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체 스케치/사진 ~☆+

  • [M17] 많이 보기 vs 잘 보기 [스케치]
  • 조회 수: 9406, 2016-11-27 11:33:06(2016-09-14)


  • 천체 스케치를 주제로 이렇게 별 대책 없는 하루살이 칼럼을

     

    메시에 110편 완주를 목표로 하루하루 써나가고 있지만

     

    2009년까지만 해도 천체 스케치는

     

    그저 하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막상 하려니 엄두가 나지 않는그런 일이었다

     

    매일 빼먹지 않고 어학 공부를 하면 언젠가는 귀가 뚫리고 입이 트인다는 것을 모두 알지만

     

    그냥 그래 맞는 얘기지하고 할 생각을 잘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내가 가장 기뻤던 이유는 더 이상 미술을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그림에 소질도 없고 관심도 없었으니까)

     

    별나라 선배들께 스케치는 안시관측의 왕도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정작 그 형님들도 스케치는 잘 하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기 싫던 나도, 스케치가 아니더라도 할 일은 많을 거라고 스스로 합리화하며

     

    긴 시간을 보냈다 (그렇다고 놀지는 않았다)

     

     

     

    그러다 20095월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평생 보지 않던 달을 보다 보니

     

    대체 이 복잡한 구조를 어떻게 관측기를 쓰나..

     

    (Theophilus 크레이터)

    theo사진.jpg

     


    몇 장을 글을 써야 구덩이 하나를 표현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림 그리는 것보다 글을 쓰는 게 더 엄두가 나질 않았다

     

     

    마침 아파트 1층 현관 광고판에 붙어 있던 미술 과외 합니다전화번호에 연락하여

     

    당장 그 주부터 우리 집에서 반년동안 매주 토요일마다 몇 시간씩 재료 쓰는 법을 배웠다

     

     

    흰 종이, 검은 종이, 샤프, 파스텔, 펜촉, 찰필, 지우개..

     

    (Theophilus 습작 - 흰 종이에 샤프, 조강욱)

    theo그림.jpg

     

     

    고등학교때 진절머리 나게 싫어했던 미술을 스스로 간절하게 배우게 되다니.

     

    참으로 인생이란 알 수 없는 것인가 보다

     

     

    어설픈 솜씨로 달과 NGC 몇 개를 그려본 후로,

     

    맑은 여름밤의 벗고개에서 처음 마주한 메시에 대상이 17번이었다

     

     

    그동안의 나는 실적 지상주의가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사람이라,

     

    관측지에서 무조건 많이 보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알고 있었다

     

    무조건 새로운 대상들을 최대한 많이 찾아보고

     

    오늘은 은하 40개 성단 20개 봤어이런 것으로 뿌듯해 하는 것 말이다

     

    (뭐가 뭐였는지 하나도 기억도 못하면서)

     

     

    너무나 익숙한 밝은 발광성운인 M17이지만

     

    그림을 그리려니 쉽지 않았다

     

    어설픈 솜씨로 처음 시도한 메시에 스케치가 복잡한 성운이었으니 잘 될 리가 없지..

     

     

    하지만 스케치의 1차 목적은 그저 멋있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그림을 그리며 강제로 오랫동안 대상을 보게 되면

     

    그 대상을 이전보단 훨씬 자세히 볼 수 있게 된다.

     

    (자세히 볼 생각이 있던 말던) 나의 의지와는 별로 상관 없이 말이다

     

    그림을 잘 그리던 못 그리던 스케치를 시도하며

     

    1차 목적은 자동으로 달성하게 되는 것.

     

     

    15년을 익숙하게 보던 대상인데, 한 시간을 성운의 모양을 잡고 있으니

     

    (그림을 그리면 상대성 이론이 적용되는지 시간이 몇 배로 빨리 간다)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또는 볼 생각도 하지 않았던) 구조들이

     

    양파 껍질 벗기듯 하나씩 떠오른다

     

    (M17 구조 설명)

    M17_des.jpg

     

     

    검은 호수에 우아하게 떠 있는 백조 한 마리..

     

    그 목에 감긴 진주 목걸이

     

    몸통 안의 bright patch

     

    그 머리 위의 밝은 별과 성운기

     

    주변시로 보이는 백조 머리 뒤의 후광 (마치 예수의 성화를 생각나게 한다)

     

    그리고 안시로는 절대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꼬리 뒤의 길고 얇은 호 모양의 성운까지.

     

     

    [ M17, 백조 목에 진주 목걸이 - 양평 벗고개에서 조강욱 (2009) ]

    M17_rev.jpg

     

     

     

    집에 오는 길.

     

    어둠이 내린 345번 지방도를 달리며..

     

    지금까지 십수년간 천체관측을 하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기분 좋은 포만감에 그냥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하룻밤에 50개를 봐도, 100개를 봐도 느낄 수 없었던 만족감.

     

    오늘은 처음으로 진짜 별 좀 본 것 같다

     

     

    관측지에서 고작 성운 하나 보고서도 기분이 좋아서

     

    차창을 열고 노래를 부르며 집에 돌아오면서

     

    메시에 대상을 하나씩 모두 그려 보아야겠다고 계획하게 되었다

     

    (이렇게 오래 걸리리라곤 생각도 못 했지만)

     

     

    망원경을 만진 뒤로 14년간 강박관념으로 가지고 있던

     

    하루에 한 개 이상 무조건 새로운 대상 찾아보기

     

    그날부로 갑작스런 이별을 맞게 되었다


    아무 미련 없이

     

     

     

     

                                                 Nightwid 無雲



댓글 0

위지윅 사용
  조회  등록일 
thumbnail
  • 이동근 조회 수: 16
  • 스케치
  • 예순세 번째 예순네 번째 스케치(M65, M66) 3월 14일, 평일이지만 아마도 3월의 마지막 관측이 되지 않을까 하여 몇 분과 마침 시간이 맞아 홍천으로 향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데 조금 아쉽다. 하지만 10인치 돕으로, 마음 비우고 그리는 메시에 스케치는 그리 문...
2024-03-25 22:29:21 / 2024-03-25
thumbnail
2024-03-23 15:04:12 / 2024-03-14
thumbnail
2024-03-23 15:08:35 / 2024-02-22
thumbnail
  • 이동근 조회 수: 163
  • 스케치
  • 지난번에 이어 이번에도 카시오페이아 근처의 천체를 스케치하게 되었다. 내가 다닌 관측지에서 가장 잘 보이는 방향 및 고도였던 것도 같다. 이번 스케치는 세 번의 시도 끝에 완성되었지만 만족하지 못한 결과를 보여 준다. 관측지의 하늘과 집중의 문제라 생각해 본다...
2024-03-23 15:10:43 Joseph / 2024-01-28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144
  • 스케치
  • 늦은 밤, 내 방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니 구름 사이로 보름달이 보인다. 그리고 오렌지빛으로 빛나는 달무리를 보니 간만에 달그림이 그리고 싶어졌다 ​ 방에 불을 모두 끄고, 창문 앞에 앉아 낮은 책상 위에 태블릿을 올려놓고 달을 화면 안에 담아보았다 ​ 달과 하늘과...
2023-12-02 19:09:52 / 2023-12-02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369
  • 스케치
  • 개기일식에 태양 망원경을 가져갈까 말까 마지막까지 망설였다 이 무거운 걸 2시간 쓰겠다고 그 멀리까지? 그러나 그 2시간은 내가 태양망경을 들인 이후 가장 가치있는 시간이었다. ​ 일식중 내내 최대한의 정성으로 태블릿으로 태양을 그리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2023-07-11 05:16:54 / 2023-05-14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779
  • 스케치
  • 태양 스케치는 생각보다 어려운 점이 많지만, 그 중 하나는 보여야 할 구조들이 표면에 낮고 넓게 흩어져 있다는 것이다 ​ 눈으로 한 번 휙 돌아보는 것은 별 문제가 없겠지만 종이 한 장에, 또는 한 화면에 그림을 남기려면 큰 문제가 된다 그래서 보통은 각각의 무리들...
2022-08-21 20:56:54 / 2022-08-21
thumbnail
  • 조강욱 조회 수: 982
  • 스케치
  • 집 뒷마당에서 20분에 한장씩 월식 달을 그렸다. 3시간동안 변화되는 모습을 하나씩 그리려니 무지무지 바쁘고 지쳤는데..  쌩노가다의 결과물을 보니 3시간 그림 + 5시간 이어붙이기 삽질을 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어 보인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일식도 아니고 월식...
2021-11-23 11:03:55 / 2021-11-22
thumbnail
  • 김승희 조회 수: 589
  • 스케치
  • 뒤져보니 9행성 기록이 있어서 모아봅니다. 업데이트가 필요한 놈들도 있네요... 다음 도장깨기는 "Alpha Centauri C" ☆수성 2020.11 화천 다음엔 스케치로... ☆금성 2017.05 평창 새벽의 샛별 ☆지구 2020.03 강화 별보러 갔다 구름보고 온 날 ☆화성 2018.10 홍천 V Cent...
2021-09-15 07:13:59 조강욱 / 2021-09-14
thumbnail
  • 천세환 조회 수: 589
  • 스케치
  •  안녕하세요? 천세환입니다.   얼마전 우연한 기회로 다카하시 TSA120을 중고로 구입했고, 이 무거운 경통을 안정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삼각대와 경위대를 추가로 구입... ;;;;  뭘 할지 고민하던 중, 최윤호 님의 사냥개자리 이중성 관측기 http://www.nightflight.or.k...
2021-03-12 22:28:59 최윤호 / 2021-03-10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