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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오로라 - 2) 진짜를 찾아서
  • 김병수
    조회 수: 15505, 2017-03-05 02:36:42(2017-01-20)
  • 정오가 다 되어서 일어났다.

    커텐을 걷어 보니 구름이 한 가득이다... 부랴 부랴 인터넷으로 오늘 날씨를 검색해 본다.

    "Mostly cloudy with a few shower..."

    위성 사진에는 한반도보다 큰 구름이 알버타주를 꽉 채우고 있다.

     

    오로라 예보는 어제보다 더 좋아서 Kp=4 에서 5까지 왔다 갔다 한다.

    참고로, Kp는 오로라가 강하게 보이는 정도를 0~9로 구분한 것으로, 조용한 날은 0~1 정도이지만 한 달에 한 두번 4~5 까지 올라간다.

    하지만, 아무리 엄청난 오로라가 생겼어도 구름을 뚫고 볼 수는 없는 법.

    여기까지 이 고생을 해서 왔는데 꽝이라니... 머릿 속이 하얘진다.

    마음을 가다듬고 자세히 일기예보를 뒤져본다.

    이 지역의 구름 방향은 서에서 동쪽으로 흘러간다. 여기서 기다려 봤자 서쪽 구름들이 몰려올 것 같다.

    하지만 북쪽으로 많이 올라가면 구름을 피할 수 있을것 같다.

    그래 가자... 진인사 대천명!

     

    기름을 가득 채우고 북쪽으로 악셀을 밟는다. 목표는 옐로우나이프... 그런데 700km가 넘는 거리라 해지기 전까지 도착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해질녘 부터는 야생동물들이 돌아다녀서 로드킬의 위험이 크다. 가는 데 까지 가서 한적한 곳을 찾아 노숙을 하기로 한다.

     

    얼마 후 알버타 주와 Northwest Territories의 경계선인 북위 60도선을 넘는다.

    이 길로 쭉 따라 올라가면 알래스카가 나온다고 한다.

    하늘에는 아직도 구름이 한 가득이다.


    왼쪽으로 이번 여행에서 우리의 발이 되어준 SUV가 보인다.

    고장 한 번 안나고, 때로는 식당이 되어주고 때로는 호텔이 되어준 고마운 녀석이다.

     

    Northwest Territories는 인구가 작아서 'state'가 아니라 'territories'라고 부른다.

    면적은 남한의 12배이지만, 인구는 4만명 밖에 안 된다. 그 4만명 중 2만명이 옐로우나이프에 몰려 산다고 한다.

    옐로우나이프를 제외한 지역의 인구밀도를 따져보니, 서울시 면적에 10명이 사는 꼴이다.

     

    사람은 없지만, 동물은 많다.

    멀리서 꼬물대는 것이, 소떼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 가보니 수십마리의 야생 버팔로(Bison)이다.

     

     

    숫컷 엘크가 한껏 뿔을 뽐내며 영역을 지킨다. 짝짓기 계절이라 수컷은 아주 예민해져 있다. 가까이 가는 것이 위험해 보여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창문으로만 구경했다. 이 수컷은 우리가 불편했는지 거칠게 숨을 내쉬며 경고를 했다.

    결국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차로 달려들었고, 우리는 부리나케 달아났다.

     

    얼마를 달린 후, 알래스카행 도로로 부터 Yellowknife 쪽으로 우회전 했다. 이런 외진 곳에 왜 포장도로를 만들었는지 궁금할 정도로 차가 없다. 이 길로 들어서서는 같은 방향의 차는 단 한대도 못 봤고, 마주 오는 차도 거의 없다. 내 눈이 닿는 곳까지 똑바르게 길이 이어져 있다.

    차가 전혀 없으니 150km/h로 신나게 달려도 안전하다. 가끔씩 어슬렁거리는 동물들만 조심하면 된다.

    해가 점점 기울어 지면서, 구름 사이로 조금씩 파란 하늘이 보인다. 

    대박 하늘의 기대가 부푼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기름이 없다.

    사실 2시간쯤 전에 주유소 표지가 나왔었다. 큰 도로에서 10km쯤 꺽어 들어가면 마을에 주유소가 있다는 표지였다. 하지만, 그때는 기름이 반 이상 남아 있었고, 왕복 20km를 들어갔다 나오면 너무 늦어질 것 같아서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그 이후로는 아무런 문명의 흔적이 없다. 나의 잘못된 판단이었다.

    계기판의 range를 보니, 남은 기름으로는 옐로우나이프까지는 못 간다. 

    만약 이 길에서 기름이 떨어지면? 

    전화는 아까부터 먹통이다. 이제 오로라보다 살아 돌아가는 것이 걱정된다.

    시속 80km 정속 주행을 하기로 했다. 남은 기름으로 갈 수 있는 range가 조금 늘어났다. 그래도 옐로우나이프까지는 못 갈 것 같다.

     

    정말로 기름바늘이 바닥에 닿았을 때쯤, 드디어 갈라지는 길이 나왔다. 작은 길로 들어가니 외딴 집앞에 사람이 보인다. 용기를 내어서 말을 걸었다. 험상궂은 현지인에게 최대한 공손하게 사정얘기를 했다. 퉁명스러운 말투로, 큰 도로에서 조금 더 가서 좌회전하고 비포장으로 10km를 더 들어가면 마을이 나오는데 거기 주유소가 있다고 한다. 원래 계획은 기름을 조금만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는데, 인상이 너무 안 좋다. 이 지역 사람들은 총을 들고 다닌다고 들었던 것이 기억났다.

    일단 가 보자. 정 안 되면 걸어가서 기름 사오면 되지...

     

    마음을 졸이면서, 브레이크 안 밟기 신공을 발휘하여, 겨우 Behchoko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부랴 부랴 기름을 넣고 보니,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모두 인디언들이다... 우리는 인디언 마을 한가운데 들어간 것이다.

    이미 해는 넘어가서 Yellowknife까지는 못갈 것 같다. 그래도 이 마을에서 밤을 샐 수는 없다. 이방인을 경계하는 눈빛이 따갑다.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 일단 큰 길로 나가서 빨리 야영지를 찾아야 한다.

     

    큰 길로 나가기 바로 전... 허름한 표지판에 '좌회전하면 Russell lake'라고 써있다. 잠시 고민 후 마지막 운을 여기서 시험해 본다.

    울퉁불퉁한 험로를 한참 들어가니 막다른 길에 호수가 나온다.


    우리가 찾던, 바로 그런 장소가 나타났다... 심봤다!


    호수가에는 아무런 인적이 없다.

    불을 피웠던 흔적은 있지만, 이 시간에 누가 올 것 같지도 않다.

     

    주변 지형을 둘러 봤다.

    전형적인 화강암 outcrop이 여기 저기 있다.

    아... 여기가 말로만 듣던 Canadian shield이구나.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암석이 드러나 있는 곳 중 하나이다.

    지금 내가 밟고 있는 이 화강암 언덕도 아마 30억년 쯤 되었을 것이다.

     

    호수 건너편도 온통 화강암 덩어리이다. 호수 바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수십억년 전, 땅속의 마그마가 식어서 만들어진 암석이다. 위를 덮고 있던 땅이 모두 깎여 나가면서 이제 군데 군데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서호주에서 보았던 33억년 된 화강암 노두와 똑같이 생겼다. 사실 30억년 전에는 서호주와 여기가 붙어 있었다고 한다.

    영겁의 세월이 흐른 후... 2만년 전, 이 지역은 엄청난 두께의 얼음으로 덮여 있었다. 빙하의 무게가 화강암을 여기저기 눌러서 깎았을 것이다.

    빙기가 끝나면서 얼음은 녹고 그 자리에 수천년동안 빗물이 고여 지금의 호수를 만들었다.

     

    북쪽에 사는 새벽의 여신을 영접하기에 완벽한 세팅이다.  

    하지만, 아직도 구름은 하늘을 반 이상 가리고 있다.

     

     

     

     

    북쪽땅은 여명이 길다.

    해는 아까 아까 넘어갔고, 자정이 다가오는데도 아직 잔빛이 남아 있다.

    고맙게도 구름은 점점 걷혀가고 있다.

     



    그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소리가 터져 나온다.

    "와아.... 오로라"

      

     

    아직 날이 캄캄하지 않은데도 선명한 오로라가 대지를 가르면서 나타났다.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머리 위 하늘을 완전히 감싸고 있다. 호수에 비친 빛은 더욱 비현실적이다.

    이윽고 초록색 줄무늬들이 붙었다 떨어졌다 하면서 너울거린다.

     

    진짜가 나타났다...

     

     


     




     

     


     



     

     


     






     

     

     

     

     

     

     


     

댓글 2

  • 류혁

    2017.01.20 00:36

    얼마 전 천문인마을 JP정 선생의 이야기를 들은 바도 있고 그래서... 오로라를 보러가면 어떨까 생각해보곤 했는데....

    정말 꼭 한번은 보러 가야겠네요. 흥미진진합니다. 재미있는 연재 많이 올려주세요.
  • 김남희

    2017.01.20 09:10

    글을 참 맛깔나게 쓰십니다.ㅎ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뽐뿌만 잔뜩 받습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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