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측기 & 관측제안 ~☆+

  • [남미원정] 6. 까만 치마를 입고
  • 조회 수: 2406, 2019-12-26 06:48:43(2019-12-04)


  • 1. 6/30 출국 - 남미 버킷 리스트를 향해

    2. 7/1 답사 - 세미 프로 - 프로가 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

    3. 7/2 일식 - 온몸으로 일식을 느껴보자

    4. 7/3 아타카마 이동 - 멀고 먼 아타카마

    5. 7/4 아타카마 2일차 - 죽어도 좋아

    6. 7/5 아타카마 3일차 - 까만 치마를 입고

    7. 7/6 우유니 1일차 - 아타카마 vs 우유니?

    8. 7/7 우유니 2일차 - 너무나도 장엄한 일출

    9. 7/8 우유니 3일차 - 4천미터의 별빛

    10. 7/9~11 귀국 - 80%의 준비와 19%의 실행(그리고 1%의 운)





    ==================== 원정 6일차 (2019년 7월 5일, 칠레 아타카마) ====================



    느즈막히 눈을 떴다
    후우~~~ 후………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어 본다
    아무렇지도 않다. 

    4천미터 고원의 믿을수 없을 정도로 환상적인 밤하늘 아래서 
    고산병과 싸우다 철수했던 일이 엇그제 같은.. 아니 바로 몇시간 전인데
    2600미터의 아타카마 타운은 그저 조용하고 평화롭기만 하다.

    물론 백두산 정도의 높이지만 
    몇시간 전까지 나를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몰아넣었던 그 고산병은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다. 
    다시한번 폐 속 가득히 공기를 집어넣어 본다. 
    아무렇지도 않다

    산소가 이렇게 고맙게 느껴질 수 있을까?
    영화 “그래비티”에서 샌드라 블록이 그렇게 애타게 갈구하던 산소. 
    gravity.jpg
    (출처 : 그래비티 샌드라 블록 누님)

    삶과 죽음을 가르던 산소의 존재.
    그 원초적인 열망이 무엇인지 나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오늘도 조식뷔페.
    지구상의 리얼 깡촌 한구석에서 
    소박하지만 정갈한 이정도 퀄리티의 조식이 아침마다 차려져 있다니.. unbelievable
    일식 바가지 문제로 한참을 싸우고 연락도 제대로 되지 않아 불안했던 것에 비하면
    감동 그 자체다
    20190705_085715.jpg

    주방 담당 아주머니가 손수 스크램블 에그도 만들어 주셨다
    20190705_090900.jpg

    낮에도 밤에도 천상 사진쟁이.. 동훈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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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먹고 또 자다가 점심시간. 


    이렇게 밥이 잘 나올줄은 모르고 Calama에서 식재료를 잔뜩 사왔는데
    다 먹지도 못하고 갈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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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믈리에 겸 쉐프님 박대영 형님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점심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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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럴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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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할 줄 아는 몇 안되는 요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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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무리는 역시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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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에 갑자기 만찬을 한 이유는 명확하다.
    셋이서 여유있게 먹을 수 있는 아타카마에서의 마지막 식사였기 때문이다. 벌써..
    저녁엔 관측 준비와 컨디션 조절 관계로 거하게 먹고 마시기가 어렵고
    내일 아침이면 동훈 형님과 나는 각자의 길로 떠나야 한다.
    20190705_140044.jpg

    마지막 만찬을 여유롭게 즐기고
    관측지 답사.
    20190705_171744.jpg

    4천미터는 나 덕분에 더이상 가긴 어렵게 되었고,
    숙소 매니저의 조언을 얻어서 아타카마 주변을 찾아 보기로 했다
    관측지 후보.JPG
    위 사진의 우상단 별표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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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찾았다. 동네 어귀의 흔한 공터
    20190705_173023.jpg

    답사 끝.
    20190705_172924-PANO.jpg

    집주인 포스로 한 컷
    20190705_175548.jpg

    저녁은 남은 고기, 와인숙성 스테이크 원모어..
    20190705_181037.jpg

    20190705_181052.jpg


    서둘러 저녁을 먹고 해 지기 전에 봐둔 그곳으로 다시 갔다
    주위 풍경이야 4천미터의 분위기에는 비하기 어려운 황량한 돌산과 
    흙먼지 날리는 황무지이지만
    마음껏 숨쉴 수 있고 원하는대로 걸어다닐 수 있다는 것만 해도 행복하다
    자연이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것일까


    벌써 월령 3일이다. 초승달이 눈부시게 빛난다
    사진가 두 분은 바삐 카메라를 세팅하고 전원 사용을 위해 차 시동을 켰다
    고산병 증세의 시작이 되었던 매연냄새.. 
    혹시 몰라서 홀로 멀찍이 자리를 잡았다
    오늘은 진짜 관측을 좀 해봐야지

    초승달의 광채 속에도 하늘은 깊고 검다
    달 바로 근처를 제외하고는 은하수도 빛을 잃지 않는다
    다만 더 미약한 빛들인 황도광과 대기광은 달빛 아래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복에 겨웠네. 황도광이 왜 안보이나 찾고 있는 모습이라니..

    이번 원정에는 망원경을 가져오지 않았다
    나의 분신과도 같은 망경 없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실제로 내 망경 이름은 Stelly, 사람딸 Stella에 이은 내 둘째딸이다)

    관측기 연재 첫편에 언급한 Cosmic Challenge 책을 내내 들고 다녔다
    cosmic.jpg

    맨눈으로 하는 도전대상부터 쌍안경, 소형 망원경, 대구경 돕까지 
    도전할 만한 흉칙한 대상들을 총망라해 놓은 책인데,
    망원경 도전대상이야 이 책 아니더라도 참조할 만한 정보는 많겠지만
    맨눈이나 쌍안경으로 할만한 도전이 정리되어 있는 리스트는 
    이 책 외에는 아직 보지 못한것 같다

    은하수 사이사이를 뒤지며 암흑성운들을 보고 있는데
    월령 3일 초승달이 드디어 산등성이로 넘어간다.
    어이구 아직도 안가셨네요 빨리 가세요~~ 하고 달덩이를 보내고 났는데도
    지구조는 아직도 산능선에 남아 있다
    보름달 같은 모습으로
    형용할 수 없는 광채를 뿜으며…

    멍하니 지켜보느라 그림도 그리지 못했다
    다행히 비슷한 이미지를 APOD에서 찾았다
    Earthshineset.jpg
    (출처 : https://apod.nasa.gov/apod/ap120328.html)


    달과 지구조까지 보내니 드디어 아타카마의 하늘이 제 모습을 찾았다
    적막하고 먹먹하기까지 한 검은 하늘.. 
    찬란한 은하수와 셀 수 없는 잔별들이 온 하늘을 수놓는다
    아타카마 타운에서 비치는 광해가 아주 살짝 옥의 티이긴 하지만..
    타운에서 10km가량 떨어진 이곳에서는
    관측에는 지장이 없는 수준이다.

    Cosmic Challenge 책과 함께 
    예뻐해 주던 암흑성운들을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Barnard 142 / 143]
    B142.jpg
    (출처 : http://www.astrofoto.ca/john/b142-sch.htm)

    장비 : 9*63 파인더, 15*70 쌍안경
    알파벳 “E” 자의 윗부분(B 142)은 아주 선명하게 보이고 아랫부분(B 143)은 많이 흐릿하다
    쌍안경 정도로로 큰 어려움 없이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B 142 뒤쪽으로도 희미한 암흑성운이 펼쳐지는데 그건 찾아볼 생각도 못했다
    아는만큼 보이는 법…

    [Barnard 92/93]
    B92_1.jpg
    (출처 : https://www.cloudynights.com/topic/615305-barnard-92-93/)

    B92_2.jpg
    (출처 : https://www.3towers.com/Grasslands_Content/BarnardObjects/Barnard061-120.html)
    장비 : 9*63 파인더, 15*70 쌍안경

    한국에서 한참 암흑성운 열심히 볼때도 
    파인더에선 대략 위치만 확인하고 아이피스 저배율로 관측을 했었는데
    9배짜리 파인더 만으로도 암흑성운 두 덩어리가 선명하게 확인된다
    검은 하늘의 위력이다
    배율 문제로 92번 안의 12등성 하얀 섬 같은 디테일은 보기 어렵지만
    하늘에 걸려있는 선명한 dark patch 두 조각은 그 자체로 장관이다


    [Barnard 86]
    B86.jpg
    (출처 : https://www.noao.edu/image_gallery/html/im1053.html)

    하늘에서 가장 보기 쉬운 암흑성운인 86번인데.. 계속 헤멘다
    호핑이 애매한 위치이기도 하지만.. 
    B86 한켠의 NGC 6520 산개성단으로 추정되는 용의자까지는 찾아냈는데 
    결국 B86은 검거 실패.
    (이유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Pipe Nebula]
    그 옛날 맥아더 장군이 물고 다녔을법한 파이프 성운은 단일 대상이 아니다
    pipe_1.jpg
    (출처 : https://stellarscenes.net/object_e/pipe_mag.htm)

    아래와 같이 여러 암흑성운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pipe_2.jpg
    (출처 : https://stellarscenes.net/object_e/pipe_mag.htm)

    그리고 좀 더 시야를 넓혀서 보면
    Prancing Horse 또는 Dark Horse Nebula 라고 불리는, 앞다리를 들고 있는 말 한마리가 보인다
    파이프 성운을 말 뒷다리로 삼아서..
    숨은 그림을 찾아 보자

    Pransing.jpg
    (출처 : https://earthsky.org/todays-image/saturn-riding-the-dark-horse-nebula-photo

    요즘 같았으면 페라리 성운으로 불렀을지도 모른다
    ferrari.jpg


    한국 같으면 파이프 성운 주위의 가장 선명한 부분을 보는 것만도 감동일텐데
    아타카마의 검은 말은 너무나 쉽게 모습을 드러낸다
    앞다리와 머리가 얼마나 사진과 비슷하게 디테일하게 보이는지가 관건일 정도로..


    [Veil Nebula]
    북쪽 지평선 위로 백조가 떴다. 
    설마 파인더로 베일까지 보일까?
    책에 있어서 속는셈 치고 해보니.. 희미하지만 진짜 보인다

    N6995.jpg

    희미하고 넓은 대상이라 고작 10배로는 물론 디테일은 없지만
    서베일(NGC 6995) 내 밝은 부분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동베일은 불가)
    UHC를 파인더 접안렌즈에 대고 말이다


    [ 페가수스 사각형 內 별 갯수 세기 ]
    페가수스 네모 안에서 별을 몇 개나 셀 수 있을까?
    이 갯수 가지고 그날의 한계등급을 알 수 있다는 얘기는 예전부터 들어 보았는데..
    열둘 열셋 열다섯.. 아니 열둘 열넷 열셋.. 
    비슷 비슷한 희미한 별들을 헤아리다가 정신이 혼미해져 간다

    Pegasus square.jpg
    (출처 : https://www.skyandtelescope.com/astronomy-blogs/explore-night-bob-king/counting-stars-great-square-pegasus/)


    안드로메다로 출발하려는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고, 
    페가수스 사각형을 4등분해서 각각의 영역의 별들을 세어서 합산하는 것으로 방법을 바꾸니
    집중력을 유지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사각형 안에서 총 22개의 별을 찾았다
    평균값을 구하려고 몇번을 더 세어 보았는데 모두 22개 인근으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센 별을 또 세진 않은 것 같다
    여튼 22개의 경우 6.5등급 수준의 하늘이다. 
    과거 7등급의 별을 관측할 수 있었다는 섀플리 급이 되려면 아직 더 노력해야 할 듯..


    여유롭게 캠핑의자에 걸터 누워서 하늘을 보다가, 
    그냥 심심풀이(?)로 내 미러리스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보았다
    천체사진 전문가 두분의 영도 아래 ISO며 화이트 밸런스며 하는 것들을 뚝딱 맞추고
    손각대로 30초 노출로 사진을 찍으니 
    놀랍게도 내 카메라에도 별이 잡혔다
    1500_SAM_7548.JPG

    물론 그 수준은 어디 내놓을 수 없는 수준이지만
    1997년 마지막으로 E100S였나 슬라이드 필름으로 트레일이랑 점상 사진을 찍어보고
    소질이 없음을 깨닫고 천체사진을 접은지 20여년만에
    전혀 다른 장비로 하늘을 담았다

    1500_SAM_7557.JPG

    결론 : 하던거나 열심히 잘 하자

    사진은 잘 찍는 형님들이 전 세계에 셀 수 없이 많으니 그것 보면 되지 뭐


    몇 장 찍다가 이내 카메라는 집어 던지고 다시 하늘을 보고 누웠다
    은하수 중심부의 암흑대가 너무나 선명하게.. 하늘을 가로지른다
    쌍안경을 손에 들면 무수한 암흑성운들이 시야를 지나간다

    1992년산 옛날 노래 한 구절이 머리를 스친다

    토요일 저녁일까 / 내가 그녀를 처음 봤던
    그 순간에도 / 까만치마를 입고
    그녀는 말이 없지 / 항상 내 앞을 그냥
    스쳐지나갈 뿐인걸 / 까만색 치마를 입고
    난 바보같이 / 우두커니 서서
    지나가는 걸 / 바라만봐도
    숨이 막힐것만 같아
    (김현철 2집, “까만 치마를 입고” 중에서)



    아~~ 이런 노래를 아는 것 자체가 아재 인증인데..
    아재인걸 어쩌란 말인가

    토요일 저녁.. 20년이 넘게 항상 별보러 가는 요일. 
    아마 암흑성운을 처음 본 날도 필시 토요일 저녁일 것이다
    어릴때부터 나는 아무도 관심 없는 암흑성운에 집착했다
    버나드 312, 168 등등.. 희뿌연 한국의 밤하늘에서 있는듯 없는듯
    희미한 까만 치마를 살랑거리는 암흑성운들.
    진동을 줄이기 위해 아이피스 끝에 암흑성운을 가져다 놓고
    시야 동쪽 끝에서 서쪽 끝으로 스쳐 지나갈 때까지
    난 그저 바보같이 우두커니 서서 그 자태를 넋 놓고 바라볼 뿐이었다

    셀 수 없는 찬란한 별들이 까만 치마를 입고 
    아타카마 사막 한가운데에서 스쳐 지나간다
    거대한 침묵 속에서…
    그저 바보같이 우두커니 바라보고만 있어도 숨이 막힐 것 같다


    그 노래 가사처럼 말이다
    (출처 : https://youtu.be/wMVjd40m8EQ)






                                                                 Nightwid 無雲




    1. 6/30 출국 - 남미 버킷 리스트를 향해

    2. 7/1 답사 - 세미 프로 - 프로가 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

    3. 7/2 일식 - 온몸으로 일식을 느껴보자

    4. 7/3 아타카마 이동 - 멀고 먼 아타카마

    5. 7/4 아타카마 2일차 - 죽어도 좋아

    6. 7/5 아타카마 3일차 - 까만 치마를 입고

    7. 7/6 우유니 1일차 - 아타카마 vs 우유니?

    8. 7/7 우유니 2일차 - 너무나도 장엄한 일출

    9. 7/8 우유니 3일차 - 4천미터의 별빛

    10. 7/9~11 귀국 - 80%의 준비와 19%의 실행(그리고 1%의 운)


댓글 6

  • 김철규

    2019.12.05 09:28

    여기 사람들은 관측지 공개 안되게 서로 숨기고 그런일은 없겠죠. 주변에 관측지가 널리고 널렸네요. ㅠㅠ
  • 조강욱

    2019.12.26 06:47

    관측지를 아무리 광고해도 올 사람이 없을것 같아요 ㅎㅎㅎ

  • 최윤호

    2019.12.06 17:07

    낮에 찍은 사진에는 실구름이 있던데 밤하늘 사진에 보니깐 싹 사라졌나 보내요. 혹시 사막기후 특유의 뿌연 느낌은 없었나요? 저도 사우디에 있었지만 항상 미세먼지가 낀듯한 하늘이어서 완벽하지는 않았었습니다. 다음엔 우유니를 가는군요. 우유니 사막에 비내린 후 밤하늘이 미러링 되는 모습을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시기가 우기는 아니라 힘든가..)

  • 조강욱

    2019.12.26 06:48

    언급하신대로 밤에는 그 옅은 구름들이 싹 사라졌던 듯..

    그리고 미세먼지 낀 듯한 느낌도 전혀 없었고.. 근데 우유니엔 건기라.. 

    결과는 다다음편에 ^^;;;

  • Profile

    김영주

    2019.12.09 23:57

    연재로 글을 쓰는 내내 그때의 기억들이 아련히 떠오르니 이보다 더 기막히 회상법이 어디 있을까요? 늘 멋지고 감동적입니다.^^
  • 조강욱

    2019.12.26 06:48

    그게 관측기에 정성을 들이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이지요
    늘 잘 보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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