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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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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이 걸린 메시에 스케치 레이스에서 마지막 남은 대상들은 

북위 48도의 파리에서 메시에 자신도 힘들게 관측했을 6, 7, 8번이다

근데 잘 보이지도 않았을 6 7 8이 순번에서 10번 이내에 들어온 것을 보면 그것도 아이러니..


여튼, 맑은 날을 만나기 힘들었던 6월 관측 주간의 아마도 마지막 기회일 6월 9일 목요일.. 

평일임에도 별에 굶주린 수많은 별쟁이들이 전국 각지로 달렸다

오늘은 'Mr. G'께 소개를 받은 진사 free 관측지인 화천 모처가 목적지이다

모처의 고개 정상에 도착해서 비포장 산길을 오르는데.. 

여기까진 그럭저럭 갈만 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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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건 도저히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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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을 시도해도 계속 가파른 바위에 미끄러져서 타이어 고무 타는 냄새만 실컷 맡고, 

밤에 오는 분들은 더 위험할 것 같아서

광덕산을 갈까 수피령을 갈까 하다가 결국 수피령으로 목적지를 변경.

(후일담이지만 당일 광덕산에는 근래 활발히 활동하는 암적응 테러리스트들이 잔뜩 출몰했다는..)

목요일의 수피령은 테러리스트는 물론 다른 별쟁이들도 없이 야간비행 멤버들만의 오붓한 관측회가 되었다.

(임광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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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회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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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보세에세 오신줄? 박진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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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ghtw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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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수피령에 뜻하지 않은 건축 공사가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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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에 왔을 때 두 개였던 진지가 이젠 엄청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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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조만간 수피령에 민간인 출입금지 간판이 걸려도 하나도 놀랍지 않을 것이다


벌써 관측 주간의 끝물이라 9시가 되어 가는데도 달이 밝다.

달만 밝은게 아니라 화성도 밝네.. 어짜피 아무도 암적응 안 될테니 달 질때까지 

화성 폰스케치 연습이나 한 장 하자


[ 초조한 화성, 조강욱 (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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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화성은 여유가 별로 없어 보인다 어딘가 급하게 쫓기는 느낌이랄까..

아니 그 느낌은 나의 현재 심리가 반영되어 그렇게 보이는 것은 아닐까?

앞으로도 틈틈이 화성 목성 토성은 폰으로 컬러 스케치를 해 봐야겠다

※ 태양도 해 봤는데, 자연광이 너무 밝아서 폰 화면이 잘 보이지가 않음.. ;;;;



[ M8 ]

달 지기 전에 민폐를 마치고 8번이 뜨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컨디션을 조절하고 있으려니

10시 조금 넘어서, 궁수가 뜨기도 한참 전에 8번이 드디어 출근 완료! 

오늘은 8번을 꼭 넘어야겠다

지난 관측에 이어 40mm로 전체 구도를 완성하고, 

2인치 UHC를 빌려서 성운을 그리려 하니 이거 왠지 시원하게 보이지 않는다

좀 더 배율을 올려야 하나? 

XL 40mm보다 더 쓰는 일이 적은 XL 21mm에 UHC를 장착해 보니 원했던 성운들이 뭉게뭉게 피어난다.

한 시간이 넘게 성운기 줄기들을 잡아 가다가, 

가장 복잡한 성운 영역의 디테일을 살려 보려고 Ethos 13mm로 바꿔 보니

시야는 그대로인데 (Ethos가 XL보다 훨씬 넓으니까) 성운은 더 밝아졌다.

이런 정도라면 XL 21을 더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네.. 방출? 아니다 공관 봉사 용으로 필요할테니..

(나는 쓰지 않을 장비를 가지고 있는 것을 참지 못하는 불치병을 가지고 있다)

미련하리만큼 한땀 한땀 성운기의 명암을 찾아 그리고 있는데,

어느새 전갈 꼬리의 M7은 남중을 넘었다

안 되겠다. 7번 6번부터 우선 봐 줘야겠다



[ M7 ]

110개 메시에 대상 중 적위가 가장 낮은 대상은 83번도 79번도 70번도 아닌 7번이다.

고대 그리스에서의 육안 관측 기록이 있는 4대 Deep-sky 중의 하나인 고매하신 분인데

(나머지 3개는 44번, 41번, 869&884)

북반구 중위도에서는 고도가 너무 낮은 것이 문제.


나에게는 7번, 6번과의 강렬한 첫 만남의 기억이 있다

벌써 햇수로 20년 전, 서울의 내 방에 누워 있어도 창문 유리를 통과하여 헤일밥이 보이던 시절이었다 

그 혜성이 절정기를 보내던 1997년 4월, 나는 학교 수업도 제대로 듣지 않고 매일 헤일밥 보러 다닐 생각만 했었는데.. 

(결국 선동렬 수준의 학점을 받고 조기 군입대를.. ㅠ_ㅠ)

하루는 아버지를 운전기사 삼아서, UAAA 96학번 동기들과 ‘엄청나게 어두운 곳’이라 소문이 난 

강원도 횡성의 '덕사재'란 곳으로 그 혜성을 찍으러 갔다 

(그 당시에는 슬라이드 필름 가지고 찍기도 많이 했는데, 헤일밥 덕분에 사진에 재능이 없음을 빨리 깨닫고 조기에 사진을 포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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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이 진 뒤, 새벽녘 덕사재 고갯길에 뜬 전갈은 

아름다움을 넘어 무서울 정도였다. 땅 위의 사람들에게 바로 독침을 날릴 것만 같은....

그리고 전갈의 독침, Shaula에서 바로 왼쪽으로는 구상성단 두 개가 육안으로도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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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눈으로 M13만하게 보이는 구상성단이라.. 이게 뭘까? 

아직 메시에도 절반 정도밖에 보지 않은지라 그런 애들도 있겠지 하고 다시 셔터 누르는 데에만 집중했는데 

(사진 찍는다고 성도도 안 가져갔다)

나중에 집에 와서 찾아보니 그게 M7과 M6이었다

하지만 그 후로 ‘육안으로 보이는 두 개의 구상성단’의 모습은 다시 보기 쉽지 않았다

첫 만남이 너무 강렬해서일까? 아니면 하늘이 더 안 좋아져서 그런 것일까?

오늘의 7번도 역시 구상성단과는 거리가 있는, 눈으로 겨우 희미한 자욱으로 보이는 수준이다.

7번 구상성단은 남쪽 나라에서 다시 보면 되지 뭐...


[ M7, 조강욱 (2016) ]
M7_160609_ori.JPG

※ 그러나 수피령도 아니고 벗고개에서 쥐 잡듯이 7번 내부의 행성상 성운들을 찾아보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
    Link : http://www.nightflight.or.kr/xe/observation/111066


불행일까 다행일까? 

구상형 산개성단이 아닌 평범하고 커다란 산개성단으로 보이는 날이라 

크기만 클 뿐 잔별들이 많이 보이지 않아서 30분 만에 스케치를 마치고

바로 위의 M6으로.



[ M6 ]

대학생 시절 어딜 가나 밤보석을 끼고 다니며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외우기‘ 라는 무식한 놀이를 몇 년간 하면서


나에겐 많은 고정 관념이 생기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는, 6번은 나비 모양이라는 것이다. ( 해당 페이지 Link : http://www.nightflight.or.kr/xe/jewel/30728 )

물론 K가 보이긴 하지만 심심한 7번에 비해, 6번의 나비 모양은 훨씬 인상적이다


( M7과 M6의 star chain 비교 )
칠육.JPG

7번이나 6번이나 모두 육안으로 보이는 아이들인데,

기원전부터 관측기록이 있는 7번에 비해 6번이 메시에 시절이나 되어서야 발견된 이유는 무엇일까? (메시에가 발견한 것은 아님)

덕사재에서도 맨 눈으로 구상성단처럼 보였는데 말이야..


[ M6, 조강욱 (2016) ]
M6_160610_ori.JPG


참, 구상형 산개성단 7번과 6번을 보았던 덕사재 언덕에는 그 몇 년 후 천문인마을과 NADA 천문대가 건설되었다



약 한 시간 동안 7번, 6번과 짧은 만남을.. 그나마 EQ가 있으니 망정이지.

그리고보니 지난번 관측의 데자뷰인가? 16번을 그리다가 급하게 69 70을 보고 온 것처럼 말이다

소요 시간도 비슷하고 위치마저 근처이다

하나 다른 것이 있다면, 오늘은 8번 석호성운을 완성하지 못하고 7 6으로 넘어갔기에 다시 8번으로.. 



[ 다시 M8 ]

젤리펜으로 점찍기를 하던 손으로 다시 파스텔을 쥐고서 

미련하게 한 줄기씩 성운기를 그린다

전체적으로 한 겹, 

밝은 곳만 또 한 겹 덧칠하고 어두운 곳은 지우개로 찍어내기를 

쉴 새 없이 무한 반복한다.  더 이상 할 게 없을 때까지.


반복에 지치지 않는 자가 성취한다고 했다. 

별로 뛰어나지 못한 눈을 달고 태어났지만, 그래도 노력이 나를 배신하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 M8, 조강욱 (2016) ]
M8_160610_ori.JPG


이 성운이 왜 석호, lagoon이라 불리는지 그림을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Dark band의 흐름을 물론 사진으로는 많이 봤었지만 말이다.

점점 좁아지고 넓어지는 검은 물줄기, 작은 산개성단을 감싸는 여린 성운기, 반투명한 모시적삼 같은 넓고 희미한 무언가..

(M8 구조 설명)
8번 뜯어보기.JPG


하지만 군대 병장 때부터 보겠다고 마음먹은 Black comet, Barnard 88은 어디 있는지 감도 잡지 못했다. 

집에 와서 다시 보니 B88이 있을 곳은 내가 성운기를 전혀 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B89번이 더 검출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구글 사진을 띄워놓고 내가 얼마나 제대로 보았는지 확인해 보니, 

.. 원래 성운이 덮여 있어야 할 곳의 반도 보지 못했다

(연두색 점선 안쪽이 내가 관측한 영역)
크기 비교.JPG

마지막이 될 다음번 관측에서 검은 혜성도, 전체 성운기도 다시 시도해 봐야겠다



새벽 3시. 박명까진 한 시간이 남았다.

5시간의 집중 관측으로 오늘의 목표를 달성하고 

담배연기 한 모금을 천천히 가득 빨아들이니

물에 젖은 스펀지같이 팔을 들 기운조차 없다


그래도 나에겐 아직 한 시간이 남아 있다

다음번, 늦어도 한달 내로 올 마지막 관측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박명이 올 때까지 메시에 마지막 스케치 target인 24번의 점들을 찍는다.

SAM_6410.JPG

동그라미 하나 하나에 나의 모든 혼을 담아서...

한참을 점을 찍다가, 요즘 부쩍 자주 보는 이른 박명을 맞았다.



한솔형님께 부탁해서 관측 종료 인증샷도 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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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과 마찬가지로 별을 보는 것도 끊임없는 반복이다

할 수 있는 데까지 관측 point를 준비하고, 
호핑으로 효율적으로 대상을 찾고, 
간상세포를 활용하여 대상을 보고, 
그것을 최대한의 정성으로 기록으로 남기고, 
거기서 insight를 얻어서 다음 관측을 준비하는..

그 반복에서 지치지 않는 별쟁이가 원하는 바를 이룰 것이다.



반복.jpg
윤태호 作, 미생 125수 中 )








                                                                 Nightwid 無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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