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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뽀에릭)

2020.02.23-24 문경 용추
  
 아이들 데리고 함께 처가에 내려와 있는 아내 눈치 보느라 일요일 관측은 포기하려고 했습니다만, 초가집 님과 버드나무가지 님이 이틀째 머물고 있는 문경 용추에서 작은 문제가 생겨 겸사겸사 나가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새벽부터 당일 치기로 포항, 경주를 돌고 와야 하는 아내를 대신해 육아에 집중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밤 10시 넘어 음성 펜션을 나섰습니다. 자정 가까운 무렵에는 현동아빠, 나의소원 님도 합류하셨습니다.
 


#01 : 처녀 자리(Vir) 허셜 목록 완주...20여 개의 은하를 주마간산하다.

- NGC 4636, 4643, 4665, 4666, 4753, 4845, 4900, 4546, 4594, 4856, 4697, 4699, 4784, 4958, 4995, 5054, 5363, 5364, 5560, 5566, 5574, 5576, 5577, 5746, 5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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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C 4636 : 출처 Sky view]
 

 주중에 비가 내린다는 예보도 접한 터라 용추에서 기필코 처녀 자리 허셜 목록을 끝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관측을 시작했습니다. 전날 홍천에서 이한솔 님께서 해주신 조언대로 XWA 9mm(200배율)를 은하 관측용 주력 아이피스로 정했습니다. 이날 처음 겨눈 대상은 NGC 4636(4,600만 광년) 은하였는데, 미러 냉각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아 주변 별상이 부어 있었습니다. 은하핵 주변 영역까지 잘 보였지만 보끌레르식 분류 주석에 나와 있는 렌즈형 은하다운 특성(타원+렌즈형)은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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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C 4643 : 출처 Sky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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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C 4665 : 출처 https://images.app.goo.gl/y9kuXWEWTUFVZ5Dv6]
 
 
 NGC 4643(6,700만 광년) 은하는 나선팔의 환영이 어른거렸고, 도립상 기준 은하 아래쪽에 위치한 항성 두 개가 은하를 실 끊긴 연처럼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NGC 4665(4,700만 광년) 은하의 나선팔은 확실히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분류 주석에 나와 있는 막대구조는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선명한 은하핵과 더불어 도립상 우측에 자리잡은 나선팔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나중에 사진과 대조해보라는 메모를 남겼는데, 실제 비교해보니 거대한 호를 그리며 막대 구조를 감싸고 도는 나선팔을 확실히 관측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장에서 직시로 관측한 가장 밝은 영역이 막대구조였다는 사실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허셜 목록 은하에서 기대하기 힘든 호사를 간만에 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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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C 4666 : 출처 Sky view]
 
 
 NGC 4666(4,800만 광년)은 근사한 측면 은하였습니다. 중심핵 좌우로 뻗어나간 은하 단면이 UFO처럼 보였고, 가까운 곳에 위치한 삼중성이 호핑 식별 표지로 눈에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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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C 4753 : 출처 Sky view]
 
 
 렌즈형 불규칙 은하로 분류된 NGC 4753(6,500만 광년)은 허셜 목록 치고는 꽤나 풍만하게 시야에 담겼습니다. 은하핵 주변에 나선팔 비슷한 빛타래들이 얽혀 있는 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불규칙 은하로 분류된 이유는 파악할 길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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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C 4845 : 출처 Sky view]
 
 
 NGC 4845(6,000만 광년)는 어두운 밝기에도 불구하고 길게 뻗어 있는 윤곽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측면 은하였습니다. 분류 주석에 나온 방추형(sp) 모양도 인식 가능했습니다. 기록지에 "문득 방추형 은하를 분류하는 기준이 정면(비스듬한) 형상인지 측면 형상인지 의문"이라는 메모를 남겨뒀는데, 후기 작성할 때 곰곰 따져보니, 암흑물질이 아무리 농간을 부려도 은하의 정면 형상을 방추형으로 만들 방법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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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C 4900 : 출처 Sky view]
 

 NGC 4900(5,100만 광년)은 무척 흥미진진한 은하였습니다. 도립상 기준 좌상단에 항성 하나가 바짝 붙어 있는데, 항성이 전구라면 은하는 부채꼴 비슷한 형상으로 뿜어져 나오는 빛줄기처럼 보였습니다. 기록지에 간략한 스케치를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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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C 4546 : 출처 Sky view]
 
 
 NGC 4546(4,500만 광년)도 꽤나 매력적인 은하였습니다. 은하핵이 또렷한 UFO 형상이었는데, 분류 주석 가운데 막대(SB)'S' 자 구조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렌즈형(O-) 모양은 확실히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문득 이집트 벽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아이라인이 진하게 그려진 눈(eye) 모양이 연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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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C 4856 : 출처 Sky view]
 

 NGC 4594M104 솜브레로 은하의 NGC 명칭이었습니다. 언제 봐도 매력적인 대상이라 날로 먹지 않았습니다. 60mm 스텔라뷰 파인더(10배율)로도 잘 보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솜브레로나 M51 부자 은하가 파인더 시야에 보일 때 하늘 상태를 최상으로 판단합니다. NGC 4856(6,400만 광년) 은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소감을 남겼습니다. "막대구조는 개나 줘라. 나선팔의 환영이 눈에 어른거리는 듯한 오묘한 느낌." 나중에 사진을 찾아 본 결과, 현장에서 느낀 '오묘함''거룩한' 착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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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C 4697 : 출처 Sky view]
 
 NGC 4697(4,000만 광년)은 베테랑 안시 관측가인 조강욱 님 말씀을 빌리자면, 흥미를 유지할 수 있는 심리적 한계선인 6단계(분류 유형 E-6)에 속한 타원은하였습니다. 타원 은하에도 블랙홀 대머리 이론 비슷한 원리를 적용할 수 있을 듯합니다. 모난 구석을 전혀 찾을 수 없는 원숙한 타원 은하의 개성을 논하는 일은, 스님들의 헤어 스타일을 따지는 것만큼 부질없는 짓입니다. 다만 이 은하는 특별했습니다. "타원 은하답지 않게 준수한 풍모. 안드로메다 타입 정상 나선 은하처럼 보임. 조강욱 님 조언(?). 허셜목록 치고는 훌륭한 외관."이라는 소감을 기록해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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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C 4699 : 출처 Sky view]
 

 NGC 4699(7,700만 광년) 은하는 'SAB(rs)b'라는 다소 복잡한 분류 주석을 달고 있습니다. 내부 구조가 전이(rs) 중인 막대 나선은하(SAB)이며, 나선팔의 결속도는 비교적 높다(b)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무척 밝은 은하핵부터 동심원을 이루며 파문처럼 퍼져나가는 은하면의 밝기 차이(농담 차이)가 돋보인다는 메모를 기록지에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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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C 4781, 4784 : 출처 https://images.app.goo.gl/fk1bzndR3xJw9ZqU8]
 
 NGC 4781(4,000만 광년)4784(6,200만 광년) 은하와 한 시야에 잡혔습니다. 4781은 도립상 좌측에 늘어서 있는 항성 세 개와 붙어 있는데, 비록 어둡지만 매끈한 유선형으로 보였습니다. 은하핵은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4784는 매우 작고 흐릿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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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C 4958 : 출처 Sky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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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C 4995 : 출처 Sky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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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C 5054 : 출처 Sky view]
 
 NGC 4958(6,400만 광년)은하는 방추형 모양이 확연했습니다. 은하핵을 둘러싼 쌀알 모양의 은하면은비록 좁은 면적이지만, 무척 단단하게 뭉쳐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야무진 은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피카 주변에 위치한 NGC 4995(9,200만 광년) 은하는 매우 어둡고 흐릿했습니다. 처음 시야에 들어왔을 때는 M97 올빼미 성운과 비슷한 형상이었지만, 계속 주시할수록 불규칙한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SAB(rs):b'라는 장황한 분류 주석에 따르면 내부 구조가 전이 중이고 나선팔의 결속도도 비교적 강한 막대 나선 은하입니다만, 콜론(:) 기호가 붙어 있는 은하라 분류가 확실치 않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보끌레르식 분류 기호 가운데 콜론(uncertainty regarding classification)과 물음표(doubt regarding classification)의 차이를 아직까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의심'스러우면 '불확실'하다고 판단하고, '불확실'하면 다른 가능성을 '의심'하게 마련인데, 둘 사이에 어떤 의미론적 차이가 있는지 도통 알 길이 없습니다. NGC 5054(4,900만 광년) 은하는 너무 흐릿하고 불규칙한 형상이라 대구경이 아니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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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C 5363, 5364 : 출처 https://images.app.goo.gl/svZ26Cd18w1itZ5D6]
 

 NGC 5363(6,000만 광년), 5364(5,100만 광년) 은하도 한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불규칙 렌즈형 은하가 의심된다는 분류 주석(IO?)을 달고 있는 5363, 무척 밝고 정원(正圓)에 가까운 타원 은하처럼 보였습니다. 핵도 항성처럼 또렷했습니다. 크기는 작아도 메시에급 위용이었습니다. 5364 은하는 상대적으로 많이 흐릿하고 넓게 퍼진 형상으로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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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C 5566, 5560 : 출처 https://images.app.goo.gl/svZ26Cd18w1itZ5D6]
 
 
 NGC 5566(6,600만 광년) 은하는 매우 밝고 또렷한 원형에 가까웠습니다. 나중에 사진을 찾아 보니 6,600만 광년 거리를 날아오는 동안 상대적으로 어두운 나선팔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은하 중심에 있는 링 구조만 겨우 광도를 유지한 모양입니다. NGC 5560(8,800만 광년) 은하도 한 시야에 잡혔는데, 흡사 솜브레로 은하를 1/20 정도 어둡게 만든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사진에서는 특이하게 'S' 자 형태로 휘어 있는 은하 단면이 보이지만, 18인치 돕소니언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웠습니다. 미리 알고 오래 들여다봤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은하도 측면에서 보면 'S' 자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최신 연구 결과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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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C 5576, 5574, 5577 : 출처 https://images.app.goo.gl/xD6PFH8P57bhByVV9]
 

 NGC 5576(8,200만 광년) 은하는 5574(7,700만 광년), 5577(6,300만 광년) 은하와 한 시야에 담겼습니다. 타원(E3) 은하라 개성은 없었지만 5576이 가장 밝았고, 5574는 좌측 상단에 작은 크기로 보였습니다. 5576 하단에 삼각형을 이룬 항성 세 개가 호핑 이정표로 적당해 보였습니다. 우측 하단에 위치한 5577 은하는 앞선 두 은하에 비해 유선형으로 넓게 퍼져 있었습니다. 기록지에 간략한 스케치를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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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C 5746 : 출처 Sky view]
 

 처녀 자리 허셜 목록을 정리한 네 번째 계획서를 꺼내들었습니다. 그날따라 용추 밤하늘 배경이 살짝 밝아서 의아스러웠는데, 다행히 밤이 깊어질수록 투명도와 시상이 무척 좋아져서 피곤한 줄 모르고 관측에 열중할 수 있었습니다.
 
 NGC 5746(8,800만 광년) 은하는 우아하고 고혹적인 모습으로 눈에 들어왔습니다. 전체적으로 어두웠지만 먹지 위에 목탄으로 스케치한 듯한 특유의 잿빛 색감이 무척 기품있게 보였고, 형상도 날렵한 측면 은하였습니다. 은하에도 신분이 있다면 틀림없이 귀족이었을 것입니다. 문득 스케치하고 싶은 충동이 생길 만큼 매력적인 대상이었습니다. 'SAB(rs)b? sp'라는 복잡다난한 분류 주석이 달려 있지만, 허셜 목록을 감상하는 안시 관측자에게 딱히 유용한 정보는 아니라는 점을 지난 경험을 통해 충분히 깨우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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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C 5846 : 출처 https://images.app.goo.gl/SQkLaQKSGD1jr556A]
 
 NGC 5846(8,000만 광년) 은하도 지난 이틀간 관측한 은하들 가운데 손에 꼽을 만큼 매력적이었습니다. 너무 작아서 답답했지만, 곰발바닥 은하처럼 은하 내부에서 정체 모를 굴곡과 질감이 느껴졌습니다. 사진과 대조해보니 은하 면적과 겹쳐진 항성 두 개가 원인으로 판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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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C 5634 : 출처 https://images.app.goo.gl/rqK473xcN1Fzds9B7]
 

 NGC 5634(82천 광년)는 처녀 자리 허셜 목록 가운데 유일한 구상성단입니다. 다음과 같은 소감을 기록지에 남겼습니다. "행성상 성운처럼 사연 있는 몸체. 파란빛이 감도는 독특한 느낌의 성단." 10만 광년에 근접하는 거리를 극복하고 구상성단 내부의 디테일을 확인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처녀 자리 허셜 목록을 마무리한 시각은 새벽 네 시 무렵이었습니다.
 
 

#02 : 머리털 자리(Vir) 은하단 유랑
 
 - NGC 4448, 4559, 4725, 4712, 4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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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C 4448 : 출처 Sky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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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C 4559 : 출처 Sky 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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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images.app.goo.gl/8YA2DXKZNVXgpEPS9]
 
 
 
 머리털 자리에 속한 허셜 목록도 스무 개가 넘습니다. 주마간산의 극한을 추구해도 날이 밝기 전에 마무리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 일단 발만 들여놓기로 결심했습니다. NGC 4448(7,800만 광년)은 핵이 선명하게 보이는 솜브레로 비슷한 측면 은하였고, NGC 4559(2,300만 광년)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 때문인지 세심하게 들여다볼 디테일이 풍부했습니다. 밤하늘의 보석에 나온 나선팔의 얼룩 무늬에 주목하라는 조언 내용도 관측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도립상 기준 은하 아래쪽에 항성 세 개가 'V' 자 대형을 이루며 은하를 떠받치는 형국이었는데, 은하 좌상단 외곽에 발가락 아이콘 비슷한 덩어리들이 주변시로 보였습니다. 산짐승이 눈밭에 남긴 발자국 같았습니다. 밤하늘의 보석이 귀뜸해준 얼룩무늬가 확실해 보였습니다. 온 신경을 집중해서 관측할 만한 개성이 있는 은하들이 가끔 나타나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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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C 4725 : 출처 Sky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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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C 4712 : 출처 Sky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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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C 4747 : 출처 Sky view]
 

 NGC 4725(3,900만 광년)는 평범한 정상 나선 은하로 보였습니다. 허셜 목록은 아니지만 NGC 47124747도 가까운 거리에 있어 관측했습니다. 밤하늘의 보석에서 나선 구조를 관측할 수 있다고 소개된 NGC 4712 은하는, 성도에 표시된 거리(29천만 광년)를 확인할 때부터 김이 확 새는 기분이었습니다. 아이피스를 잠깐 들여다본 뒤 "대체 무슨 소린지... 나선 구조는 개뿔. 주변시로 존재만 확인 가능. 무척 작음."이라는 신경질적인 소감을 기록했습니다.
 

 NGC 4747(6,600만 광년) 은하에 대해서도 "대책 없이 어둡고, 모양도 두서없음. '나가리' 그 자체."라는 비속어 섞인 소감을 남겼습니다. 밤하늘의 보석에는 원반 형태가 붕괴하는 형상을 볼 수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여전히 세상에는 제 공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우주 허언증 환자들이 수두룩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밤하늘의 보석'을 쓴 저자가 외국에서 출간된 관측 가이드 내용을 참고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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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C 4394 : 출처 Sky view]
 

 이날 머리털 자리에서 마지막으로 관측한 허셜 목록인 NGC 4394(8,100만 광년)는 한 시야에 들어온 M85 은하에 비해 밝기와 크기 모두 1/4 정도 왜소해 보였습니다. 밤하늘의 보석이 조언해준 'S' 자 형상을 확인할 수 있어 짜릿했습니다. 주변시를 쓰면 은하 내부를 관통하고 외곽을 향해 뻗어 있는 'S' 자 구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날 관측한 마지막 허셜 400 목록이었습니다.
 
 
 
#03 : 뱀주인 자리(Oph) 구상성단 복습
 

 허셜 목록에서 눈을 돌리자 극도의 피로가 엄습했습니다. 남동쪽 하늘에 올라온 뱀주인 자리를 보고 잠시 추억에 젖었습니다. 작년 이맘때 스타호핑은 고사하고 도트 파인더로 대충 때려 잡으려고 기를 쓰던 시절, 석모도 개활지에 홀로 앉아 뱀주인 자리 구상성단들을 보고 감탄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한 손에 성도를 들고 뱀주인 자리 구상성단들을 가벼운 마음으로 유람했습니다. 그 시절엔 호핑이 왜 그렇게 두려웠을까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다시 봐도 행복했고, 언제 봐도 지금처럼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04 : 관측 해상도가 높아질수록 가늘어지는 M51의 나선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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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51 : 출처 https://images.app.goo.gl/i4fpJas6sSxgmQst5]
 
 
 야간비행 정기 관측회 때 이한솔 님께서 흥미로운 경험담을 들려주셨습니다. 1미터 구경의 조경철 천문대 망원경으로 M51 부자은하를 본 적이 있는데, 관측 해상도가 높아질수록 나선팔이 오히려 가늘게 보인다는 얘기였습니다. 큰곰자리 꼬리가 천정 부근을 향한 새벽 4시 무렵 버드나무 가지 님께 보여드리기 위해 M51을 겨눴을 때, 이제껏 관측해본 가장 황홀한 나선팔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한솔 님께서 말씀하신 해상도에 따른 나선팔의 두께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구경을 키우지 않더라도 대기 투명도가 정점을 찍는 천정 부근에서 관측한 나선팔의 형상은 확연히 달랐습니다. 두 은하를 잇는 브릿지가 훤하게 눈에 들어온 것은 물론이고, 어떤 나선팔들의 친소 관계도 알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버드나무가지 님도 이런 환상적인 광경은 처음 봤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05 : 멧돼지 출몰 소동
 

 장비를 막 정리하려는데 불과 십여 미터 떨어진 숲속에서 잔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부산하게 이어졌습니다. 고양이겠거니 싶었는데 숲을 박차고 나온 검은 짐승의 형체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반사적으로 조명을 비추자 주둥이 양쪽으로 길게 삐져나온 이빨이 보였습니다. 그동안 수도 없이 제발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바로 그놈이었습니다. 다른 별지기들에게 피신하라고 소리치고 바로 차 안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창문을 반쯤 내리고 멧돼지의 움직임을 주시했는데, 바닥에 코를 대고 망원경 주변을 기웃거리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텐트에서 자다 소리를 듣고 나온 초가집 님은 실성한 사람처럼 외쳤습니다. "! 단백질과 지방을 확보할 좋은 기회군요." 천문 관측계의 베어그릴스다웠습니다. 행여 사람이 다칠까 싶어 멧돼지를 향해 반복해서 소리쳤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믿기 힘든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멧돼지가 제 앞으로 다가오더니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얕잡아본 것이냐? 생존은 지상 모든 생명체의 사명이다. 먹을 것 좀 찾으러 왔는데 왜 이리 소란이냐!"
  
"금수와 사람의 길이 엄연히 다르거늘, 어찌 요사스럽게 사람의 말을 흉내내느냐! 주변이 울창한 숲 천지거늘, 하필 사람들 어울리는 곳까지 내려온 까닭이 무엇이냐? 내 너 같은 요물은 난생 처음이다. 당장 숲으로 돌아가지 못할까!"
 
"그동안 네 놈이 처먹은 족발과 삼겹살을 모두 토해내면 돌아가겠다. 돼지 가공육도 포함된다."
 
"오호라, 사람 말을 흉내내는 걸 보니 전생이 축생은 아니었던 모양이로구나.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르겠다만, 태산처럼 쌓아올린 업보 가운데 필시 별 보기를 소홀히 한 죄도 있을 것이다. 다음 생에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려거든 허기를 겨우 면할 만큼만 쏘다니고, 겸허한 마음으로 밤하늘을 살피는 게 이로울 것이다. 썩 물렀거라!"
 
"뻔뻔하게 요설을 입에 달고 사는 건 바로 네 놈이다! 내 목 관절을 제대로 살폈다면 어찌 그런 헛소리를 내뱉겠느냐. 사지를 땅에 붙이고 사는 처지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살필 방도가 어디 있겠느냐? 오메가 센타우리나 겨우 보면 다행이다. 맨눈으로도 헛것을 보는 걸 보니 네 놈은 따로 큰 눈을 들일 자격이 없다. 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저 큼직한 거울을 깨뜨리고 말 것이다. 두 눈 똑똑히 뜨고 지켜보거라!"
 
"으아악... 안 돼!"
 
 비명을 지르고 눈을 떠보니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아내였습니다. 염치가 있으면 당장 일어나 아이들과 놀아주라는 핀잔을 한 바가지 들었습니다. 일어나자마자 습관처럼 하늘부터 살폈습니다. 이번 월령에 허셜 400 목록 250개 돌파를 목표로 삼았는데, 4개나 초과 달성했습니다. 남은 146개도 수월하게 마무리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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