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체 스케치/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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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욱

집에 있는 6만원짜리 적도의(EQ2)로 첫 관측 후 실망하여

남희님께 그냥 드리겠다고 양도도 아닌 떠넘기기를 선언했었는데..

http://www.nightflight.or.kr/xe/free/29978


10월 어느 달이 밝은 밤.. 그냥 문득 달이 보고싶어졌다

그리고 이전 관측에서 무게추를 안 가져간 것이 생각나서

진짜 이것 때문에 그런 것일까 혹시나 하여 그애도 같이 가지고 나갔다



차를 타고 어디 가는 것은 너무 오바인 것 같고..

아파트숲 사이로 북극성과 달이 보이는 놀이터 벤치에 장비를 내려놓았다

망경을 조립하고 극망 없는 적도의를 눈대중으로 대충 북극성을 향하게 하고..

(극축을 맞추는 행위는 1996년 이후로 올 가을에 처음 시도해 보는 것이다)

레드닷 포인터도 엄청난 고민과 노력(ㅡ.,ㅡㅋㅋ) 끝에 배터리 넣는 곳을 발견하여 파인더 축도 맞추어주고..

그리고 큰 기대 없이 달을 잡고 tracking을 돌리니..

이런 세상에....

추적이 된다

내 손으로 맞춘 별이 멀쩡히 트랙킹이 되는 것은 망원경을 만지기 시작한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다

쩝.... 그간의 삽질은 별로 생각하기 싫고, ㅡ,ㅡ;;;

최강의 협시야를 자랑하는 Pentax XO 5mm를 끼우고 나름 고배율로 달을 본다

달을 언제 마지막으로 관측했는지 헤아리다간 천벌만 더 키울 것 같아서 생각을 하지 않기로 한다


아쉽다.. 아쉽다.. 구경이 참말 아쉽다...

Gassendi가 이렇게 코딱지 절반만하게 보이는데.. 여기에 만족하고 봐야 하는 것일까..


그 와중에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학생이 다가왔다 (자정 즈음)

"와~~ 진짜 멋지다.. 아저씨 이거 천체망원경이에요?"

"어 일루와서 봐봐. 달이야"

"와~~ 진짜 멋지다.. 저 망원경 처음 봐요 크레이터가 막 보여요"

"그래.. 니가 지금 보고 있는 곰보들 하나하나 다 이름이 있어"

"와~~ 진짜 멋지다.. 엄마한테 망원경 사달랬는데 안사준대요"

"이 시간까지 안자고 돌아다니니 안사주지 ㅡ_ㅡ;;;"

"와~~ 진짜 멋지다.. 안녕히 계세요~"


까까머리 중학생 애와 얘기를 나눈 후.. 갑자기 의욕이 샘솟아서,

집에서 스케치북과 샤프를 꺼내와서 가센디를 그렸다

휴대폰으로 굴드베르크를 틀어놓고,

구름과자 하나 물고,

벤치에 앉아서 무릎에 스케치북을 놓고

왼손에는 눈부신 LED 랜턴을 들고

우둔한 오른손으로 샤프를 잡고

머리로는 미술선생님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크게 보고 명암의 줄기부터 잡으셔야 해요)

나만의 행복에 빠져든다


그림이 서툴던,

환경이 열악하던,

망원경이 작던,

구름이 흘러가던 간에....


자정이 넘은 시각,

적막한 1만6천세대 은평뉴타운 한구석에서

내 눈과 귀와 입과 머리와 손은 무아지경에 빠져 간다.



[Gassendi & Mare Humorum]





                           Nightwid 無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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