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측기 & 관측제안 ~☆+

  • 끝없는 욕심(5-마지막회) 하늘이 맑아서요
  • 조회 수: 1575, 2021-02-25 10:46:44(2021-02-20)

  • 일을 끝도 없이 벌려놓고 수습하느라 아둥바둥 하는 것은 내 평생의 불치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020년이 시작할때 꼭 하겠다고 적어놓은 “별볼일”들 중에 제대로 끝을 맺은 것이 별로 없다

    뭉개고 못하고 있던 일들에 마음이 아파서 1년내내 애써 외면하고 있다가

    12월 31일 밤 마지막 달이 뜬 것을 보고 번쩍 정신이 들었다

    아무리 바빠도 우선 그림부터 한 장 남기고…

    The last moonrise of 2020 31 December 2020.png

    거실 소파 앞에 서서 유리창과 정원 펜스 너머로 보이는 달을 그렸다

    초조한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달은 맑고 고요하기만 하다

    달 그림을 그리고 오클랜드 스카이타워의 새해 불꽃놀이 중계를 보며

    2020년 계획을 다시 들추어 보았다

    “두번째 책 출간”

    “홈페이지 만들기”

    “대마젤란 스케치 완성”

    “Cloudy Nights에서 놀기”

    어느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했다

    새해의 태양이 떠올랐다

    듣던대로 태양이 이제 일을 좀 하나보다

    여기저기 볼거리가 많이 생겼다

    New Sun if the new resolution 2 January 2021.png

    올해는 생각만 하던 일들을 좀 더 해봐야겠다

    신년이 돌아오면 의식처럼 만드는 연간 계획을 또다시 세웠다

    작년에 못했던 것들을 제대로 하는 것으로..

    수산물 수준의 기억력을 가진터라

    올해 세운 계획을 까먹기 전에 (또는 애써 외면하기 전에)

    별보기의 즐거움을 출간했던 출판사에 연락했다

    올해는 책 두 권을 같이 내겠다고

    첫번째는 메시에 관측에 대한 책.

    2016년 한국을 떠나기 전에 이미 출판사와 컨셉을 잡아 놓았는데

    아직도 그냥 공상 수준으로 머물러 있어서

    무작정 원고 시안 몇 페이지를 만들어서 출판사에 보냈다

    두번째는 “***에게 가장 물어보고 싶은 질문 33”의 별쟁이편.

    (“천문학자에게 가장 물어보고 싶은 질문 33”은 저녁바람 님이 집필하심)

    출판사에서 원하는 것은 일반 대중에게 읽힐 수 있는 “33가지 질문” 시리즈겠지만

    나는 물론 별쟁이들이 들고 다닐 책을 원한다

    두 권을 같이 한다면 출판사도 만족하고 나도 재미를 유지할 수 있겠지.

    퇴근하고 집에서 컴퓨터 앞에서 별일을 하고 있다보니

    어느새 또 달이 기울었다

    근데 주말 예보가 좋지 않다

    금요일이 좋을것 같은데.. 이걸 어떡하나

    금요일 일하고 배터리 방전된 채로 관측지에 가면 또 뻔히 잠만 자다 올텐데..

    금요일에 별을 보려면 대낮에 침대에 누워서 자고 가야 한다

    목요일 오후, 미친척 회사에 금요일 오후 반차를 신청했다

    “왜?”

    “하늘이 맑아서요”

    중요한 업무가 많은데..

    더 중요한 일을 해야지..

    마음이 무겁다

    금요일 오전,

    예보가 바뀌어서 토요일도 맑아질 것 같다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금요일 오후 반차를 취소했다

    “왜?”

    “내일도 맑아서요”

    하늘이 나를 도와줄 때도 있네..

    토요일, 낮에 억지로 침대에 누워 몇시간 눈을 붙이고

    저녁을 먹고

    항상 가는 관측지로 길을 떠났다

    비포장 시골길을 한참 달려서 관측지인 외딴 해변 주차장까지 가는 길에

    사방으로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다. 밝을 때 오니 못보던 것들이 보인다

    arai.JPG


    여기 땅은 얼마일까?

    적당한 외진 동네의 땅을 1에이커 정도(1200평) 사 놓고

    집 짓는거 대신 40FT 컨테이너 박스 하나 가져다 놓으면

    해변 관측지에서 낚시꾼이 헤드라이트를 밝히던 취객이 귀찮게 굴던

    아무 상관이 없을텐데..

    하늘이 넓게 보이는 집을 마련하고서도

    욕심, 욕심은 끝이 없다

    시리도록 맑은 하늘, 거대한 파도소리.

    거대한 별들의 향연과 함께

    물때가 좋은 것인지

    밤새도록 다양한 인종의 낚시꾼과 서퍼들이 해변가 주차장을 들락거린다

    아까 오는 길에 봐 두었던 깡촌의 초원들이 눈 앞에 어른거린다

    우선 하던 일부터 계속 하자…

    오늘은 대마젤란 12번째 대상, 마젤란 한복판의 자잘한 성단&성운 들이다

    LMC the12.JPG

    한달 전에 스케치를 하다가 졸다가 완성을 하지 못했던 그 곳..

    다른 지역에 비해 화려하고 돋보이는 아이가 딱히 없어서 빨리 끝날 줄 알았는데

    “자잘한” 그 무언가가 너무 많아서

    또다시 3시간을 더 갈아 넣어야 했다

    [ Unknown Clusters, 검은 종이에 Isograph, 조강욱(2020-2021) ]

    2000_NGC1918_Ori_210116.jpg

    집에 와서 마무리를 하며 자잘한 아이들의 이름을 모두 찾아서 넣으려 하는데

    내가 관측하고 표현한 대상 중 반 정도는 결국 이름조차 찾지 못했다

    이름을 꼭 불러줘야 하는데 말이다

    구글신도, Skyview도, NSOG마저도 그 답을 찾아주진 못했다

    Cloudy Nights의 고수들은 알려나..

    그 형님들이 알기 어려운 남쪽 대상들이라 한수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남반구의 대상들은 북반구의 대상들보다 관측 기록이나 데이터가

    현격하게 차이가 날 정도로 부족하다

    마지막 마무리를 하고 있자니 새벽 4시에도 낚시꾼 차가 몇 대 들어온다

    헤드라이트 테러를 막아보고자 은폐 엄폐를 하고 있는데

    한국말이 들린다

    “우와 하늘봐 별이 쏟아진다 이것좀 봐봐!!”

    한국 교민 낚시꾼인가보다

    3초 후, 그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무자비한 헤드램프를 켜고

    부산하게 무언가를 준비하고 해변으로 사라졌다

    아까 그 땅 얼마나 하려나

    테러리스트들이 떠난 후, 다시 정신 차리고 다음 대상을 보고 있으려니

    이내 날이 밝았다

    20210117_053729.jpg
    20210117_054639.jpg
    20210117_055545.jpg
    20210117_061449.jpg
    20210117_064759.jpg

    이틀밤 5시간을 그린것 치고는 꽤나 볼품이 없지만

    대작을 만든 것처럼 그냥 기분이 좋다.

    에타카리나 같은 인기 지역이야 수많은 사람이 보았겠지만

    나보다 자세하게 이 동네를 살펴본 사람이 몇명이나 있을까?

    2000_NGC1918_Ori_210116.jpg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혼자만의 자아도취가

    내가 끊임없이 관측을 추구할 수 있는 동력 중의 하나일 것이다

    스스로 세운 벅찬 계획들로 허덕이고 있는 나를 보고

    집에서 모시는 보스님이 한말씀 하셨다

    욕심 좀 버리고 맘 편하게 살라고

    네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사모님

    이것만 좀 하고요

    욕심, 그저 욕심이다.

    Nightwid 無雲

댓글 6

  • 김재곤

    2021.02.21 09:33

    어제 날씨가 좋아서 달이라도 하면서 현관에 장비 옮겨두고 너무 피곤해서,, 한잠.. 했더니, 새벽이네요
    이제 밤새 작업하면 다음날은 제 몸이 내 것이 아닌 나이가 되었네요.

    강욱씨의 열정에 존경의 박수와 부러움을 보냅니다.
  • 조강욱

    2021.02.23 07:47

    다행히(?) 욕심은 아직도 많은데 몸과 시간과 실력이 안따라줍니다 ^^;;;

  • 최윤호

    2021.02.24 12:20

    천문 샵 알바 말고 무슨일 하시나요? 일은 바쁘더라도 관측은 쉬엄쉬엄 하십시오.
  • 조강욱

    2021.02.25 10:46

    망경샵 알바는 요즘 벌려놓은 일이 너무 많아서 요즘 안가고 재택으로 때우고 있음.. ㅎㅎ

    본업은 한국식품 수입 유통회사에서 일하고 있지요  ^^

  • 정기양

    2021.02.25 06:39

    북반구 누구보다 더 좋은 하늘과 여유로움을 겸비 했으니 마음만 편하게 가지면 될 것 같아요.
    항상 응원합니다~~~
  • 조강욱

    2021.02.25 10:46

    근데 항상 쫓기는 마음은 한국에서나 여기서나 별로 달라지지 않은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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