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측기 & 관측제안 ~☆+

  • 미국 일식 원정기(2) 호수 위에서
  • 조회 수: 113, 2024-10-02 18:51:15(2024-09-09)

  • 캠핑장인 줄만 알고 온 이곳, 
    고급스런 리셉션에서 체크인을 하고 나니 직원이 식당 건물로 안내한다.
     
    6시가 넘어 도착했더니 다른 참가자들은 이미 식사 중.
    음식은.. 휴스턴에서 먹었던 호텔 조식이나 레스토랑보다도 퀄리티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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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기 전에 찍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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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은 인종의 용광로인줄 알았는데.. 여기 모인 100여 명 중 우리 가족만 인종이 다르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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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 서빙하는 직원도, 매니저 같은 사람도 한결같이 친절하게 먼저 말을 걸어준다.
     
    알고 보니 이곳은 한국으로 치면 교회 수련원(?) 같은 곳이었다.
    평소에는 종교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관인데 우연히 일식대에 걸치게 되어서
    일식 맞이 특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해외는 고사하고 미주리주 밖에서 온 참가자도 우리 가족밖에 없다고 한다

    근데 2박 3일 이렇게 밥 주고 기념품 주고 하면 인당 $150 참가비 가지고는 
    이 정도 규모의 시설과 직원들 운영하면서 수익이 날 수가 없어 보이는데
    왜 이렇게 잘해주는 것일까?
     
    마음이 비뚤어져서 그런 것인지 오히려 괜한 의심이 든다.
    혹시.. 조금 이상한 종교집단?
    밥 먹다 정신을 잃은 뒤 눈 떠보면 어느새 의식의 제물로?? 
    발 아래는 불길이 활활???
    아~~~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보다 ㅠㅠ 잘해줘도 난리야..
     
    저녁 식사 이후로는 채플 일정이 있었지만, 텐트 설치를 핑계 삼아 먼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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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가자 대부분은 텐트 말고 숙소를 예약했는지 텐트 사이트에는 2~3팀밖에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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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텐트 사이트에 있는 야외 화장실조차 묵었던 힐튼 호텔 화장실보다 훨씬 고급지다. 여긴 대체 뭐지??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직원이 차를 타고 와서 텐트 사이트 바로 옆에
    커다란 화로 같은 곳에 불을 피웠다.
    혹시.. 깨어보면 활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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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이 되었다. 하늘에는 별들이 보인다.
    내가 사는 남반구에서는 볼 수 없는 북쪽의 별들. 고향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오랜만에 한참을 멍하니 북극성을 바라보며 코로나를 마시고 있는데
    날이 점점 추워진다.
    너무 시원하게 맥주를 마셔서 그런가 하고 텐트에 들어가니 초저녁부터 가족들이 덜덜 떨고 있다

    아무 방한 대책 없는 저렴이 텐트보다는 차가 낫겠지. 
    와이프&딸을 차로 보내고 혼자 텐트에 누웠다
    음 좀 춥긴 한데 잠들고 눈뜨면 해 뜰거야.

    그러나 밤이 깊어질수록 뼛속까지 파고드는 듯한 추위에 
    잠은 고사하고 한 시간이 넘게 몸부림을 치다가
    이러다간 제물로 바쳐지기도 전에 아침까지도 못 버티고 얼어 죽을 것만 같다.
    잠자리가 비좁더라도 나도 차에 들어가야겠다.
     
    텐트를 포기하고 차 문을 여니..
    차에서도 두 여자가 추위에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이거 큰일났다. 밤은 너무나 긴데.
     
    좁은 차 안에서 한참을 뒤척이다가 차 시동을 걸고 히터를 틀었다.
    이렇게 간단한걸..
     
    일식 전날, 계획한 곳보다 훨씬 먼 곳에서 가족들과 차 안에서 앉은 채로 설잠을 자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하루키 소설 스푸트니크의 연인에 나오는 
    하룻밤 사이에 백발이 되어버린 여자의 얘기가 문득 떠오른다. 
     
     
     
    =========== 4월8일 월요일 (일식 당일) ===========
     
     
    차에서 쪽잠을 청하며 버티다 보니,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던 아침이 되었다.
    (히터 들어오는 따뜻한 럭셔리 야외 화장실에서 자는게 더 나았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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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도 녹일 겸 아침 러닝을 하며 관측지 답사도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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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참 여기저기 뛰고 있는데 골프 카트를 타고 지나가던 분이 
    관측하기 좋은 곳이 있다고 카트를 태워 주셨다. (나중에 보니 이 시설의 책임자 같은 분이었다)
     
    카트를 타고 도착한 곳은 호수 한가운데에 있는, 다리로 연결된 섬이었다.
    호숫가에서 일식 볼 적당한 장소를 찾고 있었는데 이렇게 완벽할 수가.. 말도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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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에는 다행히 낮은 구름은 없이 높은 구름만.. 이 정도면 문제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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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의 메인 건물 한쪽에서는 일식 기념 바비큐 런치 파티(?) 준비가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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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식은 정오 넘어서 시작이지만 일찌감치 텐트를 접고 
    그윽한 불 향을 맡으며 섬 한쪽 끝 명당자리에 장비를 펼쳤다. 
    정비가 잘 되어 있는 것이 아무래도 인공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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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자리 주무시는 분은 일식은 모르겠고 뉴욕 갈 날만 기다리는 딸님.. 아휴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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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정 전에 집에서 장비 테스트를 한땀 한땀 미리 해 보았다. 닥쳐서 후회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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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10년이 넘게 쓰고 있는 Lunt 60mm 더블스택+Ethos8 조합, 중고로 구한지도 20년이 넘었을 맨프로토 055 삼각대,
    그 위에 올려진 국산 명품 경위대 슈퍼마운트 W ㅎㅎ

    엑소스카이 필름으로 필터를 만든 쌍안경과 파인더, 그림 그릴 태블릿까지
    그냥 지루한 작업일 수 있는 관측 준비일 뿐인데 왜 항상 설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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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치 바비큐도 먹는 둥 마는 둥 부지런히 태양 디테일부터 하나씩 그려본다.
    전 방향의 홍염을 모두 그리고, 필라멘트와 복잡한 태양 표면 무늬를 하나씩..
    성단, 은하는 어느 정도 방법을 터득했다고 생각하는데
    태양 표면은.. 언젠가 제대로 그릴 날이 있을지? (그래도 달보단 무지 쉽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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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그림 완성은 일식 다 끝날때쯤.. ㅋㅋ)

     
     12시 40분 부분식 시작. 정확한 시간에 조용히 시작되는 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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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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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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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오급 일식 안경을 쓰고 여유롭게 일식을 감상 중인 마님과 
    정신없이 그걸 그리는 Eclipse Cha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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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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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새 결정적 순간이 거의 가까워져 온다
    하늘은 이미 많이 어두워졌고, 
    섬 중앙에 다 같이 의자 놓고 앉아있던 방문객들의 웅성거림이 점점 더 커진다.
     
    휴대폰과 빌려온 고프로는 녹화 버튼을 눌러놓고
    망원경도 태블릿에서도 손을 떼고 목욕재계 후 중요한 순간을 맞을 준비를.. (영상은 다음편에)
     
    뉴질랜드에서 텍사스까지 14시간의 비행, 
    다시 12시간 운전해서 여기까지 온 여정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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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시 53분
     
    실처럼 얇아진 태양은 약속된 시간에 함성과 비명과 함께 다이아몬드 반지를 살짝 보여주고
    3분55초 간의 개기일식이 시작되었다.
    작년 호주에서 1분짜리에 비하면.. 여유가 넘친다 ㅎ
     
    다행히도 예상했던 것처럼 높은 구름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고
    이 정도면 아름다운 장소에서 완벽한 일식.. 
    어찌어찌 이번에도 성공한 듯? ㅋㅋ
     
    작년에 개기일식 중에 잠깐 태양망원경으로 관측했을 때 
    홍염이 부분식 때보다 훨씬 거대하게 보여서 내가 헛것을 보았나
    아니면 진짜 일어나는 현상일까 꼭 다시 관측해 보겠다고 생각했는데
    여유 있는 4분짜리 일식에 차분하게 다시 보니..
    홍염의 크기와 밝기는 개기일식 전과 개기일식 중에 전혀 차이가 없었다

    2024 TSE 240408 (개기식중).jpg
    조강욱 그림, 삼성 갤럭시탭 S7+ & Clip Studio


    아쉽지만 작년에 호주에선 헛것을 본 것으로 추정.. ㅎㅎ
    맨눈으로, 태양 망경으로, 쌍안경으로, 파인더로 번갈아 가며 검은 태양과 코로나를 관측하고
    망막에 그 광경을 각인해 본다.
    사진으로는 담을 수 없는 (달리 보이는) 라이브 관측의 맛.
    생각해보니 일식 쫓아다니는 체이서들 중에 안시쟁이는 거의 보지 못한 것 같다
     
     
    개기일식이 잔잔한 호수에는 어떻게 비칠까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반영이 잘 보이지는 않았다.
    미국 원정 &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몇 날 며칠을 일식 순간을 곱씹어보며 그림 한 장을 남겨 보았다.

    2024 USA Eclipse Landscape.jpg
    조강욱 그림, 삼성 갤럭시탭 S7+ & Clip Studio
     

    작년에 다소 충격적인(?) 모습의 1분짜리 하이브리드 일식과 비교하면 
    한숨 자고 와도 아직 끝나지 않을 것 같은 4분짜리에 
    모양도 코로나도 전형적인 평온한 일식이다.
    아름다운 다이아몬드와 함께 개기일식이 종료된 후, ​
    한참을 멍하니 실낱같은 태양을 그냥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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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시 2분

    나는 어쩌자고 이걸 이렇게 좋아하게 되어서 
    하염없이 지구를 떠돌고 있을까?
     
    장점 : 해외여행 어디갈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평생 이미 다 정해져 있음
    단점 : 여행 가서 여유롭게 일반적인 관광을 해본 적이.. 고생한 기억만 한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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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기식이 종료된 후, 한데 모여서 일식을 보던 사람들은 거의 모두 자리를 비웠다.
    혼자 숨가쁘게 개기식 마지막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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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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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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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시 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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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시 14분

    3시 15분, 부분일식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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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를 돌아보니.. 끝까지 보는 사람은 우리 가족밖에 없었던 듯.. 의자도 BBQ 기계도 모두 치워져 있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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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21시간 뒤에 뉴욕 가는 비행기만 잘 타면 되는데
    그걸 타려면 다시 1100km를 달려서 휴스턴으로 돌아가야 한다
    항상 개기일식 이후 촉박한 이동 일정으로 트라우마가 많아서
    아주 여유있게 일식 다음날 오후로 이동 일정을 잡았는데 
    이렇게 일정이 촉박해질 줄이야.. ㅎㅎ;;;;
    (실은 일정이 여유롭다고 무리하게 이동 계획을 잡았다는 사실 ㅠㅠ)
     
     
    - 3부에 계속 - 
     
     
     
    Nightwid 無雲

댓글 6

  • 류혁

    2024.09.10 11:14

    별 보기, 일식 관측 뿐만 아니라 달리기에도 좋은 동네네요. ^^

    풍경에서 느껴지는 여유로움이 참 보기 좋습니다. 늘 '행복하게 즐 Run, 부상 없이 Long Run' 하세요. ^^
  • 조강욱

    2024.09.19 20:59

    호숫가를 달리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ㅎㅎ

    그나저나 요즘 러닝을 하다보니 3가지를 한 번에 하는 류혁님이 더 위대해 보입니다 ^^

  • Profile

    박상구

    2024.09.24 19:06

    벌써 다섯달이 지났군요. 다른 곳에 있었지만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나네요 ^^
    높은 구름이 가득 깔린 우중충한 하늘아래서 내가 과연 일식을 제대로 볼 수 있을지 조마조마 했던 그날의 기분이 다시 떠오릅니다. 사진 보니 강욱님은 아주 맑은 하늘 아래서 보신겁니다 ㅎㅎ
    1100km라는 먼 거리도 주저하지 않고 달려간 열정의 이클립스 체이서에게 감동한 그쪽 신께서 수련원과 좋은 하늘을 선물로 주신 것 같군요. ^^
  • 조강욱

    2024.10.02 18:48

    아마도 텍사스에서 출발한 분들 중에서는 가장 멀리, 가장 맑은 하늘을 본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

    저보다 더 극적으로 일식을 맞이하신 상구님도 축하드립니다~ 일식 풍경 그림도 너무 멋졌어요!

  • 홍대기

    2024.09.26 09:38

    가족분들이 함께하신 모습이 너무 보기 좋습니다. 강욱님 글은 언제 봐도 마음을 울리는 명품 소설 같습니다. 시간날 때 찬찬히 다시 봐야겠네요~. 늘 건강하시구요~^^
  • 조강욱

    2024.10.02 18:51

    앞으로는 와이프님 동반으로 자주 모시고 다니려고요 ^^ 글보단 일식 자체가 명품이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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