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측기 & 관측제안 ~☆+

  • 20140920 스타파티 - 장난꾸러기의 재발견
  • 조회 수: 4327, 2014-09-28 23:02:07(2014-09-24)
  • 윤후(올해 5학년인 둘째 아이입니다)가 얼마 전부터 관측 나갈 때마다 "아빠 나도 좀 데려가주라 응?"하고 계속 조르고 있습니다.

    공부의 '공'은 싫어하고 야구공,축구공의 '공'만 좋아하는, 잠시도 가만히 있는 법이 없는 장난꾸러기라 관측지 데려가면 진득하게 뭘 볼 수나 있을까, 심심하다고 보채기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관측 나가는데 데려가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마침 스타파티 계획이 생겨 이번엔 윤후를 한번 데리고 가 보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일주일 전에 시험 삼아 시안에 데려가 망원경 다루는 법을 간단히 알려주고 밝은 것 몇개를 찾아보게 시켰더니 어찌어찌 해서 파인더 안에 대상을 넣긴 하더군요. 생각보다 잘 따라올 수도 있겠다 싶어서 그 후 아이와 함께 볼만한 대상을 추려서 프린트 해 놓고 스타파티 날을 기다렸습니다.
     
    스타파티 날. 인터넷에는 저녁에 구름 많음 예보가 떠 있습니다. 그러나 스마트 폰에 깔린 앱의 예보는 무려 밤새도록 맑음!

     

    s_screen.png  

     

    이것만 믿고 싶은 마음을 안고 홍천으로 출발합니다. 출발할 땐 날씨가 좋았지만 관측지에 다가갈수록 점점 하늘을 메우는 구름을 보며 "에효~ 그냥 낯선 곳에서 자고 오기 체험이겠구만...'"하는 아이의 한숨소리가 뒷좌석에서 들립니다.
     
    그러나 잠시의 실망은 나중의 큰 기쁨을 위한 것이었던 모양입니다. 저녁 식사를 하고나니 간절한 바람대로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구름을 지우고 별 가득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따뜻한 옷을 입혀 숙소 밖으로 데려 나오니 "우와 별 진짜 많다" 아이의 목소리에 흥분이 느껴집니다. 하늘에 드리워진 진한 은하수를 처음 보는 아이의 감탄사. 그게 우리 은하의 나선팔이라는 사실에 놀라워 하는 것 같습니다.
     

     
     
    처음 시작은 M27입니다. 아이피스에 눈을 대자마자 들려오는 소리 "오오오!"
     
    "어떤 모양으로 보이니?"
    "보름달 같은데 한쪽이 파였어."
    "다시 한번 자세히 봐봐 어떤가"
    "어어 다른 한쪽도 파였어. 진짜 먹다 버린 사과네!"
     
    이번엔 M13
     
    "와! 진짜 별이 가득하다. 무슨 성단?"
    "응 구상성단. 음 그러니까...(주절주절)...  자세히 보면 완전히 동그랗지는 않고 나름 모양을 가지고 있어. 어떤 모양인 거 같어?"
    잠시 아이피스를 들여다보다가 팔다리를 구부정하게 펼치며 "이런 모양?" 합니다

     
    s_re_img-13.jpg s_m13_sketch.PNG (M13, 출처: 조강욱님 스케치 일부, 원본보기클릭)
     

      ㅎㅎ 제법인데?
     

    슬슬 흥미로워집니다. 
     
    이번에는 M11로 가봅니다.
    "이거는 잘 봐봐. 어쩌구 저쩌구 ...(설명 참~ 못한다)..."
    "날아가는 오리떼? ㅋ 말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네. 그래, 그렇다고 칩시다." (ㅎㅎ 가끔 아빠와 장난칠 때 쓰는 말투입니다)
     
    그 다음은 M57. '
     
    "오~~ 시안에서랑은 다르네. 완전 진하고 가운데 구멍이 뻥 뚫려있어. 정말 고리네..."
    잠시 아이피스를 들여다 보고있다가 소리칩니다.

    "어! 아빠. 고리 성운으로 유성! 유성 지나갔어. 슉!"
     

    다음은 안드로메다 은하. M31의 중심부와 넓게 퍼져있는 헤일로에서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을 나누어 보아 나선팔을 구분할 줄 아는군요. M32와 M110도 보고 이것들이 M31을 도는 위성 은하라는 얘기에 재미있어 합니다.
     
    살짝 욕심을 내 도전을 한번 해봅니다.
    NGC 247. 고도도 낮고 그런지 좀 흐릿합니다.
    "응 있다." 하더니 차에 스마트폰 게임하러 들어갑니다. "흐린거 볼 땐 부르지마"
    쩝.
     
     
    잠시 후 차에서 게임하는 애를 꺼내서 방에 넣어 재우고 나와서 한시간쯤 이것저것 보다가 다른 분들과 함께 휴식/야식 시간을 가지고 있는데 전화가 옵니다. 입술이 터서 따가우니 가져간 바세린을 발라야겠다며 깨서 아빠를 찾습니다.

    원하는대로 처리를 해주고 다시 자게 했는데 잠깐 잠을 청하려는 것 같더니

    "아빠, 잠이 안와 이상하게 불편해." 합니다.
    아빠가 저만 재우고 나갈 것이 뻔하니 조바심이 나는 모양입니다.
    나가서 또 볼래? 물으니 얼른 응! 하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날씨가 좀 더 추워져 가져간 파카를 하나 더 입히고 두번째 별보기를 시작합니다.
     
    M33이 하늘 높이 올라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자 이건 뭘까 한번 봐봐 어떻게 생겼어?"
    "음. 이렇게?"
     
    s_re_img-33.jpg   s_m33.jpg 

    호오. 이놈봐라? 저는 어두운 하늘에서 진한 33을 봤을 때에도 처음엔 나선 팔을 잘 구별해 보지 못했었는데... 어린이라 눈도 싱싱한걸까요.
     
     
    그 다음으로는 NGC7789로 옮겨갑니다.
    "와 별 되게 많다."
    "그치? 별 되게 많은데 산개성단이야. 아까 M13 보다는 많이 널널하지?"
    "응. 그런데 이건 사람이 무릎꿇고 있는 것 같어. 홍길동이 허락받을때 꿇어 앉아있는 모양."

    ngc7789.jpg   읭????? 어뜨케 그런 모양이 나오지? ㅎㅎㅎ
     

     
    이번에는 예전부터 꼭 보고 싶다고 얘기해왔던 NGC2169를 찾아 보여줬습니다.
    "응??? 이건 뭔데?"
    "잘 봐봐 기억 날텐데... 힌트, 숫자."
    "ㅋㅋㅋ 그래 맞어 37이다 37이야"

     
    2169.jpg   37.png

     
     

    새벽이 깊으니 오리온도 제법 올라옵니다. 오리온 대성운이 보기 좋습니다.
    "와~ 가운데 별 네개 있고 주변에 구름같은 거 말이지?"
    "그래 맞어. 어떤 모양으로 보여?"
    "피닉스 같은데? 날개 쫙 펼치고 머리에 눈도 있네..."
    "그럼 색깔은 어떤거 같어?"
    "음.. 하늘색?"
     

    물론 아주 밝고 쉬운 것들이지만 아이와 얘기가 착착 잘 맞으니 욕심이 또 생깁니다. 이번에는 또 한번 어려울 듯한 것에 도전을..

    NGC1055.
    "밝은 별 두개 보이지? 그 위로 정삼각형 위치에 작은 별이 있는데 그 바로 위를 봐봐"
    "에유 헐- 그래 보인다 보여. 진-짜 간신히 보인다."
    "아마 그냥 보면 잘 안보일거야 정면으로 보지말고 약간 옆을 보면 희미하게 보이는게 느껴져."
    "그냥 똑바로 봐도 보이는데?"
    "응 그래 (끙)"

     
    1055.jpg    gag.png
    나중에 1055가 이사람 닮았다고 윤후랑 둘이 킥킥거리며 웃었다는... (윤후는 개콘의 열성 팬)
    저도 1055의 암흑대를 이렇게 선명하고 날카롭게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꽤 좋은 하늘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집에 돌아오며 뭐가 가장 생각에 남느냐고 물었더니 고리성운에 유성 지나가는 걸 본 거라고 하네요.

    아빤 못봤으니 무효라니까 열받아 하는 모습이 귀엽습니다.
    뭔가 뿌듯해하고 재미있어 하니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습니다. 가끔씩 데리고 다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주 가끔씩만. 애랑 있으니까 제가 볼 걸 못보겠더군요 ㅎㅎ)
     
     
    덧붙임1) 쓰고보니 제 관측기가 아니고 아이의 관측기가 되어버렸네요 ^^
    아이와 함께 관측을 하다보니 이것 저것 돌봐줄 일도 많이 생기고 집중력을 유지시키기 위해 계속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참석하신 많은 다른 분들과 거의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이와의 관측은 만족스러웠지만 그만큼 아쉬운 부분도 생기는군요.
     
    덧붙임2) 저녁 식사시간에 찬물을 몇컵씩 벌컥거리며 마시더니 관측을 시작하고 얼마안돼 아이가 배가 아프다고 해 애를 먹었습니다. 화장실도 들락거리고 방에 눕히고 손도 주물러주고 몸도 따뜻하게 이불도 덮어줬는데 별 효과가 없다가, 이원세님께서 빌려주신 핫팩을 배에(속옷위에) 붙여줬더니 채 10분도 안되어 컨디션이 돌아왔습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어서 나가 별보자고 하더군요. 이원세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아이와 즐거운 관측 시간을 보낼 수 있엇습니다
     

     
     
    (글에 사용한 모든 관측 대상 사진은 SkyVIew에서 추출하였습니다)

    Profile

댓글 12

  • 박동현

    2014.09.24 08:39

    우리 딸의 별세계 모델이 아드님입니다. ^^
    5일 뒤면 두 돌이 되는 큰 딸내미가 윤후만큼 자라면 무리해서라도 꼭 다시 올라오고 싶습니다.
    그 날의 감상을 떠올리며 말이죠.

    이 후기가 아드님 관측후기라면, 5학년 관측후기로는 세계 최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만나뵈어 반가웠습니다.
  • Profile

    박상구

    2014.09.24 20:43

    다 찾아서 눈에 넣어주고 알려주고 하니까 볼 수 있는거겠지요 ^^ 아무튼 생각보다 잘 따라줘서 좋았습니다.

    그런데 예전에 학생천체관측대회에서 모 초등학교 아이들의 놀라운 모습을 보았더니 제 눈이 높아져서... ㅎㅎ

     

    저도 만나뵈어 반가웠습니다. ^^

  • Profile

    김태환

    2014.09.24 08:55

    대단하네요... 딱 볼줄 아는걸 타고 났나 봅니다.
  • Profile

    박상구

    2014.09.24 20:47

    ^^ 칭찬 감사합니다. 이것 저것 알려주는 것을 잘 따라하는게 재밌더군요. 어린아이라 눈도 밝은 것 같고요. ^^

  • 조강욱

    2014.09.24 16:42

    관측 신동의 탄생이네요! ㅋ
    보는 것도 표현하는 것도 상큼합니다 ^^
    예별이가 이렇게 커야 하는데 말이죠 ㅠㅠ
  • Profile

    박상구

    2014.09.24 20:55

    작년까지만 해도 전혀 가능해보이지 않았었는데 5학년이 되니까 아이에게 진지한 순간이 짧지만 생기는 것 같네요. 그래서 데리고 나와봤는데 기대보다 더 잘 즐기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여자 아이들이 남자아이들보다 좀 더 빠르기도 하고, 아빠를 잘 만났으니 예별이와 밤샘 관측은 아마 조만간 실현되실겁니다. ^^

  • Profile

    장형석

    2014.09.24 18:11

    참 부럽습니다 ^^
    제 딸래미는 일단 어두운곳을 너무 싫어해서요 ㅎㅎㅎ
    그렇다고 달을 보여주면 너무 밝다고 안봅니다. ㅎ

    저는 언제쯤이나 이런글을 써보게 될지 ;;;;;
  • Profile

    박상구

    2014.09.24 21:02

    둘째가 곧 나온다 하시면서.. 성급하십니다 ㅎㅎ 일단 포인트 적립을 ^^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니까 오늘 별을 좋아했다가 내일 다시 다른 걸 좋아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좀 기다려보면 따님도 아빠를 따라 나오게 되겠지요 ^^

  • 박진우

    2014.09.25 03:50

    전 언제쯤 아들 데리고 별보러 갈 수 있을까요.
    어쩌면 이 생엔 불가능 할지도 모르겠습니다ㅜㅜ
  • Profile

    박상구

    2014.09.25 04:51

    에고.. ㅎㅎ 별만 너무 열심히 보시는 거 아닌가요.

    달이 차오를 때는 님을 보셔야합니다!  ^^

  • 김민회

    2014.09.27 04:59

    크게 될 아드님 틀림없어요.전 보입니다.첨부한 만화그림 저 캐릭터 한개 만들어줘요.
  • Profile

    박상구

    2014.09.28 23:02

    ^^ 졸라맨 시리즈 한번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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