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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욱

 


해외에서 맞는 설날은 느낌이 많이 다르다

전혀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뉴질랜드에도 중국인이 워낙 많아서

“Happy Chinese New Year”라는 문구를 여기 저기서 볼 수 있지만

한중일 사람들 외에는 별로 눈여겨 보지 않는다


설은 항상 그믐이다. 추석이 항상 보름인 것처럼..

달이 없는데다 항상 휴일이라 별 보러 가기 좋은 날이지만

엄청난 교통 체증에 별보러 갈 엄두를 낼 수 없는 날이기도 하다


올해 설은 금요일이었다

금요일 저녁에, 친하게 지내는 한국인 가족 댁에서 떡국을 먹고

마나님과 딸님까지 함께 별보러 길을 나섰다


위치는 늘 가는 그 곳, Pakiri Beach.

이 외딴 주차장에 오늘따라 사람이 많다.

특히 한국인 낚시 동호회 정모라도 있는지 사방에서 한국말이 들린다

사람이 많을수록 별보기엔 좋지 않겠지만

여기서까지 한국말을 들을 수 있으니 그 기분도 남다르다

 

하늘은 예보와 다르게 구름이 많다. 구름 사이로 구멍치기 밖에는 안될만한 하늘..

두 분은 잠시 하늘을 보고 차에 들어가시고

본격적으로 구멍치기 시작.

 

어느새 다시 봄이 되었다 (남반구에선 가을)

Omega Centauri를 볼 시간이 되었다.

 

작년에 몇 번의 관측에서도 끝을 보지 못했던 대상이다.

한 번은 어이없게도, 하늘이 너무 좋아서

도저히 그릴 용기가 나지 않아서 스케치북을 덮은 적도 있었다

 

너무 별이 많아서 그리는걸 포기했던 대상을

망원경 앞에 대기하고 서서 구름이 잠시 걷힐 때마다 몇 개씩 별을 추가하고 있으려니

역시 별은 볼 수 있을 때 다 봐 두어야 함을 다시한번 되새기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큰 구상성단을 종이에 옮기는 것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열심히 찍다 보면 더 못찍을 순간이 오겠지.. 다만 최선을 다해볼 뿐이다

 

시간은 어느새 자정을 넘었다

점을 찍는 시간보다 펜을 들고 기다리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진다

그리고 점을 찍는 시간에도 더 이상 빈 자리를 찾기가 어려워진다

이제 그만 할 때가 되었나보다

 

[ 우주 최대의 구상성단 - NGC5139, 뉴질랜드에서 조강욱 (2017~2018) ]

2000_NGC5139_original_180216.jpg



내 기준에서 오메가 센타우리의 가장 특징적인 구조는 중심부의 8자 모양의 암흑대이다

2010년에 호주 원정에서 처음 보았을 때는 내가 헛것을 본 게 아닌가 했는데

볼 때마다 보이고 너무 잘 보이는 것으로 보아 착시는 아닌 것 같다

Dark 8_NGC5139.JPG



구글에서 5139 스케치를 찾아보아도 “The eyes”에 대한 언급을 종종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언급이 없는 경우가 더 많다)

http://www.asod.info/?p=7500

https://www.cloudynights.com/topic/503823-omega-centauri-ngc-5139/

 

내 생각으로는 12인치 언저리가 관측 한계 구경일 듯.

예전 2010년에 내가 한 스케치를 봐도, 18인치로 보이던 8자 모양 dark patch가 12인치로는 보이지 않았었다


[ NGC5139, 야간비행 호주 원정에서 조강욱 (2010) ]

5139_NSW_2010.jpg



그리고 또 볼만한게 뭐가 있나..

5139는 압도적으로 크고 밝고 많다.   

그런데, 특징적인 구조라고 할만한 것이 그 위용에 비해서는 딱히 많지 않은듯..

너무 촘촘히 별들이 박혀 있어서 그런 것일까?

눈에 띄는 구조는 몇 줄기 스타 체인 뿐이다

Detail_NGC5139.JPG



한참을 게릴라전을 치르며 별을 찍고 있는데

이번엔 차 한대가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주차장에 들어온다

백인남녀 셋이 맥주병을 들고 차에서 내리더니 건들건들 하면서 나에게 다가온다

순간 긴장.. 낚시꾼들 차라도 많은게 차라리 다행이다.


“너 여기서 뭐하니?” “별 보는데.. 한번 볼래?”

별자리 몇 개, Deep-sky 몇 개를 보여주니, 볼때마다..

“What a f****** cool!”

모든 문장에 “F” word를 섞어 쓰는 아재가 특히 좋아한다


근처에서 아보카도 농장을 하고 있다고, 우리 농장에서는 낚시꾼 차도 보이지 않을 테니

꼭 놀러오라고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메모를 남기고 떠났다

차타고 출발하면서도 창문 열고 한번 더

“Come and see me Andy, come and see me, seriously!”

다음 별보러 갈때는 거친 언어를 쓰는 농부 아재네 가볼까?

소리소문 없이 암매장 되어 아보카도 비료로 쓰이게 될지도 모르지만..

말만 멋지게 하는 사기꾼보다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

 

5139의 마지막 별을 찍고 나니 하늘도 더 이상 가망이 없다.

찬란한 별들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거친 파도소리를 들으며 철수.


 


                                                        Nightwid 無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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