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측기 & 관측제안 ~☆+

  • 행성상성운과 함께 한 4월 관측 후기
  • 조회 수: 139, 2025-07-19 01:12:39(2025-06-07)
  • 마지막 관측 후기를 쓴 지 1년하고도 3개월여가 지났습니다. 그간 일어난 신상의 변화에 약간의 게으름이 합세하니 후기 쓸 타이밍을 잡기가 쉽지가 않았습니다. 매번 생각은 했는데 쉽게 써내려가질 못하겠더라구요. 굳이 변명을 하자면 뭐든 한 번 시작하면 다른 일을 하기가 참 어려운 성격인데다 새로 옮긴 직장에서 적응의 시간도 필요했고, 적응이 끝나가니 몰려드는 일에 집에 오면 넉다운되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그동안 후기만 안 썼을 뿐 그래도 나름 꾸준하게 관측지를 다녀왔었는데요. 다만 관측지에서도 집중하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메시에를 끝내고 콜드웰 리스트도 북반구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은 거진 다 봤다고(이마저도 아직 정리를 하지 않았네요..) 생각될 즈음 다음엔 어떤 대상들을 볼까 고민하는 시간이 참 길었습니다. 안시관측자라면 당연히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허셜 400도 그닥 내키지 않아 관측지에 가면 예전에 봤지만 아쉬웠던 대상들이나 명작들 위주로 찾아보곤 했었습니다. 밝고 큰 길을 즐겁게 걸어오다 갑자기 나타난 여러 좁은 갈래길에서 무얼 선택할지 몰라 어쩔줄 몰라 하는 모습. 이런 상태가 꽤 오래 지속되었어요. 월령이 다가오는데도 나가지 말까 생각도 했었지만 또 그건 아쉬웠습니다. 일상에 지쳐 있는 상태에서 시원한 밤공기 들이마시고 오는 것 자체가 가져다 주는 상쾌함이 있으니까요. 관측 나가는 것까지 귀찮아지지 않았다는 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렇게 시간을 날리고 올 수는 없기에 이번에는 매수팔에서 진행하는 세미나에서 발표하는 대상들과 딥스카이 원더스에 나오는 대상들을 간추려 찾아보기로 하고 인제로 향했습니다.

    20“ 남스돕 (f4 w/ Paracorr Type 2)
    Nagler 31mm (x66)
    Nav-12.5HW w/ EiC-10 (x163, x200)
    Baader Morpheus 6.5mm (x314)
    Nav-5SW (x408)
    Tele Vue O-iii, Tele Vue Nebustar, DGM NPB filter

    # 4월 25일, 인제

    1. NGC 6742 (용, 13.4등급 / 5mm, x408)
    6742.png
    (Source: https://www.deepskycorner.ch/obj/ngc6742.en.php)

    요 근래 관측지에서 좋은 하늘을 본지가 오래되었습니다. 매번 나갈 때마다 별이 퉁퉁 붓기가 일쑤였는데 이번 하늘 역시 썩 좋은 편은 아닙니다. 10인치를 들고 처음 방문했을 때 워낙 인상깊게 보았었던 하늘이라 그런지 더 아쉽습니다. 그래도 시상은 그럭저럭 봐줄만 합니다. 그나마 덜 부어있네요.

    관측 전에 집에서 정리했던 목록은 딥스카이원더스 4월 대상들 중 볼만할 것으로 생각되는 은하들과 지난 4월 매수팔에서 한꼭지 발표했던 행성상성운들이었습니다. 요새 계속 보고 싶었던 대상들이 행성상성운들인지라 먼저 겨누어봤습니다.

    NGC 6742는 중심이 약간 어두운 고리 모양의 성운입니다. 행성상성운을 분류하는 여러 방법들 중 제가 발표했던 칼럼에선 보론초프-벨랴미노프(Vorontsov-Velyaminov) 분류법으로 나눴습니다. 행성상성운의 외관에 따라 Class I~VI 까지 6단계로 분류합니다. 6742는 그 중 Class II에 해당하며 매끄러운 원반의 형태를 보입니다.

    아이피스를 통해 본 성운은 필터를 장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변시로 식별이 가능했습니다. 가지고 있는 필터 3개를 번갈아 장착해가며 확인해봤는데 텔레뷰 네뷰스타에서 제일 잘 보이네요. 고리 구조의 흔적이 담긴 디테일은 확인하기가 힘듭니다. 

    2. NGC 6765 (거문고, 12.9등급 / 5mm, x408)
    6765.png
    (Source: http://www.astrophoton.com/NGC6765.htm )

    불규칙한 형태인 Class V에 해당하며, 대상을 소개하는 칼럼에서는 대구경에서는 이중엽 또는 줄무늬처럼 보이고, 작은 망원경에서는 북쪽으로 더 밝은 작고 희미한 불규칙한 원반으로 보인다고 설명합니다.

    역시 필터를 번갈아 끼워가며 봤는데 필터 없이 보는 게 제일 맛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사진에 보이는 이중엽 무늬는 찾아보기 어려웠으며, 불규칙한 형태만 눈에 잘 들어왔습니다.

    3. NGC 6210 (헤라클레스, 9.2등급 / 5mm, x408)
    6210.png
    (Source: https://esahubble.org/images/opo9836f/ )

    사진에서 거북이가 연상이 되시나요? 거북성운이란 별칭을 가지고 있는 성운으로 조건이 좋으면 중심성과 성운의 색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첫인상은 눈이 환해지는 밝은 모습입니다. 그간 보았던 어둡고 희미한 행성상성운의 모습과 달리 작지만 참 밝습니다. 하지만 거북모양의 성운기는 확인이 잘 안되네요. 색은 택도 없습니다. 앞서 보았던 NGC 6742와 같은 Class II에 해당하지만 매끈한 둥근 모양이 아닌 어딘가 불규칙해 보이는 모습입니다. 외곽으로 갈수록 성운을 감싸고 있는 흐릿한 헤일로가 느껴집니다.

    4. NGC 6309 (뱀주인, 11.5등급 / 5mm, x408)
    6309.png
    (Source: https://en.wikipedia.org/wiki/NGC_6309#/media/File:NGC6309-HST-R814GB555.png )

    Class III로 불규칙한 원반을 가진 행성상성운에 해당합니다. 필터 장착 시 길쭉한 원반이 사각형으로 보일 수 있어 Box Nebula 라고도 불립니다. 이 친구도 작지만 꽤 밝은 모습을 보여주네요. 동서로 길쭉한 모양에 서쪽에 위치한 밝은 별이 잘 어우러집니다. 디테일을 확인하기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5. M16 (뱀, 6.4등급 / 6.5mm, x314)
    M16.JPG
    (Source: https://www.nightflight.or.kr/xe/sketch/186708 )

    10인치로 한 번, 20인치로 한 번 찾아보았었는데 볼 때마다 창조의 기둥은 커녕 성운기 확인도 쉽지 않았던 대상입니다. 원래 보려던 대상은 아니었지만 함께 관측하던 동료들이 보고 있어 저도 한 번 겨누어 봤습니다. 이왕 보기로 한 거 제대로 한 번 보고 싶어 현장에서 찾은 사진과 대조해가며, 필터도 바꿔가며 창조의 기둥을 찾아보았습니다. 하늘이 그닥이라 별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웬걸, nebustar 필터를 장착하고 보니 성운기가 보입니다! 눈알이 연상되는 밝은 별 2개 근처에 확연히 구분되는 밝고 어두운 경계가 눈에 들어오네요. 한 번 보이기 시작하니 구분은 잘되나 기둥모양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 망원경으로 함께 보던 장영준 님은 단박에 기둥이 보인다고 하는데...  그 눈이 참 부러울 따름입니다. 그래도 아예 확인도 못하던 지난 날과는 다르게 어렴풋한 흔적이라도 확인했습니다.

    6. M 2-9 (백조, 14.7등급 / 6.5mm, x314)
    M2-9 2.png  m2-9.png
    (Source: 좌 - https://en.wikipedia.org/wiki/M2-9 / 우 - https://www.deepsky-visuell.de/Projekte/PPN.htm )

    불규칙한 형태인 Class VI에 해당하는 Minkowski 2-9로 원시행성상성운입니다. 작년에 본, 작은 눈사람 같이 정말 이뻤던 백조자리의 또다른 원시행성상성운인 Egg Nebula 와 더불어 꼭 보고 싶었던 대상입니다. 원시행성상성운을 모아 소개하는 사이트(https://www.deepsky-visuell.de/Projekte/PPN.htm)가 있는데 여기 모인 원시행성상성운 중 제 망원경으로 볼만한 몇 안되는 대상 중 하나입니다.

    성운은 생각보다 잘 보입니다. 가운데 중심성을 기준으로 양 옆으로 쭉 뻗어나가는 성운기가 뚜렷하게 잘 보입니다. 장영준 님은 슥 보면 은하로 착각할 수 있겠다 하시네요. 저 사이트에 나오는 27인치로 관측한 스케치에서는 성운기 내부의 디테일도 확인할 수 있는 것 같지만 구경도 상대적으로 작은 20인치에 관측조건도 썩 좋지 않아 그 정도까지는 보이질 않습니다. 다만 사진처럼 중심성 근처에서 볼록하게 솟아 있는 성운기는 희미하게나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7. NGC 6369 (뱀주인자리, 11.4등급 / 6.5mm, x314)
    6369.png
    (Source: https://ko.wikipedia.org/wiki/작은_유령_성운 )

    Class IV로 고리모양의 성운에 해당합니다. 별칭은 작은 유령성운이네요. 필터없이 보아도 둥근 고리 모양의 성운이 눈에 잘 들어옵니다. 서쪽에서 시계방향 90도에 있는 별과 어우러진 모습이 참 멋집니다. Nebustar 필터 장착하니 디테일이 좀 더 살아납니다. 서쪽 고리 끄트머리에서부터 좌우로 이어진 호에서는 반대편보다 두터운 성운기가 보입니다. 마치 블랙홀 사진에서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죠.

    8. NGC 5053 (머리털자리, 9.9등급 / 6.5mm, x314)
    5053 eyepiece.png5053 2.png
    (Source: 좌 - https://theskylive.com/sky/deepsky/ngc5053-object / 우 - AstroAid app)

    볼만한 행성상성운은 대충 다 본 것 같고, 철수하기 전 마지막으로 겨눠 본 구상성단입니다. 매수팔에서 이승환 님께서 소개해 주셨는데 안보였다고 했던 대상입니다. 회장님께서도 안시관측 초보와 초보가 아님을 구분할 수 있는 가늠자로 충분한 대상이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있어 꼭 한 번 찾아보고픈 대상이었습니다. 
    호핑해 도착한 곳엔 구상성단 근처의 별 2개가 당연하게도 아주 잘 보입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있어야 할 구상성단은 없네요. 두번째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작은 것도 아닙니다. 314배 시야에 꽤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지만..안보입니다. 각잡고 봐야겠다 싶어 후드 뒤집어쓰고 양눈 다 뜬채로 편안한 자세로 계속 응시해봤습니다. 그러고 조금 시간이 지나니 하나 둘 빛의 흔적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혹시나 싶어서 어퍼케이지를 살짝살짝 움직여보니 빛이 더 확실히 구분이 되네요. 시간이 지날수록 확실히 봤다라고 할 수 있을만한 양의 빛을 보았습니다. 뭔 구상성단이 이렇게 보기가 어렵나 싶었지만 그래도 봤으니 좋습니다. 전 세부구조를 확인할 만큼은 볼 수 없었는데 다른 곳에서 관측하셨던 이동근 님은 갈매기 모양의 스타체인도 보셨다더군요. 다들 참 부러운 눈들을 가지고 계십니다.


    5053을 끝으로 이 날의 관측은 마치고 4시 반쯤 철수했습니다. 계절이 바뀌어 돌아오는 길에 해가 떠 집에 거의 다 와갈 때 쯤엔 이미 훤하더군요. 그동안 대부분 관측을 마치고 돌아와 집에 들어갈 때도 늘 컴컴한 밤이었는데 환한 풍경을 보니 새로운 날을 일찍 시작한 듯해 기분이 좋았습니다. 
    더불어 지난 1년여의 시간 동안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했던 기억들이 이번 관측을 통해 조금씩 정리되는 듯했습니다. 오랜만에 재밌고 알찬 시간 덕에 앞으로 다시 즐거운 관측을 이어나갈 수 있는 에너지를 조금 얻고 온 것 같아요. 관측지에서 우왕좌왕하며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제대로 본 게 없으니 관측기 남기기도 애매모호했던 날들과는 이제 안녕을 고하고 다시 집중해서 보고 요번처럼 관측기도 남겨야겠습니다. 매너리즘에 빠져 시간을 허비하기에는 볼 게 아직 너무나 많으니까요.
    관측의 마침표는 관측후기로 찍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이렇게 오랜만에 후기를 남기니 밀린 숙제를 한 듯한 뿌듯함이 들지만 아직 후기를 남기지 못한 지난 1년여 간의 대상들이 조금 남아있어 찜찜함이 완전히 가시지 않습니다. 이건 차차 따로 정리를 해서 후기 남겨보겠습니다.

    선배님들과 함께 하늘 바라본지도 오래 된 것 같습니다. 신년관측회는 제가 참석을 못했었으니..
    다가올 장마 중에 짧게라도 하늘이 열려 선배님들과 함께 보면 참 좋겠습니다.

댓글 6

  • 양승희

    2025.06.07 09:35

    섬세한. 관측기 잘 읽었습니다. 관측 목록 작성할 필요 없이 그냥 베껴 관측해보고픈 후기네요^^;;; 14인치로 볼 만한게 있을런지 모르지만요..
    근데 관측기에서 매너리즘이란 단어를 보는 순간 일순 반가웠다는...ㅎㅎ
  • 정화경

    2025.06.07 17:56

    다 그렇게 베끼고 참고하면서 보는 거 아니었습니까 ㅎㅎ 저 대상들은 14인치로도 충분히 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매너리즘...그런 거에 빠질 연차 아니라고, 빠지면 안될 것 같아서 아니라고 격하게 부정하고 싶은데 그거였던 거 같기도 해요^^;


  • 조강욱

    2025.06.09 08:41

    20인치를 쓰시니 PN 관측의 재미가 더 배가될것 같습니다 ^^
    저는 몇 년을 한개의 대상만 보다보니 관측 갈때 다른 대상은 준비도 안해가고, 목표한 마젤란 관측이 끝나면 목적 없이 우왕좌왕 하는 일이 늘어가고 있네요
    행상성성운을 열심히 보시는 것처럼 저는 앞으로는 구상성단을 서열 순으로 모두 관측할까 생각 중입니다
  • 정화경

    2025.06.10 23:40

    이번에 보면서 하늘이 좀 더 좋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만큼이라도 볼 수 있었던 게 또 감사하기도 했구요.

    구상성단 모아보기도 재미있어 보입니다. 첫 호핑의 대상이 M4였던지라 구상성단 생각하면 웬지 모를 설렘이 좀 남아있습니다.

    이제 당분간은 널려있는 은하와 좀 친해지는 시간을 가져봐야겠어요 ㅎㅎ

  • 김철규

    2025.07.14 12:52

    저도 20인치 들이고서 행성상성운을 전보다 더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찾기가 힘든만큼 찾았을때 기쁨도 더 큰거 같아요.
  • 정화경

    2025.07.19 01:12

    네, 행성상성운이 은근히 매력이 있습니다 ㅎㅎ 구경 마음껏 활용해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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