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측기 & 관측제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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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욱



하루종일 바람이 불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쓸어갈 것 같은 바람이었다

며칠동안 미세먼지에 온통 뿌연 하늘만 가득했는데

몰아치는 강풍에 하늘마저 맑아졌다


웨더채널로 지역별 시간대별 날씨를 검색해 보니

밤새 맑음에, 자정이 넘어서며 바람도 잦아들 예정이다

가자, 가야겠다


6월까지는 메시에 110개 스케치를 마칠 계획을 세워본다

어짜피 봐야 할 것들은 모두 궁수 전갈 인근.. 빨리 갈 필요도 없이 슬슬..

밤 9시에 수피령 고개 아래에 도착했는데 하늘은 이상하리만치 먹장구름.

그러나 위성사진으로는 한반도 북쪽을 덮은 구름이 아주 서서히 걷히고 있는 중..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그냥 올라가서 기다려보자


수피령 고개 정상에 들어서니 하늘을 가득 채운 구름과 몸을 가누기 힘든 돌풍 속에서도 이미 몇 팀이 먼저 관측 준비를 하고 계셨다

돕을 설치하면 거센 바람에 쓰러질 것 같아서 그냥 이리저리 바람따라 흔들리는 차 안에서

관측이 가능할 때까지 배터리나 보충하는 것으로..


세상 모르고 자고 있는데 이한규님이 창문을 두들긴다

11시 30분.

잠이 덜 깬 상태로 비몽사몽 차 문을 열고 나오니..

이거 아직 꿈을 꾸고 있는건가. 맑고 깊은 밤하늘이 눈 앞에 펼쳐져있다 (바람은 아직..)

정신을 차리고 옆자리 장승혁님께 여쭤보니 한 10분 전부터 갑자기 하늘이 개었다고.. 아싸!

새벽에 바람도 멎는다고 했지? 천천히.. 천천히 망원경 조립.

(천천히 한다고 정신 놓고 있다가 폴대 나사 결속도 제대로 안함. 어쩐지 광축이 끝없이 틀어짐)



[ M109 ]

아차 근데 궁수 전갈 말고 볼게 또 있었지

지난 매수팔 세미나에서 M109번이 나왔는데

109번 사진이 내가 2012년 그린 스케치와 전혀 싱크가 맞지 않는다

망한 109.JPG


그릴 때도 컨디션 난조로 별로 맘에 들지 않는 결과물이었는데..

내가 그린 것 중에서 이렇게 싱크로율이 떨어지는 스케치는 처음이다.


2012년의 관측기록을 다시 찾아본다

속성으로 은하 몇개 그려보자는 계획으로 적당한 고도의 대상을 찾다가 국자 근처의 109번 당첨!

동그란 core에 길게 뻗은 젓가락 한개.. 음? 얘가 측면은하였나?

승곤님 NSOG를 빌려다 찾아보니 완전히 다른 애가..

얘가 양악수술로 halo를 다 깎아버렸나.. 전혀 매칭이 되지 않는다 -_-;;;

에이 모르겠다 보이는대로 그리는거지 뭐..

디테일이 안보이니 그리기는 편한데.. 내가 지금 제대로 관측을 하고 있는건지 잘 모르겠다 ㅎ



스킬 부족으로 다시 그린 33번과는 달리

이건 성의 부족으로 재시도..

M109_160505_ori.JPG


사진을 옆에 끼고 쥐잡듯이 디테일을 관측한다 (사실 잡을 쥐도 몇마리 없었다)

밝은 코어와 막대,그리고 가장 밝은 나선의 줄기 위의 별까지는 관측 성공.

나선팔의 디테일은 기운만 느낄 수 있을 뿐 뿌연 덩어리로만 관측된다.. 

그러나 그 전체 크기는 사진과 비슷한 정도로 관측할 수 있음

109 사진 비교.JPG



바람이 이렇게나 부는 것에 비하면 이상하게 시상도 괜찮고 투명도도 좋은데

바람 때문에 망원경이 계속 돌아가서 관측의 효율이 전혀 나지 않는다

망원경이 바람 마음대로 움직이니 EQ도 소용이 없고

강풍에 날라간 종이 겨우 찾아오면 파스텔이 날라가 있고

파스텔도 찾아오면 망원경이 엄한데로 돌려져 있고..

대상마다 관측 시간이 3배는 더 걸리는 것 같다




[ M23 ]

109번을 다시 그리며 바람과 싸우며 낑낑대다보니

어느새 궁수 전갈이 높이 솟았다. 여유 있을 줄 알았는데..

지난 관측에서 완성을 보지 못하고 박명을 맞은 23번부터 완성.

M23_160505_ori.JPG


동네 친구 25번에 맞먹을 정도로 rich한 산개성단이다.

중심부 밝은 별들의 줄기를 따라 올라가면 삼각형 모양의 머리가 있어서

동쪽을 향하는 거대한 화살표, 또는 버섯돌이가 생각난다

M23_160505_des.JPG


1/4 페이지에 그리기는 조금 아깝지만.. 

구도상 어쩔수 없었어 23아 미안해~~



[ M21 ]

23을 보고 바로 21을 잡으니 무언가 많이 허전하다

그래도... 21에는 예쁜 반지가 하나 숨어있다

M21_160505_ori.JPG


북극성 약혼반지보다 나는 이게 더 예쁜 것 같다

M21_160505_des.JPG



이것으로 궁수자리 산개성단 연대도 모두 마무리되었다 (24는 산개성단이라 볼 수 없으니)

한여름에나 볼 수 있는 궁수를..

정작 여름에는 안보고 가을과 봄에 보고 있다

이미 떠나간 아이를 물고 늘어지고, 아직 오지 않은 애를 막 끌어 땡기고..

봄가을 궁수.JPG



109나 23이나 21이나 비교적 간단한 대상들이었는데 

계속 종이 줍고 -> 연필 줍고 -> 망경 맞추고 를 반복하니

진도가 너무 너무 느리다

그래도 한숨과 함께 쳐다보는 동쪽 하늘엔

바람이 불든 말든 아름다운 은하수가 백조를 타고 흐른다

아........

오늘 Veil 대박이겠는데.

얼른 메시에 스케치 마무리하고 NGC 공부도 시작해야지..


그리고 그 전에, 미루고 미뤄놓은 숙제들을 우선 넘어야 한다

7번, 6번, 24번, 그리고..

단 한번도 애정을 가지고 봐준 적이 없는 16번이 남아있다


남들이 옆에서 수년간 창조의 기둥 노래를 불러도 한 번 구경조차 해보지 않았다

7년째 아무것도 안하고 메시에만 보다보니 희미한 도전대상 류에 흥미를 잃어버렸나보다

그와 함께 '관측 성공'에 대한 나의 도덕적 기준이 많이 높아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보인다고 믿으면 보인다는 것을 오랫동안 철썩같이 믿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마음이 잘 들지 않는다


여튼, 다시한번 스케치의 힘을 믿어보자.

사진으로 전체 크기를 확인하고,

밝은 별들로 구도를 잡고 있는 중에

새벽 4시부터 벌써 하늘이 밝아온다

그리고 치사한 바람도 박명과 함께 잦아든다


해가 너무 빨리 뜨는거 아님?

궁수 전갈 봐야 하는데..


이제 7개 남았다

7 6 8 24 16 69 70

69 70 외에는 만만하게 가볍게 볼 아이가 하나도 없다

만만한 애가 없다기 보다는 엄두가 안나서 다 다음에 하겠다고 미뤄두었던 분들.


다음 관측은 6월중에 2박 3일로 남쪽으로 가볼까 한다

보현산이나 정령치.. 우리나라에서 남쪽 하늘이 가장 좋은 곳으로.

진짜 배움은 이제부터일지도 모른다




                                         Nightwid 無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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