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욕심(5-마지막회) 하늘이 맑아서요


일을 끝도 없이 벌려놓고 수습하느라 아둥바둥 하는 것은 내 평생의 불치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020년이 시작할때 꼭 하겠다고 적어놓은 “별볼일”들 중에 제대로 끝을 맺은 것이 별로 없다

뭉개고 못하고 있던 일들에 마음이 아파서 1년내내 애써 외면하고 있다가

12월 31일 밤 마지막 달이 뜬 것을 보고 번쩍 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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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바빠도 우선 그림부터 한 장 남기고…

The last moonrise of 2020 31 December 2020.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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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소파 앞에 서서 유리창과 정원 펜스 너머로 보이는 달을 그렸다

초조한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달은 맑고 고요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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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그림을 그리고 오클랜드 스카이타워의 새해 불꽃놀이 중계를 보며

2020년 계획을 다시 들추어 보았다

“두번째 책 출간”

“홈페이지 만들기”

“대마젤란 스케치 완성”

“Cloudy Nights에서 놀기”

어느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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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태양이 떠올랐다

듣던대로 태양이 이제 일을 좀 하나보다

여기저기 볼거리가 많이 생겼다

New Sun if the new resolution 2 January 2021.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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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생각만 하던 일들을 좀 더 해봐야겠다

신년이 돌아오면 의식처럼 만드는 연간 계획을 또다시 세웠다

작년에 못했던 것들을 제대로 하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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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물 수준의 기억력을 가진터라

올해 세운 계획을 까먹기 전에 (또는 애써 외면하기 전에)

별보기의 즐거움을 출간했던 출판사에 연락했다

올해는 책 두 권을 같이 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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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는 메시에 관측에 대한 책.

2016년 한국을 떠나기 전에 이미 출판사와 컨셉을 잡아 놓았는데

아직도 그냥 공상 수준으로 머물러 있어서

무작정 원고 시안 몇 페이지를 만들어서 출판사에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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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는 “***에게 가장 물어보고 싶은 질문 33”의 별쟁이편.

(“천문학자에게 가장 물어보고 싶은 질문 33”은 저녁바람 님이 집필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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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원하는 것은 일반 대중에게 읽힐 수 있는 “33가지 질문” 시리즈겠지만

나는 물론 별쟁이들이 들고 다닐 책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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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을 같이 한다면 출판사도 만족하고 나도 재미를 유지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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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집에서 컴퓨터 앞에서 별일을 하고 있다보니

어느새 또 달이 기울었다

근데 주말 예보가 좋지 않다

금요일이 좋을것 같은데.. 이걸 어떡하나

금요일 일하고 배터리 방전된 채로 관측지에 가면 또 뻔히 잠만 자다 올텐데..

금요일에 별을 보려면 대낮에 침대에 누워서 자고 가야 한다

​

목요일 오후, 미친척 회사에 금요일 오후 반차를 신청했다

“왜?”

“하늘이 맑아서요”

중요한 업무가 많은데..

더 중요한 일을 해야지..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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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오전,

예보가 바뀌어서 토요일도 맑아질 것 같다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금요일 오후 반차를 취소했다

“왜?”

“내일도 맑아서요”

하늘이 나를 도와줄 때도 있네..

​

토요일, 낮에 억지로 침대에 누워 몇시간 눈을 붙이고

저녁을 먹고

항상 가는 관측지로 길을 떠났다

​

비포장 시골길을 한참 달려서 관측지인 외딴 해변 주차장까지 가는 길에

사방으로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다. 밝을 때 오니 못보던 것들이 보인다

arai.JPG


여기 땅은 얼마일까?

적당한 외진 동네의 땅을 1에이커 정도(1200평) 사 놓고

집 짓는거 대신 40FT 컨테이너 박스 하나 가져다 놓으면

해변 관측지에서 낚시꾼이 헤드라이트를 밝히던 취객이 귀찮게 굴던

아무 상관이 없을텐데..

​

하늘이 넓게 보이는 집을 마련하고서도

욕심, 욕심은 끝이 없다

​

시리도록 맑은 하늘, 거대한 파도소리.

거대한 별들의 향연과 함께

물때가 좋은 것인지

밤새도록 다양한 인종의 낚시꾼과 서퍼들이 해변가 주차장을 들락거린다

아까 오는 길에 봐 두었던 깡촌의 초원들이 눈 앞에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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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하던 일부터 계속 하자…

오늘은 대마젤란 12번째 대상, 마젤란 한복판의 자잘한 성단&성운 들이다

LMC the1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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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전에 스케치를 하다가 졸다가 완성을 하지 못했던 그 곳..

다른 지역에 비해 화려하고 돋보이는 아이가 딱히 없어서 빨리 끝날 줄 알았는데

“자잘한” 그 무언가가 너무 많아서

또다시 3시간을 더 갈아 넣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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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known Clusters, 검은 종이에 Isograph, 조강욱(2020-2021) ]

2000_NGC1918_Ori_210116.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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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와서 마무리를 하며 자잘한 아이들의 이름을 모두 찾아서 넣으려 하는데

내가 관측하고 표현한 대상 중 반 정도는 결국 이름조차 찾지 못했다

이름을 꼭 불러줘야 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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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신도, Skyview도, NSOG마저도 그 답을 찾아주진 못했다

Cloudy Nights의 고수들은 알려나..

그 형님들이 알기 어려운 남쪽 대상들이라 한수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남반구의 대상들은 북반구의 대상들보다 관측 기록이나 데이터가

현격하게 차이가 날 정도로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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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마무리를 하고 있자니 새벽 4시에도 낚시꾼 차가 몇 대 들어온다

헤드라이트 테러를 막아보고자 은폐 엄폐를 하고 있는데

한국말이 들린다

“우와 하늘봐 별이 쏟아진다 이것좀 봐봐!!”

한국 교민 낚시꾼인가보다

3초 후, 그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무자비한 헤드램프를 켜고

부산하게 무언가를 준비하고 해변으로 사라졌다

아까 그 땅 얼마나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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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들이 떠난 후, 다시 정신 차리고 다음 대상을 보고 있으려니

이내 날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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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밤 5시간을 그린것 치고는 꽤나 볼품이 없지만

대작을 만든 것처럼 그냥 기분이 좋다.

에타카리나 같은 인기 지역이야 수많은 사람이 보았겠지만

나보다 자세하게 이 동네를 살펴본 사람이 몇명이나 있을까?

2000_NGC1918_Ori_210116.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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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혼자만의 자아도취가

내가 끊임없이 관측을 추구할 수 있는 동력 중의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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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세운 벅찬 계획들로 허덕이고 있는 나를 보고

집에서 모시는 보스님이 한말씀 하셨다

욕심 좀 버리고 맘 편하게 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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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사모님

이것만 좀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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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 그저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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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ghtwid 無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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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김 김재곤 2021.02.21 09:33
어제 날씨가 좋아서 달이라도 하면서 현관에 장비 옮겨두고 너무 피곤해서,, 한잠.. 했더니, 새벽이네요
이제 밤새 작업하면 다음날은 제 몸이 내 것이 아닌 나이가 되었네요.

강욱씨의 열정에 존경의 박수와 부러움을 보냅니다.
조 조강욱 작성자 2021.02.23 07:47

다행히(?) 욕심은 아직도 많은데 몸과 시간과 실력이 안따라줍니다 ^^;;;

최윤호 2021.02.24 12:20
천문 샵 알바 말고 무슨일 하시나요? 일은 바쁘더라도 관측은 쉬엄쉬엄 하십시오.
조 조강욱 작성자 2021.02.25 10:46

망경샵 알바는 요즘 벌려놓은 일이 너무 많아서 요즘 안가고 재택으로 때우고 있음.. ㅎㅎ

본업은 한국식품 수입 유통회사에서 일하고 있지요  ^^

정 정기양 2021.02.25 06:39
북반구 누구보다 더 좋은 하늘과 여유로움을 겸비 했으니 마음만 편하게 가지면 될 것 같아요.
항상 응원합니다~~~
조 조강욱 작성자 2021.02.25 10:46

근데 항상 쫓기는 마음은 한국에서나 여기서나 별로 달라지지 않은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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