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체 스케치/사진 ~☆+

  • 무광의 붉은 달, 조화로움 [스케치]
  • 조회 수: 13275, 2013-04-08 23:17:47(2012-05-18)
  • 2000년 12월 추운 겨울밤, 나는 학교 옥상에서 개기월식을 처음 보았다

     

    사실 '보았다'라고 하기보단 '찍었다'라고 하는 것이 맞겠지.

     

    동아리의 빅센 R200에 아버지가 쓰시던 캐논 필카를 끼워서 월식 전 과정을 찍었었다

     

    오래 뒤까지 기억나는 것은.. 정확한 등간격으로 찍겠다고 계속 시간 재던 것과

     

    유난히 추위에 약한 캐논 AE1의 셔터가 안 눌러질까봐

     

    한 컷 찍고 옷 속에 계속 품고 있던 일들이다

     

    그리고 어렴풋이 느낌만 남아있던 빨간 달.. ㅎㅎ

     

    그렇게 공들여 찍었던 월식 사진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_-;;

     

    2011년 12월. 다시 개기월식이 찾아왔다

     

    월식은 원래 추워야 나타나는걸까? ㅎㅎㅎ

     

    사진은 됐고, 그 빨간 달의 기억을 다시 찾고 싶었다

     

    하늘은 종일 구름 가득.

     

    밤 늦게 집에 돌아오면서 하늘을 보니 반갑게도 달이 보인다

     

    어디 한대 맞았는지 거뭇하게 멍이 들었다 ㅎ

     

    집에 도착해서 딸래미를 재우고 중무장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구름은 계속 오락가락 하지만 기본적으론 맑은 하늘이 유지된다

     

    망원경? 됐다..

     

    사진?

     

    2009년 항저우에서 극적인 개기일식을 맞이하면서.. 어줍잖게 똑딱이로 찍는다고 삽질하다가

     

    다이아몬드 링의 결정적인 순간을 놓친 이후로,

     

    더이상 일월식 사진 기록에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다

     

    내 두 눈으로 본 것을 가슴에 담아두면 되는 것이니까.

     

    그리고 사진은 나보다 잘 찍어줄 분들이 셀 수 없이 많을테니

     

    편안히 앉아서 결과물만 감상하면 되는 것이니.. ㅎ

     

    그리고

     

    가슴에 담아둔 그 풍경을 손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다

     

    내가 느낀 그 느낌 그대로!

     

    월식이 종료된지 반년이 흘렀는데, 해야지 해야지 머리속으로만 하다가

     

    어느 주말 새벽에 뒤늦은 개기월식을 그려보았다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하지만 달 내부 지형의 디테일은 개기월식의 사진 작품들을 참조했음 ㅎ)

     

    월식 Red Moon.jpg

     

    무지막지하게 밤하늘을 밝히던 보름달이 점점 세력을 잃어가더니

     

    사라지는 대신 붉은 공이 되었다

     

    절대적인 존재감은 오간데없고

     

    까만 밤하늘에 있는듯 없는듯,

     

    자기 형태는 그대로 가지면서 은은하게 빛나는 그 모습이 너무나 환상적이다

     

    보름달의 바다는 배경의 밤하늘과 같은 색으로 이어져있다

     

    그리고 붉은 달과 함께 슬며시 모습을 드러낸 작은 별들..

     

    조화.

     

    초승달만 떠도 암적응이 안되는데

     

    달과 별에게서 이런 조화로움을 느껴본 적이 있던가.

     

    나에게 월식은 '조화로움'이다

     

    그럼 일식은?

     

    올해 두번의 일식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내가 무얼 느끼게 될지는 나도 모른다 ㅎ

     

    그저 하늘의 뜻에 따르는 수 밖에.. ^^

     

     

    P.S 일본 잘 다녀오겠습니다.. 기우제 지내시면 안됩니다 ㅎ

     

     

                                        Nightwid 無雲

     

     

댓글 0

위지윅 사용
  조회  등록일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11430
  • 스케치
  • 별에 미쳐서 공부도 안 하고 산과 들을 떠돌다가 선동렬 방어율 수준의 학점을 받아들고 남들보다 빨리 군입대를 하게 되었다 논산 훈련소에서 박박 기고 있을 때도 한달 뒤면 최전방에서 엄청난 은하수를 볼 꿈에 부풀어 있었는데 자대에 도착해보니.. 그곳은 용산 전...
2016-11-11 15:19:16 / 2016-11-11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11473
  • 스케치
  • 2009년 가을 어느날의 천문인마을은 너무나도 맑았다 그리고 지난번 글에서 떠든 주변시도 필요 없이 굵은 나선팔들이 너무 쉽게 휙휙 돌았다 언제 다시 이런 33번을 또 볼 수 있을까 하나 문제는, 내 실력이 그 나선팔을 표현할 정도가 아직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
2016-12-05 13:43:51 조강욱 / 2016-11-13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13052
  • 스케치
  • 별그림을 그리는 나에게, 별사진 공모전은 일종의 꿈? 아니 객기에 가까운 도전이었다 천체사진만큼 천체스케치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도 아쉽고 그것을 향유하는 인구가 너무나 적다는 것도 또 아쉬운 일이었다 (한국만 그런 것은 아니다) 그래서, 2011년 천체사...
2016-11-18 05:10:56 / 2016-11-18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16063
  • 스케치
  • 눈 덮인 강원도 산중의 깊은 새벽, 영하 18도의 기온에 몇 시간을 꼼짝 않고 M35의 점을 찍었더니 머리는 어질어질하고 손가락이 얼어서 샤프로 동그라미가 잘 그려지지 않는다 아직 눈에 보이는 것을 다 그리지 못해서 끝낼 수가 없는데 손가락 발가락과 달리 눈알은 ...
2016-12-05 13:43:09 조강욱 / 2016-11-20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16026
  • 스케치
  • 매년 설과 추석은 별쟁이들에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추석은 항상 보름이니 Clear sky를 기원하며 달을 보며 소원 빌고, [ 14년 추석, 울산에서 - 갤노트 터치펜과 Sketchbook app으로 조강욱 (2014) ] 설은 항상 그믐이고 연휴이니 또 하나의 관측 찬스! 결혼 전에는 ...
2016-11-27 11:42:34 / 2016-11-27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54802
  • 스케치
  • 37번은 그리 마음이 잘 동하지 않는 대상이었다 비슷한 밝기의 별들이 잔뜩 몰려있는 성단이라 스케치를 하기에 많이 까다로운 대상이기 때문이다 한참 하얀 점을 찍다 보면 내가 이 별을 찍었는지 저 별을 찍었는지 알 수가 없다 (37번, 46번 같은 애들이 이쪽 부류이...
2016-12-05 13:44:33 조강욱 / 2016-11-27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9773
  • 스케치
  • 38번은, 별이 꽤 많은 성단인데도 가운데가 텅 비어 있다 중앙에 밝은 별 하나 외에는 사각형 모양으로 비어 있는 것이다 반대로 주변부는 화려하고 다채롭다. 번화한 도시의 중심은 슬럼화되고 외곽 지역에 부촌이 형성되는 도시 공동화 현상이 왜 생각이 나는 것일까?...
2016-12-05 13:45:36 조강욱 / 2016-11-29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10440
  • 스케치
  • 별로 친하지 않은 마의 '9번' 라인에서도 39번은 정말 한숨이 나오는 대상이다 이 성긴 별들의 무리가 왜 메시에 넘버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Melotte 정도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 외뿔소자리의 크리스마스트리, NGC2264 외에도 39번도 종종 크리스마스 트리로 불리기...
2016-12-05 15:06:03 / 2016-12-05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14140
  • 스케치
  • 은하수 조각인 24번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더라도 이 찌뿌둥한 별볼일 없는 이중성이 왜 메시에 넘버일까? 알비레오 같은 애들과 비교하면 확실히 뿌옇긴 한데.. 그렇다고 성운기라고 하긴 어려울 것이다 메시에가 1760년대 초반에 처음 발표한 40개의 메시에 대상에 ...
2016-12-23 14:49:32 조강욱 / 2016-12-07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12730
  • 스케치
  • M41은 고대 그리스의 기록에도 남아있는 네 개의 '별이 아닌' 대상 중의 하나이다 (나머지 세 개는 44번, 7번, NGC869&884다) 흠.. 그리스가 우리나라보다 위도가 낮지도 않은데 7번은 그렇다 쳐도 41번은 왜 들어갔을까? 우리야 그게 별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보니 ...
2016-12-13 05:09:59 / 2016-12-1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