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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욱


-------------- 1월 3일 (Stargazing road trip 3일차) --------------


아점을 대충 해결하고 텐트를 정리하고
오늘의 날씨를 확인하기 위해 가장 가까운 타운, Opotiki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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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을 지낸 이 곳도 별을 볼 장소로는 충분히 멋진 장소이지만..
이동을 한 것은 뉴질랜드에 살면서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구 5천 정도의 작은 타운 Opotiki에서 모바일 데이터를 쓰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2G라도 뜨는게 다행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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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할 수 있는 곳을 물어 물어서 인터넷 카페에 찾아갔다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에서는 이미 20년 전에 사라진 인터넷 카페..
내 기억에 2003년에 체코 어딘가 기차역 앞의 인터넷 카페에 가본게 아마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여튼 귀한 인터넷을 푼돈으로 마음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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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 싶은 곳의 날씨 예보가 좋다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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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가려고 계획한 곳은 East Cape라는 곳이다
뉴질랜드의 동쪽 끝. East 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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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쪽 끝은 세상의 동쪽 끝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날짜 변경선에서 가장 가까운 땅이기 때문이다. 

East Cape 2.gif

(Kiribati 등 날짜 변경선에 더 가까운 섬나라들도 있지만 너무 작은 섬들은 빼고..)

실제로 이 동네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일출을 먼저 볼 수 있는 곳”으로 홍보를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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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지리적인 포인트(가장 00한 곳)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전부터 꼭 가보고 싶던 곳이다. 
날씨만 좋다면 말이다

그리고.. 그 곳에는 예약 없이 자유롭게 캠핑을 할 수 있는 캠프 그라운드가 있다.

오늘의 목적지를 확정하고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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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도로 170km에 왜 3시간이 걸린다고 하는지 달리다 보니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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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을 끼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해변의 깎아지른 산악 지형을 굽이굽이 달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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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한 산중에서 쉼없이 코너링 노가다를 하다 보면 가끔씩 그림 같은 해변이 나오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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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산길과 급커브 다시 해변 무한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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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색이 고속도로인 35번 Highway를 어지럽게 달려서 다시 문명 세계로.. Hicks Bay(Te Araroa)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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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14km만 더 들어가면 꿈에 그리던 세상의 동쪽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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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설마 했는데 여기서부터는 14km 내내 비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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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언할 수 없는 소음과 진동과 먼지에 이미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가 있는데
그림 같은 창밖 풍경은 안그래도 못차리는 정신을 더욱 혼미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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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이스트케이프 캠프그라운드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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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에서만 보던 그 곳. 진짜 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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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글솜씨로는 온전히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에 눈물이 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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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꼴로 셀카도 한방 찍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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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명의 캠핑족들과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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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 중앙에서 약간 오른쪽의 차와 텐트가 내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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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의 동쪽 끝, 동경 178도 33분.. 말그대로 땅끝 마을이다
드넓은 푸른 초원 앞의 망망대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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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이 비현실적인 풍경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산길에 비포장을 한참을 달려올 가치가 차고 넘친다


피서 인파로 인산인해인 다른 캠핑장과 달리 
사람도 없고 캠핑 구역도 따로 없고 
시설이라고 해봐야 앉을 엄두도 나지 않는 친환경(?) 화장실이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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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캠핑장 관리인도 없다
대신 말로만 듣던 Honesty box가 캠핑장 입구에 덩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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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방명록에 차 번호와 이름을 적고
(아무리 뒤져봐도 최근에 Korean이 다녀간 적은 없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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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 안에 $6를 넣으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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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하는 사람도 없고,
돈을 내지 않아도 아무도 모르겠지만
초현실적인 풍경 아래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데
6달러가 아니라 600달러라도 아깝지 않다

더군다나 하늘은 예보대로 맑아져간다

텐트를 날릴 기세의 엄청난 강풍과 함께 여유롭게 저녁을 해결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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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린다.

텐트에 누워서도 수평선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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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해가 빛나는 끝이 없는 바닷가~~ 하는 옛날 만화영화 주제가가 이유없이 머릿속을 맴돈다)


남한의 3배만한 땅에 인구 500만명, 
호주보다는 인구밀도가 높지만
한국에 비하면 거의 텅 비어있는 이곳 뉴질랜드에서도 
East Cape 지역은 오지 중의 오지다
오래전부터 터를 잡고 있는 원주민(Maori)들만 드문드문 살 뿐이다
아래 광해지도에서 우상단에 살짝 튀어나온 부분, 
광해량이 전혀 표시되지 않는 곳이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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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어둠이 깔리고, 구름이 사라지고, 
망원경을 날릴듯하던 바람마저 잦아들었다

내 눈 앞의 손바닥이 보이지 않는 완벽한 어둠.
조용한 파도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완벽한 정적.
그리고 너무나도 완벽하게 찬란한 별빚..

이 세상에 나 혼자서 숨쉬고 있는 것 같다.
2015년 스웨덴 북부 국경지대의 눈덮힌 거대한 얼음 호수에서 느끼던
그 정적과 어둠이 문득 생각난다

[ 얼음 호수의 거대한 오로라, 김동훈 作 (2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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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맨 왼쪽의 앉아 있는 사람이 나다)


이번 여행은 동행도 없고 십여명의 다른 캠퍼들도 모두 일찍 잠자리에 들어서
그 정적과 어둠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무서울 정도로 거대한 은하수를 한참을 즐기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망원경을 돌려보았다

근데 시상이 영 좋지 않다
이런.. 분위기 깨지네 ㅡ_ㅡㅋ

경험상 날은 좋은데 시상이 개판인 날은 성운을 보아야 기름값을 건졌던 것을 기억하고
평소에는 잘 보지 않는 성운들로..
(사진에 비해 보이는 모습이 영 별로인 성운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성운들 중에는 남들 다 보는데 나만 못보던 대상들이 많다
플레이아데스 안의 멜로페 성운, 오리온자리의 말머리 성운이 특히 그렇다

우선 플레이아데스부터.
멜로페 별을 찾으니 그 별을 둘러싸고 있는 뿌연 성운기가 바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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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구글 검색 – S&T 이미지)

빗자루로 쓸어낸 듯한 특유의 모양까지는 아니지만
성운의 형태와 영역을 확실히 구분할 수 있다
이게 이렇게 쉬운 아이였나?


그럼 말머리도 한번..
ic434.jpg
(출처: 구글 검색)

말머리 관측에 대한 아무 정보도 없이 그냥 Sky Safari에서 삼태성부터 IC 434를 찾고..
H Beta 필터는 없으니 UHC와 O3를 번갈아 끼워봐도 전혀 반응이 없다
노필터에 주변시로 말머리가 있을 곳을 응시하니
놀랍게도 거기에 말머리가 있다
머리 방향도 모양도 확실하다
이렇게 쉬운 아이가 아닐텐데.. 
역시 최고의 장비는 검은 하늘이다.


여기저기 성운들을 구경하고 다니다가 LMC(대마젤란)로 기수를 돌렸다
시상 문제로 기가 막힐 정도로 대단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LMC 내부의 성운들은 평소보다 두배씩은 벌크업을 하고 있다
오늘도 LMC를 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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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MC 내부를 스위핑하며 한참을 우주 유영을 하다보니 조그만한 동그란 성운들이 잔뜩 모여있는 곳에서 눈길이 멈추었다
LMC description_sketch schedule.jpg

성도를 찾아보니 데이터 상으로는 모두 산개성단들인데..
실제 보이는 모습은 분해가 전혀 되지 않아서 
그냥 동그란 성운 또는 작은 구상성단들 무리로 보인다

(참고 사진조차 찾기가 쉽지 않다. 구글에서 겨우 찾은 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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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http://members.pcug.org.au/~stevec/ngc2065_STXL6303_RC14.htm)

어제는 아이피스 한 시야에 7개의 성단을 담았는데
오늘은 그리다보니 9개까지 되었다
하늘 어느 곳에서도 이렇게 많은 성단을 한꺼번에 만날수는 없을듯.

[ 9 Open Clusters, 검은 종이에 파스텔과 젤리펜, 세상의 끝에서 조강욱 (2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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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동안 스케치를 완성하고 나니 새벽 2시.
어김없이 졸음이 밀려온다
이것도 노화의 한 증상인지 
하룻밤을 온전히 관측에 집중할 수가 없다
별보기로 우주에 흔적을 남길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음을 느끼며.. 잠시 취침.

오늘도 30분만 자고 일어난다고 알람을 걸어 두었으나 
눈을 뜨니 또 2시간이 지나서 새벽 4시가 되었다
이것도 데자뷰일까?
망연자실.. 아까운 시간을 또 잠으로 보냈다
이 귀한 곳에 언제 또 올 수 있을지 모르는데 말이다

어제랑 똑같은 시간에 잠들고 일어나서 
어제랑 똑같이 허둥대다가 박명을 맞았다
노화의 증상을 인정해야 할듯.

박명과 함께 너무나도 얇은 눈썹달이 떠올랐다
어제랑 똑같은 패턴으로
캠핑의자에 앉아서 그 달과 황홀한 하늘색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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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색이 너무 빨리 변해서 화면을 쪼갤 수밖에 없었다
[ Moonrise at East Cape, 갤럭시 노트4 & 터치펜, 세상의 끝에서 조강욱 (2019) ]
Moonrise at East Cape 4 Jan 2019.jpg


뉴질랜드의 동쪽 끝에서 계획한 마지막 미션,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일출을 봐야 하는데..
분명히 뜰 때가 되었는데 수평선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린 플래쉬도 오메가도 완벽히 보일 날인데 말이다

결국 동쪽의 넓은 수평선 대신 남쪽의 절벽 위에서 일출을 볼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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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달이 절벽 위에서 떴는데 해도 당연히 거기서 뜨겠지.. 왜 그걸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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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동지였지.  하필 해가 동쪽 수평선이 아니라 가장 남쪽에서 뜰 때에 온 것이다
(여긴 남반구라 Winter 대신 Summer Solstice다)

새벽에 차 몇대가 급하게 캠프 그라운드를 빠져나갔는데
아마도 일출 보려고 다른 장소로 이동했던듯..
아쉽지만 다음 기회로.
언제 또 올 수 있는 곳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슬에 흠뻑 젖은 장비들을 말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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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여명을 느긋하게 즐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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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마다 알바하는 망원경 샵에서 강탈한 
회사 로고가 찍힌 비니와 함께 셀피 한컷 찍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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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road trip에서 (날씨 관계 없이) 유일하게 계획되어 있는 일정을 위해
서둘러 짐을 챙겨서 땅끝 마을에서 출발.

가다가도 아쉬워서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
꼭 다시 올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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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ightwid 無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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