면, 처녀 자리 어깨 라인 근처에 있는 대상들을 호핑하는 게 그만큼 수월했습니다. 물론 중3 때 당구에 입문해서 딱 에버리지(?) 100까지 치고 흥미를 잃어버린 위인이라, 그런 상황을 직접 연출해본 적은 없습니다. 동네 고수들 치는 걸 구경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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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GC 4754, 4762 : 출처 https://images.app.goo.gl/LuAZ5wC77Vu66wxH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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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GC 4866 : 출처 Sky view]

     

     NGC 4754(5,200만 광년), 4762 은하(3,500만 광년)도 한 시야에 잡혔습니다. 4762는 솜브레로와 바늘은하를 섞어 놓은 듯한 느낌이었는데, 형상이 무척 날카로워 보기 좋았습니다. 4754는 특별한 감흥을 주지 못했습니다. NGC 4866(9,700만 광년) 은하는 복잡한 분류 주석('SA(r)O+;sp')에도 불구하고 길이가 절반 정도 짧은 바늘은하처럼 보였습니다. 광년 단위에 육박하는 거리에서도 안시 관측자에게 디테일을 허락하는 은하는 무척 드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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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GC 4261, 4264 : 출처 https://images.app.goo.gl/ckgterGyCqewEsE97]

     

     NGC 4261(1억 광년)4264(12천만 광년) 은하와 한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거리가 조금 더 가까운 4261이 더 크고 밝게 보였습니다. 두 은하 모두 핵이 선명하게 보였지만 타원은하라서 딱히 인상적인 관측 포인트는 찾을 방법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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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GC 4273, 7281, 4277 : 출처 https://images.app.goo.gl/kCmmYUjcumFUqc2M8]

     

     NGC 4273(9,100만 광년)4281(8,000만 광년)도 한 시야에 보였는데, 4273 바로 근처에 있는 4277(1억 천만 광년)도 주변시로 확인 가능했습니다. 서로 바짝 붙어 있는 이중성이 호핑 식별 지표였고, 4268(1억 광년), 4270(12천만 광년) 은하도 같은 시야에서 함께 포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 은하의 디테일을 논하는 건 윌리엄 허셜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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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GC 4365 : 출처 Sky view]

     

    batch_4526.jpg

    [NGC 4526 : 출처 Sky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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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GC 4527 : 출처 Sky view]

     

     NGC 4303M61NGC 명칭이었습니다. 날로 먹어 행복했습니다. NGC 4365(7,500만 광년)에 대해서는 "선명하게 보임. 더 말해서 무엇하겠는가."라는 메모를 남겼습니다. NGC 4526(5천만 광년)은 이날 본 허셜 은하 가운데 드물게 농담(은하면의 짙음과 옅음)이 느껴지고 입체적으로 보였지만, 하늘이 아무리 좋아도 그 이상의 디테일은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NGC 4527(4,600만 광년) 은하는 선명한 핵과 길쭉한 형상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은하핵 주변에 너저분한 빛의 얼룩들이 보였지만 정체를 알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사진을 보면서 은하면의 다소 거친 질감을 감지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트기 직전 동쪽 하늘에 막 떠오른 백조 자리와 은하수가 보였습니다. 장비 해체하기 전 마지막 대상으로 M29 성단을 겨눴습니다. 파인더로도 잘 보여서 굳이 호핑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덩치도 작고 딱히 눈에 띄는 개성도 없는 이 성단은 재작년 가을 10인치 돕소니언으로 처음 관측한 메시에 목록이었습니다. 타지를 떠돌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댓글 8

  • 김남희

    2020.02.29 00:00

    이건 관측기가 아닙니다. 관측바이블입니다.^^
  • 이종근(뽀에릭)

    2020.02.29 13:07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 이한솔

    2020.02.29 06:34

    엄청난 관측기 잘 봤습니다!
    ic4617을 양자얽힘으로 표현한 건 참 절묘한 것 같습니다 ㅋㅋ
    심우주로 갈 수록 그렇게 보이는 대상들이 많아 지는 것 같습니다

  • 이종근(뽀에릭)

    2020.02.29 13:12

    고맙습니다^^ 그날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허셜 400 파트1까지는 대충 보이는 듯한데, '힉슨' 같은 극악한 목록은 겨우 흔적만 확인 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극한까지 달려보고자 합니다.  

  • 조강욱

    2020.02.29 07:52

    등정주의와 등로주의는 참으로 시의적절한 표현이네요 ^^
    저는 등정주의를 15년간 추구하다가
    10년쯤 전에 갑자기 등로주의로 노선을 바꾸었지요
    제가 보기엔 두가지 다 적절히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적절힌게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없다는게 문제이지만..

  • 이종근(뽀에릭)

    2020.02.29 13:14

    여기가 등정주의의 끝이구나 싶은 순간이 등로주의를 시작할 가장 적절한 시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일단 시작한 허셜 400 목록부터 마무리하고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파트2 정도 마무리하면 등정주의의 끝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메시에 스케치를 왜 시작하셨는지 이해할 수 있을 듯합니다.

  • 최윤호

    2020.02.29 08:34

    하룻밤에 이렇게나 많이 관측한 것인지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 이종근(뽀에릭)

    2020.02.29 13:15

    고맙습니다^^ 요사이 등정주의, 실적주의의 끝을 달리고 있는 중이라 욕심을 좀 부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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