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체 스케치/사진 ~☆+

새로운 댓글

조강욱


# 1.


2014년 여름, 나는 천문인마을에 있었다


울 마나님과 딸님은 울산 처가집으로 보내고,


나는 천문인마을에서 밤에는 별을 보고 낮에는 잠을 자고


저녁에는 천문인마을 손님들에게 별을 보여주며 소일거리를 하고 있었다


어느날 저녁 무렵, 아직 파란 하늘에 서쪽 산등성이에서 달이 나타났다.


일반인 가족 두 팀을 시간에 쫓기며 달 구덩이를 보여주고 나니

 

달이 서산에 넘어가기 직전, 내가 볼 기회가 왔다



Oh My God!


아이피스 안에는 산능성이 나무들 사이로 그 하얀 달이 엄청난 속도로 사라지고 있었다


이걸 대체 뭐라고 표현하지?


급한대로 폰 어포컬로 한 컷 찍어 놓았다가


다음날 낮에 그 달 생각을 하며 하루 종일 폰으로 그림을 그렸다



[ 아이피스 월몰 - 횡성 천문인마을, 조강욱 (2014) ]

아이피스월몰.jpg



아마도 나의 첫 스마트폰 달그림일 것이다.


달의 각도 자체도 시계 방향으로 60도 가량 더 돌아가야 하고


기술적으로도 부족함이 많은 그림이지만


나는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엄청난 속도로 서산으로 지는 달의 결정적 순간을 생각한다




# 2.


두 달 뒤 같은 월령에는 토성식이 있었다


토성식은 2002년 대학 4학년때.. 아직은 그게 얼마나 희귀한 것인지 잘 몰랐을 때 처음 맞이하게 되었다


얼마나 희귀한 것인지는 몰랐지만 2001년 목성식의 경험으로


여럿이 나눠 보면 그 찰나의 순간의 감동도 1/n로 나눠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나 혼자 보았다. 나는 망원경이 있었으니까... 충분히 이기적으로,


동아리 애들과 나눠보지 않아도 되었다



토성의 고리가 달에 먹히는 순간,


그리고 한 시간 뒤.. 오랜 잠복근무 끝에 반대쪽 끝에서

 

그 고리 한 쪽이 나오는 순간의 카타르시스는 10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다



2014년 9월의 토성식은 토요일 낮 12시 정오.


그래도 12년만에 그 감동을 어떻게든 느껴보려 하였으나 하늘 상태는 토성은 고사하고


정오에 월령 4일 달을 보는 것 자체가 challenge인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하늘 한 번 쳐다보고서 애초에 포기하고

 

Sky Safari로 달을 잡아놓고 토성이 접근하기를 기다린다


 

스마트폰 화면 안에서 토성식이 다가올수록 가슴이 두근두근 뛴다.

 

난 정말로 미친게 아닐까?


토성의 고리가 달에 접촉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순식간에 고리와 본체는 달의 뒤편으로...



[ 대리만족, 조강욱 (2014) ]
 

토성식.jpg



밤에 볼 수 있는 토성식은 우리나라에선 2048년에야 볼 수 있다


내가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을지, 아님 다른 나라 어딘가에서 숨죽이고 있을지..


지금 봐서는 아마도 후자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인생은 유한하니까 말이야..




# 3.


딸래미와 손을 잡고 집으로 걸어가는데


아파트 사이로 초승달이 빛난다


그것도 엄청난 지구조와 함께....


지구조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평생을 모른채로 살아간다


 

하지만 그 존재를 아는 사람은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맑은 하늘에 초승달을 볼 때마다 그 아름다운 지구조의 색을 지나칠래야 지나칠 수가 없을 것이다


하늘색도 아니고 달색도 아닌 그 오묘한 색깔..


그림 말고는 그 색을 표현할 재주가 없으리라.

 

 

[ 겨울 달 & Venus, 갤럭시노트4에 터치펜 - 조강욱 (2015) ]

 

월4.png







                                                  Nightwid 無雲



돌아가기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