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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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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필요한 시간 - 강신주 지음 (사계절)

 

 

 

학교 다닐 때, 꼭 들어보고 싶은 과목들이 몇 개 있었다.

그러나 막상 듣고 나면 만족감이 뚝 떨어진다.

철학, 논리학, 심리학...

그리고 전공자에게 양보한다.

마치 나중에 쓰지도 않을 것, ‘수학을 왜 배워야 해요?’ 항변하는 어린아이와 같이

‘철학은 철학자에게!' 라고 고귀한 양보를 하며

역사의 반복을 되풀이 한다.

 

강신주....이 분은 전공자이다.

 

강신주 작가는 우리에게 철학이 필요할 때라고 한다.

왜냐?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껴안은 그 수많은 상처들을 정면으로 마주하여 헤쳐나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작가는 이 것을 인간이 ‘인간에게 정해진 고통의 양’을 어떻게 대처하느냐로 설명한다.

 

즉 인간에게는 고통의 양이 정해져 있는데,

일시불로 정직하고 솔직하게 고통을 겪여내자고 강조한다.

자기 최면과 위로로 고통을 할부로 깎아나갈 경우 그 고통이 다 할때까지 새로운 인생은 시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시불...

웬지 시원하지 않는가?

 

그 점에 있어서 나는 한가지 잘 하는 것이 있다.

카드 사용할 때 할부를 사용하지 않는다.

저자가 이 점을 말한 것은 아니겠지만, 발가락이라도 닮았다고 해본다.

 

책에는 48개의 각기 다른 주제가 있다.

48명의 철학자의 이야기를 쉽게 풀어낸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낼 의무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편하게 책이 잡힐 때 원하는 주제로부터 시작하면 된다.

 

웃음이 가진 혁명성

진정한 진보란 무엇인가

여가를 빼앗긴 불행한 삶

자유와 사랑의 이율배반

선물의 가능성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감수성

후회하지 않는 삶은 가능한가

..................

  

하루에 한단락을 읽어도 좋고, 화장실에서 읽어도 좋은 분량들이다.

하루에 한단락을 읽어도 생각은 며칠을 가고

화장실에서 읽어도 변비가 생기지 않을 정도로 편하기도 하다.

 

 

이 책에서 가장 맘에 파문을 일게 했던 주제는 ‘사유의 의무’였다.

 

나치과 청궐하던 독일

당시 유대인 학살에 핵심적으로 관여했던 인물로 유대인이주국을 총괄했던 아이히만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전범으로 수배를 받다가 아르헨티나에서 체포되어 1961년 재판을 받게 된다.

그는 주장한다.

‘자신은 단지 상부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그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여성 철학자로 자신 또한 나치의 피해자이기도 했던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이 재판을 통해 전체주의의 기원에 대해서 성찰하고 있다.

 

아렌트가 볼 때

아이히만은 악의에 가득 차 있는 잔혹한 인물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는 단지 준법과 근면을 철저하게 실천했던 관료였다.

나치 치하에서 관료로서 최선을 다한 일밖에 없었다.

 

여기에서 철학자는 고민했다.

그럼 아이히만에게 면죄부를 주어야 한다는 것인가?

 

철학자는 그에게 ‘순전한 무사유’의 책임을 부과한다.

즉 아이히만은 자신에게 부여되었던 상부의 명령이 유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리고 유대인의 입장에서 자신이 수행할 임무가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성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렌트는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서 ‘사유’란 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는 ‘권리’가 아니라

반드시 수행해야만 할 ‘의무’라고 강조한다.

 

 

현대사회는 분업화, 전문화 되어 서로에게 점점 무관심해지고 있다.

같은 조직에 있으면서도 서로가 무슨 일을 하는지조자 알지 못하며,

심지어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도대체 어떤 성격의 일인지 반성할 틈도 별로 없다고 한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도 무사유의 상태에 빠지면, 언제든지 제2의 아이히만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무섭게 경고한다.

 

 

며칠전 민주화운동의 대부였던 김근태 상임고문이 고문기술자 이근안으로부터 받은 고문 후유증으로

평생을 시달리다 요즘으로서는 젊은 64세의 나이에 돌아가셨다.

기사를 보며 이 책의 ‘사유의 의무’가 생각났다.

 

아마 고문기술자 이근안도 이웃들이 볼 때는 평범한 시민이었을거다.

가족에게는 따뜻한 가장이었을 수도 있다.

주위에서 ‘절대 그럴사람 아니다’라고 할 수도 있다.

왜냐?

그는 ‘성실한’ 사람이었으므로.

 

그러나 이분의 사망소식에서

그 사유(쉽게 생각이라고 하자) 없이 달린 성실함이 어떤 결과로 나타나는지

우리는 그 증거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쉽게 버리는 쓰레기, 당당히 자유를 주장하는 흡연, 파헤쳐지는 산, 매꿔지는 바다....

일상 생활의 모든 점이 같지 않을까?

 

 

철학이 별거인가?

어디에선가 자주 나온 멘트다.

“제발~ 생각하면서 살자!”

 

 

 

이 책을 읽으며 곁다리로 든 생각이다.

  

맨 처음 주제로 나온 철학자가 니체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많이 들은 책이다.

그냥 대략적인 이야기는 안다.

그러나,

실제 그 책을 읽은 적이 없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고전들을 그것을 요약한, 아니 요약도 아닌 그냥 인용한 것으로써만 접했고 그렇게 알고 있다.

인용에 재인용에, 또 그것을 인용한 다른 글을 통해서만 지식을 얻는다.

 

본질에 대한 접근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1년 넘게 도전하고 있다.

조지 소로우의 ‘월든’

수많은 사람의 추천과 인용이 있지만, 도저히 정이 안간다.

그래도 항상 가까이 둔다.

인용으로서가 아니라 직접 느껴보기 위해서.

 

사진으로써 본 개기일식과 실제 느껴본 개기일식의 그 느낌의 차이를

책에서도 느껴보고 싶다.

 

오해 마시라.

몇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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