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측기 & 관측제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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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욱


뉴질랜드는 며칠 전, 3월 26일 자정을 기해 전국에 Lock Down이 발령되어 
전국민이 거의 모든 직장과 사업을 멈추고 집에서 최소 4주간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한국이나 유럽처럼 이미 코로나가 퍼져서 심각한 상황이 아님에도
선제적인 초강수라고 할까?
한국 같으면 생계대책 마련하라고 난리가 났을 이 엄청난 일이
별다른 소동도 군소리도 없이 일사분란하게 단 이틀만에 착착 진행되어 (군대인줄..)
앞으로 최소 한달 이상은 의료, 식품, 치안, 기간설비 등 생존에 필수적인 업종을 제외하고는
전국이 모두 문을 닫고 집안에서만 지내고 있다.

이 와중에 식품업계에 근무하는 나는 텅빈 하이웨이를 달려서 
인적 없는 낯설은 풍경을 지나 회사에 출근해서 
평소보다 더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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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교사로 근무하는 와이프님은 직장이 폐쇄되어 집에서 자가격리 중이고 
온라인 스쿨링을 빙자해서 집안을 굴러다니는 딸래미도 살짝은 부럽기도 하지만 
이 사회에 무언가 기여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 나쁘지는 않다

근데 한가지 큰 문제는 별 보러 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회사 가는 길에도 검문중인 군경에 통행증을 보여줘야 하는데
별보러 간다고 생각없이 나섰다가 검문에 걸리면 현행범으로 체포될지도..
(필수 업종의 업무상 통행 외의 운전은 동네 슈퍼마켓 가는 것 정도가 허용된다)


3월 28일 토요일, 황금 월령의 주말.
하늘이 너무나 맑다
그래봤자 아무데도 못가고.. 

태양망경을 꺼내서 왕건이 홍염을 하나 그렸다
KakaoTalk_20200330_014303042.jpg

간에 기별이 조금.. 갔다
2000_Look Down 28 March 2020.png


별빛중독 금단증상의 아픔을 잊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도 깊이 못 자고 새벽 2시에 눈이 떠졌다
창 밖을 보니 센타우르스와 남십자 별빛들이 초롱초롱..
문득 서울에서 이중성을 보는 윤호씨가 떠올랐다
기왕 일이 이렇게 된거.. 허기라도 달래보자
차고에서 망원경을 꺼내서 뒷마당에 좌판을 펼쳤다

하늘은 보니 전갈자리가 먹음직스럽게 떠올랐다 (남반구라 전갈 고도가 높다)
근데 뭘 보나? 
걱정마 나에게는 윤호씨의 NSOG 이중성 관측기 연재가 있지..
근데 폰으로 야간비행 관측기 게시판을 아무리 뒤져봐도 
윤호씨의 전갈자리 NSOG 관측기록은 찾을 수가 없다

아직 전갈자리 이중성까지는 진도가 안 나갔나보다
하는수 없이 구글에서 대충 검색해보니 전갈자리 대표 이중성들 몇 개가 소개되어 있다
스카이사파리 성도를 한 손에 들고 하나씩..
딱 붙어 있는 아이, 색이 다른 아이, 밝기 대비가 많이 차이나는 아이도 있고..
흠.. 그렇군.. 윤호씨도 이렇게 봤을까?
별 감흥 없이 진도를 빼다가 
전갈자리 더블더블이란 이름이 붙은 아이를 잡았다 (전갈자리 Nu별)

이거”는” 괜찮네!
좀 더 시원하게 보려고 XW 3.5로 457배로 올리니 
굴절도 아닌데 색수차 같은 것이 보여서 불편하다
혹시나 하여 잘 쓰지 않는 조합인 Ethos 8 + Powermate 2.5로 500배를 만들어 보니
오히려 더 잘 보인다.
간만에 계륵 Powermate가 잉여에서 벗어나는 순간.. (천문가의 가방 글 참조)

이런건 그려줘야지. 컬러 표현을 위해 종이 대신 스마트폰 터치펜을 꺼냈다
Nu Scorpii Double Double 29 March 2020.png

이름을 불러주려고 스카이사파리와 여기저기 구글링으로 정보도 넣어 본다
슬라이드2.PNG


근처에 더블더블이 하나 더 있다고 하여.. Xi 별을 호핑으로 찾아가 보았다
얼마만의 호핑인지..

오 이건 조금 다른 느낌이네?
이것도 그려보자
Xi Scorpii Another Double Double 29 March 2020.png

Xi의 A B 두 별이 가까스로 분해가 된다 (1.1초)
거문고자리 원조 따따블이 분해가 되지 않아 눈사람으로만 보던 기억이 난다
거문고의 원조집이 2.3초인데.. 그보다 훨씬 붙어 있는 이중성이다
슬라이드4.PNG

어느새 전갈이 머리 위까지 올라왔다
전갈 궁수의 우리은하 중심부 쪽으로는 동네 가로등불 위에서도 은하수도 희미하고 보이고..
SQM은 평균 19.2 정도. 
지금 관측지에 있었으면 엄청났을텐데.. 

에이 잊자 어려운 시기에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면 안되겠지…
동쪽 하늘에는 목성 화성 토성이 양자리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다
화성은 며칠 전에는 목성에 붙어 있었는데..
Conjunction of Mars and Jupiter_l 22 March 2020.png
촐싹대며 잘도 싸돌아 다닌다. 하루 뒤면 M75와 한 시야에서 보일 것 같다


새벽이 깊어갈수록 시상이 더욱 안정되어 간다.
토성의 디테일에 감복하며.. 견적을 내지 못하여 가볍게 스케치를 포기하고
목성으로 향하니 이건 뭐랄까… 괴이하다고 할만큼 
징그러울 정도로 디테일이 보인다
잘 찍은 사진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지만
원샷으로 찍은 목성보다는 내가 눈으로 보는 것이 훨씬 더 잘 보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정성을 들여서 한줄 한줄.. 그러나 목성이 돌기 전에 신속하게 패턴들을 그려 보았다
그리고 약속된 시간에 목성의 한켠, 대적반 바로 아래에서 
목성 뒤편에 숨어있던 가니메데가 나왔다
작고 하얀 뾰루지가 나왔다가.. 점점 커져서 영롱한 흰 점이 되었다
착시인지, 금성 일면통과의 Black Drop 같은 현상인지 
가니메데가 엄폐를 벗어나는 순간, 
가니메데는 정확한 구형으로 보이지 않고 사방으로 번져 보이고
목성의 옆구리는 살짝 패인 것처럼 느껴진다
Egress of Ganymede 29 March 2020.png

주무시고 계신 두 여자들도 깨워서 그 순간을 함께 하고..
KakaoTalk_20200330_014259998.jpg

집 뒷마당에서 극지용 파카를 입고 나름 바쁘게 하룻밤을 보내다보니
KakaoTalk_20200330_014257229.jpg


어느새 날이 밝았다
오묘한 보랏빛 하늘 아래로 창백한 별이 하나 빛난다. 
직감대로 수성이었다. 아무리 최대 이각이라도 이렇게 높이 떴었나?

놀면 뭐하니. 그려보자
Half Mercury 29 March 2020.png

수성을 망원경으로 본 것은 아마도 처음이 아닐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근데 수성 표면의 알베도가 다른 것인지, 
달의 바다들처럼 수성 표면에 어두운 무늬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안시관측시 수성의 디테일이 보이는게 맞는지 구글에서 정보를 찾아보려고 해도  
프레디 머큐리만 잔뜩 나와서 아직 정확한 정보를 찾지 못했다


수성까지 그리고 아침 7시, 망원경은 정원 데크에 팽개쳐둔채
파란 하늘을 뒤로 유유히 다시 이불 속으로 쏙~!


궁하면 통한다고, 
생전 처음으로 이중성을 메인으로 오랫동안 관측했다.
별 보러 관측지에 갔으면 이중성은 볼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행성도 암적응 버린다고 쳐다도 안봤겠지

코로나 덕분에 아무데도 못가게 되었지만, 
반대로는 자가격리 덕분에 이중성 관측이란 무엇인지 느껴보게 되었다
도시의 수도승 윤호씨가 어떤 느낌으로 서울에서 이중성을 보는지도 조금은 알게 되었고..

밤하늘은 끝이 없다



                              Nightwid 無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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