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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욱

10월 22일 토요일, 몇몇 분들이 인제에서 이슬 복병과 싸우고 있던 동안

저는 여의도에서 학생천체관측대회 행사장에 있었습니다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준비 모임에도 한번도 참석하지 못하고

당일에 어찌 시간이 되어서 일손이나 거들어주자는 마음가짐으로 대회장에 도착하니..

대회의 성패를 가름짓는 막중한 권한과 임무가 부여되어 있더군요.. ㅎㅎㅎㅎ

관측대회의 핵심인 관측 대상 문제를 출제하는 것과 관측대회 진행, 그리고 현장의 이슈를 해결하는 일이었습니다


학생천체관측대회는 필기시험, 망원경 조작, 프리젠테이션, 망원경 관측 네가지 종목을 학교 대항전으로 진행하는데,

저는 망원경 조작과 관측 부문에서 업무를 맡아서 진행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치열한 학교 대항전이라 학교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반인이 총 책임을 맡아야

공정성에 대해서 더욱 큰 신뢰가 서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ㅎ



사실 별보기를 심사하는 것보단 직접 망원경을 끌어안고 별을 보는 것이 더 재미있는 일이긴 하지만..

남이 별보는 것을 구경하고 평가하는 것도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이었습니다.. ^^;;;

대상인 초중고 학생들은 남에게 평가받는 일이 일상이라 그런 것인지..

누군가 자신의 별보기를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더군요..


대회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몇가지 느낀 점이 있어서 KAAS 게시판에 쓴 글을 야간비행에도 약간 각색하여 올려봅니다






# 1.

조작 과목을 심사할 때.. 상당히 많이 긴장하는 학생들이 종종 있더군요

급한 마음에 굳은 표정으로 거칠게 망원경을 다루는 모습이 조금 안쓰러워서

정신없이 시험(?)을 보는 애들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했습니다

"너 별보는거 좋아해?"

"어떤 대상이 제일 좋아?"

"그게 왜 좋은데?"

몇가지 질문을 하다보면, 애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볼수가 있었습니다

(회사에서는 절대로 구경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웃음이지요)

얘네들 진짜 별보는걸 좋아하는구나.. 다만 경험과 지식이 조금 부족할 뿐.




시간이 흘러 저녁이 되어 어둠이 내렸습니다

예보는 분명 흐림이었는데.. 여주에서 스타파티도 하는데 맑은 확률은 없을 거라는 예상을 뒤엎고

밤이 되니 기적처럼 맑아지더군요 ㅋ

드디어 날이 저물고 7시 10분부터 관측 시작.


날은 아주 맑았지만 여의도의 엄청난 광해 아래서 볼 수 있는 대상은 많지가 않지요

나름 최고로 쉬운 대상들을 선택하여 출제했지만 (Albireo, Double-Double, 869, 57, 31 등)

여의도의 하늘은 기본 대상을 도전 대상으로 둔갑시키는 힘이 있더군요 ㅋ

  


# 2.

어느 팀은 관측 중에 가대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제가 만져보니 적경축 미동나사는 움직이는데 망원경은 전혀 반응이 없더군요  

(나중에 그 학교를 담당한 심사위원께 물어보니 미동을 돌리면 주경은 움직이는데 파인더는 안움직였다 하더군요..

이런 일은 멀더랑 스컬리를 불러야 하는데;;;;)


시간은 흘러가고 망경은 뜻대로 안움직이고..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르고 짜증내고 선생님을 찾던 애들에게,

어찌할 수 없는 문제라고 선처를 바라는 아이들에게 얘기했습니다

이 망원경의 주인은 선생님이 아니고 너희들이라고,

이 망원경에 대한 모든 권리와 책임은 본인들의 것이라고...

고등학교 학생들이 이해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얘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비록 학교 장비이지만) 망원경을 만질 수 있는 권리를 누린다는 것,

그 장비를 다루는 책임이 얼마나 크고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면..

앞으로 멋진 星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응급처치 방법을 갈쳐주고 대회를 다시 참여하도록 했는데..

조금 지나니 다시 정상 작동 되더군요.. 아무래도 멀더를.. ㅋ;;;)




# 3.

고등부 마지막 대상으로 57번을 문제로 냈습니다

위치는 쉽지만 학생들의 소구경 망원경으로는 검출이 쉽지 않은 대상이었습니다

제한 시간 5분이 거의 다 될 무렵

한 팀이 57번을 찾았다는데 담당 심사위원도 잘 모르겠다고 하여 제가 직접 확인을 해보았는데..

제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군요

대상을 찾은 학생을 불러서 보이는 모습을 설명하게 했는데

주변 별 배치만 얘기할 뿐 성운의 모양에 대해서는 설명을 못합니다..

실패!를 선언하고 관측대회를 종료했는데, 조금 뒤에 그 학생이 성도를 들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여기 성도상에도 57번 위치 맞는데요. 아까 진짜 제대로 찾은거 맞아요"

"어.. 진짜 맞네. 근데 너 57번 성운기가 보였어? 난 안보이던데"

"저도 못봤어요"

"몇배로 봤는데?"

"25mm 40배요"

"40배로 보일리가 없지. 100배 나오는 아이피스 하나 구해야겠다"

"저희 10mm 아이피스 있는데요"

"왜 그걸 안썼냐? 딱인데.. ㅡ_ㅡ;;;"

"ㅡ_ㅡ;;;;;;;;"



그 학생이 제 설명에 수긍을 했는지 아직 불만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열심히 별을 찾고 완벽하게 위치를 잡았다고 해도

대상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이 의미가 있을까요?

교육적인 측면은 잘 모르겠지만 별보기의 본질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그것은 '관측에 실패한 것'입니다

별보기는 별을 봐야 재미가 있고 의미가 있는 것인데..

다 찾아놓고 문전처리가 미숙해서 골을 못 넣은 것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축구에서 골대 맞췄다고 0.5점 주진 않잖아요)

하지만 끝까지 근거를 가지고 따져서 명확한 결론을 얻은 그 학생이 참 마음에 듭니다

그렇게 집요하게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이 오래도록 별을 볼 확률이 높습니다.. ㅋ




# 4.

관측 중에 어떤 심사위원께서 스텔라리움 사용에 대해서 문의하셔서

그건 절대 안된다고 단호하게 잘라버렸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대회 요강에는 사용 가능으로 공지가 되어 있더군요

그래서 노트북으로 관측 준비를 한 학교도 있었고....

사전 준비 모임에 참석을 못해서 대회 요강을 미리 바꾸어놓지 못한 것은 관측 종목을 책임진 저의 불찰입니다.


하지만 조금 더 크게 생각해 본다면..

학생 천체관측 대회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서울 예선 1등 해서 전국 대회 나가는 것? 아니면 혹시 대학 진학에 가점 같은 것이 있는가요? ^^;;

저는 학생 천체관측대회의 본질은 '별을 보는 사람을 육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회를 통해서 바쁜 학교 생활 중에서도 조금 더 별에 대해 깊이있게 공부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방법을 탐색해 볼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스텔라리움은.. 편리하죠. 별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서울 학생들에게

밤하늘의 시뮬레이션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tool입니다.  

저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는 프로그램이지만..

실제로 강원도로, 양평으로 야외 관측을 나가는 사람들 중에 현장에서 노트북(스텔라리움)을 사용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습니다

안시관측을 하는 사람 중에서 말이죠.. (사진관측은 암적응이 필요 없고, 자동화 장비 구동을 위해 노트북을 사용합니다)

스텔라리움, 아이폰 쓰면 편하게 방향 잡고 볼 수 있는데 왜 안쓸까요? 암적응이 안 되니까..

그럼 서울에서는 써도 되지 않을까요? 서울에서만 계속 볼 사람이라면 그런 훈련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서울에서 기본기를 쌓고 언젠가는 야외에서 진정한 밤하늘을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종이 성도에 빨간불 비추어 보는 기본기도 철저하게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등수을 가려서 상을 주는 목적 뿐이 아니라 진정한 '별보는 사람'을 만들기 위한 것이 더 큰 목적이라면

앞으로 대회 요강에서 스텔라리움 등의 디지털 장비의 사용은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 5.

저는 2001년부터 10년 넘게 '별보는 대회'에 출전하고 있습니다

바로 천문인마을에서 매년 3~4월에 개최하는 '메시에마라톤'인데요..

다들 아시겠지만 1 2 3등 등수만 발표할 뿐 상품도 상금도 상장도 공식기록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밤을 새고 아침에 모두 모여서 수고했다고 서로 박수 한번 쳐주고 끝이죠


그러면 대체 그걸 왜 해?????? 라고 물으신다면....

설명보다 직접 한번 해보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110개 대상을 하룻밤에 보기 위한 긴 시간의 준비, 밤새도록 한 대상씩 찾으면서 느끼는 희열,

새벽녘 밝아오는 하늘에서 하나라도 더 찾아보기 위해 미친사람처럼 하늘을 뒤지다가

극도의 피로 속에 박명을 맞는 자학의 카타르시스.


저는 그날밤, 몇몇 학생들에게 그 모습을 보았습니다

꼭 시험문제 7개 대상을 모두 찾았어야 선생님께 부모님께 칭찬받을 일을 한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관측시간 동안 진정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면..

하나라도 더 찾아보기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자기가 가진 것의 100% 이상의 노력을 했다면

망원경이 후지던, 학년이 어리던 그 사람이 가장 뿌듯한 즐거움을 안고 돌아갔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회가 끝나고 나서..  

여러 분들이 제게 고생 많았다 스트레스 받았겠다 힘들었겠다 말씀해 주셨는데..

저는 솔직히 너무 즐겁고 재미있었습니다. ^-^;;;;;

저에게는 별을 보는 것이나 별 가지고 떠드는 것이나 별 퀴즈를 내는 것이나 모두 다 노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별을 보는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한번 스스로 생각해본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서울 하늘에서 대상 찾는다고 고생한 학생들도 '내가 별을 보는 이유'에 대해서 마음속 깊이 성찰하는 시간이 되었길 바랍니다.








                                Nightwid 無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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