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측기 & 관측제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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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욱

한동안 쉼없이 내리던 비가 그치고

다시 하늘이 개었다

마님께 간만에 예별이랑 천문인마을 가자고 건의를 드렸더니 바로 결재.. ㅎㅎ

회사일도 간만에 숨 좀 돌리고

집안일도 특별히 없고

날씨도 의심할 여지 없는 맑은 하늘..

괜히 구름 끼고 화형ㅡ_ㅡ 당할까봐 게시판에 번개 공지는 물론이고 출동 문자도 잘 안 날리는데

간만에 편한 마음으로, 갈 만한 분들께 문자를 보냈다

가는 길은.. 덕초현에 처음 발을 딛던 97년 이후 가장 극심한 정체를 보였다 ㅡ_ㅡ;;

휴가철 끝자락의 맑은 토요일 오후.. 누군들 집에 있고 싶겠는가.. ㅎㅎ

영동고속도로에서 평소 걸리던 시간보다 1시간 넘게 더 지체하고

전재를 돌아 돌아서

안흥에서 밥도 먹고 (안흥면 읍내는 정말 먹을 거 별로 없다.. 담엔 곤드레밥 먹으러 가야지)

평소와는 다르게 여유도 즐기며 아직 해가 떠 있을 때 천문인마을에 도착했다..

3월에 천문인마을에 왔을 때는 예별이가 아장아장 걷는 정도였는데..

이제 몇 달 더 컸다고 천문인마을이 집 앞 놀이터인 양 쉼 없이 뛰어다닌다.. ㅋ

이번 관측의 point는 deep-sky 스케치에 도전해 보는 것..

돕드라이버도 다 달았는데,

배터리 충전이 안 되어 테스트를 못 해봤었다 ;;;;

유혁님께 배러뤼를 빌려서 전원이 들어오는 것은 확인하였으나.. 돕드라이버 사용법을 언제 배워서 돌려보나....

이거 배우다가 아까운 관측시간 까먹을 것 같아서 이번엔 그냥 보기로 한다

돕드라이버의 롤러는 윤활제가 부족하여 돕 전체의 좌우 이동이 많이 뻑뻑하지만..

이 것 때문에 관측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

그냥 무식하게 몸으로 때울 수 밖에.. ㅡ_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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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측지 : 덕초현 천문인마을
관측일시 : 2009.8.15~16
관측시간 : 20:30~05:00
관측자 : 최형주, 유혁, 최윤호, 이기수, 김원준, 함인수, Nightwid
관측장비 : Discovery 15" truss dobsonian
투명도 : 6/6
운량 : 1/10
특이사항 : 이슬 없음,  옆집 할아버지 늦게(자정) 불 끄고 일찍(새벽 4시) 켜심 ㅡ_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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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측 준비를 하는데.. 스케치 작업을 할 접이식 탁자를 안 가지고 왔다..

아 이런 젠장.. ㅡ,ㅡ;;;  JP정에게 숏다리 접이식 탁자를 하나 빌렸다

명작 감상을 몇 개 하고..

최윤호님하고 첫 스케치로 어떤 대상을 간택할 것인지 한참 논의하다가

대상의 고도와 난이도와 재미와 자태를 고려하여

NGC7479를 첫 target으로 정했다

7479. 내가 무진장 좋아하는 스타일의 은하이다

한쪽 나선팔이 갈고리 모양으로 휘감긴 기이한 구조의 은하..


보일 듯 말 듯 감질맛을 극대치까지 끌어 올리는 콧대 높으신 분

그러나 보여줘야 할 때는 아낌없이 보여주는 고마우신 분

10분이 아니라 1시간을 보면 어떻게 보일까?

의자에 앉아서 관측과 스케치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대상을 선정하느라

동쪽 하늘에서 떠오른 지 얼마 되지 않은 애를 선정했더니..

아직 고도가 좀 낮아서 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15인치로 대상을 확인하는 것조차 힘겨울 정도이다

갈고리 모양은 택도 없다...  이상하네.. 날도 꽤 좋은데.....

보다 보면 보이겠지.. 하는 생각으로 스케치를 시작하....려는데

스케치북을 안 가지고 왔다 ㅠ_ㅠ

홈플러스 최고급 스케치북도 표면이 맨질맨질하지 못해서

종이의 질감이 연필을 통해서 그대로 드러나는 바..

파리가 미끄러질 정도의 매끈한 크로키북을 하나 사다 놨는데

집에 잘 모셔 두고 왔다 ㅡ,ㅡ

관측기록 메모를 위해 가지고 다니는 키티 연습장은 어떨까 싶어서 만져보니

홈플러스 스케치북보다 키티 연습장이 더 매끈하다

그래 이걸로 하자!!

달은 너무 많이 보여서 일정 부분 포기하면서 그려야 하는데

얘는 너무 뵈는 게 없다   ㅡ,ㅡ;;

우선 주변 별들 배치를 비례 맞춰 그리며 눈알을 워밍업 한다

내 아이피스는 잘난 광각이기 때문에 겉보기 시야가 넓은데..

이 별들을 다 찍어야 하나?

그러고 싶지는 않다.. ㅎㅎㅎㅎ

관측에 도움이 되는 별들과 키스톤만 그리면 되겠지....

(아마 덕초현에서 기거하는, 프림통의 수평을 맞추고  쌓아 놓은 이불더미의 엣지를 고민하는 JP정 선생은

시야 안의 모든 별을 밝기와 구도를 맞추어 플뢰슬이든 나글러든 상관없이 정확하게 남김없이 그리시리라 믿어지지만..)

이걸 다 그리는 것은 인건비 생각이 나서 도저히 다 못 하겠다

성단처럼 별들 하나 하나가 다 의미 있는 애들도 아니고..

그래서, 당분간은 내 맘대로 필요한 별만 그리고자 한다

만약.. '천체 스케치에서 모든 별을 다 찍지 않으면 무효'라고 한다면 그 때는 다 해야지 =_=;;

한 30분째 그리고 있으니 주변시로 갈고리가 '언뜻' 보인다

어 이건 5분만 봐도 잘 보이는 앤데..

너무 오래 봐서 부작용인가 ㅡ_ㅡ;; 이니면 고도가 높아져서 자연스럽게 보이는 건가....

보다 보면 더 보이겠지..

결국, 그림을 완성할 때까지 더 이상 많은 구조를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7479의 이미지는 영원히 내 머리 속에 남을 것이다

내 눈으로 보고 내 손으로 직접 그린 첫 대상이니까!!!

7479는 이 기쁜 소식을 아는지 모르는지 예의 그 도도한 모습을 유지하고 계신다

1시간만에 첫 스케치를 마치고, 멀 그릴까 탐색해 보다가..

몇 년 전에 정한 형님이 게시판에 올리신 NGC 891의 스케치가 생각이 났다

http://www.nightflight.or.kr/xe/sketch/35976

그래.. 나도 한 번 따라해 보자

891도 쨍한 암흑대가 쉽게 입을 벌리지는 않는다


우선 윤곽을 그리고.. 별 배치를 그리고.. 암흑대를 표현해야 하는데,

주변시로 겨우 관측했다가

스케치를 위해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려고 직시로 전환하는 순간 암흑대는 사라져버린다

이런 된장.. 어쩌라고.. ㅡ_ㅡ;;;;

주변시의 느낌 그대로 그리는 수 밖에 없다

은하 중심부의 암흑대는 보이는 것보다 짧게 그릴 수 밖에 없었다

길다랗고 좁은 암흑대의 선을 표현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서..

한마디로 실력 부족 ㅡ_ㅡ;;;


겨우 은하 두 개 그리고 까페테리아로 내려와서

내가 그린 것을 밝은 불빛 아래 펼쳐보니..

악!!!!!! 이게 무슨 테러야@!!@%#@^$@#$@^%@&*$#

어두운 곳에서 붉은 빛을 비출 때는 몰랐는데,

키티 연습장은 빨간 선이 빼곡히 그어진 공책이었다....  ㅠ_ㅠ

빨간 선 뿐이니 빨간 불빛에서는 싹~ 사라졌던 것....

럴수 럴수 이럴수가......

공들여 그린 첫 작품이 칸 있는 종이에 그린 것이었다니....

지금 보니 방향 표시도 안 해 놓았다 ;;;

스캔을 하고 보니, 얇은 종이라 습기를 먹어서 우글우글한 것까지 아주 잘~~ 보인다

쩝.... 똑같은 실수를 다시 안 하면 되는 거겠지..

누구.. 빨간 줄을 없애는 방법을 아시는 분.. 저 좀 도와주세요 ㅠ_ㅠ


NGC7479





NGC891





지금 보니 날짜가 8월 16일이 아니고 15일이다.. ㅡ_ㅡ;;;

다음날 아침.. JP정이 빨간줄 스케치를 보더니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내가 생각해도 이건 두말할 필요 없이 스케치에 대한 만행이다 ㅠ_ㅠ



새벽 2시. 야간비행 언니오빠들과 (아니 오빠들과) 까페테리아에서 좀 쉬다가 다시 올라가니

그믐을 향해 열심히 달리고 있는 달이 엄청난 그림자를 만들고 있다

서울의 아지랑이 가득한 아파트 베란다에서 80mm로 보다가

강원도 오지에서 15인치로 달을 보니, 눈에 화상을 입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로 엄청나게 밝다

그렇다고 문필터를 쓰거나 구경을 줄여서 보겠다고 하면 천벌을 받겠지? ㅡ_ㅡ;;


옆에서는 달이 휘영청 밝게 떠 있는데도..

시상이 좋아서 이것 저것 은하 관측을 하는 sound가 들리는데, 난 이미 눈이 봉사가 되어서 그림의 떡이다..

멀 그릴까..

Gassendi가 달용이로 보던 모습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복잡하다..  우~~ 저걸 어떻게 다 그려.

그런데 그런데 눈과 마음은 자꾸.. 명암 경계선에서 가장 크고 밝고 복잡한 구조인 무지개만(Sinus Iridum)에만 끌린다

어쩔 수 없지 ㅡ_ㅡㅋ


비장의 무기로 준비한 잘난 스케치북 대신 들고온 거친 스케치북을 펼쳐서 구도를 잡고 연필질을 시작한다

난 전에도 여러 번 얘기했지만,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해 무관심을 넘어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다

내가 재미있자고 하는 천체관측인데,

가장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한다는 건 먼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하지만 어렵고 힘들게 내가 할 수 있는 100%의 노력으로 완성한 결과물을 보면,

적성에 맞지 않는 그림 그리기를 하면서 힘들었던 과정은 한 방에 싹 잊어버리게 된다

사실 결과물의 완성도는.... 성취감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

(물론 skill을 계속 발전시켜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스케치를 통해 심도 있는 관측을 하겠다는 목표는, 화려한 기술 이전에 이미 달성이 되는 것이다


더 깊은 맛을 보기 위해서는 먹기 싫은 것을 먼저 먹어야 하다니....

천체관측이라는 행위.. 정말 웃긴다 ㅡ_ㅡ;;;;

낚시나 오디오, 모형 같은 다른 매니악한 취미도 이런 부분이 있겠지..


달빛 아래서도 꿋꿋이 관측을 하던 회원들이 하나둘씩 들어가고서도,

난 마지막까지 남아서 무지개만을 그린다

아직 다 못 그렸으니까.. =_=;;;;

새벽 5시가 다 된 시간.  아직도 그리지 못한 구조는 까마득하게 남아 있지만,

시간을 더 준다고 해도 내 능력으로는 더 이상 표현할 재주가 없다

끝!!!!

Sinus Iridum






3시간의 작업을 마치고 하늘을 보니, 꼭 짜고 친 것처럼 하늘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여명이 밝아오는 하늘과 함께 한 방~~


얼굴이 안 나와서 다시 ㅡ_ㅡ;;


앞마당에도 누군가가 밤새 열심히 별을 본 흔적이..



자고 일어나니 왼쪽 눈이 아직도 얼얼하다

설마.. 눈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니겠지..


군대 제대하고 2000년부터 10년간 내 기억에는 한 번도 빼먹지 않고 하던

'관측 가서 하나 이상 새로운 대상 보기' 강박을 스스로 깼다


나는 단지 이미 알고 있던 대상 3개 - 7479, 891, Sinus Iridum - 만 봤을 뿐이다

(사실 Pease1을 보겠다고 최윤호 씨와 한참 용을 썼는데, 그 날의 조건에선 택도 없는 일이었다)

내가 스스로 강박증을 벗어났다는게 엄청 대견스럽다 ㅠ_ㅠ

십여년 간의 연속경기 출장 기록을 스스로 그만 두었던 칼 립켄 주니어도 이런 해방감을 맛보았을지 모른다




대충 보기

많이 보기

입으로 별보기

준비 안하고 즉흥적으로 보기.....


나와 익숙하던 일련의 행동들은, 스케치를 시작하면서 이제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내가 스스로 결정한 일이다

더 깊은 곳의 그 맛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맛보기 위하여....



                                Nightwid 我心如星



부록

JP정의 눈빛 공격


예별님 : 흥!!


까까만 있으면 나는 외롭지 않아~~


강림 순대집 앞에서.. 파란 물이 뚝뚝 떨어지는 하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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