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체 스케치/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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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욱

2000년 12월 추운 겨울밤, 나는 학교 옥상에서 개기월식을 처음 보았다

 

사실 '보았다'라고 하기보단 '찍었다'라고 하는 것이 맞겠지.

 

동아리의 빅센 R200에 아버지가 쓰시던 캐논 필카를 끼워서 월식 전 과정을 찍었었다

 

오래 뒤까지 기억나는 것은.. 정확한 등간격으로 찍겠다고 계속 시간 재던 것과

 

유난히 추위에 약한 캐논 AE1의 셔터가 안 눌러질까봐

 

한 컷 찍고 옷 속에 계속 품고 있던 일들이다

 

그리고 어렴풋이 느낌만 남아있던 빨간 달.. ㅎㅎ

 

그렇게 공들여 찍었던 월식 사진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_-;;

 

2011년 12월. 다시 개기월식이 찾아왔다

 

월식은 원래 추워야 나타나는걸까? ㅎㅎㅎ

 

사진은 됐고, 그 빨간 달의 기억을 다시 찾고 싶었다

 

하늘은 종일 구름 가득.

 

밤 늦게 집에 돌아오면서 하늘을 보니 반갑게도 달이 보인다

 

어디 한대 맞았는지 거뭇하게 멍이 들었다 ㅎ

 

집에 도착해서 딸래미를 재우고 중무장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구름은 계속 오락가락 하지만 기본적으론 맑은 하늘이 유지된다

 

망원경? 됐다..

 

사진?

 

2009년 항저우에서 극적인 개기일식을 맞이하면서.. 어줍잖게 똑딱이로 찍는다고 삽질하다가

 

다이아몬드 링의 결정적인 순간을 놓친 이후로,

 

더이상 일월식 사진 기록에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다

 

내 두 눈으로 본 것을 가슴에 담아두면 되는 것이니까.

 

그리고 사진은 나보다 잘 찍어줄 분들이 셀 수 없이 많을테니

 

편안히 앉아서 결과물만 감상하면 되는 것이니.. ㅎ

 

그리고

 

가슴에 담아둔 그 풍경을 손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다

 

내가 느낀 그 느낌 그대로!

 

월식이 종료된지 반년이 흘렀는데, 해야지 해야지 머리속으로만 하다가

 

어느 주말 새벽에 뒤늦은 개기월식을 그려보았다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하지만 달 내부 지형의 디테일은 개기월식의 사진 작품들을 참조했음 ㅎ)

 

월식 Red Moon.jpg

 

무지막지하게 밤하늘을 밝히던 보름달이 점점 세력을 잃어가더니

 

사라지는 대신 붉은 공이 되었다

 

절대적인 존재감은 오간데없고

 

까만 밤하늘에 있는듯 없는듯,

 

자기 형태는 그대로 가지면서 은은하게 빛나는 그 모습이 너무나 환상적이다

 

보름달의 바다는 배경의 밤하늘과 같은 색으로 이어져있다

 

그리고 붉은 달과 함께 슬며시 모습을 드러낸 작은 별들..

 

조화.

 

초승달만 떠도 암적응이 안되는데

 

달과 별에게서 이런 조화로움을 느껴본 적이 있던가.

 

나에게 월식은 '조화로움'이다

 

그럼 일식은?

 

올해 두번의 일식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내가 무얼 느끼게 될지는 나도 모른다 ㅎ

 

그저 하늘의 뜻에 따르는 수 밖에.. ^^

 

 

P.S 일본 잘 다녀오겠습니다.. 기우제 지내시면 안됩니다 ㅎ

 

 

                                    Nightwid 無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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