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측기 & 관측제안 ~☆+

  • 2015 메시에마라톤 - 간절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 조회 수: 3279, 2015-11-11 19:19:07(2015-03-25)
  • 저도 좀 늦은 후기를 올립니다. 

     

     
    < 준비 없이 천문인마을에 >
     갑자기 뚝 하고 천문인 마을 마당에 떨어진 기분이었습니다. 전날까지 바쁘게 돌아가는 회사 일에 빠져있느라 마라톤 참가 준비는 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네요. 아침에도 이런저런 집안 일에 허둥지둥하다 김민회님을 밖에 한참 기다리시게 하기도 했습니다. (저와 망원경을 실어 날라 주시느라 애 많이 쓰셨습니다. 쌓인 빚이 얼마인지 모르겠네요. 빨리 청산을 하든가 도망을 가든가 해야겠습니다. ㅎㅎ 감사드려요)
     
     이번이 첫 마라톤 출전입니다. 커다란 눈을 가진 17.5 별고래는 옆에 잘 세워 두고, 대신 제가 이전에 사용하다 김남희님께 보내 새로 태어난 12인치를 빌려 참가하기로 했습니다. 목표는 소박~하게 100개.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109개의 근거없는 망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ㅋ
     


     < 지레 먹은 겁 >
     나중 새벽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명백히 잘못한 결정이었지만, 훤한 하늘에 지레 겁을 먹고 74, 77, 33을 깨끗이 포기하고 시작했습니다. 처음이라 몰라서 그랬다 치고 싶지만 뼈아픈 실수였네요.
     
    그래서 시작은 31입니다. 하늘이 밝아도, 건너편 집에서 잔치를 해도 안드로메다 자리는 보이므로 어렵지 않게 찾아갔지만 31이 있어야 할 자리에 32가 있습니다. ㅎㅎ 31이 32처럼 작아져 보이는군요. 옆에 있는 진짜 32는 상대적으로 덜 작아져 보이고, 건너편으로 아이피스 시야를 옮겨 어렵게 희미한 110의 존재를 파악합니다 (나중에 알게 되지만 110은 어렵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다음은 52, 반형준님과 마찬가지로 20분 이상을 헤맸습니다. 간신히 찾아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 고비는 일찍 찾아오고 >
     그 다음부터는 순조롭지만 매우 느리게 나아갔습니다. 대회에 참가했다고 해서 느린 손과 머리가 갑자기 스프린터가 될 리 만무합니다. 8시대에 봐야 하는 것을 아직 못 봤는데 9시가 넘어가고 세미나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직 스무 개 남짓 보았을 뿐이므로 너무나 아쉽지만 김철규님의 강의를 단념하고 전반부를 마저 끝내는데 몰두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세미나 참석인원이 너무 저조하다며 잠깐 쉬는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고 전반부 25개만 마치고 휴식시간을 가졌습니다. 박한규님의 흥미진진한 견우 직녀성 이야기와 김남희님의 경이에 가까운 폰 어포컬 비법 강의도 듣고 휴식을 취하는데 속으로 이런 생각이 슬금 슬금 올라옵니다. '벌써 힘든데, 앞으로 80개나 더 찾아야 한다고?' 갑자기 의욕이 사라지고, 마라톤은 대충하고 그냥 놀까 하는 생각에 다리가 풀려 버렸습니다. 다른 분들 참견하며 소주도 한잔하고 느림보가 여유까지 부리다 보니 0시까지 마쳐야 할 두 번째 파트를 2시까지 밀려 버렸네요. 결국은 68과 83을 놓쳐버릴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68은 어찌어찌 해서 건져냈지만 83은 찾다 찾다 시간만 보내고 결국 산 뒤로 넘겨버렸네요.


     
    < 페이스 메이커 >
     세 번째 파트로 넘어가려는 때부터 급격히 하늘이 나빠집니다. 다른 이들이 지지부진 하니 느림보에게는 오히려 기회입니다. 흐려진 하늘에서 아이피스 호핑을 시작합니다. 9번은 열심히 봐도 알아볼 수 없어 다섯 번째 놓친 대상이 되었지만 나머지는 차근차근 뱀주인자리와 백조 거문고 독수리 근처 대상들을 거치니 다른 분들과 엇비슷한 진도가 되어있습니다. 아니, 그보다 다른 분들이 멈춰계시는 곳에 합류했다는 표현이 더 맞겠습니다. ㅎㅎ
     
     사실, 심리적으로 느슨해진 고비를 넘기고 정신을 차리게 된 것은 전적으로 실력자들 옆에 자리를 잡은 덕분입니다. 박진우님과 반형준님 뭐 찾는다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탐색 시간표를 보면 저보다 항상 두줄 앞서 보고 계시니 자극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하다 보니 얼추 비슷 하게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나중엔 하늘이 매우 나빠져 진우님이 억지로 멈춰있다시피 한 곳에서 만나 비슷한 듯 엇갈리던 장면도 재미있었습니다. 진우님 후기를 보니 저와 마찬가지로 6, 7을 찾을 때 전갈 ε에서부터 아이피스 호핑을 하셨더군요.
     
    (정확하진 않지만 대화를 재구성 해봤습니다)
      "진우씨~ 7 봤어요?"
      "아니요 6은 찾았는데 7은 못 찾았어요"
      "음..."
      (잠시 후)
      "진우씨~ 난 7 찾았어요"
      "어! 그러세요? ..."
      (잠시 후)
      "아 찾았다! .. 6에서부터 아이피스로 찾아갔어요"
     
     아! 그렇구나. 6을 못 찾고 있던 저는 진우님의 한마디에 거꾸로 7에서 아이피스로 별을 한 개씩 더듬어 찾아가 6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진우님은 2를 찾고 75를 못 찾았다고 할 때 저는 2를 찾다 포기하고 75를 찾기도 했네요 ^^
     
    반형준님, 박진우님 두분이 음성으로 저에게 자극을 주셨다면, 행동으로 저에게 자극을 주신 분은 김민회님입니다. 방해 좀 하려고 '뭘 그렇게 열심히 하세요?' 말을 걸면 '하나도 안보여~' 이러시며 꿈쩍 않고 자리를 지키십니다. 새벽의 혼돈에도 묵묵히 갈길을 가시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혼신의 힘을 다했다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릴 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원 없이 한 아이피스 호핑 >
     일 년 동안 할 아이피스 호핑을 하루에 다 한 것 같습니다. 하늘이 너무 나빠져서 아이피스 안에서도 희미해져 버린 별 한 개 한 개를 더듬어 나아갈 수 밖에 없는 숨막히는 아이피스 호핑은 신경을 곤두서게 합니다. 그러나 그 끝에 흐릿하지만 여지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대상을 보며 느껴지는 희열은 설명이 불가합니다.


     
    < 간절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
     다섯시가 넘고, 궁수 주전자 바닥의 69, 70, 54를 훑고, 파인더에 에니프를 도입하지 못해 위에 돌고래에서부터 따라 내려가 15를 찾고 나서 보니 찾은 것들의 숫자는 99 ! 하늘은 이미 옅은 하늘색을 띄기 시작한지 오래. 아.. 98개였어도 그냥 접었을텐데, 99라니... 계획한 100개를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해집니다. 밝아지는 하늘을 향해 "안돼~" 하는 육성이 터지고 2번을 찾으려 미친 듯이 헤매는데 길도 제대로 못찾고 자꾸 원점으로 돌아옵니다. 안되겠다 마지막 심정으로 종료 10분을 앞두고 75를 찾기로 급 선회하였습니다. 편안하게 보라고 남희님께서 가져다 주신 관측 의자가 옆에 있었지만 이미 고도가 많이 내려가 무릎을 꿇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망원경을 부여잡고 10분여의 아이피스 호핑 후에 자리를 찾아갑니다. 슬슬 흔들어 보는 아이피스 시야 안에 들어있는 두 개의 흐린 별과 그 사이에 희미하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M75 !! 그제야 허리를 펴고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55, 72, 73, 30까지 모두 10개를 남겨두게 되었지만 처음 계획한 100개를 찾게 되어 뿌듯한 마음으로 정리를 합니다. 저쪽 끝으로 가니 모든 것을 쏟아붓고 의자에 앉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담배를 피우고 있는 임광배님이 있습니다. 수고 하셨노라는 눈빛을 보내고 약간의 대화를 나누고 길었던 마라톤의 밤을 마쳤습니다
    s_m75_skyview.png   s_m75.png

                     [ SkyView에서 추출한 M75와 기억을 되살려 폰에서 그려본 M75]

     

     

     

     

     
    < 마치며 >
     이렇게 특별하고 짜릿한 경험을 해본 적이 있었던가 모르겠습니다. 훌륭한 상품도 받았지만 진짜 상품은 간절한 마음으로 하얗게 밤을 지새운 많은 이들의 열정을 맛본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주 좋은 하늘 보다는 약간 나쁜 하늘 상태가 마라톤을 훨씬 재미있게 한다는 말씀도 이제 이해하겠습니다 ^^
     여러 동호회에서 모인 많은 분들을 만나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고, 흥미를 끄는 세미나도 정말 좋았습니다.
     수상 소감으로도 말했지만 저는 M75를 한동안 특별한 기억으로 간직하게 될 것 같습니다.

     

     

     
    - 사용장비
    Nam's Dob #14, 12인치 F/5 돕소니언 (미드 라이트브릿지 미러와 사경을 사용하여 개조한 )
      XL 21mm, Nagler 13mm, 9mm

     

     

     

     

    덧붙여
    메시에 마라톤에 왔으니 메시에 목록 사진을 받고 싶다는 생각에 '순위권에 들면 저것을!' 하며 전날부터 눈독을 들이고 있던 상품이 제 차례까지 왔습니다. 마치 1등을 한 것처럼 더욱 기쁜 마음이 되었습니다. 상품 보내주신 이건호님께 감사드립니다 ^^


    s_mm.jpg

     

     

    Profile

댓글 16

  • 김남희

    2015.03.25 10:18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근데 저 동그래미 안에 뭐가 있긴 한거요.... ?ㅎ
    인생에 한 페이지를 멋드러지게 장식할 훌륭한 경기 였습니다...
    모두 고생하셨네요..^^

  • Profile

    박상구

    2015.03.25 16:01

    에고 ㅎㅎ 그림 다시 고쳐 올렸습니다. 테스트하던 다른 그림을 올렸네요 ^^;

     

    즐거운 기억으로 오래 남을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 반형준

    2015.03.25 16:30

    새벽하늘에 보이는 구상성단.역시나 그림을 아주 잘 그리셨군요.....저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네요~~ 저렇게도 보이기는 하는구나... ㅋ
  • Profile

    박상구

    2015.03.25 19:52

    평소라면 그 시간까지 별을 볼 일이 거의 없으니 아마 마라톤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일 것 같습니다 ^^

  • 박진우

    2015.03.25 18:31

    7이 너무 안 찾아져서 포기할까 하던차에
    옆에서 보셨다는 말씀을 듣고 저도 다시 심기일전해서 볼 수 있었습니다

  • Profile

    박상구

    2015.03.25 19:53

    ^^ 덕분에 더 열심히 봤던 것 같아요. 진우님께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 ^^

  • 조강욱

    2015.03.25 18:43

    순위권에 원하는 상품까지 득템을 ㅎㅎ
    그 맛있는 담배 저도 태우고 싶네요.. ^^*
  • Profile

    박상구

    2015.03.25 19:56

    담배를 태우던 임광배님 얼굴을 직접 보셨어야 했는데 ^^

    그런 멋진 수상 소감을 할 수 밖에 없는 얼굴이었다고나 할까요.

    끊은지 20년 된 담배 생각이 다시 나도록 하는... ㅎㅎ

    암튼 전 그날 광배님한테 반했습니다 ^^

  • Profile

    김태환

    2015.03.25 19:06

    축하드려요... 상품이 정말 멋집니다...
    기억을 되살려 폰에서 그려본 M75.. 완전 공감입니다.
  • Profile

    박상구

    2015.03.25 19:59

    감사합니다. ^^ 

    상품을 집에서도 아주 마음에 들어 합니다 ㅎㅎ

  • 이원세

    2015.03.25 19:39

    훌륭하십니다. 짝짝짝~
  • Profile

    박상구

    2015.03.25 20:00

    ^^ 감사합니다~

  • Profile

    장형석

    2015.03.25 19:46

    저도 아침에 뜨는 해를 맞이하며 별을본게 언제인지 모르겠어요...
    같은 느낌을 받아보고 싶네요 ㅎㅎ
  • Profile

    박상구

    2015.03.25 20:02

    형석님과는 내년을 기약하겠습니다. 열심히 달리실 때 옆에서 입관측으로 지원하겠습니다 ^o^

  • 저녁바람

    2015.03.26 09:10

    구도자가 따로 없군요.
    수고하셨습니다. ^^
  • Profile

    박상구

    2015.03.26 17:57

    시간이 흐를수록 자세가 달라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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