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체 스케치/사진 ~☆+

새로운 댓글

조강욱

 

  

그 달, 초하루 달을 보는 것은


폰으로 달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후 나의 간절한 소망이었다

 

매월 음력 1일마다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놓고


날씨가 좋기를, 회사가 빨리 끝나기를, 태양과 달의 각거리가 조금 더 멀기를 기원했다

 

 

그러나 그 달은 그리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믐 마지막 달을 한 번의 시도로 성공한 것과는 정 반대로..


집 앞 공터에서, 버스 정거장에서, 회사 창고에서, 한남대교 위에서, 반포 고수부지에서,


홍천 관측지에서, 소백산 정상에서, 울산 처가 근처 산중에서, 노르웨이 오슬로 공항에서, 서호주 피너클스까지

 

14년 가을부터 1년 반동안 찾아 헤멨는데 이정도 노력이면 얼굴 좀 보여줘야 하는거 아닌가.

 

 

15년 4월 새벽 남산 중턱에서 월령 27일 달을 마지막으로

 

월령 0일부터 29일까지 모든 달그림을 마무리하고

 

매월 음력 1일만 기다린다

 

 

해가 바뀌어 올해 1월 11일 월요일,

 

일요일밤 날씨가 너무 좋아서 회사에 하루 휴가를 냈다

 

(별 보겠다고 당당히 말하고 휴가를 낸 것은 멋모르는 신입사원때 이후로 처음인가보다)

 

 

홍천에서 아름다운 밤을 보내고,

 

예보상으로는 낮부터 흐려져야 하는데..

 

날씨가 워낙 추워서 그런지 하늘은 너무나 맑기만 하다.

 

그리고 오늘은 바로 그 날, 음력 1일이다

 

 

월요일 오후 5시, 종종 산책하러 오르던 은평구립도서관에

 

방학이라 집에 있는 초딩 2학년 딸래미를 데리고 출발했다

 

(산 중턱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서쪽 시야가 고도 5도 아래까지 확보된다)

 

늦을까봐 헉헉대며 구보로 도서관에 도착하니 다행히 아직 해는 지지 않았다

 

(산 능선의 일몰 포인트를 정확히 확인해야 달이 질 위치도 가늠할 수 있다)

 

해가 지며 눈부신 석양빛이 하늘을 한 번 휘감은 뒤,

 

언제까지일지 모를 기다림을 시작한다

 

절대로 춥다고 집에 가자고 클레임을 안하기로 약속하고 따라온 딸래미도

 

가방에 잔뜩 챙겨온 장난감을 도서관 야외 벤치에서 꺼내어 놀며 약속을 지킨다

 

알고보니 효녀네...

 

800_20160111_171046.jpg   

 

  

눈에 레이저가 나오도록,

 
아무것도 없는 하늘을 사주경계 한지 20분쯤 지났을까?

 
아직 파란 하늘을 지나는 엷은 구름의 끝에 무언가 눈썹 같은 것이 보인다

 
굳이 표현하자면 여성용 인조 속눈썹 하나가 15m 앞 어두운 바닥에 떨어진 걸 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너무나 희미하긴 하지만, 있다. 이건 진짜 있는거 맞아

 

(아래 폰카 사진의 중앙 약간 좌측의 긴 구름의 꼬리쪽에 있는데.. 눈으로는 보이나 폰카로는 확인 불가..)

20160111_174848.jpg    

 

그동안의 어려움이, 노력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1일 달은 사막의 지평선 정도에서나 보일 것이라고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높은 고도(10도)에서, 그것도 서울 하늘에서...

 
어디어디???? 를 연신 외치던 딸래미도 이내 그 모양을 찾았다

 
(너무 희미해서 고개를 돌렸다 다시 보면 또 찾아야 한다)

 
사라지기 전에 얼른 폰과 터치펜을 꺼내서 그 색과 모양을 기록한다

 

1750.JPG  

 

 

금방 사라지면 어떡하나 하는 우려와는 다르게 그 달은 하늘의 어둠과 함께 점점 그 밝기를 키운다

 
우리가 멍하니 하늘을 지켜보는 것을 보고

 
몇몇은 하늘을 보고 '어 달인가봐...' 하고 스쳐 지나간다

 
그들은 이 달이 얼마나 소중한 달인지 아마 모르겠지

 
별보기는 아는 만큼만 보이는 법이니까..

 
1800.JPG  

 

 

날이 어두워지며 날씨는 더 추워지고


1일 달에도 아주 희미한 지구조가 나타난다.

 

1830.JPG

 


지금 세상에 이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딸님께 그 가치를 설명하니 이해하는 듯도 하다


그 감동을 느끼는 동시에 손발이 점점 얼어서 곧 없어질 것만 같다

 
 
그래도 초하루 달의 월몰은 보고 가야지

 

딸래미와 둘이서 발이 시려서 동동 뛰면서

 
도서관 이용객들의 의심어린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달이 월몰을 향해 가면서, 대충 봐서는 하늘에서 달의 형체도 잘 알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추워서 몸부림을 치면서도 아무것도 없는 빈 하늘만 쳐다보는 부녀의 모습이란..)

 
그 마지막 순간을 기다린다

 
1840.JPG

 

 

봤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월령 1일 달을 본 사람이야

 
1년반의 노력으로 초하루 달도 봤는데 내가 앞으로 못할 일이 무엇일까?

 
이슬람 국기에 모두 초승달이 들어있는 것은


islam_flag.jpg

 


이슬람교 창건에 대한 종교적인 이유와 함께

 
앞으로 차오를 일만 있으라는 기원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초승달을 봤으니

 
내 인생에도 차오를 일만 남아 있을 것이라

 
스스로 기원해 본다

 

160111_D+1.png   

 

 

 
P.S 딸님의 일기장.. 마지막줄에 대박 반전 ㅋㅋ


diary.jpg  

 

 


- 그동안 32편까지 긴 연재글 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

 

종합선물세트.JPG

 

 


                                                         Nightwid 無雲



돌아가기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