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측기 & 관측제안 ~☆+

  • 31Oct16 10월의 마지막 밤, 어느 해변가
  • 조회 수: 10798, 2016-11-12 16:10:26(2016-11-02)


  • 아! 별을 보지 않은지 한달이 되어 가니 또 약발이 떨어졌다

    10월초에 인천 부두를 떠나보낸 이삿짐들은 이제 남태평양을 지나

    태즈먼 해를 항해하고 있을텐데


    내 망원경은 아직도 the UK에서 올 미러를 기다리고 있고

    쌍안경조차 손에 쥔 게 없지만

    그래도 맨손 맨눈으로라도 별뽕은 맞아야겠다


    Auckland에서 맞은 처음 며칠은 좌우 뒤집힌 보름달이 환하게 떴었는데

    어느새 그믐이다

    WIKICAMP NZ 앱을 펼쳐 놓고 장소를 물색해 본다

    700_Screenshot_2016-10-31-22-52-22.png


    Matheson Bay. 우리 집에서 60km 정도 떨어진 곳이다.

    120만명 사는 도시에서 60km 벗어나면 얼마나 보일까?

    700_Screenshot_2016-10-31-22-53-23.png



    날씨 예보를 한참 연구하여

    일요일 오후에 출발.

    밤새도록 그냥 서서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는 없으니 

    대형 마트에서 최근 유행하는 무중력(?) 의자와 

    1200_20161031_225636.jpg


    적당한 가격의 침낭을 하나 구입하여 길을 나선다.

    (내가 가려는 곳들은 IT 후진국의 네비 따위엔 나올 리가 없으므로 좌표 입력 필수)
    1200_20161030_175924.jpg


    이곳의 날씨는 호주 내륙과는 많이 다르다

    칠레 아르헨티나와 함께 남극에 가장 가까운 나라..

    밤에는 한국보다 더 춥다 

    (사실 이건 단열과 난방이 되지 않는 이 나라 주택들의 문제.. 
     외기 온도와 집안 온도가 동일해서, 멀쩡히 이불 덮고 자다 보면 코와 발이 시려 온다)

    아~~ 북극용 패딩과 바지와 방한화가 태평양을 건너고 있는데.. 

    그렇다고 별을 굶을 수는 없지.


    오클랜드 외곽을 벗어나자 마자 윈도우 배경화면들이 계속 모습을 달리 하며 지나간다

    이곳의 풍경은 호주와는 많이 다르다

    한시간을 가도 똑같은 초원과 농장을 지나는 호주의 평원과 달리

    한 고개 넘으면 들판이, 
    step.JPG


    또 한 고개 넘으면 숲이,
    forest.JPG


    그 다음은 작은 언덕들이 나온다 (절대 mount라 부를 수 없는 mound 들이다)
    mound.JPG


    뉴질랜드는 호주의 미니어처 같은 느낌이랄까?

    찍어 놓았던 포인트, Matheson Bay의 캠핑 사이트에 일몰 무렵 도착했다

    1200_20161030_192115.jpg


    아! 진짜 멋지네...
     
    1200_20161030_193319.jpg

    1200_20161030_192743.jpg

    1200_20161030_192740.jpg


    근데 멋있으면 뭐하나.. 하늘엔 구름이 가득이다

    1200_20161030_194314.jpg


    예보가 더 좋은 지역으로 이동할까 하다가

    밤길 초행에 사고날까봐 그냥 기다리기로 한다


    토요타 Wish 차 뒷자리를 접어 침낭을 펴고 잠자리도 확보했다

    1200_20161030_192713.jpg


    8시쯤, 머리 뒤가 밝아져서 보니 가로등이 켜졌다

    자정쯤엔 꺼지겠지. 

    가로등 빛이 직접 닿지 않는 곳으로 차를 이동했다


    9시가 넘으니 남쪽 수평선부터 조금씩 구름이 걷히면서 하나씩 별이 보인다

    그러다가 갑자기 내리는 비에 차로 피신.

    차 안에서 맥주캔을 들고 유리창을 때리는 빗소리를 듣는다

    오늘 낮까지는 이름도 위치도 알지 못했던 남위 36도의 외딴 바닷가에서.


    내 인생은 무엇을 찾아서 이렇게 헤메이는 것일까?

    답은 정해져 있는 것 같은데, 

    그 과정이 어찌 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모두 다 정해져 있다면 인생이 너무 재미 없을지도 모르지.


    맥주 한 캔을 다 비울때쯤, 비가 그쳤다

    그리고 그 구름들이 모두 비가 되어 내렸는지

    숨어 있던 별들이 스르륵 모습을 보인다

    오클랜드 시내의 집 마당에서는 아무리 용을 써도 잘 보이지 않았던 LMC와 SMC까지.

    700_Screenshot_2016-11-01-22-56-59.png


    마트에서 사온 무중력 의자를 꺼내서 누워 보았다

    아! 이렇게 좋을 수가....

    육안 하늘 감상에 이보다 좋은 의자는 없을거야

    100m 옆에서 가로등이 환히 비추어도

    오클랜드에서 북쪽으로 60km 떨어진 해변의 하늘은 인제의 best 하늘이나 다름이 없다


    해변가에서 파도소리를 들으며 의자에 반쯤 누워서 

    연신 스카이사파리를 돌리며 별자리 공부.

    다시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별자리를 하나씩 연결해 보며 형상을 연상해 보려 노력하던 그때 말이다


    그러다가

    주기적으로,

    무엇엔가 홀린듯 네이버 뉴스에 접속해서 대통령 절친 아줌마 뉴스들을 검색한다

    당분간 한국 방송은 절대 안 보겠다고,

    무한도전까지 끊었는데 말이다

    그 아줌마가 누구이던, 무슨 짓을 햇던 

    직선거리로 12,000km 떨어져 있는 나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데 말이다

    국가라는 것이 개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조금이나마 알 것도 같다


    두 시간이 넘게 바닷바람을 맞으며 별자리를 헤아리고 있으니

    코와 손이 너무 시렵다

    아~~ 태평양을 건너고 있는 배 안에 내 방한장비 다 있는데...


    새벽이면 아마도 가로등도 끌테니..

    차에 들어가서 침낭 안에서 토막잠을 청했다


    새벽 3시 30분, 힘든(?) 꿈을 꾸다가 겨우 잠에서 깼다 

    (사회에 불만을 품고 내가 발사한 핵폭탄이 
     어찌 잘못되어 우리 동네에 떨어져서 피해 다니느라고 꿈 속에서 한참을.. ㅠ_ㅠ)


    차 밖으로 나와보니 하늘은 또 전혀 알 수 없는 모양으로 바뀌었다

    토끼자리가 하늘 높이 남중해 있고.. 모든 것을 반대로 생각해야 퍼즐을 맞출 수 있다

    그리고 가로등은 아직도....

    아마도 밤새 켜놓는 가로등인가보다


    2순위 관측지로 생각해 놓았던 데가 3km 인근에 있는데..

    가자. 가봐야겠다

    700_Screenshot_2016-11-01-23-27-05.png


    네비에 적경적위 좌표를 찍어놓고 비포장 자갈길을 한참 달려서 

    1200_20161031_052956.jpg


    TI Point라는 camp site에 도착했다.

    더 촌구석이라 그런지 가로등도 없고, 다른 캠퍼밴도 거의 없이

    낚시꾼들의 아지트인지 비릿한 냄새만 코를 자극한다

    그리고 하늘엔.. 숨이 막힐 것만 같은 낯선 별들.


    또 악착같이 별자리를 익히고 있으려니 

    용골자리 옆에 고물자리, 그 위에 큰개자리.. 또 그 위를 보니 외뿔소자리가 있다

    그보다 더 어두운 남쪽의 듣보잡 별자리들을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데

    남중한 외뿔소자리의 별들을 이어 보려니 의욕도 나지 않고 머쓱한 기분이 든다

    북쪽에서도 한 번 제대로 헤아려 본 적이 없을텐데 말이야..


    부둣가 데크(?)에 나가 보니 오리온자리 밑에 밝은 별이 수평선 바로 위에 떠 있다

    이게 뭘까? 

    스카이 사피리를 돌려보니

    이게 뭐야. 카펠라잖아

    700_Screenshot_2016-11-01-22-54-15.png


    북중고도 겨우 7도로 수평선을 스치고 사라지는 카펠라.

    이곳의 별쟁이들에게 카펠라는, 그리고 그 아래에서 보이지 않을 북두칠성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새벽 5시 15분,

    에리다누스의 물줄기가 박명에 희미해지는 것을 느끼며 길을 떠났다

    오클랜드로 돌아오는 고속도로에는

    마치 평일 아침의 경부고속도로 서울 인근 상행선을 보는 듯

    엄청난 교통정체가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서도 삶은 비슷하게 돌아간다

    별들만 빼고 말이다








                                       Nightwid 無雲


댓글 16

  • 이한솔

    2016.11.02 09:35

    처음 호주 갔을때 별자리 찾느라고 엄청 긴장 했던 기억이 나네요 ㅎ
    강욱씨 자리 잡으면 바로 갈테니 준비하고 계세요 ^^
  • 조강욱

    2016.11.12 16:01

    한국에서도 별자리 익히느라 오랜 시간이 걸려으니

    여기서도 서두르지 않으렵니다 ㅎ

    좋은 포인트 많이 찾아 놓을께용~~

  • 최윤호

    2016.11.02 17:28

    60km만 떨어져도 인제의 하늘이라..호주 원정관측이 벌써 6년전이군요. 그래도 그때의 하늘과 추억은 생생하군요.
    형님이 자리 잡았다는 소식만 간절(?)히 기다립니다. ㅋ
  • 조강욱

    2016.11.12 16:02

    워낙 인구밀도가 낮은 동네라..

    그래도 호주 아웃백보단 인구밀도가 높지만 ㅋㅋ

    다음번엔 좀 더 멀리 나가봐야지

  • 김남희

    2016.11.02 20:17

    내가 여기서 할수있는 말은 빨리 원정용 망원경을 만들어야겠다는.... ㅎ

    "내 인생은 무엇을 찾아서 이렇게 헤메이는 것일까?" 라는 말이 가슴에 남는군요.
  • 조강욱

    2016.11.12 16:02

    수메리안보다 멋지고 실용적인 망경 기대합니다~~

  • 김철규

    2016.11.02 20:37

    소식 반가웠습니다. 그곳에서의 삶이 쓸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날이 갈수록 망가져가는 한국의 하늘을 보면서 부럽기도 합니다. ^^
  • 조강욱

    2016.11.12 16:03

    여기도 하늘은 계속 망가지겠지만 그 속도는 매우 더딜 것이고..

    다만 섬나라라 그런지 날씨가 그리 좋지가 않네요 ㅠ_ㅠ

  • 윤정한

    2016.11.02 21:06

    가기 전에 얼굴이나 한번 보려고 했는데...
    아쉽네요.

    뉴질랜드...
    우선, 여기보단 하늘이 좋다는 것이 부럽고...
    남쪽 하늘의 새로운 별들을 맘껏 볼 수 있다는 것이 부럽고...
    무엇보다 쳇바퀴같은 이 생활을 박차고 나간 용기가 부럽습니다.
  • 조강욱

    2016.11.12 16:05

    저희 회사는 한*테*윈같이 정년 보장 안해줘유.. ㅎㅎㅎ

    하늘이 훨씬 좋다는 것 하나는 확실한 것 같습니다

    시내의 집에서도 4.5등급이 잘 보이니깐.. ^^

  • 류혁

    2016.11.03 18:29

    가. 내년 중으로 함 놀러갈께요. 좋은 관측지 많이 물색해놓으세요. ^^

    나. 야간비행 뉴질랜드 지부도 꼭 설립해보세요. 현지 친구들도 많이 모집해서... ^^

    다. 11/1 천문인마을에 잠시 놀러가서 JP정 선생과 한참을 강욱씨 흉을 봤는데... 귀 안간지러웠나요?
    어쨌거나 그 어수선한 정국에도 불구하고, 작은곰자리 별 7개가 모두 잘 있더라구요. 그러니 북반구 걱정은 안해도 될 듯 싶습니다. ^^

    라. 가족과 함께 항상 건강, 행복하기를 빕니다. 시네마천국의 토토처럼 뉴질랜드에서 잘~~~ 정착하구요. ^^

  • 조강욱

    2016.11.12 16:09

    어수선한 정국에 작은곰자리 별들은 광화문에 안갔네 보네요 ㅎ;;;

    근데 토토는 배경이 여기가 아니지 않나용?  ?_?

    어쨋든 오실때 자폐정도 같이 끌고 오세요 ㅋㅋㅋ

  • 류창모

    2016.11.03 18:34

    Fornax 자리에서 눈을 뗄 수 없어요. 성도를 뒤집고 싶은 충동이 생깁니다.
    '별을 찾아 떠난 가장 긴 여행의 주인공'- 조강욱님이 그립습니다.
  • 조강욱

    2016.11.12 16:10

    여기서 Fornax를 보려면 목이 아픕니다

    너무 높아서.. ^^

  • 이원복

    2016.11.04 03:36

    ^^; 모르는 별자리 투성이..
    하늘이 정말 부럽습니다. ㅋㅋ
  • 조강욱

    2016.11.12 16:10

    네 다시 처음부터 시작이죠 ㅎㅎㅎ

위지윅 사용
번호 제목 이름 조회  등록일 
219 이윤행 11278 2017-05-22
218 박진우 11377 2014-02-01
217 조강욱 11385 2016-07-12
216 조강욱 11457 2011-08-01
215 이화영 11473 2003-05-20
214 김철규 11474 2014-01-10
213 강경원 11479 2012-05-25
212 장형석 11488 2017-03-05
211 김경식 11511 2003-09-30
210 조강욱 11529 2011-05-15
209 조강욱 11534 2013-01-05
208 김재곤 11563 2014-01-07
207 김재곤 11606 2017-01-09
206 박진우 11607 2013-12-03
205 이준오 11609 2009-02-05
204 조강욱 11629 2013-06-02
203 이한솔 11663 2015-12-15
202 김영주 11678 2017-03-01
201 조강욱 11695 2010-08-04
200 김남희 11707 2012-09-27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