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측기 & 관측제안 ~☆+

  • 별아띠로 가는 길
  • 박한규
    조회 수: 7197, 2011-01-10 21:38:29(2011-01-10)
  • 고양이는 네 발을 몸으로 눌러 감추고 볕에 나앉아 소리없이 가랑가랑 거리는 계절
    공연히 사람만이 들떠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두달여 별을 보지 못하니 발걸음을 옮기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이 더해간다.
    나도 모르게 매사에 심사가 틀어져 있었는지 아내가 얼른 다녀오라고 등 떠밀어 준다.
    겨울, 아침 바람이 상쾌하다.

    속인이 찾아 가기에 어렵지 않았다. 다행이다. 수도승이라도 살고 있다면 낭패가 아닌가.
    세속의 영역에 자리잡은 반속의 세상. 마음의 거리가 한결 줄었다.
    항아리처럼 우묵하니 자리잡은 모양이 재미있다. 밖에서는 마을이 있다고 생각이 들리 없다.
    세상에 유명한 간디학교를 마을 어귀까지 놀러온 사람들도 어디 있는지 알 지 못한다니...속인 하나가 그곳을 간다.

    묻지 않아도 누구나 알만한 중년 여인이 마치 오랜 지인을 맞듯이 반겨준다. 거리낌이 없다.
    곧이어 안내된 방에는 김남희님과 질그릇처럼 투박한 바깥주인이 그럭저럭 반겨준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익숙한듯이 같이 앉아 곶감포장하는 일을 돕는다. 곶감이 아주 맛나다.
    가는 길에 좀 가져가서 병원 식구들과 같이 먹어야 겠다.

    이민정님이 오시고 모두 들국화차를 마신다.
    쌉쌀한 맛을 빼니 먹기가 한결 부드럽다. 연거푸 대여섯 잔을 비웠다.
    드르륵. 문을 열고 별아띠님께서 "FQR 구하지요?" 미처 대답을 하기도 전에 자작 FQR을 쑥 내민다.
    까맣게 아노다이징 되어있는 놈이 어찌나 매끄럽고 예쁜지 다까네 물건은 이제 줘도 갖지 않을 판이다. 보고 또 보고...
    (득템! 전투력 상승! 어디가나 쉽게 하나씩 득템을 잘하니 이제 내 별호는 '득물공자'로 해야겠다)

    짧은 오후 햇살이 부지런을 떨자 사람들이 삼삼오오 도착한다.
    정기양님.
    가구를 연상시키는 고급스런 Teeter 돕을 올리고 장착한다. 처음으로 EQ platform을 본다.
    10x60 스텔라뷰 파인더와 필터를 갈아끼는 번거로움을 없앤 장치따위가 이채롭다.
    Vinoviewer도 처음 본다. 달의 이글거림만 보아도 단안보다는 쌍안의 입체감을 실감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무게만 아니라면 하나 갖고 싶다. (어디 누가 또 그냥 안주나?)
    김지현님.
    미러를 분리해서 이동성을 높였다. 관측에 있어 또 다른 진일보하실 것으로 기대된다.
    두분은 공림사에 들러 지난밤 꿀맛같은 관측을 하고 온단다. 어쩐지 얼굴 전체에 웃음과 즐거움이 가득하다.
    강창호님.
    부럽고 샘나는 분이다. 아들과 같이 관측을 다니신다. 와~우~
    외부 도움없이 자작하신 돕과 EQ platform을 조립한다. 모양새가 아주 좋다. 이동성도 좋아 보인다.
    말씀을 듣자하니 대충 말만 몇마디 들으면 물건이 뚝딱 나오는 재주를 지니신 분이다. 와~우~

    이준오님이 장을 보아오자 또 다른 활기가 별아띠를 감싼다.
    상추와 콩나물을 씻고 안에서는 저녁을 하고 반찬을 준비하고
    밖에서는 바베큐 불판에 돼지 삼겹살을 초벌구이한다. 앗~싸........맵다. 연기도 주인이 있는지 옮기는 자리를 따라 저도 옮아온다.
    목소리가 시원하고 전라도 사투리가 일품으로 넘어가는 준오씨. 아들까지 잘 생겼다. 그러고 보니 이사람, 개인 천문대도 있잖아?
    금상첨화라고 아내까지 메시에 목록을 모두 찾을 수 있단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각자 인사하는 자리가 열렸다.
    이십년이 넘는 경력을 가진 사람도 있다. 환갑을 넘는 초로의 중늙은이도 있다. 노가다도 있다. 대학교수도 있다.
    부자도 있고 범인도 있다. 키가 작아 고민인 사람도 있고 자연대로 못살아 안달하다 기어코 산으로 들어온 사람도 있다.
    여자도 있다. 예쁜 아이들도 있다. 아비와 그 아들도 있다. 음악하는 사람도 있고 그림쟁이도 놀러왔다. 프로그래머가 있고
    옷장사도 있다. 이제 갖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 모두가 있다.
    모두가 있으나 모두가 다르지 않고 모두가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서두르지 않는다. 겨울 밤은 길다. 네 말을 다 들어도 시간은 남는다. 내 말을 다해도 시간이 남는다. 남아도는 시간에는 즐거움을 조금 채워넣는다. 겨울밤이 익어간다.

    오밤중이 되어 최형주 선생님께서 오신다. 오시더니 대뜸 고기반찬 찾으신다. 아무도 저어하지 않는다. 이 사람들은 가족이 되어가고 있구나. 너는 옷좀 더입어. 너는 왜 이제야 인사를 허냐. 쟤는 좀 징그런 사람이여.......
    새벽이 되어 사열하고 있는 대포들 검사에 나선다. 참 좋네,를 연발하시며 여기서 저기로 위에서 아래로 차근차근 채점하듯 살펴본다. 그리고 하나씩 문제점을 찾아준다. 그것도 저어하는 사람이 없다. 돕의 전투력을 올릴 수 있는 즐거움의 일환일 뿐이다.
    그리고는 날아오고 있는 나의 돕소니언도 살펴주시기로 약속을 한다.

    겨울새벽, 하늘에는 빠른 구름장이 흐르고 있다. 간간이 별들이 고개를 내밀지만 그저 파인더에만 머물 뿐 잡히지 않는다. 문지방을 오가는 번거로움이야 1초만이라도 별을 잡는다면 가벼운 일. 그러나 그마저 허락해 주지 않는 하늘이 야속하다. 머지않아 동이 틀 것이고 사람들 하나둘 자리를 잡는다. 나도 그틈에 끼여 M35를 1초 보고 자리에 눕는다.
    머얼리로 애기별똥별 하나 스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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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얘기가 없으니 별얘기 쓸 것도 없고
    별 쓸 것도 없으니 별스런 얘기만 나오네
    별별 사람들이 별별 사연을 풀어내는
    별보다 빛나는 별아띠의 별밤.

    # 목감기로 고생했는데 완전 감쪽같이 없어졌다. 이 소식을 들으면 아내가 좋아할까? 싫어할까?

댓글 6

  • 박한규

    2011.01.10 21:45

    별아띠님, collimation 책자 좀 맡아 주세요.
    누군가 본다고 가져간 것 같은데 기억이 없습니다.
    다음에 가서 가져오겠습니다.
  • 김남희

    2011.01.10 21:56

    별 이상한 넘이 오셨군요.
    직업이 잘못됐다 판단되옵니다.ㅋㅋ
    글솜씨에 감동하며,댓글조차 두려운 맘이 듭니다.
  • 김경싟

    2011.01.10 22:00

    고기 굽느라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연기에 몸 옮겨다니고 타오르는 불에 불판 옮기고 옷에, 안경에 아마 기름기 가득 했을 것 같습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새벽에 김지현님과 관측기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다양한 관측기록 형태가 나와야하고, 또 그것을 그대로 인정해줘야 한다는...
    관측기록은 어떠어떠해야한다...라는 고정관점을 버려야 하지 않나 하는.
    물론 관측 대상 및 세부묘사에 대한 것은 가장 기본이고 그걸 무시하자는 것은 절대 아니지요.

    다양한 형태를 인정해서 관측기를 좀더 풍요롭게 하자는 점이었습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
    박한규님의 관측기는 그 멋진 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정기양

    2011.01.11 03:56

    처음 가 본 야간비행 신년관측회의 따스함이 그 전날 공림사의 영하 18도의 추위에
    꽁꽁 얼었던 몸과 마음을 따스하게 녹여주었습니다.
    우리를 재우고 먹이기 위해서 준비하시느라 너무 수고하신 김도현님, 들국화님과 이민정님,
    고기굽고 상추씻고 강의까지 하시느라 수고하신 이준오님,
    궂은 일을 도맡아 하신 이욱재님,
    주인장처럼 우리를 맞아주시고 배웅해 주신 김남희님,
    그리고 그날 모인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아... 또 언제 가보나...
  • 강창호

    2011.01.11 07:12

    신년 관측회 처음 찾아뵙는 자리에, 초보자의 쭈볐거리는 마음을 다독거려 주시기라도 하듯 모든분들께서 따뜻히 환영하여 주시며, 처음 뵙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도움의 말씀을 하여 주신데 대하여 거듭 감사 드립니다.
  • 김지현

    2011.01.11 18:36

    별아띠 하늘의 하얀 구름 솜이불 아래..

    별밤지기들이 모여 오손도손.. 하하호호..

    너와 내가 만나.. 우리 모두가 함께 하는 시간이었네요..

    고맙습니다..
위지윅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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