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측기 & 관측제안 ~☆+

  • 그깟 별보기 - 남천의 구상성단
  • 조회 수: 45, 2022-06-11 19:12:08(2022-06-06)

  • 5월 2일 월요일, 
    연일 계속되는 비와 구름으로 주말도 월령도 그냥 지나가고 있었다.
    금단증상으로 안절부절 불안초조 하다가 월령의 끝자락.. 월요일 밤이 그래도 가망이 있을 것 같아서
    월요일 정오쯤, 지난 월령에 관측지에서 만난 Bryan 할아버지에게 연락했다
    “저 기억나시죠? 오늘 밤에 갈께요”
    “어 물론. 근데 날씨가 요즘 안좋은데”
    “저녁 예보가 괜찮아요”
    “지금 하늘에도 구름 많아”

    내내 흐리다가 월요일 밤에 살짝 맑아지는 날씨였는데,
    아무래도 이 형님은 별 볼 때 일기예보를 전혀 보지 않는 것 같다
    현관문 열고 나오면 SQM 21.7의 관측지인데 미래 날씨 따위에 무슨 관심이 있을까.
    (한국 최고의 관측지들은 SQM 21.4~5가 나온다)

    업무를 마치고 Te Arai로 출발해서
    2시간만에 브라이언 할아버지 집 앞에 도착했다. 
    시골집치고는 앞마당이 좀 좁고 높은 나무들이 있어서 시야는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개인 관측지가 웬말인가! 
    연초에 Tapora의 한국교민 농장 관측지를 잃은 이후 (농장을 매매하심.. ㅜ_ㅜ)
    또다시 떠돌아 다닐 생각을 했었는데 
    생각지도 않게 귀인을 만나서 다시 안전한 관측지를 얻었다.

    하늘을 구름과 맑은 하늘이 반반씩 섞여서 흘러간다.
    구름이 더 걷히기를 기다리며 천천히 세팅을 하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물어보았다
    “근데 와이프님은 집에 안계세요?”
    “아 약속 있어서 나갔는데 좀 있다가 올거야”
    “저 오는거 알고 계시죠?”
    “아니”

    헐헐.. 이런 상남자 형님..

    트럭 운전을 하는 브라이언은 70세가 가까워보이는 연세에도 
    뉴질랜드 전국을 냉동 트럭을 타고 배송을 다니면서 별을 보신다고 한다
    일견 부러워보이면서도, 운전을 즐기지 않는 나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하늘은 기다려도 좀처럼 시원하게 맑아지지 않는다
    급기야 소나기가 내려서 밤 11시쯤엔 망원경을 비닐로 씌워놓고 집 안으로 피신.
    의도치 않게 민폐를 끼치며 심야에 남의 집 집구경도 좀 하고
    30분쯤 지나 빗소리가 잦아들어서 나가보니 그제서야 조금씩 구름이 걷힌다.

    계절상 저녁에만 볼 수 있었던 LMC는 이미 안녕.
    유일한 계획은 망가졌고.. 오늘은 뭘 볼까? 
    전 하늘 Top 10 구상성단 스케치 완성을 위해 No. 5인 공작새자리(Pavo) NGC 6752로 향했다 

    12년 전에 호주에서 처음 보았을 때부터
    떡잎 이파리 두 개가 연상되었던 거대한 스타체인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NGC6752_Skyview.jpg
    출처 : Skyview 사진검색 (사진으로는 안시와 달리 스타체인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계속 들락날락 하던 구름은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완전히 걷혔다
    계획이 맞긴 맞았네. 다만 내일이 화요일이란게 문제..
    아침 되면 새로운 태양이 뜨겠고, 우선 별부터 봐야겠다

    두 시간이 넘도록 열심히 스타체인의 점들을 찍었는데,
    이 크고 복잡한 성단을 마무리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다른 성단들보다 더 복잡하고 인상적인 스타체인들을 대충 찍고 마무리할 수는 없어서..
    그림 한 장을 완성하지 못하고 새벽 3시 반쯤 철수.

    밤을 새고 회사로 바로 출근해서 종일 업무를 보고
    집에 와서 다시 보니 남쪽과 북쪽의 스타체인을 각각은 잘 그렸는데
    두 스타체인의 크기 비례가 전혀 맞지 않는다 (하나는 너무 크게, 하나는 너무 작게..)
    이걸 어떻게 살리나.. 고민 고민 하다가
    다시 그리는 것으로 했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대상을 스케치 전에 사전 관측(?) 했으니
    의미 없는 일은 아니었을 거라고 정신 승리를 하며..


    다음 월령, 5월 27일 금요일. 
    컨디션 관리 문제로 주중에는 관측을 안 나가고 싶은데 
    언제나 그렇듯 하늘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번 월령 유일한 기회일 듯한 금요일 밤을 잡기 위해
    퇴근하고 집에서 밥을 먹자마자 침대에 누워 1시간이 넘게 억지로 눈을 붙이고 출발.
    브라이언 형님이 계신 오클랜드 북쪽 지역은 예보상 별로 가망이 없어서, 
    평소에는 잘 가지 않는 오클랜드 남쪽의 예비 관측지로 향했다

    SQM 21.7을 넘나드는 관측지를 다니며 높아진 눈은 
    21.0이 겨우 나오는 밝은 하늘에 만족이 되지 않지만
    꽝보다는 십만배쯤 낫겠지

    파도도 치지 않는 고요한 바닷가에 망경을 펼치고 
    요즘 핫한 M60 옆의 초신성부터 서둘러 찾아 보았으나
    이미 불이 꺼져 버렸다.
    사진으로는 아직 나올 것 같은데 16인치 안시로는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간만에 불구경 좀 하나 했는데.. ㅜ_ㅜ

    초신성은 잊어버리고, 원래 계획했던 NGC6752 성단이라도 열심히 봐야지
    두시간여의 시간과 노력을 초기화하고 
    이 복잡한 아이를 처음부터 다시 그리려니 오만 생각이 다 든다
    이 힘든 일을 왜?

    얼마 전에 야구게임 광고에서 들었던 멘트가 생각났다
    ‘다 때려친다꼬 다신 야구 안본다꼬.. 니 작년에도 그랬데이
    그깟 공놀이가 뭐라꼬.. 그래 그깟 공놀이, 할 거면 제대로 놀아보자’ 

    나는 야구게임과는 거리가 멀지만 광고멘트는 이상하게 계속 생각이 난다
    별이 대체 뭐라고.. 그깟 성단 하나, 그릴 거면 제대로 그려보자

    새벽 5시, 날이 밝아올 때까지 다시 온 정신을 집중해서 스타체인을 만들고
    조금만 힘 주면 부러질 것 같은 0.18mm짜리 얇은 펜을 들고 무자비하게 점을 찍어서
    성단 중심부까지 완성했다

    NGC6752_Ori_220528.jpg
    (재료 : 검은 종이, 흰색 펜, 파스텔 펜슬)


    해외에 나와서까지 그깟 공놀이를 잊지 못하고 밤마다 LG 야구중계를 찾아보는데
    해외에 나와 사는 유일한 목적인 별보기는.. 할 거면 제대로 해봐야겠지

    6752의 가장 큰 특징인 Outer Star Chain, 거대한 떡잎 두 장은 한땀 한땀 집중해서 만들다 보니
    사실은 이파리가 세 장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중심부는 잔별들이 촘촘하게 밀집되어 있어서 Inner Star Chain이라고 부를만한 구조가 사실 보이지 않는데, 그 대신 미성들이 모여있는 모습이 방사형으로 퍼져가는 것이 아니라 
    삐쭉삐쭉 튀어나온 모양으로 보이는 것도 매우 특이한 대상이다

    NGC6752_Des_220528.jpg

    지난번 관측에서 2시간, 이번 관측에서 4시간. 도합 6시간을 6752번을 보고서
    장비를 정리하고 있는데 하늘 색이 너무 예쁘다
    저녁 하늘색은 많이 보고 그려 보았지만 새벽녘의 첫 빛더미들은 
    항상 장비 정리하느라, 또는 에너지 방전으로 지쳐서 많이 보지 못했다
    달이 떠오른 가운데 어둠을 걷어올리는 색들이 너무 예뻐서
    장비 정리하며 틈틈이 그림을 한 장씩 남겼다

    First Light #1 28 May 2022.png

    First Light #2 28 May 2022.png

    First Light #3 28 May 2022.png

    First Light #4 28 May 2022.png

    현장에서는 한 10분에 한 번씩 주요 색들만 남겨 놓고 
    집에 와서 몇날 며칠을 다듬어서 짧은 동영상을 하나 만들고
    https://nightwid.files.wordpress.com/2022/06/first-lights-28-may-2022-4.mp4

    구상성단도 시간을 더 들여서 마무리..

    별쟁이들을 제외하고는, 그게 뭔데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냐는 얘기를 30년 가까이 들어오고 있다
    그깟 별보기.. 할 거면 끝까지 해보자

    ball.jpg
    출처 : 슬램덩크, (강백호가 소연이에게 차였다고 혼자 생각하고 분노하는 장면)




    Nightwid.com 無雲

댓글 2

  • 최윤호

    2022.06.10 11:23

    호주에 가서 여실히 느낀것 중에 하나가 바로 남반구의 구상성단이 더 화려하다였지요. 저는 아직도 제일 기억나는 장면은 47 Tucanae의 중심부 입니다. 저는 아직도 그것을 떠올리면 뭔가 비 현실적입니다.
  • 조강욱

    2022.06.11 19:12

    십몇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게 기억이 난다니.. ㅎㅎ

    Tuc 47의 중심부는.. 구상성단 중에 단연 최고라고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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