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측기 & 관측제안 ~☆+

  • 20 Dec 2017 - 작고 반짝이는 것
  • 조회 수: 3789, 2018-01-02 15:20:30(2017-12-24)
  • 7월말 이후 망원경으로 변변한 관측을 하지 못했다
    8월에 미국에서 일식을 보았으나 맨눈으로 보는 것이었고
    그 이후에는 여러가지.. 별보는 것보다 중요하지는 않지만 긴급한 일들을 처리하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결국 망원경을 꺼내지 못했다
    별보러 가지 못하는 변명을 대는 것은 내가 끔찍하게 싫어하는 일임에도 말이다

    12월 말부터 3주간, 근무하는 학교가 문을 닫는다. 
    크리스마스 연휴에 2~3주간 회사가 통째로 holiday를 즐기는 것은 뉴질랜드의 비즈니스 문화이다. 
    미쿡, 캐나다, 영국 사람에게 이 얘기를 할 때 놀라는 것을 보면 
    서구권 전체의 문화는 아닌가보다.

    별에 굶주린, 여러가지 머리아픈 일들에 둘러쌓여 있던 나는 
    머리속에 별 볼 생각만 가득하다. 
    하지만 올해 여름(계절이 반대다)은 현지 별쟁이들도 strange하다고 할 정도로 매일 구름이 가득하다. 
    짐을 쌌다가 풀었다가 망원경을 들었다가 놨다가 엉덩이만 들썩들썩..
    18일 월요일 저녁, 
    낮의 두꺼운 구름과 안 좋은 예보를 보며 일찌감치 포기하고 침대에 누웠는데 
    하늘이 너무나 좋다. 
    (밤 9시가 넘어도 훤해서 하늘이 파란지 안 파란지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집에 사는 두 여자, 두 보스께 결재를 받고 (사실 전결을 받아 놓아서 한결 수월했다) 
    이미 싸 놓은 짐과 망경을 싣고 길을 떠났다.
    맑은 날씨를 보고 무작정 나서기는 했지만 
    예보가 perfect clear는 아니라.. 늘 가던 1시간 반 걸리는 관측지는 위험 부담이 많다. 
    밤 시간도 짧아서 가까운 데로 가봐야겠다.
    전에 동호회 회원에게 들었던 Warkworth에 있는 전파 천문대로 결정. 
    오클랜드 씨티에서 5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서 하늘이 불안하긴 한데.. 
    선수들이 가는 덴데 그래도 이유가 있겠지.

    40분만에 도착한 그곳은 딱 홍천 수준의 관측지였다
    남쪽으로 고도 20도 정도 오클랜드의 광해가 올라오고
    오리온에 보이는 별들의 개수가 보통의 홍천 하늘에서 보는 정도밖엔 되지 않는다
    어쨌든 시장이 반찬이다. 
    별주림을 채워 보고자 닥치는 대로 여기저기 허겁지겁 망원경을 들이대다가 
    자정이 넘은 시각에 SMC로 망경을 향했다.

    간만에 잡아보는 Tuc 47, NGC 104는 너무나 아름답고 무섭기까지 하다.
    언제봐도 인상적인, 나를 노려보는 그 노란 빛의 눈동자 말이다.

    (NGC 104, 출처 : 구글 검색)
    Photo_NGC104.jpg

    이 멋진 구상성단에 왜 그럴듯한 별명이 없을까? 전 하늘 넘버 2인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넘버 1인 NGC 5139도, 북반구를 호령하는 M13도 딱히 인상적인 별칭이 없다.
    안시로 잘 보이지도 않는 코끼리, 아이리스 같은 성운들과
    큰 임팩트 없는 산개성단들도 다 별명이 있는데 말이다
    확실히 구상성단은 상대적으로 어려운 대상인가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별쟁이들에게도.

    거대한 접시(전파 망원경)를 등 뒤로 104의 무수한 점을 찍고 또 찍는다. 그동안 갈고 닦은 찍기 신공을 마음껏 펼쳐보자..
    한시간밖에 못 찍었는데, 벌써 104와 SMC가 나무 뒤로 걸려 버렸다. 날씨도 점점 안 좋아져서 망경을 옮기는 것도 무의미. 다음에 다시 이어서 해야겠다.

    구름은 점점 많아지고.. 한 30분은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은데 뭘 해볼까?
    지난 2010년 호주 원정에서 그려 보았던 NGC 4755 보석상자를 다시 잡아 보았다.
    Jewel Box는 언제나 어렵다. 그 아름다움을 표현하기가 말이다. 
    고작 별 30개 남짓의 작은 산개성단인데.. 왜 그렇게 어려울까? 
    단색 스케치로 그 영롱한 색을 표현하기 어렵다는 것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을것 같다.
    20여분만에 스케치 한장 완성.

    집에 와서 색연필을 들고 몇 개의 주요 별들에 색을 입혔다.
    그 작고 반짝이는 아름다움에 조금은 더 가까이 간 것 같다

    [ Jewel Box, NGC 4755 – Warkworth Radio Observatory에서 조강욱 (2017) ]
    NGC4755_20Dec17_2000px.jpg


    어쨌든 그래도 2010년의 4755보다는 조금 나아진게 아닐까?
    r_4755 (2010 AU).jpg
    그동안 놀지는 않았으니깐.


    스케치 완성과 함께 구름이 온 하늘을 덮었다.
    휴.. 간신히 배고픔을 달랬다. 

    그래도 집에서 40분 거리에 홍천급 하늘에 갈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큰 축복이다. 
    뉴질랜드의 가장 번화한 동네에 살면서 말이다. 





                         Nightwid 無雲

댓글 4

  • 김남희

    2017.12.25 06:58

    남반구 적응이 안되니 104하니까 솜브레로가 왜 구상이지....? 하고 있군요.ㅎ
    2010년 4755는 얼핏 오리온자리 스케치로도 보입니다.ㅎ
    이거 병이 심각하군요.ㅋㅋ
    이렇게 간결한 조강욱님 관측기를 보니 상큼하네요.
    두 보스 잘 모시고 행복하세요~~
  • 조강욱

    2017.12.26 04:58

    저도 104가 별칭이 없어서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ㅎㅎ

    말씀하신 대로 이제는 더 간결한 문체로 글을 쓰려고 합니다

    길게 쓸 시간이 충분치 않아서요 ^^;;

  • 김민회

    2017.12.29 01:03

    그곳 하늘 적응 안되면.... 제가 사는 안양에 직장과 집 알아봐 줄까요?
  • 조강욱

    2018.01.02 15:20

    네 안양 좋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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