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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욱



아! 별을 보지 않은지 한달이 되어 가니 또 약발이 떨어졌다

10월초에 인천 부두를 떠나보낸 이삿짐들은 이제 남태평양을 지나

태즈먼 해를 항해하고 있을텐데


내 망원경은 아직도 the UK에서 올 미러를 기다리고 있고

쌍안경조차 손에 쥔 게 없지만

그래도 맨손 맨눈으로라도 별뽕은 맞아야겠다


Auckland에서 맞은 처음 며칠은 좌우 뒤집힌 보름달이 환하게 떴었는데

어느새 그믐이다

WIKICAMP NZ 앱을 펼쳐 놓고 장소를 물색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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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heson Bay. 우리 집에서 60km 정도 떨어진 곳이다.

120만명 사는 도시에서 60km 벗어나면 얼마나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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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예보를 한참 연구하여

일요일 오후에 출발.

밤새도록 그냥 서서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는 없으니 

대형 마트에서 최근 유행하는 무중력(?) 의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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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가격의 침낭을 하나 구입하여 길을 나선다.

(내가 가려는 곳들은 IT 후진국의 네비 따위엔 나올 리가 없으므로 좌표 입력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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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날씨는 호주 내륙과는 많이 다르다

칠레 아르헨티나와 함께 남극에 가장 가까운 나라..

밤에는 한국보다 더 춥다 

(사실 이건 단열과 난방이 되지 않는 이 나라 주택들의 문제.. 
 외기 온도와 집안 온도가 동일해서, 멀쩡히 이불 덮고 자다 보면 코와 발이 시려 온다)

아~~ 북극용 패딩과 바지와 방한화가 태평양을 건너고 있는데.. 

그렇다고 별을 굶을 수는 없지.


오클랜드 외곽을 벗어나자 마자 윈도우 배경화면들이 계속 모습을 달리 하며 지나간다

이곳의 풍경은 호주와는 많이 다르다

한시간을 가도 똑같은 초원과 농장을 지나는 호주의 평원과 달리

한 고개 넘으면 들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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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고개 넘으면 숲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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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은 작은 언덕들이 나온다 (절대 mount라 부를 수 없는 mound 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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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는 호주의 미니어처 같은 느낌이랄까?

찍어 놓았던 포인트, Matheson Bay의 캠핑 사이트에 일몰 무렵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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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진짜 멋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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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멋있으면 뭐하나.. 하늘엔 구름이 가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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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보가 더 좋은 지역으로 이동할까 하다가

밤길 초행에 사고날까봐 그냥 기다리기로 한다


토요타 Wish 차 뒷자리를 접어 침낭을 펴고 잠자리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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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쯤, 머리 뒤가 밝아져서 보니 가로등이 켜졌다

자정쯤엔 꺼지겠지. 

가로등 빛이 직접 닿지 않는 곳으로 차를 이동했다


9시가 넘으니 남쪽 수평선부터 조금씩 구름이 걷히면서 하나씩 별이 보인다

그러다가 갑자기 내리는 비에 차로 피신.

차 안에서 맥주캔을 들고 유리창을 때리는 빗소리를 듣는다

오늘 낮까지는 이름도 위치도 알지 못했던 남위 36도의 외딴 바닷가에서.


내 인생은 무엇을 찾아서 이렇게 헤메이는 것일까?

답은 정해져 있는 것 같은데, 

그 과정이 어찌 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모두 다 정해져 있다면 인생이 너무 재미 없을지도 모르지.


맥주 한 캔을 다 비울때쯤, 비가 그쳤다

그리고 그 구름들이 모두 비가 되어 내렸는지

숨어 있던 별들이 스르륵 모습을 보인다

오클랜드 시내의 집 마당에서는 아무리 용을 써도 잘 보이지 않았던 LMC와 SMC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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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서 사온 무중력 의자를 꺼내서 누워 보았다

아! 이렇게 좋을 수가....

육안 하늘 감상에 이보다 좋은 의자는 없을거야

100m 옆에서 가로등이 환히 비추어도

오클랜드에서 북쪽으로 60km 떨어진 해변의 하늘은 인제의 best 하늘이나 다름이 없다


해변가에서 파도소리를 들으며 의자에 반쯤 누워서 

연신 스카이사파리를 돌리며 별자리 공부.

다시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별자리를 하나씩 연결해 보며 형상을 연상해 보려 노력하던 그때 말이다


그러다가

주기적으로,

무엇엔가 홀린듯 네이버 뉴스에 접속해서 대통령 절친 아줌마 뉴스들을 검색한다

당분간 한국 방송은 절대 안 보겠다고,

무한도전까지 끊었는데 말이다

그 아줌마가 누구이던, 무슨 짓을 햇던 

직선거리로 12,000km 떨어져 있는 나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데 말이다

국가라는 것이 개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조금이나마 알 것도 같다


두 시간이 넘게 바닷바람을 맞으며 별자리를 헤아리고 있으니

코와 손이 너무 시렵다

아~~ 태평양을 건너고 있는 배 안에 내 방한장비 다 있는데...


새벽이면 아마도 가로등도 끌테니..

차에 들어가서 침낭 안에서 토막잠을 청했다


새벽 3시 30분, 힘든(?) 꿈을 꾸다가 겨우 잠에서 깼다 

(사회에 불만을 품고 내가 발사한 핵폭탄이 
 어찌 잘못되어 우리 동네에 떨어져서 피해 다니느라고 꿈 속에서 한참을.. ㅠ_ㅠ)


차 밖으로 나와보니 하늘은 또 전혀 알 수 없는 모양으로 바뀌었다

토끼자리가 하늘 높이 남중해 있고.. 모든 것을 반대로 생각해야 퍼즐을 맞출 수 있다

그리고 가로등은 아직도....

아마도 밤새 켜놓는 가로등인가보다


2순위 관측지로 생각해 놓았던 데가 3km 인근에 있는데..

가자.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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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비에 적경적위 좌표를 찍어놓고 비포장 자갈길을 한참 달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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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 Point라는 camp site에 도착했다.

더 촌구석이라 그런지 가로등도 없고, 다른 캠퍼밴도 거의 없이

낚시꾼들의 아지트인지 비릿한 냄새만 코를 자극한다

그리고 하늘엔.. 숨이 막힐 것만 같은 낯선 별들.


또 악착같이 별자리를 익히고 있으려니 

용골자리 옆에 고물자리, 그 위에 큰개자리.. 또 그 위를 보니 외뿔소자리가 있다

그보다 더 어두운 남쪽의 듣보잡 별자리들을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데

남중한 외뿔소자리의 별들을 이어 보려니 의욕도 나지 않고 머쓱한 기분이 든다

북쪽에서도 한 번 제대로 헤아려 본 적이 없을텐데 말이야..


부둣가 데크(?)에 나가 보니 오리온자리 밑에 밝은 별이 수평선 바로 위에 떠 있다

이게 뭘까? 

스카이 사피리를 돌려보니

이게 뭐야. 카펠라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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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고도 겨우 7도로 수평선을 스치고 사라지는 카펠라.

이곳의 별쟁이들에게 카펠라는, 그리고 그 아래에서 보이지 않을 북두칠성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새벽 5시 15분,

에리다누스의 물줄기가 박명에 희미해지는 것을 느끼며 길을 떠났다

오클랜드로 돌아오는 고속도로에는

마치 평일 아침의 경부고속도로 서울 인근 상행선을 보는 듯

엄청난 교통정체가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서도 삶은 비슷하게 돌아간다

별들만 빼고 말이다








                                   Nightwid 無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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