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측기 & 관측제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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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욱

항상 명절에는 서울 본가에서 차례를 지내고 정오 즈음에 울산 처가로 출발한다.

자유 게시판 글에도 썼듯이, 우리 원장님께서 설날 기념관측을 일찌감치 許하여 주셔서 관측을 어떻게 할 지 생각하던 중

http://www.nightflight.or.kr/xe/free/29288

울산의 허주립님과 연락이 되어 설날 저녁, 또는 설 다음날 저녁 중 맑은 날이 있으면 뵙기로 약속을 잡았다.

원래 계획은 운전해서 15인치 진삽이를 들고 가는 것이었지만

운좋게 KTX 귀성 기차표를 구하게 되어, 80mm Megrez 가볍게 들고 가서

15인치로는 한시야에 그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45번과 44번을 그리겠다고 계획을 세웠다가

허주립님이 18인치를 들고 온다고 하시어,

그거 보느라 80mm는 쳐다도 안 볼것 같아서 그냥 몸만 가기로 한다

설날 당일, 망원경 장비는 다 놔두고 검은색 종이 한 장과 하얀색 콩테 한 자루, 지우개 하나를 챙겨 들고 울산으로 향했다

KTX 울산역에 내려서 하늘을 보니 투명하고 파란 하늘이 나를 반긴다.

간만에 맑은 밤하늘은 볼 기대감에 사람도 풍경도 다 아름다워 보인다.

7시 약속시간에 맞추어 허주립님 댁에 도착하니, 차에 장비를 옮겨싣고 계신다

내가 아무것도 없이 맨몸으로 온 것을 보시고 장경훈님께 망원경 한대 더 가져오라고 연락을..

허주립님 장경훈님 정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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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측지 : 경남 양산시 원동면 대리 배내골 정상

관측자 및 장비 : 허주립님(18"), 장경훈님 부부(5"), 요요다님과 친구분, 조강욱(5")

시상 : 3/5

한계등급 : 5등급 → 4등급 → 3.5등급

특이사항 : 연무가 끼인 듯 밤새 뿌연 하늘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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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시내에서 45분.

서울에선 가까운 벗고개만 해도 1시간 반은 가야 하는데..

이정도면 정말 주중에 날 좋으면 부담 없이 가서 3~4시간 보고 와도 다음날 업무에 지장 없을듯.. ㅋ

배내골 정상은 북쪽과 동쪽에 광해가 조금 올라오긴 하지만,

맑은 날에는 5.5등급 정도까지는 나올 것 같다

하지만 이 날은 낮에 너무 따뜻해서 그런가.. 높은 하늘에 무언가 두겹 정도 끼어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출동을 할까 말까 고민하시던 윤석호님은 하늘 상태 설명을 들으시고 결국 포기..

얼굴 뵈면 행성 관측법 좀 한 수 배우려고 했는데.. 다음 기회에.. ㅎㅎ

관측지에 도착하자마자 장경훈님도 사모님을 모시고 도착.

8시경 처음 도착했을 때는 은하수 가루가 보일락 말락 하는 하늘이었는데,

암적응 좀 하고 제대로 보일까 했는데 조금 지나니

구름인지 연무인지 모를 것들이 하늘을 살짝 덮었다

별보는 얘기를 하며 하늘이 맑아지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영 차도가 보이지 않는다

오늘의 목표는 내 15인치로 절대 한시야에 볼 수 없는 45번과 44번을

소구경 저배율로 관측하여 스케치를 남기는것,

그리고 1월에 발견된 초신성 SN2011B를 관측하는 것이었다

장경훈님이 빌려주신 5인치 굴절, Kenko SE120에 26mm 번들 아이피스를 장착하니

23배로 플레이아데스가 깔끔하게 한 시야에 들어온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대구경만 맹신하는 나로서는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는 진리의 말씀인데,

장경훈님의 호의로 작은 것, 욕심 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방법을 조금은 깨달은 듯 하다.

메시에 110개 중에서도 가장 밝고 보기 쉬운 45번이지만,

나는 그간 단 한번도 45의 본모습을 보기 위해 의미있는 노력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사실 대부분의 메시에 대상이 마찬가지 상황이다.. ㅎㅎ

하지만 NGC2655 스케치를 위해 검은 종이와 흰색 콩테를 준비했을 뿐

성단 스케치를 위한 흰 종이와 샤프도, 그림을 그릴 탁자와 의자도 안 가지고 왔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할 수밖에..

콩테를 뾰족하게 갈아서 날카로운 심을 만들고,

아이피스로 대상 한 번 보고 땅바닥에 엎드려서 한땀 한땀 점을 찍었다

날씨가 많이 추운 날은 아니었지만,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한시간 이상을 관측하니 발가락 대신 무릎이 너무 시리다

발가락 보호용으로 가져온 두꺼운 양말을 시린 무릎 밑에 깔고 있으니 그나마 좀 낫다.. ㅎㅎ

조금 그리다가 얘기 하다가.. 크게 까다로운 대상은 아니었지만,

그러다보니 자정 즈음에야 스케치 한 장이 완성되었다

  
[M45 sketch]



플레이아데스가 이렇게 생겼던가?

항상 건성으로만 훑어보다가, 처음으로 하나씩 뜯어보는 45번.. 처음 보는 대상처럼 낯설다

근데 눈에 띄게 밝은 별은 7개가 넘는데.. 어떤 애들이 7자매일까?

자료를 찾아 보니, 플레이아데스는 7자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부모, 아틀라스와 플레이오네까지 함께 대가족을 이루고 있다

먼 발치에서 애들 노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엄마아빠 같은 포즈랄까.. ㅎㅎ


[Description]



7자매는 3등급에서 5등급 사이의 별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 중 가장 밝은 알키오네는 다중성계를 이루고 있다.

실제로는 더 많으나, 5인치 굴절의 한계인지 안시 관측의 한계인지 Alcyone A, B, C를 포함하여 4개밖에 보이지 않는다.

알키오네, 멜로페와 삼각형을 이루는 위치에는 기와집 지붕 모양의 star chain이 위치하고,

아스테로페 바로 옆에는 별 세개가 주루룩 붙어 있는데,

사진들과 대조해 보니 중간 별은 어떤 사진에서도 볼 수가 없다. 잘못 찍었나.. ㅡ,ㅡ;;;;

사진과 대조하면서 어느 정도까지 보이는지 비교하다 보니, 사진 상의 등급과 실제 안시 등급과 차이가 있는 별들이 꽤 많다.

멜로페 별을 둘러싸고 있는 반사 성운은 5인치 굴절에선 언감생심. ㅋ;;

정확히 관측하고 그렸는데.. 내가 생각했던 결과에는 5% 정도 부족한 것 같아서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항상 플레이아데스 사진과 스케치를 접할 때 보던 강렬한 스파이더 자국이 없는 것.. ㅋ;;

아~ 인상적인 스케치를 만들기 위해 억지로라도 스파이더 모양을 그려 줘야 하는 것인가..

조금이라도 별상이 갈라지는 모습이 보이면 살짝 더 길게 그려야겠다고 한참을 째려봐도, 스파이더 문양은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근데..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굴절망원경에 스파이더가 어디 있냐....ㅎㅎ;;;;

별상이 너무 똘망똘망한 것도 가끔은 문제. 집에 있는 진삽이가 갑자기 그리워졌다


슬슬 놀며 보며 그리며 자정 즈음에 45번 스케치를 마치고 하늘을 보니, 영 가망이 보이지 않는다.

4등급 하늘도 안 되는 분위기.

요요다 님이 끓여주신 라면으로 연료를 보충하고, 안 좋은 하늘이나마 뭔가 성과를 내 보고자

작은 망원경으로 예쁘게 보일 만한 애를 하나 찾아 보았다.

23배면 Kemble’s cascade가 딱 들어올 것 같아서 억지로 호핑을 해서 찾아갔는데.. 영 별로다.. ㅡ,ㅡ;;;

플레이아데스는 워낙 밝은 아이니까 약간 안 좋은 하늘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자잘한 별들이 모여있는 Kemble’s cascade는 뿌연 하늘의 영향으로 직격탄을 맞은 것....


조용히 GG를 치고, 그나마 북쪽 하늘은 조금 나은 편이라 초신성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호핑 루트를 확인하고 허주립님 자작 18인치로 찾아 보았는데,

하늘 상태에 비해서는 은하의 형태가 뚜렷하게 구분된다.

NGC 2655는 5분 크기의 헤일로가 타원형으로 관측되고,

중심부에는 부은 별상의 핵을 볼 수 있다 (Unstarlike nucleus)

헤일로의 edge 부분에 초신성이 보일텐데..

주변시로 눈알을 굴리다보니 은하면에 작고 희미한 하얀 점 하나가,

들키면 어쩌나 하고 희미한 헤일로 뒤에 숨어서 숨을 할딱이고 있다.

찾았다!!!

별나라 입문 18년만에 처음으로 초신성을 눈에 담아보았다

아마도, 내가 지금까지 본 가장 멀리 있는 항성이겠지..

초신성 SN2011B는 배내골로부터 6400만 광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2655번 은하에도 생명체가 살고 있다면.. 아마도 6400만년 전에 한바탕 난리가 났었겠지 ㅋ

그 시절 지구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우리은하 밖 먼 나라에서 무슨 일이 있던 말던 공룡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지 않았을까.. ㅎㅎ

초신성을 보는 것은, 우리가 기를 쓰고 보고 싶어하는 성운 성단 은하들은 그 자체가 우주의 역사책이다

5천년 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10만년 전에는, 3천만년 전에는, 70억년 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주의 역사를 알고 싶으면 그저 역사책을 펼쳐만 보면 원하는 만큼 시간을 거슬러 갈 수 있다

국사도 아니고 세계사도 아니고 우주사라고 해야 할까 ㅋ

스케치는 미처 하지 못하고 기억을 더듬어 형태도(Morphological schematic)를 그려본다

워낙 단순한 구조라.. ㅎㅎ

[NGC2655, SN2011B - 형태도]


사진으로 보면 거의 원형의 막대나선 구조인데, 안시로는 원형보다는 타원형으로 관측된다

은하는 표면밝기 12등급 정도. 초신성은 현재 약 13등급이다

10인치 이상으로는 충분히 도전할 만한 대상일 듯.



기상 관계상 SN2011B를 마지막으로 관측을 마무리하고 철수.

허주립님께서 처가 앞까지 배달을 해 주셔서 안락하게 집까지 도착.. ㅋ

차도 망원경도 없이 종이 한 장 연필 한 자루만 달랑 들고 갔는데,

울산 별나라 분들의 과분한 호의로 즐거운 관측을 할 수 있었다

처음에 계획했던 45번, 44번, SN2011B 3개 중 2개를 관측하여 무려 67%의 달성율을 올리고.. ㅎㅎ

자작 18인치 UC도 만져보고 별하늘지기 인기상품인 SE120과 이지터치 경위대로 관측도 해보고..



관측지까지 데려다 주시고 멋진 자작 UC로 관측을 할 수 있게 배려해주신 허주립님. 감사합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에게 선뜻 망원경을 빌려주신 장경훈님. 감사합니다

저는 망원경이 한 대밖에 없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단 한번도 망원경을 빌려준 적이 없습니다

따뜻한 컵라면 나누어 주신 요요다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힘내서 성과있는 관측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쉽게 뵙지 못한 윤석호님. 조만간 만나뵙길 기대합니다 ^^

그런데 나는 무얼 해드렸을까?

그저 여러 분들이 만들어주신 자리에서 내 별을 본것 밖에는.. ㅋ;;;

언젠가는 은혜를 갚을 날이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설날 저녁 추운 겨울밤. 배내골 정상에서

언 손발을 녹이며 하늘을 올려다보던 사람들은 무엇을 보려 했던 것일까?

오리온, 플레이아데스, 토성, SN2011B, 우주의 역사책.



사람이 별을 보는 이유는 그것이 멀리 있기 때문이다.





                   Nightwid 無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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