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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개기월식 관측 후기] 개기월식 같다.
  • 조회 수: 2691, 2014-10-14 22:51:25(2014-10-12)
  • [2014. 개기월식 관측 후기] 개기월식 같다. 

    - 관측일시 : 2014.10.08(수) 18:18 ~ 22:00
    - 관측장소 : 낙동강변(김해시 생림면 생철리) 
    - 관측장비 : 맨눈, 파인더, 16인치 돕, 4인치 굴절 등

    안녕하세요. 박동현입니다. 
    개기월식의 감동을 글로 표현해내지는 못하지만, 그 순간 순간에 보고 느낀 점을 글로 옮겨보며 그 날을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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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 관측 가능한 개기월식이 올해에 있다는 것을 알고 연초부터 기다려왔다.

    이번 주 월요일, 주간 예보를 보니 수요일에 개기월식 관측이 가능할 것 같다.

    "여보, 수요일에 개기월식이 있는데 애들 데리고 같이 보러갈래?"
    "그래."

    나들이를 좋아하는 아내는 흔쾌히 허락한다. 

    개기월식 하루 전이다. 설렌다. 

    '내일 칼퇴근하고 바로 출발해야지. 
     아, 장비 실어놓자.
     적도의, 경통, 카메라, 배터리, 돗자리, 텐트... 다 챙긴 것 같네.'

    10월 8일 개기월식 당일 퇴근 직전, 카메라를 꺼내 시간을 되도록 정확하게 맞추고 있는데, 배터리가 깜빡인다. 암시야 조명장치, 암등까지, 배터리 덕에 고생을 한 경험이 유독 많았다. 오늘도 배터리와의 싸움에 지고만다.

    '아, 카메라 배터리...'

    카메라 배터리 충전을 해놓는다는 걸 깜빡했다. 하지만 충전기가 없다. 시간은 더 없다.
    배터리의 충전 상태를 확인하니 하나는 깜빡이고, 하나는 반 정도, 마지막 하나는 그래도 충분하다. 

    '걱정은 되지만, 어쩔 수 없지. 어떻게 버텨질거야.'
    애써 위안을 한다.

    장비로 가득찬 차에 두 딸의 카시트를 넣을 수가 없어서 가족과는 관측지에서 만나기로 하고 출발한다.  
    저녁? 달만 봐도 배가 부를 것 같아 간식거리로 우유, 물, 초코바만 사고 관측지로 향한다. 
    관측지에 거의 도착할 무렵, 석양이 너무 이쁘다. 

    '아무리 급해도 이건 찍어야 해.'

    01(sun).jpg

    02(sun).jpg
    * 17:45 경, 삼랑진 철교 위의 지는 해

    해를 보고 있으니 문득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의 월식을 있게 해 준, 적당한 시간에 비켜주기까지 하는, 태양이 참 고맙다. 조금 희한하지만, 비교할 거리는 아니지만, 입이 떡 벌어지는 자리를 만들어 준, 인사만 하고 일어나는, 물론 계산까지 끝내고 가는, 직장 상사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위대한 지도자를 태양같다고 하는걸까? 또 혼자 피식 웃는다. 


    03(관측지).jpg


    17:53, 관측지에 도착한다. 

    내 생애 첫 월식을, 
    처음으로 돕소니안을 가지고 나온, 처음으로 내 손으로 메시에 대상을 찾은, 처음으로 후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한, 처음으로 스스로 조금은 만족하는 일주사진을 찍은, 아내와 싸운 뒤 생각이 나는, 내 첫 관측지에서 본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다. 

    04(일주사진).jpg
    * 2014.6.15에 찍은 일주 사진


    감상은 이 정도로 그치고 달이 오를 쪽을 찾아본다. 생각보다 시야가 좋지 못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장비 설치를 할 수 밖에...

    오늘의 선수는 촬영용 LXD75 적도의, Stellavue 102ED 경통, Canon 600D, 그리고 맨눈이다.
    05(장비).jpg


    망원경을 대충 설치하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는데, 달이 보인다. 


    18:16, 오늘의 달, 가려진 달과 뜨거운 호들갑으로 첫 인사를 한다. 

    '다... 다... 달이다!! 와, 대박, 오오~ 대박, 뭐야! 진짜 먹혔네.'
    월식 순간을 처음 본 감동을, 그 희열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떠오르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고 달을 본다. 이미 1/5정도는 가려있다.  
    망원경으로 찍으려고 하니 철교에, 또 나무에 가려 있다. 
    달을 쳐다보며, 망원경을 이 쪽으로 질질질, 저 쪽으로 질질질, 두어번 망원경을 옮기며 찍어본다.

    06(1816).jpg
    *18:16

    07(1817).jpg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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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24

    결국, 맨눈으로 보는 걸로 만족한다. 만족이 아니다 충분하다. 
    월식을 두 눈으로 보기 전 만해도 '사진 잘찍어서 사진으로 결과물을 남겨보자.'는 마음이었는데, 먹힌 달을 보는 순간 부터 그 마음이 옅어진다. 

    조금씩 조금씩 먹히는 달을 보는데 참, 기분이 좋다. 너무 좋다. 
    달이 먹히는 모습이 조금씩 더 환한 미소로 웃는 눈으로 보인다. 좋아서 호들갑을 떠는 내 모습에 달이 눈웃음으로 화답하는 느낌이다. 

    18:43, 달이 철교를 딛고 올라와 온전한 달은 처음으로 촬영한다. 
    09(1843).jpg


    맨눈으로 볼때는 먹힌 부분의 지구조도 보이는데 달보다 반지름이 작아 보인다. 
    10(작아보임).jpg
    파인더로 보면 크기 차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 맨눈으로 볼때는 크기 차이가 느껴진다. 착시일까?
    (제가 잘못 본걸까요? ;;;)


    18:48 달은 벌써 반이 넘게 먹혔다.
    11(1848).jpg
     
    문득 하늘의 별들은 어떨까 싶어 하늘을 올려다 본다. 여름철 대삼각형을 그려보는데...

    '어라, 저거 ISS네.'

    출몰시간에 대한 정보를 전혀 모르는 상태로 만나는 ISS, 더 반갑다. 망원경에는 카메라가 물려져 있고 트래킹 중이라 건들이기는 싫다. ISS의 밝음을 눈으로 쫓는다. 
    북동쪽으로 빠른 속도로 날아가다가 카시오페아를 가르고 급속히 느려지는 것 처럼 보인다.
    18:55, 점점 어두워 지다가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는다. 
    12(iss).jpg

    보던 하늘을 다시 올려다 보니 백조자리의 별들이 나름대로 앙증을 부리고 있고 남쪽에는 궁수자리도 보인다. 월식이라는 것을 머리 속에 품고 보니 실제보다 별빛은 더 밝아지고 달은 더 어두워지는 느낌이다. 월식을 감탄하는 듯한 풀벌레들의 이야기도 조금씩 더 커지는 것만 같다. 


    18:57에만 하더라도 파인더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불과 3분이 지난후

    19:00에는 16인치로 보는 달의 모습이 어떨지 궁금해진다. 

    설치를 시작한다. 광축? 생략! 파인더 정렬? 생략! 

    19:13에 처음으로 아이피스 안의 달을 본다. 
    13(1913).jpg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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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5

    그라데이션! 어두운 주황색에서 시작해 달의 반을 넘어가면서 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영역보다 조금 더 아래 부터는 초록이 섞인 색이었고, 또 위 사진에서 밝게 보이는 부분은 안시로 달을 볼 때 느낄 수 있는 노란색이다. 정말 오묘한 그라데이션!

    천왕성이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사전에 별하늘지기의 스바루님 블로그 글을 통해 알고 있어 천왕성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약 76배에서 별들과 크기 차이는 느끼지 못했지만 확실히 천왕성이라는 것을 알고 보니 또 새롭다. 

    15(1919).jpg
    * 19:19, 달과 천왕성



    달이 점점 가려지면서 윗 부분만 밝은데, 주위에 대머리이신 분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반짝반짝 대머리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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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8, 조금 덜 먹힌 사진이지만 반짝이는 느낌이 조금은 비슷하다. 


    다 가려지기 전에 대머리가 가장 반짝거리다가 언제 다 가려졌다 싶은지도 모르겠는데, 대머리가 덜 빛나고 있다. 

    '아, 다 가려졌나보다.'

    하늘을 훑어본다. 작은곰자리를 째려본다. 
    일곱별이 겨우 보인다. 

    돕으로 보는 달은, 불과 어제 베란다에서 102GT로 보던, 눈부심으로 보는 걸 포기하게 만들었던, 달과는 달리 생각보다 어둡다. 

    19:20 카메라 배터리를 교체 경고가 떠 교체를 한다. 오래 가야할텐데... 얼마나 가려나.. LCD를 계속 켜놓으니 엄청 빨리 닳는 느낌이다.

    19:25 대략 개기식의 시작 사진도 찍어본다. 
    17(1925).jpg


    19:37 강변이다 보니 조금씩 습기가 생기는 것 같아 핫팩으로 도배를 해 이슬에 대비한다. 



    19:40 아이피스 시야에 달 주위에 잔별들이 많이 보인다. 과장을 조금 한다면 토성의 위성들을 보는 느낌, 별들이 마치 달의 달같이 느껴진다. 


    19:42 달의 대부분이 구름에 덮혔다. 다행히도 조금 뒤 구름이 비켜준다. 
    18(1942).jpg



    '그래, 달이 가려졌으니, 메시에를 찾아보자. 뭐 부터 보지? 음... 잘 보일 것? 같은 안드로메다 부터 찾아보자.'

    그런데!!! 안드로메다의 위치를 가늠해보니 나무에 가린다. 
    '추적중인 적도의도 질질 끌고 몇 번이나 이동했는데, 돕은 못할 것도 없지. '

    19:43, 나무를 피해 돕을 질질질 끌어 옮긴다. 
    안드로메다 은하는 파인더로도 잘 보인다. 암시야 장치를 꺼둔 파인더의 십자선이 잘 보일 정도지만 110번까지 다 확인이 가능하다. 

    지난 3월, 메시에 마라톤을 하며 110번을 찾을 때, 
    '이걸 어떻게 봐.' 했던 생각이 나면서 새삼 110의 밝기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광안리 인근의 요트만 경기장에서도 보인다고 하는, 부산 도심에서도 보인 적이 있다는, 베일은 보일까?'


    19:50, O3를 좋아하는 베일을 위해 필터를 장착하고 베일을 찾아본다. 정확하게는 서베일 성운만 찾아본다. 암적응에 전혀 신경을 안 쓴 상태에서도 용의 머리에서 부터 허리에 붙은? 여의주까지는 잘 보인다. 꼬리도 슬쩍 모습을 드러낸다. 


    19:54, 식심의 달과 천왕성도 찍어본다.
    19(1954).jpg



    19:55 밝은 부분이 돌아가는게 신기하다. 왼쪽으로 돌아간다.
    20(1955,돌아감).jpg
    *19:25, 19:55


    21(anim).gif
    * 가림의 순간 애니메이션, 19:29 ~ 20:24



    20:02 잠시 시간을 내서 우유와 초코바를 뚝딱한다. 


    20:04 달이 아이피스 시야 밖으로 벗어나도 달빛은 아이피스에서 느껴진다. 평소보다 달이 많이 어둡긴 하지만 달무리를 따라 달을 찾아가기에는 충분한 밝기다. 



    또 정신을 놓고 달을 보고 있다가, 잠시 정신이 든다. 
    'Pease1이 보이지는 않겠지만 M15를 보자. '

    20:18 M15를 찾는다. 8.8mm, 207배에서 길잡이가 되는 별들은 확인이 가능하다. 저기에 있는 저 것이 행성상 성운의 느낌만 들면 되는데, 그게 쉽지 않다. 그래도 쭈욱 훑어본다. Pease1이 있는 곳을 째려본다. 혹시나 하고 배율을 더 올려보지만 6.7mm부터는 조금은 무리다. 

    'Pease1, 너 언젠가 꼭 보고 말거다.'


    달이 갇혀있는 동안 하늘을 열심히 더 훑어본다.

    20:22 달 없는 좋은 날에는 안드로메다도 육안으로 보이고 은하수도 살짝 보이는 관측지이지만, 달이 가려지긴 했지만, 지금 여기에서 안드로메다는 맨눈으로 보이지 않는다. 페르세우스 이중성단도 마찬가지이다. 


    다시 달로 눈을 돌린다. 


    20:24 개시식의 끝물이다. 좌상단(거의 좌측)이 밝아짐이 느껴진다.
    22(2024).jpg


    20:26 밝은 부분이 볼록해보인다.
    23(2025).jpg
    *20:25


    20:27 나타난다 나타난다. 아까처럼 지구조는 이상하게 맨눈으로 볼 때는 밝은 부분보다 작아보인다. 밝아지는 부분이 지구조보다 더 크게 부풀어져 보이는 느낌이다. 
    24(2027).jpg

    이때, 와이프에게 전화가 온다. 

    '아, 오기로 했었지.'
    이제야 같이 보기로 한 게 생각이 난다. 
    아내는 달 보러 애들 둘 챙겨서 나오는 건 힘들다고 느꼈는지, 집에 있기로 하고 대신 아침 일찍부터 애를 봐달라고 한다. 지금 기분으로는 내일 아침 일찍부터 애들이랑 놀고 밤에 잘 때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응, 걱정마. 내일은 내가 다 할게."

    어느 순간부터 의도적으로 천왕성과 달을 함께 찍고 있었는데 이제는 화각에 넣기가 아슬아슬하다. 천왕성은 이제 보내준다.


    20:30 달은 다시 조금씩 제 빛을 찾아가는데, 맨눈으로 봤을 때는 밝아지는 곳의 반대편은 조금 더 어두워진 느낌이다. 착시겠지?
    25(2030).jpg



    20:32 밝은부분 외에도 우하단을 제외한 부분은 테두리가 더 밝은 것이 시골스런 여중생의 머리카락 모양같다는 생각이 든다. 
    26(2032,여중생).jpg



    20:36 이제 6의 1정도 차오른 느낌이다.
    27(2036).jpg



    20:38 초점이 꽤 나가있었다는 걸 처음으로 확인한다. ^^;;
    28(2038).jpg



    20:39 달이 먹힐때보다 달이 더 올라와서 그런지 확 밝다. 하늘도 점점 밝아진다. 여왕의 귀환같다는 느낌이 든다. 


    20:40 배터리가 사망한다. 아까 방전때까지는 쓰지 않고 조금 남은 배터리로 교체해 발악해본다. 
    29(2040).jpg
    *20:51


    20:50 더 밝아지기 전에 딥스카이! 

    57번을 본다. 
    '57번은 역시 그냥 독한 녀석이군.'
    마지막으로 본 딥스카이 대상은 다시 볼 계획이 있었던 71번, 8.8mm를 꼽고 조금 째려보니 가장 궁금했던 별 행성상 성운의 위치가 확인된다. 속이 다 시원하다. 

    20:59 달이 반 정도 차올랐을 때도 먹힐 때와 같이 지구조 부분이 맨눈으로 또 더 작게보인다. 이거 도대체 왜 이럴까? 16인치로 보는 달도 위상이 많이 달라져있다. 먹힐 때는 생각보다 많이 어두웠다면 지금은 눈이 시려서 오래 보지 못할 지경이다.
     
    보관만 하고 있던 묻지마 필터를 꼽아보아도 뭐 비슷하다. 편광필터를 하나 장만해야겠다.



    21:04 발악 시켰던 배터리까지 모든 카메라 배터리가 사망한다. 카메라를 치우고 4인치 굴절에 8.8mm를 꼽아 대략 80배로 달을 가리킨다. 16인치와 4인치는 분명 분해능에서 차이가 난다. 16인치가 디테일한 부분이 더 잘 보인다. 밝기는 16인치가 더 밝긴했지만 4인치도 충분히... 눈이 부실 정도로는 밝다. 

    30(2104-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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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식 마지막 사진, 21:00


    21:09 3분의 2쯤 찬 달... 먹힐 때 보던 밝은 부분의 황달기가 많이 사라졌다. 밝기는 비교도 안된다. 4인치 8.8mm로도 엄청나게 밝다.

    21:10 밝아서 그런지, 먹힐 때보다 망원경으로 보는 달 맛은 확실히 압도적이다.

    21:11 누군가 오셨다. 근처에는 차 몇대가 왔다 가긴 했지만 관측하는 칸(?)으로 들어온 건 처음이다. 

    21:13 눈이 너무 부시다.. ;; 반영식 중일텐데..도 무시무시하게 밝다.

    21:18 관측지를 찾으신 분께 망원경 속 달을 보여주시니 아주 신기해하신다.

    21:21 거의 8분의 1정도만 남았다.

    21:26 몇 번 보시더니 "눈 되게 부시네."라는 말을 남기시고 차로 가신다. 그림자가 조금씩 걷히는 모습이 참으로 묘하다. 토끼의 긴 귀가 조금씩 조금씩 밝아진다. 

    21:27 이제 거의 끝물로 보인다. 눈 빠져보자.

    21:35 진짜 눈 빠질 뻔 했다. 개기식 종료 몇분 전부터는 아이피스로는 변화를 감지하기가 힘들다. 그나마 파인더로 보는 모습은 조금 나아서, 마지막은 파인더로만 쳐다본다. 

    21:37 파인더로도 변화를 느끼기 쉽지 않을 걸 보니 부분식은 종료된 것 같은데, 아직도 파인더에서 테두리의 밝기가 완전히 일정한 느낌은 아니다. 토끼의 귀 끝 부분의 테두리가 다른 부분보다 차이나게 어둡다.  
    32(테두리).jpg


    21:45 아까 보다는 토끼 귀 끝 테두리가 다른 영역과 밝기가 비슷해진다. 이제 더 눈을 혹사시키기가 어렵다. 망원경 관측 종료 선언!

    망원경에서 눈을 떼고 관측지를 둘러보니 아주 환하다. 아이피스의 mm수는 물론, 성도까지, 라이트가 필요없다. 그림자도 가로등 근처에 있는 것 같이 선명하다. 


    작은곰자리는 원래 그랬던 것 같이 별 세개를 남기고 다른 별들을 꺼놓았다. 

    장비를 치우고 달을 올려다 보는데, 의아스러운 생각이 든다. 

    '달이 이렇게나 밝았나?'


    너무 밝아서 달을 쳐다봐도 바로 바다가 안 보인다. 암적응이 아니라 그 반대의 적응이 필요하다. 
    33(암적응반대).jpg



    밝은 달님을 보고 있는데, 툭툭 털고 쉽게 떠나지 못하겠다. 참 많은 여운이 남는다. 


    태양과 지구, 달을 가지고 별의 별 생각을 다 해본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 국가대표와 그의 상비군으로, 삼각관계에 있는 연인으로, 명나라 세종대왕 훈민정음 등으로 빗대어 생각도 해보고...

    '태양에서는 지구 뒤로 달이 숨는 달식(?)이겠지?
    달에서는 지구가 태양을 가리는 일식이겠지? 
    내 생애가 끝나기 전에 달여행을 갈 수 있다면, 꼭 지구가 태양을 가리는 일식을 보고 싶다.'
    태양과 달에서는 어떻게 보일까 생각도 해보고...

    '달도 잠시 쉴 수 있으니깐 좋았을거야, 아니야 빛을 잃어서 싫었을거야.'
    달은 좋을까 싫을까 생각도 해보고...

    '고도가 낮아 원래 어두웠던 빛마저 점점 먹히는 것이 
     잃을 땐 지푸라기라도 붙잡으려 애쓰는 것 같이...

     개기식 때 밝은 부분이 회전하는 것이
     밑바닥을 쳤을 땐 비비꼬며 발악하는 것 같이...

     차오를 때 매우 밝게 빛나는 것이
     가질 땐 눈이 먼 사람처럼 냉정한 것 같이...'
    사람살이에 대해 생각도 해보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지만 

    '이건 적어도 나는 빗댈 수도, 표현할 수도 없지만 어쨌든 행복과 비슷한 모든 종류의 단어를 다 가져다 붙인 것같이 난 지금 너무 좋아.' 로 결론을 낸다. 

    이렇게 결론을 내고 나니 새삼 행복하고 세상이 아름답게 느껴지고, 마지막엔 조금 쌩뚱맞지만... 다음 날이 한글날이기 때문이겠지만... 세종대왕님께 감사하다는 생각까지 다 든다. 

    관측을 마치고 돌아올 때 차에서 드는 느낌으로 그 날 관측의 전체적인 감상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엉덩이가 들썩이고 이 감동을 전하기 위해 전화기를 드는 것을 봐서는.. 적어도 지난 3월 처음으로 메시에 마라톤을 했던 때 정도는 되는 것 같은 즐거운 관측이었다. 


    * 조금씩 조금씩 관측기를 쓰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이걸 어떻게 표현하지?' 였다. 제대로 감상을 못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보면 먹히고 가리고 돌고 차고의 단순한 과정인데, 쉽게 볼 수 없다는 점 때문인지 뭣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경이? 황홀? 그 어떤 단어로도, 어떤 비유로도 표현해내지를 못하겠다. 

    그래서 그런지 사진을 만지작 거릴 때도 카메라가 찍어 놓은 사진에 손대기가 주저스럽다. 

    다음에 다른 상황에서 이런 비슷한 느낌이 들면 그냥 '개기월식 같다.'라고 표현해야겠다.

    그래도 확실한 건 좋았다는 것! 아주 행복한 관측이었다는 것! 어서 내년 4월이 왔으면 좋겠다는 것! 

    내년 관측은 주말에다 시간도 괜찮으니 좋은 관측지에서 다시 만나자, 지구 그림자를 먹었다 뱉는 달아!

    * 마지막으로 개기월식 과정 사진
    34(개기월식과정).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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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서없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댓글 8

  • 조강욱

    2014.10.12 07:47

    주옥같은 관측기록입니다
    야간비행 게시판에 추천 기능이 없는 것이 이리 아쉬울수가 ㅎㅎ
  • 박동현

    2014.10.12 08:53

    감사합니다. 월식 때 무엇을 어떻게 봐야할지 사실 하나도 모르는 상태로 간 것이 오히려 더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

  • 김남희

    2014.10.12 07:58

    개기월식때의 생생한 감동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글도 참 잘쓰시네요...
    무서운 관측자라는 생각이 불현듯 듭니다...ㅎㅎ
  • 박동현

    2014.10.12 09:11

    글은 잘 못 쓰고, 기복도 심해서, 부끄럽습니다. ^^; 

    아시겠지만 저는 전혀 무서운? 관측자는 아닙니다.  

    보이는 모습에서 어떤 모양을 떠올리고는 싶은데 잘 안될 때 생각나는 몇 분 중 한 분이십니다.

    김남희님의 그림 그리기 신공이 저는 무섭?습니다. ^^ 

  • Profile

    김태환

    2014.10.13 18:42

    정말 제대로된 관측 기록이네요~~
  • 박동현

    2014.10.14 22:48

    부끄럽습니다. ^^;

  • 김민회

    2014.10.14 02:16

    멋진 단편입니다. 시~도 보이구요.이쁜 달덩어린 말할것도 없구요. 같은 날 저는 서울, 님은 부산에서 본 것인 데, 저는 한 줄의 시도 건지지 못했습니다.
  • 박동현

    2014.10.14 22:51

    시라고 할 것 까진 없는데 감사합니다. 덕분에 월식이 소재인 시들을 몇 편 찾아 읽어봤습니다. 시인들은 월식을 보면서 돌아가신 아버지, 과부인 누나, 늘 가까이에 있었던 여인, 어머니 등 다양한 대상을 떠올렸었네요. 시인은 시인인가 봅니다. 한결같이 좋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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