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체 스케치/사진 ~☆+

  • [M22] 여러분의 22번은 무엇입니까? [스케치]
  • 조회 수: 11854, 2016-10-13 09:07:44(2016-09-30)

  •   

    20년 전,

     

    대학생이 되면 꼭 김광석의 라이브 공연에 가보고

     

    천문동아리에 들어서 망원경으로 하늘을 보고 싶다는

     

    두가지 명확한 소망을 가진 고3 학생이 있었다

     

     

    그러나

     

    대학교 원서 내고 오는 길에 신문 가판대에서 김광석 사망 기사를 만났고

     

    아직 동아리방도 구하지 못한 신생 동아리의 겸손한 장비는

     

    내 쓸데없이 커다란 욕망에 전혀 미치지 못했다

     

     

     

    아 이게 뭐야

     

    현실에 실망한 신입생은 여름방학을 맞아서

     

    친구들이 여자를 꼬시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해운대 해수욕장 원정(?)을 추진할때

     

    그 옆의 삼성자동차 공장 건설현장에서 두달을 노가다를 뛰었다

     

    돈 모아서 망원경 사려고 말이다

     

     

    그 현장의 소장이던 아버지가, 아들 고생하는 것을 며칠 보시더니 더는 못봐주시겠던지

     

    그 망원경 얼만데 그러냐 사줄테니 당장 서울로 올라가라는 것을

     

    어린 마음에 오기가 생겨서 방학 끝날 때까지 거기서 죽기살기로 버텼다

     

    그리고 내 손에 들어온 아름다운 백색의 망원경.

     

     

    1996년은 그리 망원경이 흔한 시절이 아니라서

     

    신입생이 다까하시를 샀다는 소문은 금세 다른 학교 동아리까지 퍼져 나갔다

     

    (그게 뭣에 쓰는지도 모르고 그저 샵에서 가장 멋있어서.. 뮤론 210C기획에서 신품 구매)

     

     

    300만원짜리 망원경을 덜컥 사놓고 보니 우선 겁부터 났다

     

    나를 바라보는 주위의 부담스런 시선,

     

    그리고 내가 이 비싼 물건을 가치있게 쓸 수 있을까? 나를 향한 의문.

     

     

    우리집 마당에서 4시간이 걸려서 57번 고리성운을 찾았다

     

    이거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사진이랑은 다르네..

     

    목성을 잡아 놓으니 줄무늬는 보이는데 아이피스 안에서 계속 흐른다

     

    C기획에 가대 불량이라고 클레임 전화를 하니

     

    니가 지금 지구의 자전을 목격한 것이라는 친절한 설명.. ;;;

     

     

    이런게 관측이라고 하는게 맞는건가


    어디 물어볼 데도 딱히 없고


    그냥 혼자 삽질에 삽질을 거듭하다가

     

    망원경 사고서 한달쯤 뒤,

     

    회사 회식 갔던 곳이 어둡던데 거기 데려다 주겠다는 아버지의 권유에

     

    차를 타고 간 곳은 파주를 지나 임진각 주차장이었다

     


    텅 빈 주차장에서 부모님은 돗자리를 펴고 고기를 굽고

     

    나는 옆에서 망원경을 펴고 성도를 보며 대상을 찾았다

     

    서쪽으로 지기 전에 우선 궁수부터..

     

     

    그렇게 별 생각 없이 초가을 저녁 하늘에서 처음 만난 M22

     

    나에겐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다까하시 번들 아이피스를 가득 채우는 빽빽한 별들의 집합.

     

    세상 어디에 이런 아름다움이 있을까?

     

     

    무엇에 홀린 것처럼 22번을 보다가..


    나는 그만 정신이 휙! 미쳐 버리고 말았다


    (요즘 시절로 본다면 미끼를 물어븐 것이다)

     

     

    그리고 그 뒤로는 공부도 안 하고 미팅도 안 하고

     

    당구도 안 치고 오로지 한길, 미친듯이 별만 보러 다녔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그 미친 상태는 변함없이.. 시간이 많이 흘러서 이젠 관측 기술도 발전하고

     

    망원경도 15인치로 두 배가 커졌는데

     

    이상하게도

     

    임진각에서 나를 홀렸던 그 22번의 충격적인 모습을 다시는 볼 수가 없었다


    그저 남쪽의 평범한, 아니 조금 큰 구상성단일 뿐.

     

    에이 그냥 머릿속에서 미화되고 금칠된 기억인가보다

     


     

    20085월 천문인마을, 날씨가 너무 좋고 컨디션마저 좋아서

     

    밤새 관측을 하고서 새벽녘에 궁수자리를 맞았다

     

    그리고는 오래된 습관, M22부터....

     

    아이피스에 눈을 들이밀었다가 나는 정신이 아득해지고 말았다

     

     

    영화 '라따뚜이'에서 생쥐가 만든 음식을 한 입 먹고서

     

    어린시절 어머니의 음식을 먹던 시절로.. 순간이동에 맞먹는 회상 씬을 펼친 평론가처럼 말이다

     

    rata.JPG

     


     

    2008년 어느 새벽의 천문인마을, 22번을 보자 마자 나는

     

    1996년 임진각 주차장으로 순간 이동을 했다

     

    아이피스를 가득 채우는 빽빽한 별들의 집합!

     

    내가 본 것이 미화되고 금칠된 기억은 아니었구나




    아래 그림은 그 이후 메시에 스케치 연작 중 그린 '보통' 22번이다

     

    [ M22, 언젠가는 또..   조강욱 (2012) ]

    M22_res_110606.jpg

     


    (Description : 암흑대에 주목해 보자)

    M22_des_110606.jpg  

     


    1996년 이후 2008년에 한 번, 12년만의 해후 이후에 지금까지

     

    그런 황홀한 22번은 아직 다시 보지 못했다

     

     

    그러나 언젠가는, 지구상의 것이 아닌 그 주체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또한번 알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게 언제일지는 나도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오늘도 궁수자리가 뜨면 자동으로 22번을 먼저 겨눈다

     

    언젠가는 또.....

     

     

     


    나를 별이라는 것에 미치게 만든 계기가 된 것이 M22라면

     

    여러분의 M22는 무엇인가요?

     

     

     



                                                                   Nightwid 無雲

     


댓글 3

  • 반형준

    2016.10.01 00:15

    전 37번이요... 제일 번저 찾아본 대상은 m13 이었지만..... ㅋ
  • 조강욱

    2016.10.06 20:34

    37번이라.. 취향이 대략 짐작되네요 ^^*

  • 김재곤

    2016.10.13 09:07

    저는 M 말고 N 253 요. 저기 운*령. 그것도 8인치. 안 잊혀져요. 그 선명한 모습...
위지윅 사용
  조회  등록일 
thumbnail
2015-07-28 04:05:17 / 2015-07-28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4670
  • 일반
  • 80년대 중반, 초등학교 저학년때... 어느날 아버지가 MBC청룡 어린이용 야구잠바를 사 오셨다 나에게는 팀을 고를 선택권이 없었지만, 그걸 거부할 이유도 없었다 (그 당시 남자 아이들은 비슷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어릴때 아빠 손잡고 갔...
2014-11-28 16:53:00 조강욱 / 2014-10-27
thumbnail
2015-07-29 01:42:33 러기 / 2015-07-28
thumbnail
2015-03-30 08:38:44 진진아빠 / 2015-03-25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4904
  • 스케치
  • 그동안.. 몇년간 다음에 하겠다고 미뤄만 두던 101번을 그려야 할 순서가 되었다 정면 은하를, 그것도 대형 Face-on(정면 은하)을 잘 보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지 잘 알기 때문에 다음에.. 다음에 하며 계속 미뤄 두었었다. Messier 33번을 그리...
2018-10-12 12:44:04 / 2018-10-10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4958
  • 스케치
  • 밤하늘에서 M80이 느끼는 비애는, M28의 그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전 우주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형 구상성단 옆의 평범하..지는 않은 구상성단. 22번을 보고 28번까지 가는 사람이 별로 없듯이.. 4번을 보고 80번까지 찾아보는 사람 역시 많지 않다. 나 또...
2017-12-14 05:54:17 / 2017-12-14
thumbnail
  • 김태환 조회 수: 5029
  • 일반
  • 망원경/렌즈 : 캐논 FD300 F2.8 카메라 : sony A7S 마운트 : EQ platform을 이용한 노터치 피기백촬영 필터 : 없음 노출정보 : iso 1600 30sec x1, 60sec x 8, iso 3200 60sec x 2 | dark 각각 촬영장소 : 장수 무령고개 주차장 촬영일시 : 2014. 9. 20 바로 이사진입니...
2014-10-16 22:07:03 원종묵 / 2014-09-25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5046
  • 스케치
  • 처녀자리의 그 수많은 은하들은 별 특징 없이 그저 둥글거나 동그랗거나.. 대부분은 재미 없는 타원은하들이다 머리털자리의 멋진 아이들을 절반만이라도 닮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M89 그 자체도 전혀 특별할 것이 없는 심심한 타원은하이다. 굳이 찾는다면 아주 밝은...
2018-03-05 04:51:27 / 2018-03-05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5059
  • 일반
  • 연초에 만들었던 아크릴화 버전의 성단 그림을 하나 소개해 본다 내가 그려 본 가장 큰 사이즈의 그림. 큰 그림을 그리려니 시간과 노력이 훨씬 많이 든다 유화용 전지 종이를 균일한 검은색으로 만드는 작업부터 아이피스 시야를 정교하게 원형으로 만드는 것, 검은색...
2014-08-18 17:21:58 조강욱 / 2014-07-15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5305
  • 스케치
  • 별 보는 사람 중에 빙글빙글 돌아가는 나선은하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멋진 막대가 있는 막대나선이라면 더더욱.. 그런데 여기엔 커다란 함정이 있다 그 막대나선을 보려면 은하가 face-on(정면이 보이는 은하) 이어야 하는데, Face-on 은하는 Ed...
2018-01-31 19:54:35 반형준 / 2018-01-15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5400
  • 스케치
  • 원래 매스컴표 '행성직렬 우주쇼'에는 큰 관심이 없었는데.. 오늘의 달과 행성들은 너무 예쁘다 그 조합에 감탄하다가 집 마당에 서서 한 장 그려본다 한국보다 몇시간 먼저 보는 맛도 은근히 괜찮네! Nightwid 無雲
2017-02-11 04:17:46 조강욱 / 2017-02-02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5426
  • 스케치
  • 오리온이 밟고 있는(?) 토끼자리에 위치한 M79는 겨울 하늘의 유일한 구상성단이라는 희소성 치고는 존재감이 희박한 아이다. 가을철 하늘에서 보던 2번이나 5번에 비하면 너무 심심한 구상이기 때문이다. "에이.." 어느 가을날 밤, 여느 때처럼 2번과 5번을 보며 한참 ...
2017-12-01 12:14:59 / 2017-12-01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5433
  • 스케치
  • 별쟁이들은 별이 잘 보이는 곳에 갈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군부대는, 그런 의미에서 아주 탐나는 장소다. 다들 그 곳에서 예전에 안 좋은 기억이 있음에도 말이다. 그와 동시에 군부대는 항상 불안한 곳이다. 언제든 쫓겨날 수 있는 곳이니.. 인제의...
2017-12-19 19:17:54 / 2017-12-19
thumbnail
  • 김민회 조회 수: 5438
  • 일반
  • 갤럭시노트로 그려 본 '슈퍼문',장소: 8월의 백운저수지-나름 한시간여를 매만진 건데 '초등생 수준의 그림을 어따 올리느냐' 는 마눌의 비하를 들은 그림(사실이 그렀음),달 왼편의 비온 뒤 구름, 광교산능선의 광교신도시 광해, 비온뒤의 음산한 저수지, 댕그라니 '안...
2014-08-19 22:32:59 rocky / 2014-08-12
thumbnail
  • 김태환 조회 수: 5534
  • 사진
  • 어제 해지기전 일찌감치 장수 무릉고개 주차장에 갔었습니다. 해가 지고 조금 지나자 (저녁 7시 15분쯤) 하늘에 벌써 은하수가 드리웁니다.. 밤새 이슬이 있긴 했지만, 이슬방울 만큼이나 수많은 별빛(사실, 별들이 더 많겠지만요) 아래 있음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새벽...
2014-09-21 07:37:49 / 2014-09-21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5558
  • 일반
  • #1. 온갖 종류의 빌딩 전시장인 강남역 인근에 잡초만 무성한 빈 땅이 하나 있다 (아침에 피트니스에 가려면 꼭 지나가야 한다) 여름에는 거의 정글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성한 곳이었는데 겨울이 깊어가는 어느날 아침, 달을 보며 걷다보니 억세고 질긴, 각자 다른 ...
2015-08-11 08:21:58 / 2015-08-11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5750
  • 스케치
  • 처녀자리 은하단의 가장 밝은 은하 M87. 87번에는 오래된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미국 아줌마가 24인치로 타원은하의 Jet을 알현하였다는 전설의 기록 말이다.. 우선 허블로 찍은 사진을 보자 (중국산 허블미러 말고.. 우주에서 일하던 그것) 무언가 엄청 그럴듯해 보이...
2018-02-11 06:17:26 / 2018-02-11
no image
  • 조강욱 조회 수: 5811
  • 스케치
  • 관측기가 어디갔지? 그당시 내가 썼던 관측기록을 야간비행에서 찾아서 읽어보고 짜깁기 해서 연재글을 만들어야 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M108번 관측기록이 나오지 않는다 그거 이상하네 내 스케치북과 포트폴리오를 다 꺼내서 펼쳐본다 설마... 설마... 내 10년간의 ...
2019-01-20 06:43:17 조강욱 / 2019-01-13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5911
  • 스케치
  • 이번 추석에도 울산 미호리의 처가 전원주택에서 며칠간을 보낸다 슈퍼문인지 먼지 어짜피 보름달이라 큰 관심은 없지만 그래도 추석 보름달은 남다르지.. 초딩 1학년 조예별양 학교 숙제도 '보름달 보며 소원 빌고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얘기해주기'라서 초저녁부터 시...
2014-09-20 03:07:40 조강욱 / 2014-09-10
thumbnail
  • 김태환 조회 수: 5916
  • 사진
  • 마치 북아메리카 성운을 맨눈으로 본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날... 어쩌면 보인것일 지도 모르겠군요.. 어딘가에서는 맨눈으로 보인다고도 하던데요...
2015-07-29 02:54:02 러기 / 2015-07-28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