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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극권 원정 #1. 모든 것의 발단
  • 조회 수: 4290, 2015-04-01 17:54:29(2015-03-28)

  •  

    2015 북극권 원정 - #1. Prologue : 모든 것의 발단

     

    2015. 3. 28 (土)   조강욱

     

     

    1. Prologue : 모든 것의 발단

     

    2. 원정 준비 :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원정

     

    3. 1일차(서울-키루나) : 라플란드로 가자

     

    4. 2일차(키루나) : 오로라와의 조우

     

    5. 3일차(키루나) : 쉬는 것도 하늘 뜻대로

     

    6. 4일차(키루나-아비스코) : 태초의 얼음 호수

     

    7. 5일차(나르빅-키루나) : 폭풍의 하늘

     

    8. 6일차(오슬로-스발바르) : 뭉크를 찾아서, 북극을 향해서

     

    9. 7일차(스발바르) :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

     

    10. 8일차(스발바르-오슬로) : 너무나 아름답고 완벽한 시공간

     

    11. 9~10일차(프랑크푸르트-한국) : 10일간 비행기 10번 타기

     

    12. Epilogue : 진인사대천명

     

     

     

     

    =============================================================

     

     

    2012년 11월 13일.

     

    우리는 호주 동부해안의 북단, 케언즈에 있었다

     

    브리즈번 인근의 깡촌에서 며칠간,

     

    환상적인 하늘 아래 최고의 동료들과 함께

     

    호주까지 공수해 간 대구경 돕들을 밤새도록 돌리며 완벽한 관측을 하고서

     

    best.jpg

     

    개기일식을 보기 위해 호주 국내선을 타고 1700km를 날아서 온 케언즈에는

     

    cairns.JPG

     

    종일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다음날 새벽 6시반에 고도 13도 짜리 개기일식을 봐야 하는데..

     

    볼 수 있을까?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eclipse chaser들은

     

    동쪽 해변에 낮은 산이 위치한 케언즈를 이미 모두 빠져나갔다

     

    지형적인 이유, 그리고 기상 확률상 더 가능성 높은 곳으로..

     

    특히 케언즈에서 차로 두시간 거리의 Carbine 산 능선에

     

    한국 팀들을 포함한 다국적군 150명이 모여 있었다

     

    map.jpg


     

    우리는 개기일식 직후 세계자연유산인 케언즈 앞바다 산호섬에서의

     

    스노클링 투어를 이미 예약해 놓았었다

     

    현지에서 확인해보니,

     

    그 산호섬으로 출발하는 배 시간이 촉박하여

     

    케언즈를 떠나 다른 곳에서 일식을 관측하면

     

    스노클링 투어 배를 타지 못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끊임없이 내리는 부슬비.

     

    아.. 어떡하지..

     


     

    케언즈에 밝은 낮에 도착해서 렌트카를 빌려놓고도

     

    밤이 되도록 우리는 케언즈를 떠날지 말지 5시간을 토론하고 있었다

     

    jetty.jpg

     

    동쪽의 산이 고도가 몇도인지도 낮에 확인하지 못했다

     

    다섯명, 의견은 2대 2. (한 명은 기권)

     

    완벽한 원정에 어울리지 않는 팽팽한 긴장감..

     

    갑자기 비가 더 내린다

     

    night.jpg


     

    이렇게 비가 오는데 10시간 뒤 새벽 6시반에

     

    수평선의 짙은 안개와 구름을 뚫고 일식을 볼 수가 있을까?

     

    확률상으로 성공률 40%를 생각하고 온 일식인데

     

    cloud_cover.jpg

     

    이젠 그 확률이 10% 밑으로 떨어졌다

     

    여기서 100km 더 가봤자 하늘은 똑같을거고

     

    이 비가 오는데 산에 오른다 해도 뾰족한 수는 없겠지

     

    개기일식이 확률이 거의 없다면 하나만이라도 건지자

     


     

    내가 케언즈 잔류에 한 표를 더 얹었고,

     

    우리는 5시간의 회의를 마치고 맥주를 마시러 갔다

     

    beer.jpg

     


     

    드디어 그 날, 개기일식의 아침이 밝았다.

     

    아니, 아침이 밝기 훨씬 전에 서둘러 숙소를 떠나 해변으로 갔다

     

    setting.jpg

     

    몇 시간 전까지 비가 내리던 하늘은 놀랍도록 맑아졌고

     

    일식이 일어날 동쪽 하늘에만 야속하게 두꺼운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east.jpg

     

    30분전, 15분전, 시간은 계속 다가오고

     

    일식 10분전쯤 구름 사이에서 잠시 얼굴을 내민 태양은..

     

    partial.jpg

     

    잠시 후 다시 구름 사이로 몸을 숨겼다

     

    partial2.jpg

     


     

    그리고 약속된 시간.

     

    하늘빛은 갑자기 한 시간 전 어슴프레한 색으로 회귀하고

     

    start.jpg

     

    내 입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조금만 더.. 조금만..! 구름아 제발 더 빨리!

     

    내가 가진 모든 마음과 소망을 담아 구름에게 보내본다

     


     

    하늘이 감복했는지 1분쯤 뒤 (정확히 2분짜리 개기일식이었다)

     

    구름 사이로 허리춤까지 태양이 모습을 보인다

     

    eclipse.gif

     

    조금더! 더! 두번째 다이아는 볼 수 있겠는데..

     


     

    우리의 바람을 다 듣지 못했는지

     

    구름은 다시

     

    반쯤 보이던 태양까지 모두 삼켜 버렸다

     

    end1.jpg

     

    그리고 잠시 후, 구름 뒤에서 무언가 번쩍 하더니

     

    짧은 일식은 종료되었다

     

    end2.jpg

     


     

    아~~ 아쉽다

     

    그래도 극적으로 1/2개 봤네.

     

    혹시나, 혹시나 하여 한국에서 원정 온 팀 중 세 팀에 연락을 해 보았다

     

    (우리를 제외한 모든 한국 원정팀은 물론 모두 케언즈를 떠나 있었다)

     

    '잘 보셨나요?'

     

    잠시후 수신되는 짧은 메시지들.

     

    lim.jpg

     

    hye.jpg

     

    wook.jpg

     

    극적으로. 극적으로. 극적으로.

     

    심지어 바다에서도.

     


     

    하아...

     

    여긴 어디지? 내가 왜 여기?

     

    나는 그 길로 정신을 놓아버렸다

     

    어떤 위로도 농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케언즈 해변에서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아침식사도

     

    한시간 배를 타고 간 산호섬의 고운 백사장도.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그 모래사장 위에 주저앉아 망연자실

     

    이젠 파랗게 맑아진 하늘만 쳐다본다

     


     

    개기일식 관측을 준비하면서, 그 어느 누구도

     

    케언즈 시내에 남아서 준비해도 괜찮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내가 무엇에 홀려서 거기에 있었을까?

     

    그래. 이건 운일 뿐이었다

     

    우리가 조금 더 운이 좋았다면

     

    시내에 있었던 우리만 기적적인 일식을 맞았을지도 모른다

     


     

    아니야. 이건 운의 문제가 아니야.

     

    별을 보러 가서

     

    별을 보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이 문제인거지.

     


     

    케언즈 북서쪽의 Carbine 산에 올라서 밤새 호텔 대신 노숙을 하고

     

    새벽녘에 극적인 일식을 맞이하는 이 사람들의 attitude와

     

    [ 박대영 作, Carbine 산의 개기일식 풍경 (2012) ]

    daeyoung.jpg

     

    팔짱끼고 구경거리를 기다리는 케언즈 해변의 관광객들 사이에는

     

    travel.jpg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건 천벌이 틀림없어.

     


     

    다시 비행기를 타고 차를 타고 관측지로 돌아가서,

     

    나는 남은 기간 더욱 미친듯이 간절하게 관측에 집중했다

     

    별 보는 사람은 오직 별로써만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기에.

     

    그런다고 어이없이 놓친 일식의 아쉬움을 씻을 수 있을까?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나보다 더 일식을 아쉬워하던 김동훈님께 한마디의 정보를 얻었다

     

    '2015년에 개기일식이 있을 북극에 아시아나 마일리지로 공짜로 갈 수 있다'

     

    arctic2.jpg


     

    북극. 북극의 개기일식이라..

     

    그냥 귀국 비행기 통로에서 지나가는 얘기로 들은 한마디였지만

     

    집에 와서도 계속 생각이 난다

     

     

    그리고 한참 뒤, 별하늘지기에서 대영형님이 올린 아까 그 사진을 처음 보고

     

    daeyoung.jpg

     

    온전히 일식에 집중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너무나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20년을 쉬지 않고 별을 보면서

     

    이런 비참한 기분을 느낀 적은 처음이다

     

     

    그리고는 내 남은 긴 인생에서 나만의 큰 원칙 두 가지를 세우게 되었다

     

    '별을 보는 일 만큼은 나에게 무슨 일이 닥치더라도

     내가 믿는 신념과 가치를 지켜가겠다

     그것이 어떤 고통과 외로움을 가져올지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 능력이 닿는 한 세상의 개기일식을 모두 보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

     


     

    나는 호주에서 귀국하여 집에 돌아오자마자 모든 신용카드를 정리하고

     

    아무 혜택도 없이 오로지 쿨하게 마일리지만 쌓는 카드를 만들고 (외환 크로스마일 카드)

     

    2017년 미국 개기일식에 가족 동반으로 원정을 가기 위해 작은 적금을 들었다


     

     

    정확히 1년 뒤, 2013년 11월의 아프리카 개기일식은

     

    2013.jpg

     

    우리나라 직항이 있는 케냐로 가보려고 백방으로 알아보았으나

     

    기상 조건, 길 상태, 치안 등의 여러가지 이유로 포기.

     

    결과적으로는 안 가길 잘했다.

     

    우간다로 간 소수의 인원을 제외하곤 아프리카 전역이 모두 꽝!

     

    (우리나라 원정대도 없었다)

     


     

    그 다음은 2015년 3월의 북극 스발바르(Svalbard).

     

    winter.jpg

     

    마일리지는 열심히 쌓고 있지만..

     

    내가 진짜로 거기에 갈 수 있을까?

     


     

    ....

     

    나는 최근까지, 매일 아침 이른 출근길에

     

    새벽 6시반만 되면

     

    어김없이 케언즈에서의 기억이 자동으로 떠올랐다

     

    나의 선택, 나의 목소리, 그리고 구름속의 일식.

     

    사람이 눈을 뜨고서도 악몽을 꿀 수 있는 것일까?

     

    그것도 매일 매일 같은 시각에...

     

     

    '개기일식을 보고 나면 인생이 바뀐다'는 여러 선배들의 얘기가

     

    무슨 소리인지 궁금해서

     

    2009년 여름에 가벼운 마음으로 중국 항저우에 갔었다.

     

    거기서 어렵게 기적적으로 만난 개기일식의 결정적 순간이

     

    결국 내 인생과 신념과 가치관마저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내가 매일 같은 시각에 케언즈 생각을 수백번 하는 사이에도

     

    시간은 무심히 흘러서

     

    어느새 마일리지 항공권 발권 시점인 D-330일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 이 얘기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제가 그렇게 집요하게 북극에 가려 했던 것이 설명이 잘 되지 않아서

        이미 오래 지난 길고 불편한 얘기를 했습니다.

        널리 양해해 주세요.. ^^*

     

     

     

     

                                                                                                     Nightwid 無雲

     

     

     

     

     

     


    1. Prologue : 모든 것의 발단

     

    2. 원정 준비 :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원정

     

    3. 1일차(서울-키루나) : 라플란드로 가자

     

    4. 2일차(키루나) : 오로라와의 조우

     

    5. 3일차(키루나) : 쉬는 것도 하늘 뜻대로

     

    6. 4일차(키루나-아비스코) : 태초의 얼음 호수

     

    7. 5일차(나르빅-키루나) : 폭풍의 하늘

     

    8. 6일차(오슬로-스발바르) : 뭉크를 찾아서, 북극을 향해서

     

    9. 7일차(스발바르) :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

     

    10. 8일차(스발바르-오슬로) : 너무나 아름답고 완벽한 시공간

     

    11. 9~10일차(프랑크푸르트-한국) : 10일간 비행기 10번 타기

     

    12. Epilogue : 진인사대천명

     

     

     

     

     

     

댓글 11

  • 류창모

    2015.03.28 11:47

    사무치는 감정과 간절함을 느낍니다. 며칠 전 질투심에 미운 마음까지 일었던 일식 사진.
    아! 생이란 이리도 부끄럽고 후회스러운 것인가?
    아름다운 도전에 성공한 벗들에게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 조강욱

    2015.03.29 08:48

    감사합니다....

    평생의 도전은 아직 한참 남았습니다.. ^^*

  • 김남희

    2015.03.28 20:39

    지난 매수팔 한솔님의 성공담을 들으며...그저 멍하니.. 바보가 되는 듯 싶었습니다.

    '내 능력이 닿는 한 세상의 개기일식을 모두 보기 위해 노력하겠다'....

    강욱님의 신념을 충분히 이해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많이 부럽습니다...^^
  • 조강욱

    2015.03.29 08:50

    매수팔에 못간 것이 참 아쉽습니다.. ㅡ.ㅜ

    다음주 수요일에는 다 못 들은 마라톤 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다! ㅎㅎ

  • 김철규

    2015.03.30 08:51

    중국에서 여가시간이 아주아주 무료합니다. 그리고 야간비행 홈피가 VPN을 이용해야 아주느리게 간신히 접속이 되네요. ㅠㅠ 저를 위해서라도 얼른 얼른 올려 주실거죠? ^^
  • 조강욱

    2015.03.30 22:00

    장기 출장이시군요.. 담주부터는 열심히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

  • Profile

    박상구

    2015.03.30 22:23

    안타까움과 간절함이 전해집니다.

    글의 시작으로 적절한 간절함을 끼얹어 주시니 이어지는 본래 이야기의 몰입도가 더 높아질 듯 합니다. 기대가 커집니다 ^^

  • 조강욱

    2015.03.31 07:53

    제가 너무 찬물을 끼얹었나봐요 ㅎㅎㅎㅎ ㅠ_ㅠ

  • Profile

    박상구

    2015.03.31 10:02

    찬물이라뇨 ㅎㅎ 완전 기대하고 있는데 ^^

  • 강석민

    2015.03.31 19:24

    오뉴월에도 서리를 흩뿌릴 한 맺힌 서론...
    all or nothing의 극단적 케이스를 절절히 보여주시는군요.
    그렇다고 북극까지 쫓아가서 복수혈전을 펼치는 건 너무합니다. ㅎㅎ
  • 조강욱

    2015.04.01 17:54

    ㅎㅎ 쫌 너무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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