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흰둥이
제품명 : Takahashi 뮤론-210 8인치 카세그레인 반사 망원경
F=2415mm, F/11.5, D=210mm
광학적 특성 : Dall-Kirkham, 행성 관측에 용이하게 설계됨
신체적 특징 : 경통 맨 앞 아랫쪽에 긁힌 자국이 있음
1996년 여름, 대학 1학년 첫 여름방학..
타는듯한 여름날에 저는 부산 삼성자동차 공장 건설현장에 있었습니다
알루미늄 배관 파이프를 길이 맞춰 자르고 야마를 내고
트레이도 올리고 아시바 타고 다니면서 작업하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가 현장소장으로 계시던 현장에서 두달동안 노가다 알바를 뛰었는데..
땀과 기름에 절은 차림으로 가끔 현장사무실에 들어가면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커피 마시면서 설계도를 보며 회의하고 계시던 아버지가
어찌나 높고 위대해 보이던지 ㅋ
집에서 생전 손가락도 까딱 안하던 아들이 생고생하는게 안쓰러웠던지
그 망원경, 얼만지 그냥 사주겠다고 하시는걸 마다하고
현장 아저씨들한테 돈독이 올랐다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들으며
매일 야간작업 한대가리씩 찍고 악착같이 돈을 만들어서
96년 8월말에 천문우주기획에서 오랜 소원이었던 망원경을 구입했습니다
그때 제게 망원경을 팔았던 분이 당시 김모지현 과장님이셨는데..
정작 김모 과장님은 기억을 못하시더군요.. ㅎㅎ
망원경을 사고 며칠만에 겨우 별 찾는법을 터득하여
서울 우리집 마당에 망원경을 펼쳐놓고 목성을 보는데..
GP가대를 아무리 단단히 고정시켜도 목성이 시야에서 계속 흐르더군요
김모지현 과장님께 가대 불량이라고 전화를 드리니 한마디로 명쾌하게 답을 주시더군요
"지금 지구의 자전을 몸소 체험하고 계신 겁니다 ^^"
이 멘트는 그 뒤로도 십몇년간 제가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ㅎㅎ
우리집 마당에서 4시간만에 찾아본 고리성운의 신비함.
양손에 망원경을 들고 입으로 후레쉬를 물고 혼자 치악산 폐교를 찾으러 다녔던 객기.
장평 재산재에서 6822 찾느라 공력을 소진하고 영하의 자갈밭에 누워 졸던 기억.
태기산에서 베일의 흔적을 찾고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던 일.
99년 말년휴가 나와서 마지막 남은 메시에를 모두 보았을 때의 기쁨..
만 7년간 나와 함께하던 흰둥이는 병화형님이 18인치 잠부토로 구경을 키우시면서
형님이 기존에 가지고 계시던 15인치와 현금을 얹은 맞트레이드로 내 손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한동안은 아스트로마트 중고 위탁판매 게시판에서 사진이나마 볼 수 있었는데..
팔렸는지 게시물이 사라진 후 아직까지 생사 확인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ㅋ
새 주인은 나보다 더 열심히 흰둥이에게 별빛을 구경시켜줘야 할텐데..
최소한 창고에, 베란다에 처박혀 있지만 않았으면.
이 망원경의 원래 특기인 행성 관측에 뜻이 있는 분이 사용했으면 좋겠는데...
행성관측 전용 망원경을 들고 7년간 정작 행성은 단 한번도 제대로 봐준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ㅎㅎ
가끔 뮤론 얘기가 들릴 때마다 흰둥이 생각이 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창고에 처박혀 있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나보다 훨씬 열정적이고 시간 많은 주인 품에서 마음껏 별빛을 받으며 살았으면…
P.S 찾아보니 그 때 썼던 망원경 구입기가 있군요.. 간만에 보니 재미있네요.. ㅎㅎ;;
http://nightwid.egloos.com/829942
Nightwid 無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