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측기 & 관측제안 ~☆+

  • 우리가 토성에 대해 알고 있는 것
  • 조회 수: 2991, 2020-05-08 21:36:58(2020-05-04)

  • 토성이란 존재는 단지 공개관측회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국적을 불문하고 토성을 본 일반인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한국에서야 물론 다들 잘 아실테고..
    이곳 뉴질랜드에서도 공관 최고의 인기대상은 물론 달과 토성이다.

    달을 보고 나서의 반응이 보통 그 엄청난 디테일에 압도되는 모습이라면 
    토성을 보고서는 고리가 보인다는 그 자체 만으로도 신기하고 귀여워서 어쩔줄 모른다고 할까.

    여자들은 유치원생부터 할머니까지 토성을 보고 나서 하는 말은 신기할 정도로 한결같다
    “Oh My Goodness!”

    오히려 남자들의 반응이 더 다양한데, 
    이거 진짜냐고 되묻는 사람부터 “Amazing”, “Stunning”을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사람, 
    “F****** Cool”를 외치는 사람도 많다 (한국말로 하면 존멋.. 정도 될까?)

    반대로 관측을 나가서 토성을 보는 일은 거의 없다
    토성 고리 따위(?) 보는 것보다 암적응을 유지하는게 관측 효율에 훨씬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장비 철수하기 전에, 아직 남아있는 어두운 하늘에 대한 미련과
    암적응을 동시에 날려 버리기 위해 잠깐 봐주는 것은 차마 관측이라 부를 수 없을 것이다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한 뉴질랜드 전국의 Lock down(집 주변 외 전국민 이동 금지령)으로 
    아무데도 갈 수 없어진 요즘은
    별중독 금단증상을 해결하고자 뒷마당에 망원경을 펼쳐놓고 
    배가 고플 때마다 나가서 뭐라도 보고 있다
    3월31일 - 4월 1일은 화성과 토성이 망원경 한시야..는 아니고 바로 옆 시야를 스쳐 지나갔다
    원래 주인공은 최근 정처없이 새벽 하늘을 방황하고 있는 화성인데,

    토성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잘 보여서 
    생각지도 않게 토성을 이틀에 걸쳐서 새벽마다 열심히 보게 되었다

    [ Conjunction of Mars and Saturn, 갤럭시 노트 8 & 터치펜, 조강욱 (2020) ]
    500_Conjuncton of Mars and Saturn 1 April 2020.jpg


    세상에서 달그림만큼 어려운 것이 토성 고리 그림이다
    그래도 달은 디테일에서 조금 실수가 있다고 해도 애교로 봐줄 수 있겠지만 
    (그린 사람 말고는 아무도 모를 때도 많다)

    토성의 타원 고리는 조금만 비뚤게 그려도 미취학 아동도 단번에 찾아낼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스카이 사파리의 오늘자 토성 그림을 스케치 앱에 올려놓고 
    색칠 공부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 Surreal rings, 갤럭시 노트 8 & 터치펜, 조강욱 (2020) ]
    2000_Surreal rings of Saturn 1 April 2020.jpg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안정된 시상. 500배의 토성. 
    너무 잘 보이는 나머지
    보여야 할 구조는 모두 보이고
    이게 뭘까 하는 구조들까지도 보인다
    내가 본 것을 그대로 믿기가 확신이 서지 않지만 내 그림은 내가 본 그대로이다.

    - 확실히 맞는 것 : 카시니 간극, C링, 토성 본체의 줄무늬, 토성 본체가 고리에 드리운 그림자, 고리가 토성 본체에 드리운 그림자
    - 허상인지 실상인지 자신 없는 것 : 엔케 미니마, 토성 고리 위의 얼룩(Spokes)

    Surreal rings of Saturn 1 April 2020_description.JPG


    내 기준으로는, 이건 절대 엔케가 아닐것 같았다. 
    내가 알기로 그건 좀 더 A링의 가장자리에 있고.. 
    Hubble_Encke.jpg
    (출처: Sky & Telescope)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 말처럼 이걸 그저 디지털 이미징의 허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명확하고, 
    게다가 내 눈은 후처리가 필요 없는 아날로그다. 

    몇 년 전에 한승환님이 별하늘지기에 올린 글도 몇 번씩 다시 읽어보았다
    https://cafe.naver.com/skyguide/157304
    흠.. 아무리 봐도 알 듯 말 듯 흐릿하다. 엔케 미니마라는 이름의 정의도 불확실하고.. 

    또 한가지는 B ring 안쪽의 얼룩이다
    이른바 “Spokes”로 불리는 이 구조는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제임스 오메라가 최초 발견했다고 자랑(?)하던 그것인 것 같다
    깨알 자랑 영상은 아래 2007년작 “Seeing in the Dark” 다큐멘터리 참조.. 
    https://www.youtube.com/watch?v=yKDjSCx-8g8
    (위 영상의 20분 30초부터 보세요)

    오메라의 설명을 대충 요약하면.. 
    “예전부터 이 Spokes를 봐 왔지만 광학적인 착시라고 천문학자도 별쟁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어요
      근데 보이저 1호가 토성을 지나면서 찍은 사진에서 Spokes가 발견되어서 완전 짜릿했음”


    지구상의 망원경으로 찍은 사진에서 볼 수 없는 구조를 
    내가 뒷마당에서 고작 16인치 반사에 맨눈으로? 
    흠.. 보이는걸 어떡해


    여기저기 정보를 수소문해 보아도 딱히 “이게 이거야” 라고 설명해 주는 글은 찾기 어려웠다
    덕 중에 덕은 양덕이라고,
    천체관측 분야에서는 양덕 중에서도 미국 덕후가 최고일 것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전 세계의 중증 환자들이 모이는 메이저리그인 Cloudy Nights에 화두를 던져 놓으니 
    오래지 않아 답을 찾을 수 있었다


    1. Encke Gap
    Division 또는 Gap 두 가지가 혼용되어 쓰였으나, 
    링 사이의 간극이 아니라 A링 내부의 틈이므로 
    Gap으로 부르는 것으로 2008년에 IAU에 의해 공인되었다. 
    IAU가 이런 것까지 clarify를 해주는 곳인지 몰랐다

    엔케 간극은 1888년 James Edward Keeler라는 미국 천문학자가 
    릭 천문대의 36인치로 Encke Gap을 발견하고
    Keeler Gap으로 이름을 붙였다
    엔케 간극을 엔케가 아니라 이름도 무시무시한 Keeler가?
    모든 혼란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사실 독일의 천문학자 엔케가 1837년 발견한 건은 엔케 갭이 아니었다
    엔케가 본 것은 엔케가 아니라 엔케 미니마(Minima)였던 것이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

    토성 탐사선 카시니가 토성 위에서 찍은 사진을 보자 (지구상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각도로..)
    PIA23170-Saturn-Rings-IR-Map-20190613.jpg
    (출처 : APOD - NASA/JPL/SSI, Wikipedia)


    사진만 보면 더 헷갈린다. 설명을 달아보자
    Before1980.JPG

    위 사진에서 카시니와 킬러는 확실히 구분이 되지만 엔케는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이유는 엔케 간극이라 불리던 아이는 실제로는 고리 사이의 틈(Division)도, 
    고리 내부의 구멍(Gap)도 아니기 때문이다
    Johann Encke가 발견한 것은 그저 A ring에 위치한 어두운 명암 줄기였을 뿐이다.

    근데 문제는 그 명암줄기(Encke Minima)가 어떨때는 넓게 보이고 어떨때는 아주 좁게, 간극처럼 보이고
    또 어떨 때는 아예 사라진다는 것이다
    사진도 발명되기 전인 1837년에 엔케가 반경 325KM짜리 Encke Gap을 
    당시 수준의 망원경(9.6” 굴절)으로 육안으로 발견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미국의 별쟁이 David Gray 형님의 2002년 스케치를 보자.
    (고맙게도 그림 사용을 허락하시고 엔케와 관련된 혼란스러운 내용들을 내게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Snatching Saturn.jpg

    토성 고리의 각도가 지구 쪽으로 많이 기울어진 상황에서 여러 날에 걸쳐서 그 날의 토성을 그린 것인데,
    씨잉의 수준에 따라 Encke Minima가 어떻게 보이는지가 잘 표현되어 있다
    씨잉이 최고 수준일 때는 A Ring 중앙의 짙은 부분인 Encke Minima가 더 선명하게 보이고 
    A Ring 외곽의 Encke Gap마저 보일 때도 있지만
    시상(Seeing)이 떨어질수록 Encke Minima는 점점 흐릿해지고 퍼져서 
    시상이 많이 흔들릴 경우 결국은 A Ring은 민짜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아래 Johann Encke가 1838년에 손수 그린 스케치에는 
    엔케가 본 것이 엔케 갭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Encke Sketch.JPG
    (출처 : S&T, Thomas Dobbins and Willia, Sheehan)

    그러면 50여년 뒤 Keeler가 발견한 진짜 Encke Gap은 어떻게 생겼을까?
    James Keeler의 1888년 36인치 스케치를 보자. 
    Keeler Sketch.JPG
    (출처 : S&T, Thomas Dobbins and Willia, Sheehan)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당시 세계 최대구경 망원경이었던 Lick 천문대 36인치 굴절.
    Lick Obs.jpg
    이정도면 엔케가 진짜로 보였지 않았을까? 별보기는 역시 구경빨..

    Keeler의 스케치에서 Encke Minima는 A 링 중앙의 넓은 영역을 차지하고 
    A링의 가장 가장자리에 아주 가늘고 진한 선이 하나 보인다.
    그리고 Keeler는 본인이 발견한 새로운 Gap에 기쁘게 Keeler Gap이란 이름을 붙였다

    Before1980.JPG

    여기까지는 나름 깔끔하게 이름들이 정리가 되었는데..
    이 혼란은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문제는 Voyager 1/2호가 1980년~81년에 차례로 토성을 순방하면서 벌어졌다
    1024px-Voyager_Path.svg.png
    (출처 : Wikipedia)


    보이저가 토성 고리 위에서 근접 촬영을 한 사진에는 A ring 외곽의 선명한 Gap 바깥쪽으로 
    폭 35KM의 새로운 Gap이 관측되었다 (지구상의 망원경으로는 그 전까지 포착된 적이 없었다)
    Keeler Voyager.jpg
    (출처 : 보이저, PBS)

    그리고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새로 발견한 Gap에 Keeler의 이름을 넣어서 Keeler Gap으로 명명하고
    원래 있던 Keeler Gap의 자리는 Encke의 천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Encke Gap으로 이름을 바꾸었던 것이다.

    Keeler가 본적 없는 Keeler Gap, Encke가 본적 없는 Encke Gap이라니..
    누구를 위한 작명인지 판단하기 어렵지만
    Encke Gap이 실제로 Gap이 아님이 밝혀지면서 Encke Gap의 존재가 애매해지자
    천문학자들이 하늘나라에 계실 엔케와 킬러에게 
    “그냥 이렇게 좋게 좋게 하고 끝냅시다” 하고 합의를 봤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래 그림은 Voyager의 관측 이후 현재 통용되는 명칭이다
    After1980.JPG

    누가 바꾸었는지 왜 여러 사람 피곤하게 만들었는지 깊은 뜻이 있는 것인지 이유라도 들어보고 싶다



    2. Spokes
    한가지 더 남았다. 토성 B링 안쪽의 얼룩은 무엇일까?.
    보이저가 토성을 지나며 던진 숙제 중 하나는 토성 고리에 넓게 퍼진 “Spokes” 들이다
    Saturn Spokes.jpg
    (출처 : NASA, 보이저2호 - 1981년 사진)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까지 명확히 밝혀진 바 없으나, 
    현재까지는 아주 고운 먼지들이 정전기적 힘으로 토성 고리 위에 뿌려져 있는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그 전까지는 제임스 오메라가 오랫동안 “존재”를 주장했으나 
    이론상 불가능하다고 받아들여지지 않은 현상이었다
    (1977년 오메라의 스케치)
    Omera.jpg

    거기 무언가가 있는 것을 알고 눈을 세뇌시키며 보는 것과
    모두들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데 혼자서 진짜 보인다고 믿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전자는 안보이는 것도 잘 보이게 둔갑시킬 수 있지만
    후자는 본인의 관측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 필요할 것이다
    나도 거기에 얼룩이 존재한다는 것을 몰랐다면 무시하고 지나갔을 것이다.

    아래는 Cloudy Nights 행성관측방 형님들이 Spoke 현상에 대해 참고하라고 공유해준 스케치들이다

    [ Jeff Beish ]
    Spoke sketch Jeff 1.jpg

    Spoke sketch Jeff 2.jpg

    Spoke sketch Jeff 3.jpg

    [ Sol Robbins ]
    Spoke sketch Sol.jpg


    Cloudy Nights에서 만족할 만큼 답을 얻고
    다시 토성을 겨누어 본다
    2000_Surreal rings of Saturn 1 April 2020.jpg

    별을 보기 시작한지 26년간 모르고 있었던 모습들이 눈앞에 하나씩 나타난다


    세상은 넓고
    볼 것은 많고 
    고수도 많다

    그림도 잘 그리고
    눈도 좋고
    구력도 엄청나고
    영어는 당연히 잘하고
    친절하기까지.

    나도 여기 끼어서 
    고수가 되어 봐야겠다






                                              Nightwid 無雲

댓글 3

  • 최윤호

    2020.05.05 04:54

    다른 부분들은 저도 어느정도 관측은 해 봤다고 생각하는데 Spoke라는 부분이 보인다는 건 생각지도 못했네요. 정말 북반구에서는 고도가 너무 아쉬운데 앞으로 몇년은 더 이럴 거라해서 좌절하고 있습니다. ㅠ 형님을 통해 대리 만족해 봅니다. ㅎ
  • 박진우

    2020.05.05 09:25

    남반구 가서 보면 되지 않나요ㅎㅎ

  • 조강욱

    2020.05.08 21:36

    여기서는 천정에 보이는 토성인데.. 몇년 뒤면 역전이 되겠지요 ^^;;; 그때까지 열심히 봐야겠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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