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측기 & 관측제안 ~☆+

  • 181216 느긋함 vs 조급함
  • 조회 수: 2796, 2019-01-13 05:29:24(2018-12-30)

  • 동호회(Auckland Astronomical Society)의 노랑머리 형님들은 장비를 들고 멀리 다니지 않는다
    한국과 주거 환경이 달라서 집에는 당연히 가든이 있고
    한국에 사는 우리가 꿈꾸는 backyard astronomy를 당연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근데 뉴질랜드가 한국에 비해서는 아무리 어둡다고 해도
    오클랜드는 한국 중소도시 정도의 광해가 있는데.. 
    (오클랜드 주택가 기준으로, 집중해서 봐야 겨우 궁수자리 은하수 가루를 볼 수 있는 정도)
    1시간만 차끌고 나가면 강원도보다 훨씬 어두운 하늘을 만날수 있는데
    대체로 이 형님들은 그냥 집에서 보는 별로 만족한다

    날씨 좋으면 차고(garage)에서 망경 꺼내서 보다가 다시 차고에 넣고 침대로.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즐기며 사는 이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하는 관측 방법이라고 할까..
    날만 좋으면 기를 쓰고 어디든 나가려고 하는 내가 오히려 특이하다 생각할지도 모른다


    12월 15일 토요일 밤, 상현 반달이 하늘 높이 올라왔다. 이번 월령의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
    달은 새벽 1시에 지고 4시 넘으면 박명이 시작인데.. 
    이번 기회를 놓치면 금단증상으로 또 한달내내 고생할 테니
    어디든 가봐야겠다.

    지난달에 갔던 Scandrett Rd는 집에서 한시간도 안걸려서 가까워서 좋은데 
    오클랜드의 광해가 올라와서 안타깝지만 자주 이용은 못할 것 같다
    Robin 아주머니(별쟁이는 아님)가 추천해준 South Head의 어느 공터로 출동.

    South Head.JPG

    자정을 향해 가는 시간.. 
    (잘 포장된, 그러나 맑은 하늘과는 달리 안개가 자욱한) 시골길을 한참을 달려서 
    공원 주차장에 도착했다
    다행히 사람도, 집도, 가로등도, 그리고 안개도 아무것도 없고
    대신 주차장 펜스 바로 너머로 
    헤드라이트에 비친 양떼 수백마리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너는 잠도 안자고 이 시간에 뭐하러 왔니?” 하고 묻는 것 같다
    이 애들은 잠도 없는지 아니면 내가 깨운건지
    아무것도 안 보일텐데 늦은 시간까지 먹이가 보이기나 하는지.. 
    모두 열심히 풀을 뜯고 있었다 (암적응? 주변시?)


    여튼 나는 내 일을 해야지
    Slow life style을 즐기는 동호회 형님들과 다르게 나는 항상 급하고 초조하다
    경쟁적인 한국 사회에서 수십년을 살아온 탓도 있고
    내가 잘 모르는 새로운 하늘에서 봐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은 탓도 있을 것이다

    북반구에서 처음 별을 보기 시작했을때 
    어딜 가든 “밤하늘의 보석”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틈만 나면 취미삼아 NGC 번호들을 달달 외우던 수년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처럼

    남반구에서 별을 보는 지금도 그런 내공을 키울 시간이 필요할텐데
    그때에 비해 체력과 기억력은 조금씩, 점점 떨어지고 
    건강하게 별을 볼 시간이 아주 충분하게 많이 남아있지는 않다는 생각이
    나를 더 조급하게 만든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남반구 별자리들은 관측갈 때마다 한 20번쯤 헤아려주면 
    아마 북반구 별자리들처럼 친숙해지리라 믿고 싶다
    (5천여년에 걸쳐 갈고 닦여진 북반구 별자리들에 비해 
     대체로 남반구 별자리들이 예쁘지 않아서 더욱 기억에 잘 남지 않는다)
    하물며 내가 잘 아는 북쪽의 별자리들도 온통 위아래가 뒤집혀 있어서
    안좋은 머리를 한번 더 굴려야 한다

    집에서 메모해간 볼만한 대상들을 하나씩 보며 오늘의 사냥감을 찾는다
    이슬이 정말로 이슬비처럼 흩날리는데 시상은 너무나 좋다

    1232, 1300, 1097, 1360…… 에리다누스 강줄기를 따라 한참을 떠돌아 다니다가 
    1532/1에 눈길이 멈춘다 
    1532_wiki.jpg
    (출처: Wikipedia)

    남위 32도에 위치한 10등급짜리 측면 나선은하.
    충분히 멋진 대상이지만 한국에서는 지평선의 광해 속에서 흔적만 찾을 수 있을..
    오늘은 이걸 봐야겠다


    잘 빠진 측면은하와, 절묘한 각도의 작은 타원은하 커플.
    아름답다.

    그러나 한참 보고 있으면 검은 구름이 하늘을 덮고, 
    관측 의자에 앉은 채로 자다 보면 다시 하늘이 열려서 점 하나 더 찍고..
    기나긴 기다림 끝에 1시간 반만에 겨우 완성.

    [ Galactic Waltz - NGC1532/1, 검은 종이에 Gel pen과 파스텔, South Head에서 조강욱(2018) ]
    NGC1532_2000Resize_181216.jpg


    잘 빠진 측면 나선은하의 황금 비율도, 작지만 밝은 동반은하와의 구도도 멋지지만
    1532의 백미는 북쪽 방향의 나선팔에 위치한 밝은 성운기다
    1532_highlight.jpg

    별이 생성되는 짙은 성운 영역이 길게 위치한 이 구조는 
    위의 사진과 내 관측 스케치에도 명확히 드러나고

    아래 APOD 사진을 보면 더욱 정확하게 
    신생아실(Intense reddish star-forming regions)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1532_apod.jpg
    (사진 출처: APOD)


    집에 와서 사진과 자료를 보니 기쁨과 안타까움이 교차한다
    기쁨: 은하 커플과 주변 별들의 모양을 정확히 잡아낸 것, 신생아실을 제대로 관측한 것
    실망: 나선팔의 밝은 성운 영역에서 급격하게 꺾여서 동반은하로 이어지는 구조를 못본 것
              신생아실 위아래의 암흑대와, 그 너머의 맨 앞쪽 나선팔을 보지 못한 것

    이렇게 훌륭한 아이인줄 알았으면 
    사진 한번 보고 다시 볼걸 그랬나.. (언제나 똑같은 후회)

    내가 아무리 눈을 부릎뜨고 본다고 해도 
    칠레 안데스 산맥 중턱의 8M짜리 Gemini 망원경으로 찍은 
    APOD 사진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위의 실망 포인트는 꼭 한번 다시 보고 가야겠다
    언젠가는 말이다.





                                                         Nightwid 無雲

댓글 8

  • 류혁

    2018.12.30 23:28

    대략 거제 해금강 신선대 전망대 정도의 밤하늘 한계등급이 오클랜드 주택가 수준이라는 말이네요. ^^ 정말 부러울 따름입니다.

    연말 마무리 잘 하시고, 새해에도 남반구에서 항상 즐겁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내년에도 재미있는 남반구 소식 많이 올려주세요. ^^ 


    그리고.... 오클랜드 천문동호회 사람들에게 혹시 야간비행 뉴질랜드 지부 명예회원 같은거 할 생각은 없는지도 물어봐주세요. ㅎㅎㅎㅎㅎ. ^^ 

  • 조강욱

    2019.01.11 18:54

    우선 한국말부터 가르쳐야 할것 같습니다 ㅎ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

  • 정기양

    2018.12.31 02:21

    16인치로도 28인치급의 관측을 하고 계시네요. OTL
    새해에도 가족 모두 건강하시고 즐거운 관측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 조강욱

    2019.01.11 18:56

    윤호씨 관측기록 보면..

    16인치+하늘빨 로도 20인치급은 못 따라가는 것 같습니다 ^^;;

    정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최승곤

    2019.01.01 01:54

    예전에 상남면 감부리에서 Eridanus 와 Fornax 주위의 은하를 최선생님이 18인치로 보여주시던 기억이 올라오네요..
    참 좋은 관측지였는데.. 1시간이내에 그보다 휠씬 좋은 관측지로 이동이 가능하나다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 조강욱

    2019.01.13 05:28

    네 확실히 김부리보다 좋은 관측지가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잘 활용해야지요~~!!

  • 최윤호

    2019.01.02 03:48

    안그래도 다음 NSOG 별자리를 에리다누스로 갈려 했는데 좋은 참조가 되었습니다. ㅎ 한국에서는 -32도의 적위가 아쉬운데 20인치로 비교 함 해 보겠습니다.ㅎ
  • 조강욱

    2019.01.13 05:29

    한국에서 에리다누스는 참 애증의 별자리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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