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축 마운트 돕소니언 제작기 ②
기존 12인치 돕에 제2 로커박스를 붙이다
멜 바텔스의 3축 돕소니언은 처음부터 3축을 전제로 설계한 망원경입니다. 두 개의 경량 로커박스를 서로 직각 방향으로 겹치면서도 전체 높이를 매우 낮게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이미 서브로 사용 중인 12인치 F/5 트러스 돕소니언이 있습니다. 산청 별아띠 천문대의 김도현 대장님 설계로 공동 제작한 모델인데 제가 약간 개조한 트러스 돕소니언입니다. 몸이 힘들 때 이걸 들고 나갑니다. 저는 새 망원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 망원경에 이 아이디어를 적용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방법을 조금 바꿨습니다. 기존 로커박스는 그대로 두고 그 아래에 제2 로커박스를 하나 더 만드는 것입니다. 기존 돕소니언을 크게 개조하지 않고 3축으로 만드는 방법입니다.
제2 로커박스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위에서부터, 경통 → 기존 로커박스(Alt①) → 제2 로커박스와 그라운드보드(Alt②+Az) → 바닥

기존 로커박스 아래에 좌우 방향으로 기울어지는 제2 로커박스를 넣었습니다. 제2고도축은 호 모양으로 깎은 나무 조각이 테프론 패드 위를 미끄러지는 구조입니다. 쉽게 생각하면 흔들의자와 같습니다. 그리고 기존 로커박스 아래에는 별도의 그라운드 보드를 붙여 기존 Az 회전도 그대로 가능하게 했습니다. 결국 기존 망원경은 거의 그대로인데 움직임만 Alt① + Az + Alt② 세 방향으로 늘어납니다.
핵심은 무게중심
이 구조를 만들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2고도축의 회전 중심입니다. 호형 베어링이 그리는 원의 중심이 곧 제2고도축의 회전 중심이 됩니다.
따라서 기본적인 관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호형 베어링의 반경 ≒ 망원경 전체 무게중심의 높이
회전 중심이 실제 무게중심보다 너무 아래에 있으면 망원경을 조금 기울였을 때 계속 넘어가려고 합니다. 반대로 회전 중심이 무게중심보다 너무 높으면 기울여 놓아도 계속 수평으로 돌아오려고 합니다. 둘이 일치하면 어느 정도 기울여 놓더라도 그 위치에 그대로 머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경통(OTA;Optical Tube Assembly)의 무게중심만 계산해서는 안 됩니다. 제2 로커박스 위에는 경통(OTA)뿐만 아니라 기존 로커박스 전체가 올라갑니다. 제 경우 기존 로커박스의 무게는 전체의 20%가 채 되지 않았지만 위치가 워낙 낮기 때문에 전체 무게중심을 약 100mm 가까이 끌어내렸습니다. 따라서 경통(OTA)만 가지고 계산했다면 상당히 틀린 답이 나옵니다.
반경 410mm, ±6°
제 망원경은 기존 로커박스까지 포함한 전체 어셈블리의 무게중심을 측정해보니 바닥에서 약 390mm였습니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호형 베어링의 반경도 약 390mm가 됩니다. 다만 저는 망원경이 스스로 넘어가는 것보다는 약간 수평으로 돌아오려는 쪽이 안전하다고 생각해서 반경을 조금 늘린 410mm로 제작했습니다. 이동범위 역시 바텔스의 ±7.5°보다 조금 보수적인 ±6°로 제한했습니다.
호형 베어링을 실제로 만들어보니 EQ 플랫폼에 사용하는 섹터와 상당히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반경이 410mm라 곡선도 매우 완만합니다. 이 조각 두 개를 앞뒤로 평행하게 설치하고 각각을 테프론 패드로 받쳤습니다. 베어링 상대면에는 호마이카 909-42를 붙였습니다. 그리고 가운데 부분은 의도한 각도(±6°) 이상 넘어가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돌기를 만들었습니다.
움직임
완성된 제2 로커박스 위에 기존 12인치 돕소니언을 올렸습니다. 낮은 고도에서는 평소처럼 사용하면 됩니다. 천정 부근으로 올라가면 기존처럼 망원경 전체를 끌어안고 방위각 방향으로 돌리는 대신, 경통을 좌우로 밀어 제2고도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6°라는 각도는 숫자로 보면 작아 보이지만 천정 부근에서는 충분히 유용합니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것은 천정 부근에서 망원경을 움직이는 감각 자체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돕소니언에서는 천정으로 갈수록 손으로 미는 방향과 실제 망원경이 움직여야 하는 방향이 어긋나는 느낌이 강해졌었지요. 제3축이 있으면 이 구간에서 경통을 좌우로 기울이는 또 하나의 선택지가 생깁니다. 바텔스가 왜 굳이 고도축 하나를 더 만들었는지 실제로 만들어보면 이해가 됩니다.

의외의 난관, 마찰
구조 자체보다 의외로 애를 먹은 것은 마찰 조정이었습니다. 호형 베어링은 테프론 패드 위를 미끄러집니다. 패드를 작게 하면 움직임이 가벼워지고 크게 하면 무거워집니다. 따라서 실제 망원경을 올려놓고 손으로 움직여 보면서 패드 크기를 조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호마이카와 테프론 조합을 사용해도 수평축과 제2고도축의 느낌은 상당히 달랐습니다. 제2고도축은 수평축보다 움직임을 가볍게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움직임이 중력방향(수직방향)과 겹쳐서 무겁게 움직이는 거였죠. 12인치에서는 이 정도로 타협이 되지만, 더 높은 구경에서는 아마도 상당히 움직임이 둔해질 거라 생각됩니다.
이때 호마이카 표면 마찰이 좀 있는 제품에서는 처음 움직일 때 힘을 주어야 움직이는 스틱션(stiction)이 생길 수 있습니다. 스틱션이 있으면 처음에 힘을 주다보니 갑자기 움직이면서 과도한 움직임으로 넘어가게 되지요. 돕소니언에서 가장 안좋은 움직임 중 하나입니다. 결국 호마이카 종류를 바꿔가며 시험했고, 현재는 호마이카 909-42에서 안착하였습니다.
여담으로, 마찰이 너무 크거나 스틱션이 생기면 레더왁스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제가 옵세션 망원경(Obsession Telescopes) 제작자인 Dave Kriege에게 질의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돌아온 답변이었습니다. 레더왁스를 얇게 여러 번 바른 뒤 남은 왁스를 깨끗하게 닦아내면 됩니다. 미끌미끌한 느낌이 남습니다.
멜 바텔스의 마찰조절 아이디어
여기까지 만들고 나서 바텔스의 다른 대구경 망원경 제작기를 다시 살펴보다가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모든 하중을 테프론 패드가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바텔스는 베어링 지지부를 테프론뿐 아니라 나일론이나 볼베어링으로 교환할 수 있도록 만들고, 일부 지지점에는 테프론 패드를, 일부에는 볼베어링을 사용하는 방법을 시험했습니다.
예를 들어 네 개의 접촉점을 모두 테프론 패드로 만드는 대신, 테프론패드 2개 + 볼베어링 2개 또는, 테프론패드 1개 + 볼베어링 3개처럼 만드는 것입니다. 이 방식이 흥미로운 이유는 하중 지지와 마찰 조절을 어느 정도 분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볼베어링은 일부 하중을 받아 전체적인 움직임을 가볍게 하고, 남아 있는 PTFE는 적당한 마찰을 남깁니다. 즉 볼베어링만 사용하는 것과도 다르고, 테프론 패드만 사용하는 것과도 다릅니다.

<출처: https://www.bbastrodesigns.com/>
물론, 현재 수평축은 호마이카 909-42 + 테프론 패드만으로 이미 만족스러운 움직임을 얻고 있기 때문에 바꿀 생각이 없습니다만, 더 무거운 돕소니언을 계획하고 있다면 고려해 볼만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부수적으로 생긴 장점
제2 로커박스를 추가하면서 예상하지 않았던 장점도 하나 생겼습니다. 제 12인치는 F/5라 접안부가 낮은 편이라 원래부터 높이를 올려주는 하판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2 로커박스를 추가하자 망원경 전체가 약 6~8cm 올라갔습니다. 보통 망원경의 높이가 올라가는 것은 단점이지만 제 경우에는 반대였습니다. 천정 관측 때 접안부 높이가 오히려 편해졌습니다.
마치며
돕소니언은 John Dobson 이래 수많은 개량을 거쳐왔지만 천정 부근이라는 작은 약점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멜 바텔스의 방법은 이 문제를 더 정교한 방위각 구동으로 해결한 것이 아니라 움직일 수 있는 방향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바텔스의 구조를 그대로 적용하지 않고 이미 가지고 있던 12인치 돕소니언 아래에 제2 로커박스를 추가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덕분에 기존 망원경을 크게 개조하지 않고도 Alt①-Az-Alt② 세 방향으로 움직이는 돕소니언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직접 만들어보니 가장 중요한 것은 복잡한 기계장치가 아니었습니다. 정확한 무게중심, 그에 맞는 호형 베어링의 반경, 그리고 손끝의 감각을 결정하는 마찰 조정이었습니다.
직접 만들고, 관측해보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다시 고쳐보는 것. 이런 것이 자작 망원경의 재미가 아닐까 합니다.
글 잘 봤습니다.
네네~ 돕소니언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인물이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