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측기 & 관측제안 ~☆+

새로운 댓글

박한규

I

뜨거운 태양이 지자

나무들은 스스로를 불태워 체온을 나눈다.

아직은 초록의 갑옷을 두른

속살을 굽이굽이 돌아 나오자



가을 하늘처럼 시원한 이마를 한

중년의 사내가 환하게 웃는다.

문득 돌아보니

꼬리에 칭칭 매여있던

세속이 떨어지고 없구나.



하늘은 점점 깊어가고 별들은 밝아진다.

천리의 반가움들이 모이고 모여

하늘에 큰 물길을 내었다.



II.

하얀 돔은 등대다.

하얀 집은 그리움들이 옹송그리는 빛 무덤이다.



옥상에는 검은 하늘로 쏘아 올릴 그리움을

장전한 대포들이 열병하고

마당에는 날렵한 놈들이 호위를 선다.

건너 편 언덕 마당에는 30인치,

위풍당당하게  다가올 전투를 기다리고 있다.



카시오페이아를 선두로

동편 하늘로 빛덩이가 쏘아 올라 온다.



차운 유리창에 콧김 불어 넣은 모양

여름 시냇물에 찰랑이는 햇살 모양 이중성단이 하늘에 박혀 있다.

정신줄 바싹 쥔 안드로메다

두 줄의 암흑대가 선명하고

자랑처럼 이마에 큰 점(NGC 604)을 달고 있는 M33

Mirach의 귀신 그림자(NGC 404)

짙푸른 눈송이(NGC 7662)는 누가 하늘로 던져 올렸을까?



아차, 잊어버린 허틀리2는 다소곳이 이중성단을 지나고 있네

큰 아이, 작은 아이, 맘씨 고운 부부와 함께하는 허틀리 사냥

그리고 고마운 커피 한잔



서로를 의지하며 기대있는 NGC 7332와 7339

핵과 나선팔, 사이가 좋지 않은 NGC 7331

눈치를 보며 숨죽이고 있는 NGC 7335, 7336, 7337, 7340

따로 또는 같이 둥글게 살아가는 NGC 7626, 7619

M13의 첫 감동을 전해주는 대포 속의 M15

거대한 백마의 날개 속에 빛나는 인간사.



아무래도 창씨개명이 필요한 M 27

먹다 버린 사과의 운명이여

백년의 약속처럼 빛나는 반지 M 57

짚신 할매의 고달픈 삶처럼

몸을 사리는 Double double, 색이 바랜 Albireo



먹물을 뒤짚어 쓴 하늘과 마을

그 위로 쏟아지는 은하수

눈이 멀자 마음이 눈을 뜬다. 나무들 처럼



III.

내 주위로 돌게 할 수는 있지만

천정에 결코 머물 수 없는 붙박이 별(Polaris)처럼

또한, 누구도 다른 이의 머리 위에 머물 수는 없는 법.

Arcturus, Vega, Alpheratz...

권좌를 이어주고 이어받는 사이 멀리로

늑대별(Sirius)이 계절의 깊이를 알린다.



포연이 가라앉은 자리에

살아 남은 자들이 모인다. 군침도는 18인치, f 4.5

나 여기 있소!

느닷없는 Trapezium E, F의 등장, 심장이 고동친다.

외로운 Sirius, 다정한 Rigel 형제는 더 빛난다.

잔잔한 시냇물에 찰랑이는 빛무리(M 46)

그 속에 가만히 떠 오르는 가락지(NGC 2438)



치열함마저도 영원하지 않기에 아름다울까

동산 위로 박명. 아,

스무 살 처럼 정수리가 시원해 진다.



IV.

객적은 말로 적지 못하는 미안함

낯 모르는 안주인이여

뉘라서 그 손맛을 따라올소냐



전쟁같은 밤이 지난다.

이슬 젖은 패잔병들이 철수한다.

가슴 가득 하늘을 담고 별을 담고

너와 나의 그리움을 담고



나무들이 나누는 체온 속으로 멀리

별빛무덤이 아스라하다.

돌아가기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