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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가 몰아치는데 별보러 갔다가 바람에 얻어맞고 뜬금 타임랩스로 마무리하는 안시쟁이의 관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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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74, 2025-08-14 19:27:38(2025-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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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월령마다 1회 (아주 가끔은 1회 이상 ㅎㅎ) 관측하는 20년쯤 된 오랜 루틴을 지키기에는
거의 매일 밤 부슬비가 내리는 뉴질랜드의 겨울은 너무 가혹하다
그믐이 막 지난 금요일, 강한 비구름이 하늘을 덮고 온세상이 떠나가게 비바람이 치는데
날씨 앱에는 저녁부터 자정까지 맑음 예보가 떴다.
평소 같으면 그냥 넘겼겠지만 이번 월령에는 이거라도 놓치면 더 이상 기회가 없을것 같다
출근할때 장비를 차에 모두 실어놓고 회사에서 1시간 빨리 조퇴를 하고 바로 관측지로 이동.
해가 지고 어둑어둑할 즈음에 관측지인 해변 주차장에 도착하니
서퍼도 낚시꾼도 캠퍼도 아무도 없이 황량하기 그지 없다. 거센 파도와 바람 뿐이다.
낮에 태풍급 비바람이 쳤는데 이 와중에 뭘 해보겠다고 여기까지 오는 사람이 이상한거지.. ㅋㅋ
하늘엔 아직 구름이 가득한데
그래도 예보를 믿고 망경을 세팅하고 있으니 기적적으로 하늘이 개었다.
오늘 같은 날 방해꾼도 없고 구름도 없고 대박이네 하고 노래를 부르며 관측을 하려니……
아차!!!! 바람!!!! ㅜ_ㅜ
망원경 넘어갈까 걱정될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이피스 142배에서 상이 멈추지 않을 정도의 바람이다.
아 이 좋은 하늘에서 바람이.. 그래도 할만한 거를 해 보자.
LMC는 6~8월 겨울 동안은 고도가 낮아서 비수기라 제대로 관측은 할 수 없지만
마지막 남은 고난이도 구역인 62번 구역의 밑그림을 우선 그릴만큼 그려보고
(현재까지 완성한 마젤란 스케치 구역)
오늘은 너로 정했다 (연두색 네모 62번 영역)
지난달 관측에서 미처 번호가 기억나지 않아서 못 찾아본 NGC 5189로 향했다
용 한 마리가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이 생긴 파리자리의 기괴한(?) 행성상성운이다
(사진 출처 : www.capella-observatory.com/ImageHTMLs/PNs/NGC5189.htm)
15년 전, 한국에 살던 시절에 야간비행 호주 원정에서 금쪽 같은 시간을 쪼개서 스케치를 남겼던 대상.
(천체 스케치를 시작한지 1년밖에 안된 시절이라 다시 보니 부끄럽기보단 너무 신선하다 ㅜㅜ)
(스케치 출처 : 야간비행 2010년 1차 호주 원정에서 조강욱 그림)
기억력 감퇴는 일반적인 노화의 한 단면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인터넷이 터지지 않는 관측지에서 NGC 번호를 찾지 못해서 보고 싶은 대상을 보지 못한 안타까움과 자괴감.. ㅎㅎ;;
(마젤란만 생각하고 관측을 가는 바람에 아무 자료도 준비하지 않았다)
오늘 그 치욕을 갚아줘야 하는데..
고배율로 올려서 집중해서 봐야 하는 기괴한 구조는
멈추지 않는 바람 앞에 그저 신기루처럼 사라질 뿐이다
기다림도 지쳐갈 즈음, 낮은 구름이 순식간에 하늘을 덮는다.
아휴 다행이다(?) 그 핑계로 차에 들어가서 잠시 휴식.
30분마다 알람을 맞춰놓고 하늘 확인하고 다시 취침하기를 반복하며
차 안에서 잠복근무를 한 지 두시간쯤 지났을까?
알람 소리에 눈을 뜨고 하늘을 확인하니 이건 구름이 아니라 뭐가 내리고 있네!
큰일났다 싶어서 점점 굵어지는 빗줄기를 맞으며 황급히 장비를 다 정리하고 나니
빗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갑자기 하늘이 완전히 맑아졌다
야 이런 @%$@#$%$@%$%#야!
별빛 가득한 하늘에 대고 혼자 저주를 퍼부었다
비 맞으며 장비 정리를 다 했는데 다시 펴야 하나?
자정 이후 예보는 어짜피 구름 많음이고 바람도 많이 부는데
그냥 다시 꽝 될 때까지 하늘 구경이나 하자~~!!
2016년부터 보아왔으니 남반구 생활도 이제 거의 10년에 가까워 오는데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아직 남반구 별자리를 줄줄이 꿰지 못한다.
마젤란의 늪에서 6년째 허덕이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고,
10대 시절에 잘 돌아가던 머리로 외운 북반구 별자리와 달리
점점 떨어지는 기억력으로 까먹기 바쁜 머리가 두번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혼자 주장하는 것은 남반구 별자리들이 너무 못 생겼다는 것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부터 5000년간 갈고 닦은 북반구 별자리들에 비해
400여년 전 유럽 천문학자들이 배 타고 남아공 케이프타운에 상륙해서 공대 감성으로 얼기설기 엮어놓은 남반구 별자리들은
심미적인 모양도, 그럴듯한 이야기거리도 없이 그저 주위에 있는 동물들, 관측 도구들을 하늘로 올렸을 뿐이다.
아무리 보고 외워도 머리속에 들어오지 않는 큰 별자리들
- Carina(용골자리), Centaurus(센타우루스자리), Lupus(이리자리), Vela(돛자리) 등등
그리고 형체조차 연상하기 어려운 코딱지만한 별자리들
- 제단자리, 육각자자리, 화로자리, 인도인자리, 큰부리새자리, 그물자리 등등
에이.. 대충 만든 티가 팍팍 난다. 정도 안 들고.
내 개인적인 관점으로는 남반구 별자리 중 Crux(남십자자리), Grus(두루미자리), Eridanus(에리다누스자리) 세가지 외에는 그럴듯한 별자리는 전혀 없어 보인다.
그래도 별자리를 하나 하나씩..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별들을 헤아려 본게 얼마만일까? (안시쟁이라면 공감되는 부분이 있을거라 주장해 본다)
천정에 남중하는 은하수의 압도적 자태는 말해 뭐해. 아~~~ 좋다
근데 망원경을 다시 펴야 하는거 아닌가??
아~~~~~ 귀찮아 오늘은 바람 핑계 좀 대자
바람으로 관측은 망했지만
바람 때문인지 오늘은 파도 소리가 더 거센 것 같다.
작년에 폰으로 타임랩스 찍어만 놓고 열어보지 않은 영상이 생각나서
파도소리만 따로 녹음해서 작년에 찍은 그 영상에 붙여 보았다.
(영상 초반에는 바닷가 풍경이 보이다가 점차 어두워지는데, 고수들만 쓴다는(??) 그 달빛 조명이다)
※ 야간비행 게시판에 동영상 올리기가 어려워서.. 해당 동영상이 포함된 별하늘지기 게시글 링크로 대신합니다.
(글 가장 하단 즈음에 있어요)
https://cafe.naver.com/skyguide/373886
내가 타임랩스를 찍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니.. ㅎㅎㅎ;;;
자정 이후 흐림이라는 예보가 무색하게
소나기 후 두 시간을 맑은 하늘 아래에서 별멍을 때리다가
드디어 나타난 짙은 구름의 등장과 함께 집으로.
나에게는 일상이 되었지만 북반구 별지기들에게는 꿈과 같은 하늘이다
바람이 어떻고 비가 얼마나 오고 별자리가 못 생겼고 이런 소리 말고
소중히 생각하고 열심히 보아주련다
Nightwid.com 無雲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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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곤
2025.07.31 22:33
강욱씨. 동영상이 재생 가능 시간이 만료되었다고 뜹니다. 어떤 타임랩스 인지 보고 싶네요 -
조강욱
2025.08.01 08:38
넵 네이버 동영상을 공유하려고 꼼수를 썼는데 잘 안되네요 ㅎㅎ
아래 별하늘지기 게시글 링크에 들어가서 보시는게 좋겠습니다
본문에도 링크 수정해 놓았어요~
https://cafe.naver.com/skyguide/373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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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근
2025.08.13 18:32
Ngc5189 지난달 말에 서호주 데넴 쉘비치에서 12인치 트레블돕에 독터 12.5로 봤는데 S자의 한쪽만 보이더군요 위에 별이 있고 길게 내려와 오른쪽으로 휘어지는게 마치 낚시 바늘 같은 모양 이었습니다. 사전 지식이 없어 뭔가 하다 위 스케치 모양인 걸 알고 낚시 바늘에 낚여 위쪽에 좌측으로 돌아간 모양을 놓친 게 아닌가 생각도 해봤습니다. -
조강욱
2025.08.14 19:27
반대쪽이 안보인건 아마 구경이 조금 부족해서 그런건 아니었을까요? 저 2010년 그림은 18인치로 보고 그린거라..
그리고 서호주 관측기록도 기대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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