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에세이 ~☆+

  • 노약자 보호석
  • 김경싟
    조회 수: 16928, 2013-05-09 04:58:31(2011-11-25)


  • (http://blog.naver.com/coat2020?Redirect=Log&logNo=30100951350)



    지하철에서 '못 배워 먹은 년'이 되다
    2008.11.29자 오마이뉴스에 실렸던 글입니다.

    .........................................................................................................................................................................

    그날은 밤을 꼬박 지새우고 출판사 회의에 가는 날이었다.
    게임 가이드북을 집필하던 때였는데 가이드북이라는 게 정보를 전달해주는데 초점을 맞추다보니
    수많은 자료를 하나하나 확인하는 게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일 년에 한번 정도 오는 심각한 몸살 상태였던지라 온 살갗이 뜯겨져 나가는 것처럼 쓰리고 아팠다.
    그러나 어쩌랴, 일은 일.
    계약서에 도장 찍는 순간 책 나오는 날까진 온 몸 불살라야 하는 게 도리 아니던가.

    목동에서 삼성역까지, 5호선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고 서있으려니 어째 다리에 힘이 쭉쭉 빠졌다.
    그리고 양 손에 가득 서류봉투와 가방과 원고 비교를 위해 들고 다니는 몇 권의 가이드북.
    죽겠다 소리가 절로 나올 찰나, 내 앞에 앉았던 한 아주머니께서 내 몰골을 위아래로 훑어보시더니
    안쓰러운 듯 말을 건네신다.

    "애고, 아가씨~ 짐도 많은데 이리 앉아."

    마음은 너무나 감사했지만 사람 많은 지하철에서 어른에게 자리를 양보 받는다는 것이 영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한사코 거절을 하는데도 아주머니는 내 짐을 빼앗다시피 하여 자리를 터주시며 날 끌어 앉혔다.

    "난 금방 내려, 입술이 바짝 말랐네. 젊은 사람도 힘들면 앉아가야지, 안 그래?"

    연신 인사를 하며 자리에 앉았고 아주머니는 두 정거장 정도 더 가서 내리셨다.
    이게 웬 하늘의 보살핌이냐 싶어 쏟아져오는 잠에 잠시 눈을 붙이고 한 두세 정거장쯤 갔을까.
    무언가 '퍽'하며 앉아있는 내 무릎을 치는 것이 아닌가.
    반쯤 정신 줄을 내려놓은 상태에서 멍하니 눈을 들어보니 얼핏 6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어르신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날 내려다보고 섰다.

    "에헴~!!"

    빠른 사태 파악이 가능한 상태였다면 냅다 일어나 자리를 내어드렸을 것이다.
    결혼한 친구가 임신 7개월 당시 노약자석에 한번 앉았다가 지팡이로 맞을 뻔 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서
    그 이후부턴 어른이 앞에 서면 노인공경은 둘째치고 어서 자리를 내놓고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의 난 상황대처능력 제로의 상태여서 잠시 3초 정도 그 어르신의 얼굴을 멍- 하니 보고 있었다.
    그런데 나의 굼뜬 반응에 심기가 매우 불편해지신 어르신께서는
    갑자기 대뜸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질러 대시는 게 아닌가.

    "에라이, 젊은 년이 어디 어른이 앞에 서 있는데 '나빤데기'를 꼿꼿이 들고 쳐다봐!"

    허… 오랜만에 들어보는 '나빤데기'…
    그제야 '아, 자리 양보해달란 말씀이시군.' 사태파악이 되어 주섬주섬 짐을 들고 일어섰다.
    그런데 날이 겨울인지라 두꺼운 옷하며 짐하며 몸이 생각처럼 재빨리 움직여지진 않더군.
    화를 낼 기력도 없었으니 어서 비워주고 구석으로 몸을 숨기자는 생각뿐이었다.

    "저런, 저런, 못 배워먹은 년 같으니라고. 저희 부모가 서 있어도 모른 척 할 년이여, 아주 그냥!"

    노약자석도 아니고 일반 좌석에 앉아서 어른이 기침하는데 얼굴 3초 바라봤다는 이유만으로
    난 못 배워먹은 년에 부모한테도 자리 양보 안하는 천하에 몹쓸 년이 되어 버리고야 말았다.

    그래. 내가 다 잘못했고 내가 죄인이다 치자. 제발 소리나 안 질렀으면 좋겠다.
    앉으셨으면 됐지, 귀가 먹먹할 정도로 소리를 질러대는 까닭은 뭔가.
    이 어르신, 도통 나를 향한 살벌한 비난이 멈추질 않는다.

    "나라가 아무리 망조가 들었다지만 어디 대가리 피도 안 마른 어린년들이
    노인 앞에 두고 처자는 척을 하지를 않나, 상것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야. 말세다, 말세야."

    잠도 곱게 자면 되지 '처'자는 건 뭔가.
    그때 노약자석에 앉아계시던 할아버님과 할머님께서 한 말씀씩들 하신다.

    "애고, 고만해요! 젊은 사람들이 피곤하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지하철 전세 냈소? 고만 좀 떠들어요! 나이 먹은 게 뭔 유세라고!!"

    그제야 멈칫 하시는 어르신. 무안한 듯 헛기침을 몇 번 하시더니 금세 자는 척을 하신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 온 삭신이 쑤시고 기력이 딸리는 거 누가 모르랴.
    우리 부모님만 하더라도 '아이고, 허리야~'를 입에 달고 사시는데.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 틈에서 욕먹으며 '천하에 몹쓸 년' 소리를 들은 것보다 속상했던 건,
    내 나이가 겨우 서른이라 팔팔하지만 밤새고 일한 후엔 힘들다는 것,
    몸살이 오면 '처'자는 척이 아니라 정말 잠들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
    젊은 사람도 1년 365일 매일 싱싱하진 않다는 것.
    더군다나 요즘 같은 세상엔 이 나라에서 젊은이로 산다는 게 어쩌면 노인들보다 더 힘들 수도 있다는 것…
    그걸 정말 몰라주는 어르신의 모습이었다.

    당해보고 나니 감히 노약자석에 앉았다 얻어맞을 뻔한 임산부였던 내 친구의 용기가 대단했지 싶었다.
    일반 좌석에서도 이 정도인데 녀석은 무슨 용기로 노약자석에 앉을 생각을 했던 걸까.

    "노약자석이 노인들만 위한 자리냐? 노인, 장애인, 임산부를 위한 자리야.
    난 내 자리에 앉은 거뿐이었다고! 그런데 어떻게 임산부의 배를 때리려할 수가 있느냐고!!"

    목청 높여 울분을 토하던 그 친구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영 떠나질 않았다.

    어르신들, 앞에 앉은 젊은 사람들이 모두 일부러 모른 척 하진 않을 겁니다.
    그들에게도 나름 사정이 있을 테니 정 힘드시면 '젊은이, 내가 좀 힘든데 자리 좀 양보해주겠나?'라고 말씀 하세요.
    우리나라 젊은이들, 노인공경 만큼은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이들이니 웃으며 양보할겁니다.

    ........................................................................................................................................................................



    새삼스럽게 옛날 글을 다시 끌어왔습니다.
    최근에 많이 느끼고 고민이 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지요.

    아내가 임신 8개월차
    흔히 말하는 노약자(임산부 포함이겠지요)의 범주에 들어가다 보니 그런 고민들을 하게 되네요.


    무엇인고 하니...
    지하철을 탈 때 웬지 모르게 어디로 타야 하냐? 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지하철에는 각 칸의 앞뒤로 노약자 보호석이 있는데,
    그럼 노약자는 그곳에만 타야 하는가?
    만약 노인과 장애인, 임산부가 중간의 ... 일명 순결한 일반인의 자리에 가면,
    ‘왜 보호석에 안가고 이 자리에 와서 고민을 하게 만드냐?’ 라는 생각이 읽히게 됩니다.
    이게 저의 소심함에 따른 생각의 부풀림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는 혹시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아닐까요?
    보호석을 만들었으니 그쪽은 노약자 자리, 이곳은 우리들 자리!

    ..................................................................................................................................................

    이진경님의 ‘불온한 것들의 존재론’이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폐를 끼치는 것, 그것은 남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폐를 끼치는 자들에 대한 비난이 등장한다.
    버스에 장애자들이 타고 내리는 것은 그 버스에 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장애자가 폐를 끼치는 자임을 확인하게 한다.

    (중략)

    내가 존재하는 것, 그것은 내가 존재하는 데 필요한 것을 제공해준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이고,
    내가 그 누군가에게 폐를 끼친 덕일 것이다.
    살아서 활동하는 것은, 존재하는 것 자체로 항상-이미 다른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기 때문이고,
    다른 누군가에게 폐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나도, 그들도 모두 ‘남에게 폐를 끼치는 자’고, 따라서 장애자인 것이다.
    ..................................................................................................................................................

    그런데 왜 우리는 우리 모두 항상 남에게 폐를 끼치고 살지만 그런 인식을 못할까요?
    책에서는 그 이유를, 바로 댓가를 지불했기 때문이라고 정의합니다.

    버스비를 탈 때 버스비를 내고
    음식점에 가서 식대를 내고
    물건을 살 때 비용을 치르고....

    마찬가지로, 우리는 노약자 보호석을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위안을 삼고
    거기가 아닌 자리는 우리의 자리이고,
    노약자가 그 자리로 오면 우리의 자리가 침범 당하는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겁니다.

    최소한의 보호 장치가
    오히려 노약자를 폐를 끼치는 존재로 더 부각시켜 주고 입지를 약화시키는 구실을 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합니다.


    물론 위의 글 ‘지하철에서 '못 배워 먹은 년'이 되다’ 속 노인분과 같이
    나이듬이 절대 생각의 원숙함과 마음의 배려와 비례하지 않은 경우가 있지만,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듯
    일반화할 상황은 아니라고 보여집니다.
    그냥 하나의 ‘돌출’인 것이겠지요.


    이런 하나하나에
    예를 들면 위의 글 어떤 분의 댓글과 같이, 즉
    .......................................................................................
    나이 먹었다고
    결코 잘난 것 아니다

    직설적으로
    잉여인간
    즉,
    사회적으로
    효용가치 없는 존재이다.
    .......................................................................................
    라고 한다면
    이 세상 폐 끼치는 자 모두는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겠지요.
    이는 곧
    정상인 자, 가진 자, 힘있는 자의 논리에 구속되어
    끝도 없고 끊임 없는 먹이사슬에 우리를 옭매이는 사고 아닐까요?

    또한 진정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큰 피해를 주는 ... 그런 폐를 끼치는 사람들!은
    또 그렇게 당당하지 않던가요?


    사회적인 약자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보호장치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가진자 온전한 자의 시혜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런 시각속에 우리를 옭매이는 정책이라면,
    그런 혜택?을 받는 사람이 스스로를 비참하게 느끼는 제도라면,
    노약자 보호석은 차라리 없느니만도 못한, 폐를 은폐하는 돈과 같은 존재일 뿐이겠지요.

    그러므로
    보호석이 있건 없건 제도가 있건 없건 관계없이 약자를 배려하는 작은 실천의 미가
    주는 사람은 불편을 받아들여야 하는 피해의식 없이
    받는 사람도 구걸받는 것 같은 자괴감을 가지지 않는
    자연의 한 부분과 같은 인간이 살아가는 자연스러움이 아니겠는지요.


    너나 잘하세요~ 라는 말 반사를 받지 않기 위해 나 스스로 노력해야 함은 당연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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