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측기 & 관측제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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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욱


오랜 기아 끝에 맑은 그믐 주말을 맞은 12월의 금요일,


긂주림에 지친 많은 별쟁이들이 하나둘씩 어디론가 어둠을 찾아 나섰다


그날 서울에서 원장님 탄신일을 함께 한 나는


주말 오후, 서해안에서 서서히 진군하는 구름 군단의 이동을 지켜보며


여느때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오후 5시 홍천 도착. 아무도 없다


적막한 앞마당에는 어젯밤의 조용하지만 치열했을 그 흔적이 막 눈 앞에 보일 것 같다


아직 출발 전인 재곤/형석님에게, 집 앞에는 구름이 당도했다고 거긴 어떻냐는 전화가 연신 울린다


구름 이동 속도로 보아.. 자정까지는 버틸 수 있겠지..


SKY SAFARI를 돌려보니 오늘은 월령 0.8일이다


아직 만나지 못한 마지막 달, 초하루 달을 만나기 위해 혼자 한시간여 애를 써 봤으나 실패....


1일 달은 지평선이 보이는 곳으로 가서 보지 않으면 어려운가보다


그러는 사이 어둠이 밀려오고 별들이 하나둘씩 얼굴을 내밀더니


어느새 백조 은하수가 흩뿌려진 하늘이 되었다


12월 한겨울에 백조라.. 이거 원래 이런건가?


오늘 나의 관측은 42번(오리온 성운)부터다


※ 지금 하늘에 보이는 여름-가을-초겨울 메시에 대상은 모두 스케치 완료. 더 할 것이 없다


동쪽 산 위에서는 이제 막 플레이아데스가 얼굴을 내밀었을 뿐..


한 두시간은 할 일이 없어서, 키 작은 캠핑 체어에 반쯤 몸을 뉘어본다


날씨도 12월 치고는 따뜻하고 (내가 북극 원정용 옷들을 입고 있어서 그럴지도)


고요한 하늘에 무수한 별들 사이로 인공위성이 수시로 날아간다


문득 호주 생각이 난다


작년 11월,


무작정 다음날 출발하는 퍼스행 항공권을 끊고 서호주로 날아가서


첫날밤 노숙하며 보았던 수많은 별들과 인공위성들....


인적 없이 적막한 땅과


소리없는 요란함으로 나를 반기던 검은 하늘의 기억.

 

별이불.jpg 


지금 여기가 호주인지 한국인지 잘 분간이 되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작년 이맘때의 그 상황을 올해도 또 똑같이 겪었다)



한참을 멍하니 캠핑체어에 누워있다가


시간도 때울 겸 닥치는대로 대상을 찾아본다


57, Veil, 869, Alcyone, 56...


아이피스에 눈을 박아넣고 한참을 그냥 하염없이 본다.


그 자리에 그대로 잘 있네!



두시간 뒤, 드디어 42번이 동쪽 산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그 직전에 재곤님 형석님이 30초 차이로 도착.


(내 입장에서 보면 셋이 같이 온 것)


사람의 형상을 한 두 분과 먼저 인사를 하고


(조장 총량 보존의 법칙은 관측회는 예외임)


1500광년 밖의 멀리 있는 한 분과 재회.



2009년부터 메시에 스케치를 하면서


한번 스케치한 대상은 다시 보지 않는데 (볼 시간이..)


오리온은 벌써 4번째다


2010년에 이미 수피령에서 4시간을 투자하여 그림을 남겼으나


너무 초기에 너무 어려운 대상을 도전한 바람에


완성도가 너무 떨어져서 재작업 결정.


(구도 미스로 괴상한 클로즈업이 되었음)

M4243_res1_100206.jpg



지난 10월 스타파티에선 두시간을 그리다가 구름으로 중단.


11월 평창에선 한 시간도 채 못보고 다시 구름으로 중단.


(스케치를 완성하지 못하여 관측기도 쓰지 못함. 본편으로 통합)



벌써 네번째..


2000_M42_151211_Curve.jpg


 

구도가 너무 커서 중요한 중심부가 잘 안보인다.

 

클로즈업 한번!

 

M42_151211_Curve_Closeup.jpg


보고 있을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마성의 오리온.


오리온의 깊이는 대체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그림 만으로는 수많은 관측 포인트를 표현하기 어려워서


간만에 그림 설명 한번!


M42_Description.JPG

 

M42_Description2.JPG



몇년동안 강박을 가져왔던 오리온을 넘으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24번만 빼고는 뭐든지 맘편히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은?


EQ로 그리기 적당한 고도의 외뿔소자리 50번을 향한다


이건 꼭 그리다 만 하트모양 같이 생겼다


제목 : 오픈하트 (티파니 아님)


2000_M50_151211_Curve.jpg

 

M50_Description.JPG



다음은 뭘 할까.. 자정이 가까워오니 드디어


큰개자리가 먹음직한 고도에 떠올랐다


밤하늘의 명작(이라고 생각했던) 41번을 잡았는데


얘가 원래 이거밖에 안되는 애인가?


밝기는 한데 많이 허전하다


기억 속에 역시 (숨겨진 명작으로) 아름답게 포장되어 있던 93번도


이상하게 땡기질 않는다


46 47은 어떨까?


46번을 잡아본 순간 정신이 아찔해진다


밤하늘 최고의 Collaboration....


언제 봐도 예쁘지만 오늘은 더 아름답다


근데 그 자잘하고 밝기 차이 없는 수많은 별들을


그냥 맘편히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그리려고 하니 한숨부터 나온다


42번도 그렸는데 (24번만 빼고) 못할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방망이 깎는 노인의 마음으로 그냥 하나씩 아무 생각 없이 별들을 찍어 나간다


두시간 만에 별들을 모두 찍고


마지막으로 2438로 화룡점정.


[ 전 우주 최고의 Collaboration ]


1600_M46_151212_curve.jpg  



장형석님이 UHC 사용한 2438 컬러 스케치를 신청하였으나


필터의 녹색 느낌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기각!



EQ 플랫폼을 사용하니 수동 트래킹 노가다가 필요 없어서


불필요한 시간 소모와 체력 낭비를 막을 수가 있는데


대신 5시간 넘게 한 자세로 집중해서 점을 찍었더니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몸이 비명을 지른다


이런 상황을 배부른 소리라 하는 것이겠지.



마지막 대상.


밝은 별들이 성기게 모여 있어서 이거 금방 끝나겠지 했는데


하나씩 찍다 보니 잔별들이 끝도 없다


집중력이 떨어져서 수시로 마음을 다잡고 있으려니


새벽 3시쯤, 서쪽부터 별들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드디어 올 것이, 올 구름이 왔다


자정이면 당도했어야 할 구름이 약한 바람에 이동이 지연되어


새벽 3시에 온 것이니 다행이라 해야 할까?


한시간 짜리 구름이라 알람 맞춰놓고 차에서 한시간을 자다 나오니 거짓말처럼 하늘이 개었다


신나서 다시 점을 찍으려니 이내 다시 구름.


아쉽지만 완성은 다음 관측으로..


그리다 만 이것이 무엇인지 먼저 맞추는 분께는 상품을 드립니다


last.jpg  



박명까지는 채 한시간도 남지 않았다



구름이 가득 흘러가는 하늘 아래에서


다시 캠핑 의자에 앉아서 요즘 머릿속에 흘러가던 노래들을 찾아서 블루투스 스피커로 들어본다


'언제라도 힘들고 지쳤을땐 내게 전화를 하라고..'


며칠전 늦은 밤, 회사에서 야근하다 문득 생각나서 이 노래를 흥얼거렸더니


부서원들의 세대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같이 부른다 = 90년대 이전 학번


저게 대체 뭐냐 쳐다본다 = 2000년대 이후 학번



어느새 하늘은 박명을 향해 가고 블루투스 스피커에선 같은 앨범의 다른 노래가 흘러나온다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네


누가 투쟁의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네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했을까?


대체 누가, 왜 나에게 이런 미션을 주었을까?


나는 꼭 내 인생의 목표를 달성할 것이다


이 우주에 반드시 나의 흔적을 남겨야겠다





                         Nightwid 無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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